109화
털썩!
자리에 앉은 MC들이 숨을 헐떡이며 질린 눈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우리가 이런 방송 프로그램이 아닌데...”
투덜투덜.
“하하. 그러게요.”
“어우 땀난다.”
“대단하네. 저 정도 실력이면 정말로 무일푼으로 여행을 다녀올 만하네.”
도경의 실력을 점검하는 시간은 김국신의 개입으로 어느새 라수식구 VS 도경이라는 경쟁 구도를 만들게 되었는데 남은 두 종목인 팔씨름과 다트에서 도경의 도발로 서로들 내기까지 하는 둥 판이 커졌다.
“하하하! 제가 말했잖아요. 철인으로 불렸다고 말이에요.”
“아, 우리가 제대로 당했어.”
“약속 잊으시면 안 됩니다. 편집하거나 그러기 없기에요.”
“저거 정말 꾼이야. 마지막에 그건 어떻게 한 거야?”
“재능으로?”
“허...”
MC들도 모자라 스태프까지 가세했었는데 결과는 도경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팔씨름에서 도경의 다양한 방식으로 이기는 잡기과 완력에 놀라고 다트에서는 다트판을 보지 않고도 정중앙을 맞춰버리는 그의 실력과 멋있음에 남자로서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도경은 가히 신기라도 할 수 있는 기술을 모두 앞에 선보였었다.
10m 거리.
눈에 보일까 말까 한 다트판의 정중앙의 빨간 점을 꿰뚫는 다트.
“약속 잊으시면 안 됩니다. 편집하고 그러기 없기에요.”
“이번에 라수가 게스트한테 제대로 털렸네요. 신인한테 사기 치기엔 저희도 자존심이 있죠. 약속 이행 가능하시죠?”
뜨끔.
[JY] 엔터테인먼트에서 원할 때 방송이 끝나면 틀어주는 M/V에 [JY] 회사의 노래를 홍보해주기로 한 도경의 내기 조건을 떠올리며 라수PD는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체념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국신이 저렇게 이야기를 꺼낸 이상 수작을 부려선 안 됐다.
“으... 알겠습니다.”
“아자! 사장님 보셨습니까? 제가 해냈습니다. 이제부터 폭탄이 아니라 복덩이라 불러주시죠!”
하하하.
“도경이 너 내가 보니까 가수 데뷔는 꽤 멀어지겠다. 예능이 네 천직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저 K 스타 박도경입니다. 제가 노래 부르는 거 못 보셨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인성 떠나서 제 노래 실력 하나는 국보급 인재인거 모르세요?”
“칫. 재수 없어...!”
“뭐어? 지금 하늘 같은 오빠에게 뭐라 그랬냐? 요 입이냐?”
꼬집.
“뭣!? 우어어 이으거 나오!(이거 놔요!)”
국민여동생이라 불리는 이지원의 하얀 볼살을 거침없이 당기며 골리는 도경의 손길에 이지원은 시뻘게진 얼굴로 도경을 붙잡아 그의 등짝을 찰싹하고 내리쳤다.
찰싹!
“아 따거!”
씩씩!
“오빠! 이래봬도 제가 오빠보다 선배거든요? 한번 가요계 선배한테 정신교육 받아 볼래요?”
“아.......”
스윽.
“뭐 뭐하는 거예요?”
이지원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떨구더니 자신의 의자 위에서 이지원이 있는 방향으로 무릎 꿇는 자세를 취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후배가 잘못 했습니다. 어떻게 지금 여기서 무릎 꿇고 손이라도 들까요?”
“이익...! 쇼 하지 마요!”
“네! 선배님.”
슥.
“진짜...!”
빠드득.
하하하하!
도경의 뻔뻔한 모습에 이를 가는 이지원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이를 보고 있던 MC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둘을 바라보았다.
예능에 출연하면서 소탈한 모습을 간간히 보여주었지만 주로 국민 여동생으로서 사랑스럽고 풋풋함을 보여주는 게 전부였던 이지원인데 이번 라수에서 제대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지원 양의 이런 모습은 처음 아닌가요.”
“그러게. 보니까 쟤도 은근 성격이 있어. 낄낄낄.”
“네? 아니에요.”
“하하하! 아니긴요. 이번 촬영 영상 꼭 방송으로 확인해 보세요. 지원양.”
“......”
MC들이 나이가 무색하게 신난 표정으로 이지원을 골렸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지원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구한이 도경에게 휘둘리는 그녀의 사정이 남 같지 않아 어울리지 않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 제가 보기엔 나랑 이지원 양은 오늘 라수 출연은 득보단 실이 많아 보이네.”
“하아... 저도 그런 거 같아요.”
“하하하. 왜? 구한이 너 오늘 레전드야. 내가 100% 장담하는데 너가 쫄아서 비명 질렀던 거 온라인에 움짤로 돌아다닌다.”
“설마. 아니지? 내가 라수에 이바지한 게 얼만데 말이야. 그치 서PD?‘
“...”
“아니, 이봐! 왜 눈을 안 마주쳐?”
PD에게 삿대질하며 따졌지만, 구한의 반항은 공허한 외침일 뿐 주변 MC들의 비웃음을 사기만 했다.
“자 너무 도경 씨에게 시간을 빼앗겼는데 관심을 돌려 지원양도 요즘 인기가 무시하다 들었습니다. 첫 드라마에 대박이 터졌는데 주부님들이 그렇게 이지원 씨를 그리 좋아한다고...?”
“네. 그게...!”
“어? 너 드라마도 찍었어?”
“오빠는 빠져있어!”
하하하하!
대답하는 자신의 차례에 깐죽이는 도경의 목소리에 지원이 대답하다 말고 도경을 향해 비명 지르듯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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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 때문에 과열되었던 분위기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지원에 의해서 휴식하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보통이면 방송이 지루할까 봐 어떻게든 게스트들의 말에 껴들고 자극적인 소재를 물어볼 테지만 이미 [트리니타스]와 도경의 활약에 방송분량을 차고 넘치게 확보한 것을 알기에 MC들은 이지원의 말에 적절히 호응하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다.
“아.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외모 때문에 부유한 환경에 성장한 줄 알았는데 보이는 것과 달리 우여곡절이 많은 고생을 했었군요.”
“헤헤헤. 다 옛날얘기죠. 팬분들하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요즘은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기특하네.”
“규영이 너도 항상 까불지 말고 저 후배 좀 본받아라.”
“저 가지고 왜 그래요? 구한이 형이나 잘해요. 요즘 초심이 많이 없어졌다고 고정 팬들한테 한 소리 듣잖아요.”
“야! 내가 초심 때처럼 방송하면 방송 짤려!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앉아있어.”
“그러니까요! 초심 좀 발휘 해봐요.”
“너...!”
빠득.
“하하하.”
이지원이라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탄생에는 솔로로서의 불안과 치열한 경쟁을 극복했기에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거운 이야기.
하지만 미소 지으며 여유롭게 덤덤히 이야기하는 그녀의 어리지만 존경스러운 부분은 MC들에게 많은 인상을 남기었다.
“그래요. 식상한 말이지만 힘든 고난과 일이 있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얻는 것도 있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올바르고 기특하게 커서 많은 삼촌 팬들을 대신해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아. 감사합니다.”
“그래. 앞으로도 초심 잃지 말고 잘해.”
“오빠한테 말한 거 아니거든요?”
“얘가 초심을 잃었어...”
중얼.
“뭐라고요?”
“아닙니다. 선배님.”
“치. 말만 선배님이지.”
“하하하 또 시작하려 하네요. 둘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다음 코너를 진행할 시간입니다.”
조용하더니 또 한바탕 하려던 둘을 김국신이 사람 좋은 웃음 지으며 말리며 다음 코너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김국신의 말에 옆에 있던 구한과 윤종진이 그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촬영이 재밌게 되는 것은 좋지만 그만큼 체력의 소모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네. 지금 많이 늦었다.”
“그래 오늘 촬영 너무 힘들다. 집에 가면 쓰러질 것 같아.”
“하하하. 이번에는 구한 형한테 뭐라 말 못 하겠다. 오늘 웃는 것도 일인 걸 깨달았다니까요. 아직도 입가가 얼얼해요.”
게스트들을 쥐어짜던 MC들이 이 정도로 앓는 소리를 내다니 도경이 얼마나 깽판을 쳤는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평범한 행보를 걷지 않는 오늘 게스트들에게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죠. 그건 노래에 특출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은 정말 고품격 음악방송에 걸맞은 게스트들을 모신 겁니다. 자! 그럼 게스트들의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노래]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스트들의 노래를 들어보는 라수의 마지막 코너.
그리고 김국신의 말에 [트리니타스],[I의 이지원].[도경]이 눈빛을 빛내었다.
예능을 못하고 말을 못 한다 하더라도 무대는 남는다고 지상파 방송 MBN. 황금시간대에 2,3분간을 온전히 집중 받을 수 있는 무대는 가수로서 놓칠 수 없는 무대였다.
“다들 독특한 곡을 선곡하셨습니다. 우선 첫 번째 무대를 장식할 [트리니타스]의 선곡을 안 물어볼 수 없는데요.”
“Passenger의 [Let her Go]? 너희들 중에 누구 실연했어? 의외의 선곡을 했네?”
“하하하. 뭐 그거랑 비슷한 거죠.”
“응 비슷하다니?”
음악적이 소양이 깊은 윤종진의 물음에 최승환이 웃으며 자신의 옆에 있던 김강운을 가리켰다.
“이 녀석이 시작도 못 하고 실연을 했거든요.”
“실연? 저 김강운이?”
“아, 그런 게 아니라. 강운이가 이번에 좋아하는 여성이 생겼는데 알다시피 저희가 아이돌이잖아요. 저랑 승환이는 나이도 있고 군대도 슬슬 준비해야 하고요.”
미소년의 실연이라 와 닿지 않는 말에 [트리니타스] 맏형인 한준우가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김강운을 바라보며 부연 설명을 하였다.
“이 녀석이 요래 보여도 팀의 리더잖아요. 승승장구 하고 있을 때 자신이 욕심으로 팀에 앞길과 팬들을 실망하게 하면 안 된다고 시작도 안 하고 자기가 스스로 맘을 정리하더라고요...”
“정말 안타까웠다니까요. 처음이었지? 그날 강운이가 술 먹은 게 말이야...”
“아...! ”
[트리스타스]의 이야기를 들은 MC들은 한탄하며 김강운을 바라보았다.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는데 설마 그런 쓴 아픔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남자로서 절로 김강운에게 동정이 가는 MC들이었다.
“이야.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닌데...”
“아직 어린나인데 너무 안타깝네. 상대는 강운 씨 마음을 알고 있나요?”
“모를걸요? 강운이가 티를 내야죠.”
음악선배인 윤종진은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돌이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많은 걸 포기해야 해야 된다니까..”
“괜찮니 강운아. 형이 술 한잔 사줄까?”
“괜찮아요. 오늘 노래로 털어 버리려고요.”
“자신만의 이별 송이구나.”
“오늘 애들한테 많이 배우는 날이네.”
김강운의 덤덤한 대답에 김구한이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예계에서 자신의 혈기를 주체 못 하거나 마음을 관리 못 해 사건사고가 터지는 비일비재한 곳에 21살의 어린 젊은이가 자신의 첫사랑을 정리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자 그럼 트리니타스의 [Let her Go]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뒤에 있던 방송 세트가 좌우로 갈리며 라수의 익숙한 무대가 펼쳐지고 자리에 일어선 트리니타스 멤버들은 무대 위로 올라섰다.
“어 너희들 합주하는 거야? 악기도 다를 줄 알아?”
기타를 맨 김강운 뒤편에 마련된 전자키보드인 신시사이저 앞에 앉은 최승환과 묵직한 현악기 첼로를 점검하고 있는 한준우의 모습이 보였다.
“하하하. 저희가 저기 도경 씨처럼 잡다하게 재주가 많진 않지만, 음악은 꽤 재주가 많아요.”
“형...!”
“승환아 빨리 점검해. 너만 남았잖아.”
“아차. 미안 조금만 기다려.”
윤종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앞에 있는 [트리니타스]를 바라보았다.
익숙하게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이 하루 이틀 악기를 다루는 급조된 모습이 아니었다.
김강운이야 제2의 지성준으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다른 멤버들까지 저리 음악적인 소양이 높은 줄은 예상 못 했다.
“됐다 시작할까?”
끄덕.
스으윽.
“휘유~! 분위기 봐. 좋다!”
자세만 취했을 뿐인데 공기가 진지함에 묵직해져 온다.
일반적인 멋있기만 한 아이돌의 무대가 아니라 무게감이 있는 분위기 있는 무대 분위기였다.
퉁! 퉁!
주선율을 따라 부드럽게 기타를 연주하는 김강운을 시작으로 뒤에 있던 멤버 둘이 자신들의 악기들로 다양한 소리를 조심스럽게 포개어 김강운의 연주 소리의 깊이감을 더하기 시작했다.
따라랑. 땅 따라랑.
따라라라~!
노래의 첫 인트로에서 나오는 악기들에게 나오는 음악소리의 향연은 예능에서 보는 무대가 아니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진지한 무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후읍.”
저벅저벅.
촬영 내내 미미한 반응 말고는 별 반응 없던 차가운 청년이 천천히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 숙였던 기타연주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첫 음을 내뱉었다.
[당신은 빛이 사라질 때쯤에서야 빛을 필요로 하고
눈이 내리기 시작할 떄쯤에서야 햇살을 그리워하고
그녀를 보내야 할 때야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죠.]
“!?”
오싹.
너무나 섬세한 감성이 담긴 김강운의 첫 음에 자연스레 일어나는 닭살에 모두가 그의 노래에 빠지기 시작한다.
덤덤함에 목소리에 꾹 담은 애절한 감정에 감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야 애내들이 이 정도였어?”
“쉬! 조용...!”
“...”
김구한이 자신만의 감탄성을 냈지만 옆에 있던 윤종진의 핀잔에 가로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평소라면 투덜거렸을 김구한이지만 음악에 깊게 빠져 감상하는 윤종진의 모습을 보며 숨소리조차 줄였다.
예능에 깐족이는 캐릭터지만 사실은 음악에 대한 고찰과 진지함을 겸비한 음악인이 윤종진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종진이 형이 음악에 대해선 쉬운 사람은 절대 아닌데 어린데 대단하네.’
라수에서 수많은 무대를 보지만 윤종진의 이런 모습을 이끌어 내는 것은 정말 드물다는 것을 알기에 김구한은 [트리니타스] 멤버들을 보며 감탄한 시선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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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보내야 할 때가 돼서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버렸죠.
그리고 당신은 그녀를 떠나보내죠]
“아... 저 정도 일 줄이야.”
이지원은 입을 멍하니 벌리며 앞에 있는 [트리니타스]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트리니타스]의 실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완성된 아티스트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아이돌 그룹답게 밝고 경쾌한 댄스곡 위주인 그들의 노래만 들었기에 순수한 기량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대단하다.”
저 정도의 연주 실력과 김강운의 목소리를 은은하게 받쳐주는 최승환과 한준우의 노랫소리들은 주력이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게 대단하네.”
이지원의 감탄을 옆에서 듣고 있던 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노래를 들으면서 확신했다.
‘여기가 터가 좋나? 이런 좁은 땅덩어리에 저런 재목들이 잘도 나오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여러 사람을 보고 그 나라의 음악과 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단언할 수 있었다.
저기 앞에 있는 김강운은 보기 드문 재능의 소유자라는 것을 말이다. 저런 재목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성준이 녀석 긴장해야겠는데?’
성준이 지닌 재능에 비견되게 뛰어난 아니, 어쩌면 기교로는 한 수 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도경은 성준의 노래가 좋았다.
[당신은 어둠 속 천장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오래된 공허함을 느껴요.
왜냐면 사랑은 천천히 다가오고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죠.]
흠잡을 것 없는 합주와 김강운의 완벽한 노래. 모두가 감탄을 그치 못하는 무대였다.
그런데도 도경만큼은 인상을 찌푸리며 앞의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있는 걸...!”
대기실에 만났던 것처럼 모든 게 다 거짓부렁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노래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다는 김강운의 말은 절대로 거짓일 것이다.
모두가 꾸며낸 이야기.
그도 그럴게 저렇게 애절하고 슬프게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의 감정은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대체 노래를 왜 저렇게까지 부르는 거야?”
앵무새가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하는데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불쾌해...”
[불쾌한 골짜기]란 이론이 있다.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함과 혐오감이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런 일정 수준을 넘어서 사람과 로봇이 실제로 구별이 되지 않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불쾌감을 느끼는 기준점인 구분이 없어지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혐오와 불쾌감이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진짜 같은 가짜 노래.]
그것이 김강운이 부르는 노래의 정체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 노래에 감동받고 감탄하지만, 파동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느낄 줄 아는 도경으로선 생리적인 거부감이 드는 노래였다.
도경은 저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노래가 가짜인 것을 알고 있는데 노래를 듣는 감각은 진짜처럼 받아들인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감각에는 혼란이 일고 더 나아가 모호함을 느끼게 만들어 소름을 일게 만드고 이내 혐오감을 느끼게 만든다.
‘마음에 안 들어. 저 정도로 노래를 할 줄 알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다니. 아니, 느끼지 않으려는 건가?’
김강운은 로봇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사람.
그런데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다니 마음에 들지 않는 도경 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