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And you let her go.
그리고 당신은 그녀를 떠나보냈어요.]
“감사합니다.”
숨죽이던 무대.
노래를 마친 김강운은 마이크에서 입을 떼며 앞에 앞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무대를 끝을 알렸다.
타다닥.
무대 위에서 내려오는 [트리니타스]멤버들에게 보며 MC들은 박수를 치며 그들의 무대를 칭찬하기 바빴다.
짝짝짝!
“와... 진짜 정말 좋다. 너희들 진짜 실력 좋구나.”
“요즘 진짜 쟁쟁한 후배들만 올라오네요. 우리 그룹은 어떡하죠? 옛날이 그립다.”
“규영아 왜 그래? 너희들도 잘 나가.”
“구한이 네가 몰라서 그렇지 쟤들이 진짜로 잘하는 거야.”
윤종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트리니타스]멤버들의 무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요즘 우리나라 가요 음반계가 황금기라 불리는데 그 말이 맞네. 이렇게 괴물 신인들이 끝없이 쏟아 나오고 말이야. 우리 소속사 애들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아닙니다. 윤종진 선배님 기획사에 실력 좋은 아티스트들이 많은 거로 유명한데요.”
“하하하. 아니야. 너희 보면서 내가 오늘 느끼는 게 많아.”
자신의 기획사 [미라클]은 음악성은 잡았지만 조금은 대중성은 소홀하지 않았나. 앞에 있는 [트리니타스]의 멤버들을 보며 윤종진은 솔직히 경각심을 느꼈다.
‘뒤처지지 않게 분발해야지...!’
훌륭한 신성들이 나오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그들에게 뒤처지는 것은 현역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로 원치 않았다.
장강의 뒷 물결을 앞 물결이 밀어낸다 하더라도 그냥 무기력하게 밀려나기에는 그가 지닌 프라이드가 용납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좋은 자극이 된 것 같아. 고맙다 애들아.”
“아.... 아닙니다.”
깐죽거리는 예능인의 모습이 아닌 뮤지션인 윤종진의 모습으로 진심을 담아 [트리니타스]의 멤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랜만에 타오르네.’
김국신이 오랜 방송 활동에 예능에 매너리즘을 느꼈듯이 윤종진 또한 다작과 오랜 활동으로 자신이 음악에 대해 의욕이 식지 않았나? 걱정했지만 앞에 있는 젊은 후배들에 덕분에 걱정을 덜었다.
‘나는 아직 현역이구나.’
자기 안에서 의욕을 솟구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작업을 위해 일부러 힘을 돋워 일으킨 게 아니라 자연스레 일어난 욕구였다.
오랜 시간 현역으로 활동하고 나이를 먹게 되면 이 조그마한 욕구가 정말로 소중한 것이라는 깨닫게 된다.
만나기 힘든 손님의 방문에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피식.
‘다행이야.’
마음속 깊이 안도감이 차오른다.
윤종진이 기획사를 차리고 예능을 병행하며 매월 싱글앨범을 내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했던 이유는 바로 음악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노쇠한 몸.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 속에서도 일부러 힘든 길을 택해 걸었던 것은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여야만 자기 안에 있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의욕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근.
자신의 색이 바래지지 않았다는 증거.
천금을 주고도 얻기 힘든 조그마한 두근거림인 것이다.
‘저런 후배들이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지.’
예전에는 이런 두근거림을 얻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수시로 가슴이 뛴다.
아이돌들만 판 칠거란 예상했던 가요계.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던 때에 저런 인재들이 나타나 부끄럽게도 자신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며 가슴을 뛰게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좋은 날이야.’
힐끔.
“다음 순서는 [I] 이지원 씨인데 무슨 곡을 고르셨나요?”
두근두근.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신예들을 바라보며 윤종진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 곡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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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진의 기대감이 담긴 눈빛에 이지원은 조금은 긴장감을 가졌다.
첫 스타트의 무대가 너무 훌륭했다.
“제가 부를 곡은 [FourFiveSeconds]를 골라왔습니다.”
“[FourFiveSeconds]를? 이거 놀라운 노래를 선곡해 왔네. 이 노래 좋지.”
[FourFiveSeconds]-Rihanna, Kanye West, Paul McCartney
비틀즈의 전 멤버인 폴 매카트니와 칸예웨스트. 그리고 리한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이자 아티스트들의 만남은 그 누구도 예상 못 했고 지금 봐도 정말로 이상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FourFiveSeconds]란 노래의 등장은 제목 그대로 몇 초 만에 세상에 퍼져나가 이름을 널리 알리며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다.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대충 머릿속으로 이지원이 어떻게 노래를 부를지 떠올랐다.
컨트리 포크 풍을 띤 어쿠스틱 사운드가 기반인 이 노래에 이지원의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분명 자연스럽게 어울릴 것이다.
기타 소리와 어울리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뽑으라면 떠올리는 인물은 단연컨대 그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은 심심 할 수도...’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에 청아한 음색으로 서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지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에 윤종진은 이지원이 부르는 [FourFiveSeconds]는 조금 노래가 심심하게 들릴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의 묘미는 도발적이지만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하는 보컬이지.’
살아온 세대도 다르고, 살아온 장소도 다른.
괴물 같은 재능을 지닌 3인이 모여 그렇지 사실 그러한 요소를 빼면 평범한 어쿠스틱 노래였다.
3인의 묘한 조합이 섞여서 만들어진 이 노래를 그녀 혼자 부른다 생각하니 살짝 아쉬웠다.
“이 노래를 고른 이유가 있어요?”
“한번 부르고 싶었던 노래였거든요. 게다가 요즘 제가 오해를 많이 샀잖아요?”
“아...!”
“그 이야기를 해도 되나요?”
방그레.
“괜찮아요.”
그녀의 말에 윤종진과 MC들이 움찔거렸다.
이지원의 소속사의 요청에 여태껏 꺼내지 않았던 소재를 그녀 쪽에서 먼저 꺼내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말 꺼내지 않아도 됐는데 말이야...”
[I] 이지원의 열애설.
하필 열애설 난 상대는 극성팬들이 많은 남성 아이돌이었다.
분명 자신은 무관계하다고 입장을 확실히 밝혔지만 급하게 성장하고 있던 인기는 부메랑처럼 악의로 돌아와 그녀를 뒤덮었다.
온갖 욕설들과 악의적인 루머들이 이지원이란 뮤지션을 더럽히고 망가트려 하는 것이다.
“잘못한 게 없는데 계속 제가 피하는 건 이상하잖아요.”
“.......”
“저도 의외로 한 성깔 하거든요.”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악성 댓글들을 떠올리는 이지원은 이를 갈았다.
[이지원 솔직히 거품이지.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다 뭐다 하지만 결국은 귀엽고 이쁜 척해서 뜬 거잖아?]
[사실 작곡을 자기가 직접 한 게 아니라는 소문도 있음.]
[남자한테 그렇게 흘리고 다닌다던데... 되게 소문 안 좋음.]
힘든 상황 속에서 자신을 갈고닦은 만큼 사실은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그녀다.
헛소문 하나에 자신이 해온 음악인생이 무시 받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제 나도 24살이야. 더 이상 여동생이라 불릴 수 없어.’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며 사랑받아 왔지만, 이지원은 자신이 소녀가 아닌 성숙한 여인으로, 자기 노래를 할 줄 아는 뮤지션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을 벗을 때가 됐다 생각했다.
앞으로 자신에게 남겨진 긴 인생에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선 아티스트로서 독립성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할 수 있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와는 반하는 행동이기에 자신 주변에 있는 지인들도 소속사들의 관계자들도 분명 우려를 표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지원은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어떻게 해도 자신에게는 질 수 없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갈까요?”
“모자란 동생을 둬서 나만 고생하네.”
벌떡.
“후후. 힘없는 신인은 선배 말이나 잘 들어요. 무대나 망치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퍽이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지원을 따라 도경이 일어나자 윤종진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둘이 합주하는 거야?”
“네. 대기실에서 도경 오빠가 연주하고 코러스를 해준다 해서요.”
“해준다는 말은 안 했는데...”
“오빠가 제가 기타치는거 보고 구리다 했잖아요.”
“구린 걸 어쩌라고?”
“그러니까 오빠가 책임 줘 주셔야죠.”
“으...”
둘의 대화를 듣던 윤종진은 둘의 합주가 애초에 계획에 없던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 사전에 얘기된 게 아니라 즉흥이야? 괜찮겠어?”
“그럼요. 제가 능력 있는 낙하산이지 않습니까? 대기실에서 잠깐 합 맞춰봤으니 문제없습니다.”
“허... 그래도 그렇지.”
남이 하는 연주 위에 부르는 노래.
방송이나 홍대 길거리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라 일반인들은 당연시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것도 일반세계가 아닌 프로들의 세계에선 더욱더 당연한 것은 없었다.
음 하나에 기분을 망치거나 희열을 느끼는 뮤지션이란 존재가 만족하려는 합주는 손발을 오래 맞혀가며 신뢰를 쌓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다년간 손발을 맞추었던 밴드도 조금이라도 연습을 소홀히 하면 엉망진창이 된 모습을 보여줄 만큼 합주는 절대 만만한 분야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좀 전 무대를 보였던 [트리니타스]의 합주에 윤종진이 감탄한 것이었고 말이다.
당연히 윤종진의 입장에서는 미심쩍어 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힘들 텐데...!”
“괜찮아요. 이런 말 하기 싫지만 도경 오빠는 연주 실력은...”
“끝내주지.”
“칫...”
자신 있는 도경의 말과 그의 말에 아무런 부정도 못 하는 이지원은 걱정하는 윤종진을 지나쳐 라수 무대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
“준비되면 신호 줘. 시작할게.”
“네. 후우우...!”
“.......”
무대 위로 올라선 도경은 기타를 들고 마련된 자리에 앉았고 그 옆에 서 있던 지원은 도경의 어깨에 기대며 눈을 감고 숨을 고르기 시작한다.
파르르.
감은 눈 사이로 이지원의 눈꺼풀이 잘게 떨리는 모습에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녀가 지금의 무대를 위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
스으윽.
조용한 무대 위.
그녀의 긴장감이 무대 저편으로 느껴져 그 모습을 촬영하고 있던 스태프들조차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까불거리며 분위기를 띄웠던 도경조차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기타를 잡으며 이지원이 신호를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금 전 투덕거리면서 푼수 오빠와 까칠한 동생을 보여줬던 두 사람의 모습은 거짓말 같았다.
‘이거 너무 과하다.’
과하다.
그것이 무대 위에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내린 윤종진의 판단이었다.
지금 저 무대는 남을 이기거나 압도하는 경연도 아니었고 이지원이 부를 [FourFiveSeconds]가 지니고 있던 노래의 분위기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노래가 꼭 무게 잡고 힘줘야만 인상을 남기는 게 아닌데...’
이지원이 처한 상황도 그녀가 하고 싶은 말도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듣는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힘들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향이라 윤종진은 생각했다.
툭!
당당당당!
“!?”
윤종진의 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경은 자신의 어깨를 툭 치는 이지원의 신호를 받아들여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기타 현을 쳐올릴 뿐이었다.
둥둥둥.
잔잔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리드미컬한 기타 소리가 이지원을 두고 먼저 달려나간다.
리듬이라는 말이 힘차고 경쾌하게 초원을 향해 먼저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움찔!
“진짜 잘 치잖아?”
기타를 잘 다루고 못 다루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타라는 도구로 단순히 음을 켜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이해한 음악을 소리로 표현할 줄 아는 것이었다.
둥둥둥 탕!
아직 노래도 시작하지 않은 도입부였지만 도경이 [FourFiveSeconds]란 노래의 포크 스타일을 어쿠스틱 기타로 맛깔나게 살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묵직하고 불편했던 공기가 그가 기타 현을 쳐올릴 때마다 빠르게 옅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후우웅.
번뜩!
휘이익!
빠르고 거칠지 않지만 싱그러운 바람을 몰고 다니는 기타 소리.
그 소리에 이지원이 도경의 앞을 힘차게 나섰다.
[I think I've had enough!]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
휘이이잉!
도경이 만들어낸 리듬 위에 거칠게 올라선 이지원은 온몸에 있는 힘을 쥐어짜 소리를 내지르듯 노래하였다.
자신의 주변을 무겁게 짓누르던 악의를 떨쳐내듯 한 그 노랫소리에 힘에 속 시원함이 느껴졌다.
찌릿찌릿.
“아..!”
이지원의 모습은 평소 사람들이 알고 있던 국민 여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는 여전한데 그 안에 담겨있는 알맹이가 달랐다.
[I might get a little drunk]
(술에 취할지도 몰라)
꿀꺽.
노랫소리를 내뱉으며 앞을 바라보며 아래에서 위로 훑는 이지원의 시선에 제작진 중 누군가는 침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와......”
도발적이면서 야성어린 눈빛을 내는 이지원은 모습은 절대 여동생의 것이 아니었다.
두둥둥.
도경의 만들어낸 리듬 위.
이지원은 소녀에서 숙녀로 숙녀에서 성숙한 여성으로 변해 나아간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