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쟤 봐라...?”
아직 어리기만 한 줄 알던 이지원의 새로운 일면에 윤종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런 끼가 있었네.”
액면가는 인형처럼 어린 숙녀의 모습인데 도발적이면서 선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이지원의 모습에 라수에 있는 남자들 모두 이지원을 향해 묘한 배덕감을 느끼었다.
어리게만 보고 여자로 보지 않던 이에게 어느 순간 갑자기 여자로 느껴는 당혹감과 같은 비슷한 감각을 지금의 이지원에게서 받은 것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걸 꺼내놓으면 감옥에 갈지도 몰라.
내가 베푼 친절은 모두 나의 약점으로 여겨져.]
항상 해맑게만 웃던 그녀가 시크한 얼굴로 한심하다는 눈빛을 하며 정면을 바라보고는 노래와 함께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
차가운 시선을 던짐과 동시에 고개를 까닥이는 그녀의 작은 제스쳐는 건방지면서도 쿨한 모습이어서 묘한 매력을 풍기었다.
작은 체구지만 자기 안에 가득 차 있는 힘을 이지원은 거르지 않고 그대로 표출하고 있었다.
둥둥둥.
띠링.
둥둥둥둥.
도경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타는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힘차고 자유로워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킨다.
[이제 미치기 4, 5초 직전이야
금요일까지는 3일이나 남았단 말이야!]
숨소리가 섞인 독특한 가성으로 터지기 일보 직전을 알리는 이지원의 목소리가 무대 위의 공기를 뒤 흔들었다.
[그저 월요일 아침까지 집에 가고 싶을 뿐이야.]
그 노랫소리 안에 그녀의 불만이 녹아 있었다.
자신을 짜증 나게 하고 귀찮게 하는 것들을 향해 이지원은 불만을 토로하였다.
‘귀찮게 굴지 말고 나 좀 가만히 냅둬!’
[누가 나에게 한마디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정말 그거 하나면 돼.]
[가수]
정말로 그거 하나면 되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해 나가고 모두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자기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힘든 연습도 견딜 수 있었고 하기 싫은 일들 할 수 있었다.
‘정말로 그거 하난데...’
그거 하나를 위해 참고 달려왔던 길인데 대중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만을 보려고만 하고 자신의 가능성과 미래를 그들의 입맛대로 조정하려 든다.
정말 어이없지 않은가?
키보드 앞에 5초도 안 돼서 타이핑한 텍스트 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을 가능성을 망치려 드는 악의가 말이다.
부글부글.
그들의 저질스러운 악의에 오기가 섰다.
‘너희들 뜻대로 안 돼!’
자신의 소중히 가꾸어 온 빛을 질투심 하나로 짓밟히려 드는 그들을 향해 이지원은 이를 드러냈다.
사나운 기세를 띈 오기가 그녀의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둥둥둥!
‘많이 쌓여 있었구나.’
이지원 곁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도경은 그녀의 가슴속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감정을 느끼며 웃음 지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자신이 꿈을 위한 기반을 쌓는 와중 많은 것을 희생했을 것이다.
시간은 물론.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욕망을 꾹 참았을 것이고 심지어 자신의 음악성도 양보했어야 했을 것이다.
모순적이지 않은가?
자기의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자신의 음악성을 무르고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하나를 위해 열 개를 양보해야 하는 게 현실이지.“
[낙천주의자로 일어났어.
햇볕이 내리쬐고 나는 긍정적이었어.
그때 네가 나를 씹는 걸 들었지.
나 좀 말려줘 미쳐버리기 직전이야.]
부드러운 목소리.
도경은 그녀의 상황을 이해한다며 자신의 코러스로 이지원의 마음을 다독여 주기 시작했다.
철딱서니 없게만 느껴졌던 도경이 어른으로서 연장자로서 자상한 모습을 보이자 자리에 앉아 무대를 감상하고 있던 MC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노래 잘하네요?”-규영
“참내. 노래 할 때는 완전 사람이 딴판이네?”-김구한
“K스타 봐봐. 도경이 쟤 노래 엄청 잘해. 오히려 나는 오늘 예능에서 보고 많이 놀랐잖아.”-윤종진
“진짜 캐릭터 독특하다.”-김국신
짧지만 신 스틸러처럼 자신의 강한 인상을 남기는 도경의 노래에 모두가 그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들과 시끄럽게 떠들고 예능을 했던 사람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갭이 너무 큰 이유에서 였다.
“.......”
꿈틀
‘저 사람 뭐지...? 묘하게 거슬리네...’
오늘 라디오 수다 중에 제일 변화를 안 보이던 인물이 도경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꿈틀거리는 변화를 보인다.
소근.
“소리가 거슬려...”
김강운은 이지원의 뒤에 앉아 기타를 치는 도경을 향해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둥둥. 띠리링!
다다다다 땅~!
“구역 질 나는 소리야......”’
음에 민감한 김강운은 도경이 내는 소리가 거슬렸다.
도경이 내는 기타소리음에 그가 뭘 원하고 전달하려는지 읽혀 왔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좀 쉬어.)
(준비해!)
(이 부분은 여리게 하지만 이곳은 강하게!)
(가자!)
(좋았어!)
두둥!
그렇게 도경의 거슬리는 기타 소리가 멈추고 이번에는 무반주에 이지원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도경의 리드미컬한 연주는 멈춰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건만 노래를 부르는 이지원의 모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제 넌 오늘 밤 잠들지 못한다는 거 알아
“나도 내가 제멋대로일까?” 생각은 해.
하지만 난 사과는 못 하겠어
네가 이해해주길 바라.]
무반주 속에 완벽하게 허공을 수놓는 이지원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이지원의 목소리에 김강운은 지금 그녀가 흥이 오를 대로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를 증명하듯 이지원의 볼은 붉게 상기가 된 것이 보였다.
씨익.
두두두둥.
그런 이지원을 보며 도경은 웃음 지으며 그녀의 노래를 이어받아 화답하듯 기타 현을 퉁기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오늘 밤 감옥에 간다면
내 보석금을 내줄 거라고 약속해.
놈들은 나의 자존심을 사려고 해.
하지만 그건 팔 수 없어.]
(네 말이 맞아.)
(여기선 멈출 수 없잖아.)
(더 나아가자.)
끊임없이 이지원에게 뜻을 전달하는 도경.
이지원은 그 소리에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자신감을 띤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려 도경과 시선을 마주쳤다
[내가 베푼 친절은 모두 약점으로 여겨져.]-도경&이지원
그리고 시작되는 두 사람의 [FourFiveSeconds] 듀엣.
즉흥이라 믿을 수 없는 완벽한 합.
즉흥이냐 아니냐. 사실 여부를 떠나 훌륭한 그 둘의 무대의 노래에 모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는데 김강운 그 한사람만은 표정이 굳어있었다.
“......”
물끄러미.
보통이라면 주변 분위기와 카메라를 의식해 적당히 호응했을 테지만, 김강운은 진심으로 도경과 이지원이 부르는 듀엣을 싫어했기에 그러지 않았다.
[이제 미치기 4, 5초 직전이야
금요일까지는 3일이나 남았단 말이야
그저 월요일 아침까지 집에 가고 싶을 뿐이야]-도경&이지원
서로들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상대방에 집중하고 실시간으로 정보로 주고받는 둘의 모습에 김강운은 생리적인 거부감을 내비추고 있었다.
파르르르.
한 몸처럼 호흡을 맞춰가며 서로 감정을 나누고 교감을 주고받는 둘의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다.
‘너무...’
저 둘이 실시간으로 나누는 신호와 그로 인해 변화해 나가는 화학 반응들이 속속들이 자신에게 전해져 와서 무표정으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김강운의 최선이었다.
‘역겨워.’
도경과 이지원이란 두 사람의 재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앙상블을 이루는 노래를 김강운은 두 남녀의 저속한 정사로 본 것처럼 반응했다.
[누가 나에게 한마디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정말 그거 하나면 돼.]-도경&지원
감정이 얽히고설킨 불안전한 노래는 들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 김강운의 지론이자 심미안이었다.
‘저 사람이 문제야. 끊임없이 감정을 건드리려고 해.’
도경이 김강운의 노래를 싫어하듯 김강운도 도경의 노래를 싫어했다.
어떤 형태로든 상관없이 시시각각으로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려는 도경이란 존재는 그에게 있어 용납하기 힘든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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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짝짝!
두 사람의 노래가 끝이 나고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는 이지원을 향해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MC들로 더불어 촬영을 하고 있던 제작진들마저도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와아아!”
“너희 진짜 대박이다!”
“지원 씨, 진짜 노래 맛깔나게 부른다.”
어리고 연약하게만 보였던 그녀가 사실은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무대였다.
여동생에서 이제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해 개화한 이지원의 모습에 모두가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다.
글썽.
평소와 다른 의미가 담긴 박수에 결국 이지원이 눈물을 내보였다.
드디어 자신이 온전히 이지원이라는 사람이라 인정받게 된 느낌이었다.
“흑, 감사합니다...”
24살.
너무나 늦었던 이지원의 성인식이었다.
“뭘 지지리 궁상떨고 있어? 노래 끝났으면 얼른 무대에 내려가. 내 차례야!”
툭!
“아!?”
비틀
“!!!?”
그녀의 의미 깊은 눈물에 모두들 덩달아 뭉클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도경이 무심히 그 감동의 맥을 툭 끊어 버렸다.
“자! 그럼 이젠 제 무대를 볼 차례지요?”
자신의 무대 차례를 위해 눈물을 보이고 있던 이지원을 밀어버린 만행을 저지른 도경을 향해 삼촌 팬들을 대신해서 MC들이 그에게 비난과 야유를 퍼부었다.
“허허허.”-김국신
“...와 진짜 감동 브레이커다.”-규영
“저거 나보다 더하네.”-구한
“야! 박도경아. 지금은 그걸 말할 타이밍이 아니잖아. 흐름 좀 읽어라! ”-윤종진.
MC들과 더불어 제작진들의 짜게 식은 시선이 도경에게 모여지고 무대 위를 내려온 이지원은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어이가 없어 도경을 쏘아 보았다.
한순간에 공공의 적이 돼버린 도경.
하지만 도경이 누군가? 그런 것을 신경 쓸 정도로 섬세한 인간이었다면 진작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다음 제 무대가 분위기 다 죽는데 오히려 쟤가 너무하죠.”
“와...”
“저건 어디서 나온 ”
“도경이 너 그 말을 꺼낸 이상 순간 끝났다. 내가 봤을 때 너는 발라드는 텄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이지원을 가리키며 오히려 억울한 표정을 짓는 도경을 향해 탄식과 야유소리가 나왔다.
“들려? 제작진들도 너한테 야유한다.”
“뭐 어차피 일 끝나면 안 볼 사람들 아닙니까? 무서울 거 없습니다.”
“어우, 쟤 멘트 쎄.”
“지친다 지쳐...! 빨리 끝내죠?”
“그래 그게 좋겠다.”
끊엄없이 일관성을 유지한 도경이란 캐릭터에 이젠 MC들은 학을 뗐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도경의 선곡을 물었다.
이 이상 도경과 입씨름 하느니 빨리 진행하고 끝내는 게 훨씬 이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부를 거예요?”
“뭔가 대우가 박한데요...”
“아이! 야! 뭐 부를 거냐고!? 내 아래로 너희 아이돌 그룹 집합시킨다.”
“아닙니다. 선배님! Imagine Dragons의 [Thunder]를 부를 겁니다.”
“왜 골랐는데?”
“이 노래를 고른 이유는...”
하하하하.
“잘한다! 우리 규영이,,,!”
“어우! 속 시원해!”
짝짝짝!
MC중 그나마 순한 모습을 보여줬던 규영이 피곤함에 결국 빽하고 고함지르고 말았다.
이에 주변의 있던 MC들도 뻥 터지고 촬영을 하고 있던 제작진들은 가슴은 알 수 없는 청량감과 시원함을 맛보았다.
“저 박도경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천둥이란...”
“됐어, 시작하자. 제작진분들 빨리 반주 좀 틀어주세요.”
“아직 말 다 못했는데...”
쿠쿠~쿵! 쿵!! 쿵쿵쿵~쿵!! 두두두 딱!
자신의 당찬 포부를 끊은 규영을 야속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도경은 무대 위에 북소리 같은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내 웃음을 지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모두들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저, 박도경은...!]
“아 또 쟤 잡소리 하려고 그런다.”
“야! 제발 그만 해.”
쿵쿵 시끄러운 반주에 몸을 조금씩 흔드는 가운데 도경은 MC들을 무시하고 빨간 불이 켜져 있는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하며 자신의 할 말을 다하기 시작한다.
[오늘 라디오 수다 하드캐리 했습니다. 쟁쟁한 게스트 사이에 꼽사리 낀 신인이 타 방송에서도 이렇게 활약했는데 제가 MC를 맡은 아이돌 현장은 얼마나 재밌을까요? 불금이라고 술이다 뭐다 클럽 같은 곳에서 엄한 곳에서 힘 빼지 말고 본방사수 하세요. 어차피 안 생깁니다.]
“지금 우리 방송에서 자기 방송 홍보하는 거야?”
“오빠 그건 너무 뻔뻔하잖아요..!”
“독하다 독해. 쟤 방송 얼마나 오래가나 보자.”
뻔뻔하게 자신의 방송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경은 자신마저도 홍보해 나갔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 못하는 거 없고 받은 만큼 활약하는 게 저 박도경입니다. 아직 싼 값일 때 많이들 찾아 쓰시는 걸 추천합니다.]
“노래하라고!”
휙!
[난 금방이라도 불붙을 젊은 폭탄이었지.]
규영이 외치는 고함에 맞춰 절묘하게 노래를 시작하는 도경.
반복적이고 중독적인 리듬 위에 익살스럽지만 시원한 도경의 목소리가 무대 위에 울려 퍼지고 도경은 드럼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며 무대 위를 리드미컬하게 누비기 시작했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 않아.
틀에 맞춰가고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야
로비에 앉아서 수서를 기다리는 나는 천둥이 치기 전의 번개였지.]
“여러분이 싫어해도 저는 내리칩니다! 자~! 뛰어 놀아 봅시다!”
노래의 훅 부분 들어가기 1초 전.
콘서트에 온 것처럼 앞의 사람들에게 소리 지른 도경은 신나는 노래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며 신명 나게 노래를 불렀다.
[Thunder, thunder
Thunder, thun-, thunder
Thun-thun-thunder, thunder, thunder
Thunder, thun-, thunder
Thun-thun-thunder, thunder
Thunder, feel the thunder
Lightning and the thunder
Thunder, feel the thunder
Lightning and the thunder
Thunder, thunder
Thunder]
부르고 있는 가사처럼.
무대 위에 있는 도경은 제목 그대로 번개가 번쩍이고 내리치는 천둥이었다.
도경이란 천둥을 대중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조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