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13화 (113/357)

113화

“으어어...”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는 한 인영이 신음성을 내며 뒤척이고 있었다.

부스럭.

데구루루.

무언가 불편한 듯 여러 번 자세를 바꾸더니 결국 소파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있는 술병을 건드려 내용물을 쏟고 말았다.

쪼르르륵.

“으....!? 이거 뭐야!”

벌떡.

“우욱..!”

옷을 적시는 기분 나쁜 촉감에 결국 도경은 인상을 쓰며 자리에 일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몸에서 울리는 신호에 서둘러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우웨웨웩!”

동굴 속 메아리처럼 울리는 도경의 토하는 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와 함께 도경이 다 죽은 시체처럼 화장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으으으...!”

화장실을 나와 다시 거실로 돌아온 도경은 넓은 거실을 두리번거리다 바닥에 있는 생수통을 발견하고는 메마른 입을 적시기 시작했다.

꿀걱꿀걱.

“푸하! 시원하다.”

실내에 있어 미지근한 물이었지만 수분이 절실하게 필요한 도경의 몸 상태는 미지근한 물도 감지덕지하며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풀썩.

“와, 오랜만에 토했다. 진짜 죽을 뻔했네. 술을 왜 끊었나 했더니 완전 괴물이었잖아!”

주변을 살피며 도경은 고개를 저으며 그답지 않게 질린 표정으로 어젯밤 들이킨 술병들을 바라보았다.

“술 끊은 이유는 분명 제명대로 못 살기 때문에 끊을 걸 거야.”

소주와 맥주는 기본이고 와인부터 시작해 독한 위스키까지 아주 글로벌하게 마신 수많은 술병을 바라보며 도경은 박진용이 정말로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기위해 마시는 것처럼 술을 들이키는 박진용을 떠올리며 도경은 그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진작에 술 먹고 단명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어제 뭐했더라?”

욱신욱신.

광란의 밤이었다.

분명 하룻밤일 뿐인데 마치 2, 3일을 술을 연달아 퍼먹은 것부터 시작해서 천성적인 딴따라인 두 사람이 제대로 놀자 판으로 술을 퍼먹었으니 난리도 여간 난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박진용의 집안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는 술병은 기본이고 이곳저곳 물건들이 부서져 있었다.

“자기가 무슨 침팬지도 아니고 대체 왜 커튼에 매달려 소리 지른 거야?”

정원에 들어오는 햇빛을 가려주는 커튼은 고정대와 같이 뜯겨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 앞에 놓여있던 피아노는 이 빠진 할아버지처럼 건반들이 뽑혀져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이거는 내가 부셨지...”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통기타가 산산이 조각나서 바닥에 뒹구는 것을 보며 도경은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았다.

“나도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술 취했을 때는 미친 듯이 웃어 재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광란의 흔적들을 보며 어제 일을 떠올리던 도경은 부엌 식탁에 애주가들의 익숙한 숙취해소음료와 쪽지를 발견했다.

[나는 방송 때문에 먼저 간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알아서 꺼내먹어라.

참 어제 작곡한 노래들 회사 내 신곡 블라인드 테스트에 낼 거니 그렇게 알아둬라.]

“작곡? 아, 어제...!”

그러고 보니 어제 둘이서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며 놀던 기억이 난다.

명곡도 듣고 요즘 곡들에 대해서 품평도 하고 분위기 타서 즉흥으로 편곡과 작곡을 하는 등 서로들 음악적인 소양을 뽐내며 겨루었다.

그때 박진용은 발로 피아노를 쳐서 건반을 뽑아 버렸고 도경은 이에 질세라 기타를 박살 냈던 것이다.

멍청한 짓이었지만 다행히도 무의미한 깽판은 아니게 되었다.

피식.

“그 와중에 녹음했다니 대단도 하네. 그럼 기타 값은 물지 않아도 되겠어.”

술 취한 와중에도 녹음을 한 박진용의 기지에 박수를 보내며 도경은 약은 생각을 입에 담았다.

저기 산산조각난 박진용의 기타의 가격은 삼천만원짜리의 고가품.

내심 어떻게 할지 걱정이 들었는데 다행히도 해결 방법이 보였다. 그도 그럴게 어제 작곡한 멜로디 라인과 프레이즈만 다 합하면 5곡이 된다.

그 정도면 충분히 그 가치를 할 거라 믿은 도경은 편해진 웃음을 지으며 쪽지를 마저 다 읽고는 던져 버렸다.

“나가라는 소리는 안 쓰여 있었으니까. 천천히 있다가 나가도 되겠지? 후후후!”

타다다닥.

가장 큰 문제도 해결됐겠다. 편해진 마음에 도경은 집주인처럼 박진용의 집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에 술만 마시느라 박진용 자택에 있는 시설들을 누리지 못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누려볼 생각이었다.

“이 야호!”

타다다닥!

어린아이처럼 사방팔방 박진용의 넓은 자택을 뛰어 놀기 시작한 도경의 모습을 봤다면 분명 박진용은 뒷목을 잡았을 일이지만 불행이도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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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N 방송국.

[스트릿 예체능 팀].

“음...”

“하아...! 어떡하죠. 이거?”

“그쪽에서는 뭐래?”

“지금 출연자에게 사과하고 있대요. 좀 있다 이곳으로도 올 예정이라고 하네요.”

“.......”

심각한 분위기에 모두들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이번 사태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하필 왜 그날 술을 마셔서...! 개 술도 못하잖아? 자기관리도 잘하는 놈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그게 친구 생일 갔다가 주변 애들이 억지로 먹였나 보더라고요. 그래도 술 먹고 음주운전을 하거나 사람을 친 것도 아니고 그나마 다행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인쇄된 그의 기사를 보며 PD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비드 얘만큼 센터 역할을 할 만한 애를 어디서 구해...!?”

“그렇죠......”

연예인 VS 일반인(운동동호회) 구도로 방송하는 [스트릿 예체능].

수많은 운동종목을 가지고 방송을 만들었고 그중 요즘 제일 반응이 좋은 농구 종목으로 재미를 보고 있었는데 예기치 못한 우환을 만났다.

예체능 농구팀에 필수불가결의 센터 역할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강이 음주 후. 속옷 차림으로 편의점 쓰레기를 치운 영상이 인터넷에 떴기 때문이다.

남에게 딱히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개념 있는 주사에 사람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슈는 이슈.

입이 까다로운 공중파 방송에 그대로 내보낼 수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예체능]제작진들에게 크나큰 문제가 닥쳐와 버렸다.

“솔직히 데이비드도 한국혼혈이어서 그나마 꽂을 수 있었던 건데... 미쳐버리겠네.”

키 198cm의 미친 피지컬과 이종격투기와 다수의 운동경력을 지닌 캐릭터는 솔직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이국적인 외모에도 고정 멤버로 집어넣을까 고려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런 유능한 멤버를 하차시켜야 한다니 뼈아픈 일이었다.

[스트릿 예체능]을 위한 치트캐릭이었는데 솔직히 제작진들은 거의 멘붕 상태에 빠져 있었다.

무엇보다 얼마 안 있어 벌어지는 해외원정시합을 앞두고 예체능농구팀 센터 데이비드란 존재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인재를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미국 해외원정 취소할까요? 데이비드가 빠지면 게임이 아예 안될 텐대요.”

“안 돼. 이미 예고로도 공지하고 기사로도 나갔어. 죽이 되든 말든 해외원정은 간다.”

“하아...”

저번 일본 원정을 가서 승리를 하고 시청률의 재미를 봤기에 기획한 미국원정 편.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가 집중된 만큼 무를 수 없었다.

“이기는 건 꿈도 꾸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비비는 정도는 되어야 저희가 원하는 화면을 담을 수 있을 텐데 어쩌죠?”

“그러게말이다...”

아무리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본고장에서 농구를 다년간 해온 서양인에게 [예체능]팀이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는 게 사실이다.

다만 제작진이 [예체능팀] 연예인들에게 요구한 사항이 있었다.

[져도 상관없습니다. 대신 추할 정도로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럼에도 이번 기획을 강행하는 이유였다.

사실 이번 미국 해외원정에서 얻으려는 것은 승리가 아닌 다른 것을 얻기 위한 기획이었다.

[투혼(鬪魂)]

압도적인 열세에도 포기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열강을 상대로 경쟁하려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이번 기획 포인트였다.

“이번 편은 매우 중요한데 정말 큰 일이군.”

하지만 투혼도 투혼 나름이지 자신들의 팀 내에서 철저히 만전을 기여한 상태가 어니여서야 자신들끼리 의욕을 보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도 농구의 중심이라 불리는 센터의 자리가 공백이라면 말이다.

“푸념은 됐고 센터 자리를 메꿀 연예인 찾아 봤어?”

“[예체능]팀원들한테도 물어도 보고 수소문하고 있지만 아시다시피 5일 이내에 구하는 건...”

“미국원정이 걸려있는 부담이 있는 자리라 사양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해외원정인 만큼 일정이나 여권발급같은 문제로 걸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길...”

데이비드의 빈자리의 부담과 이길 확률이 적은 게임에 출연해 사서 고생하려는 연예인은 그 아무도 없어서 [스트릿 예체능] 제작팀에게는 정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

다시 시작되는 침묵에 한 바탕 욕이라도 쏟아주고 싶지만, PD인 그 또한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수도 떠오르지 않아 뭐라 하기 그랬다.

“저기....”

“응? 막내야. 뭐 할 말 있니? 웬일이야 손을 들고?”

“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긴 한데...”

끄덕.

“그래!? 그러면 진작 이야기 하지 왜 말 안 했니?”

뾰족한 수가 나지 않던 찰나에 소심하게 보이는 한 사내가 손을 들어 올렸는데 이 무거운 분위기에 의외의 사람이 손을 들자 모두가 기대가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증명되지 않아서요.”

“누군데?”

“그 라수에 박도경이라고 있는데 말 들어보니 해외여행 가서 내기 농구를 하며 돈을 벌며 생활했다 하더라고요. 덩크를 할 정도면 피지컬도 상당한 것 같고요.”

“아...!”

“맞다! 왜 생각 못했지 그 신인이라면...!”

“키도 그렇게 작은 편도 아니고 신인이라 일정도 널널할거고 해외여행 경험까지 있으니까 미국 해외원정에 딱 맞는 사람이잖아”

“게다가 섭외도 쉽겠다. 우리 [예체능]팀에 진용 씨가 있잖아.”

“진짜!”

자신은 처음 듣는데 막내 작가의 말을 들은 주변 젊은 제작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색을 짓자 예체능 PD는 의아한 얼굴로 주변 사람에게 물었다.

“박도경? 처음 들어보는데 신인이야? 뭐하는 애야?”

“아. 이번에 [JY]에서 나온 신인인데 요즘 [라수] 때문에 유명해 졌습니다.”

“이 영상 좀 보세요. PD님.”

도경을 설명하기엔 아직 정보가 없어 직접 보여 주는 게 빠르겠다, 생각한 한 제작진이 PD에게 도경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으아아!]

콰쾅!

MC중에 꽤 큰 신장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구한을 뛰어넘으며 덩크에 성공하는 도경의 영상.

그 영상을 본 예체능PD는 눈빛을 빛냈다.

“대단은 한데 지금 보니까 이 녀석. [JY]에서 갑질로 말 많던 놈이잖아? 이미지 괜찮을까?”

“처음에 여론 때문에 이미지가 그랬는데 [라수]에서 방송 나오고 나서부터 나쁘지 않습니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는데 일방적으로 욕먹기엔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인이라 아직 부정적인 이미지로는 고정이 안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능감도 상당한 녀석입니다.”

“으음...”

“PD님 이만한 인물 없습니다. 박진용 씨 때문에 캐스팅도 손쉽게 될 겁니다.”

“그래?”

“네! 일단은 테스트라도 받게 해보죠? 저희에게 남은 시간이 5일입니다. 5일! 이 정도로 적합한 인물을 찾기 힘듭니다. PD님.”

“그렇지..”

뒤 늦게 도경의 기사에 대해 떠올라 조금 찝찝했지만, 제작진의 말에 PD는 자신이 더운밥찬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박진용 씨한테 연락해서 그 신인 오늘 볼 수 있는지 물어봐. 될 수 있으면 오늘 만나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말이야. 너희 말대로 시간이 별로 없다.”

“넵!”

우르르르.

“후우! 돌아버리겠군.”

각자의 볼일을 보기 위해 자리에 일어나는 제작진들의 모습을 본 PD는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누르며 피곤함과 두통을 내 쫓았다.

데이비드의 기사가 뜨자마자 새벽 일찍부터 방송국에 나와 온종일 답 없는 대책을 끌어않고 있었으니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신인이지만 [라수]로 나름 임팩트있는 인지도를 알렸고 자신의 농구팀에 뛰고 있는 박진용 때문에 보강인원으로 넣는데 어색하지도 않다.

덩크는 인상적이지만 과연 경기를 하는 농구 실력은 어느 정도일지 걱정이 되는 PD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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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자택]

촤아아!

“어으! 시원하다.”

박진용 자택에 있는 욕실 안.

도경은 따뜻한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몸을 담그며 시원함에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이거 히노키 탕이라고 했던가? 작은 건 작은 대로 또 맛이 있네. 그러고 보니 일본은 못 놀러 갔었구나.”

부글부글.

나무로 된 욕조 안에서 반신욕을 즐기고 있는 도경은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얼른 돈 벌어서 나도 이런 거나 지어야겠다.”

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2억은 서여사의 손에 있고 작곡가로서 벌어들인 돈들은 여행 중 형편 어려운 친구들을 만나면 족족 그들에게 주어 별로 남아있지 않는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알면 서여사가 경을 칠 것이지만 도경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비밀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잘하고 있나 모르겠네.”

2년 전.

허름한 술집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하면서 자신의 꿈은 할리우드 배우라고 말하고 다녔던 녀석을 떠올리며 도경은 웃음 지었다.

만나봤던 사람 중에 가장 대책 없이 골 때리는 녀석이었고 가장 밝았지만 가장 불쌍한 놈이기도 했다.

띠리리리!

“응?”

욕조 옆에 올려둔 자신의 스마트폰이 울리자 도경은 고개를 돌려 스마트폰을 집어 올렸다.

“뭐지?”

[박진용 사장님]

“내가 걱정 돼서 전화를 한 건 아닐 텐데...”

액정에 떠오르는 이름을 보며 도경은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왠지 이 전화를 받는 순간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톡!

[전화받아라. 일어난 거 다 알아. 파출부 아주머니한테 연락받았어. 너 지금 내 욕탕에 쓰고 있다며? 이 뻔뻔한 자식!]

“아, 맞다...”

좀 전 박진용 집에 들어와 청소하고 있던 아주머니를 떠올린 도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어코 연락하셨나 보구나.”

톡!

[5분 이내에 전화 안 받을시 서 여사님에게 연락함.]

“아, 진짜... 치사하게!”

이어지는 박진요의 외통수에 결국 도경은 박진용의 전화를 받고 말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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