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꿀꺽!
“코트에서 눈을 떼지 않네...”
도경의 찢어진 상처를 치료하는 의료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꽤 깊게 찢어진 상처임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코트에 응시하고 있는 도경의 모습에 그가 얼마나 분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힐끔.
[피닉스] 64-53 [예체능]
상승세로 간신히 따라잡은 점수 차가 다시 벌어지며 승기를 놓쳤으니 도경의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찌이익 탁!
“피가 슬슬 멎었네요. 그래도 심하게 움직이면...”
벌떡!
“아...”
의료진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도경은 자리에 일어나 정용감독과 박대준 코치 쪽으로 걸어갔다.
둘은 도경을 보더니 난색을 보였다.
“감독님.”
“으음...”
“빨리 선수교체 해주세요.”
“도경 씨 정말 괜찮겠어?”
끄덕.
“괜찮다니까요. 한 방 먹었는데 이대로 있을 수 없죠.”
“.......”
원래는 도경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말리려고 했지만, 온몸으로 전해오는 도경의 기세에 두 사람은 도경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치료 도중에 신음하나 내지 않던 도경의 투지를 바로 옆에서 보았는데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결정은 내리고는 심판을 향해 선수교체의 사인을 전달했다.
“으음. 너무 무리하지 마라.”
“그래 도경군. 이미 충분히 잘해줬어요.”
“하하. 걱정 마세요 무리 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응?”
“......!”
삐이익!
호각소리와 울리는 선수교체에 도경은 서둘러 코트 앞을 나갔고 도경의 마지막 말을 들었던 두 사람은 의아한 시선으로 도경을 보았다.
[이제부터는 방송 신경 안 쓰고 제대로 할 겁니다.]
다소 허세가 섞인 허무맹랑한 도경의 말을 곱씹은 정용감독은 묘한 눈빛으로 도경의 등을 쳐다보았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박 코치.”
“네?”
“도경 군이 제대로 농구 하는 걸 본 적 있나?”
“네? 당연히! 아... 그러고 보니 없었네요.”
5일간 짧은 시간.
예능팀하고 손발을 맞추는 데만 집중했지. 도경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도경은 이미 농구를 잘했기에 모자란 멤버들을 중심으로 전력을 다해 코치해 주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쩌면 허세가 아닐 수도 있어...”
두근.
도경이 정말 무언가 저질러줄 것 같은 예감에 정용감독의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
짝짝짝짝!
코트 위로 올라오는 도경은 관중들의 격려의 박수를 받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잭슨은 도경을 비웃었다.
“낄낄낄! 지금 와서 뭘 어쩌겠다고?”
3분 남짓한 시간 이미 점수 차는 11점 차로 벌어져 있었고 공격권은 자신들에게 있었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한국 팀의 패배는 확정이다.
머리에 붕대를 매고 걸어오는 도경을 보며 잭슨이 그를 향해 머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빨간 머리. 헛고생하지 말고 그냥 누워서 푹 쉬지 그래? 그러다 더 다칠 수 있다고?”
멈칫.
“.......”
자신에게 반칙을 저질러 놓고 이죽거리는 잭슨의 말에 도경은 가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분노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도경은 잭슨을 향해 화를 내지 않고 그를 한심하다 바라보며 한마디를 건네었다.
“좋냐?”
움찔.
“뭐?”
“좋냐고.”
“뭐라는 거야?”
예상외의 도경의 반응에 잭슨은 조금 당황했다.
그에게 겪었던 성격을 떠올리면 욕설이 날아와도 이상하질 않을 상황인데 너무나 차분했기 때문이다.
당황하는 잭슨에게 도경은 마지막 말을 남기기 시작한다.
“나는 그래도 너희들이 자존심이 있어서 실력으로 승부해 올 줄 알았거든? 그런데 설마 이런 방식을 택할 줄이야...”
발끈.
“흥! 파울도 엄연히 농구의 기술 중 하나라고?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뭐, 그렇게 얘기한다면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어. 너희들이 반쪽짜리 승리만 얻고 싶다는데 어쩌겠어.”
빠드득.
집요하게 찜찜한 구석을 물고 들어오는 도경의 말에 잭슨이 이를 갈았다.
“너어... 이젠 도발은 작작 좀 해라. 지겹다.”
“왜? 네 말대로라면 도발도 엄연한 농구의 기술 중 하나 아닌가?”
“그건... 제길! 어차피 너희들은 졌어. 그만 좀 인정하고 패배한 개답게 꼬리를 내려!”
“너야말로 개소리를 지껄이지 마. 너라면 실력이 아닌 편법으로 승부 하는 녀석에게 패배를 인정하겠어?”
“.......”
조금 전 했던 자신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며 조목조목 이쪽의 찔리는 부분을 건드리며 할 말 없게 만드는 도경을 보며 잭슨은 혀를 찼다.
도저히 말로는 도경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이다.
“칫. 쓸데없이 입담만 좋으 놈.”
“네 녀석의 어휘력 딸리는 거다. 멍청한 놈아. 그래가지고 여자 하나 제대로 꼬시겠어? 크큭!”
“젠장! 너 같이 재수 없는 놈하고 말을 섞은 내가 미친놈이지.”
휙.
괜히 도경에게 말을 붙였다 본전도 뽑지 못했다고 생각한 잭슨은 건친 욕설을 내뱉으며 뒤돌아섰다.
더이상 도경하고 맑을 섞다간 또다시 주먹을 내뻗을 것 같았다.
“어이! 잭슨.”
우뚝.
“왜? 뭐 또 지껄일 말 있냐?”
“반쪽짜리 승리 같은 찝찝한 것보다 너에게 좀 더 좋은 걸 주도록 할게.”
“뭐?”
“기대해도 좋을 거야...”
오싹.
‘이게...!?’
“흥! 죽어도 큰소리치기는 다시 한번 곤두박질쳐봐야 정신 차리지!”
도경의 사나운 미소에 잭슨은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지만, 도경에게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도경을 향해 윽박질렀다.
격한 반응을 보여 오는 잭슨이었지만 도경은 그에게 신경을 끄고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걸음을 옮겼다.
“도경아...”
도경의 머리에 매달려 있는 붕대를 보며 예체능 팀 멤버들은 도경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는데... 미안하다 도경아.”
“아니에요. 다들 고생하셨어요.”
“...”
패색이 짙은 예체능 멤버들을 보며 도경이 팀원들을 위로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강원동을 발견하였다.
스윽.
“원동이 형.”
“그래. 몸은 괘안나?”
“네. 그것보다 형 부탁할 게 있어요.”
“응? 부탁?”
“네. 포지션 좀 바꾸죠. 형이 센터를 맡아주세요. 그리고 사장님이 원동이 형 포지션을 맡아주세요. 제가 스몰 포워드로 갑니다.”
“!?”
갑작스러운 포지션의 교체선언과 동시에 자신에게 공을 건네는 도경을 바라보며 박진용은 도경이 아직 게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경이 너...?”
“말했잖아요. 제가 알아서 할 거라고 말이에요.”
삑!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기 시작하고 도경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퉁퉁!
‘뭐야? 포지션을 바꿨어?’
피식.
피닉스팀의 포인트 가드를 맡고 있는 존은 예체능팀의 진영이 바뀐 것을 알아보고는 이내 그들을 향해 조소 지었다.
“아직도 해 볼 생각인가?”
11점 차에 공격권은 자신들에게 있고 시간은 이젠 3분도 채 안 되는 상황이다.
기량 또한 자신들이 훨씬 앞서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상황일 텐데 무언가를 하려 드는 예체능팀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하하. 너무 끈질기면 인기가 없다고...?”
휙!
“그래? 나는 인기 많던데?”
“What the..!?”
스팟!
상대를 비웃는 잠깐의 빈틈을 노려 도경은 존이 퉁긴 공을 가로채며 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멤버들이 공을 가지고 있던 자신의 동료를 나무라며 뒤늦게 도경을 쫓았다.
“존! 뭐하는 거야!?”
“아니.. 그게...!”
‘정말 유령처럼 갑자기 튀어났단 말이다...’
한순간 도경이 보이지 않았다.
느리고 빠르다는 스피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코트에 사라졌다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빨리 들어와서 디펜스 해!”
“제기랄!”
자신이 느낀 것을 동료들한테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런다면 분명 한심한 취급받을 것을 알기에 존은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의 코트로 돌아갔다.
휘이이익! 퉁!
휘이익!
퉁!
“뭔 놈의 속도가...!”
뒤쪽에 서 있던 알과 잭슨은 자신들의 영역으로 재빨리 돌아와 골 밑을 지키며 도경을 보고 있었는데 알은 거의 독주나 다름없는 도경의 속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도경이 공을 몰고 달리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자신에 팀에서 제일 발이 빠른 카를로조차도 도경의 뒤를 쫓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무의미한 발악이야. 침착히 디펜스에 충실히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으응.”
잭슨의 말에 알은 도경의 달려오는 방향을 향해 미리 선점하고 도경이 달려갈 수 있는 공간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바로 자신의 뒤에 있는 잭슨이 있는 쪽으로 말이다.
‘불쌍하군...’
알은 도경을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전 잭슨이 도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잭슨에게 걸리는 순간 도경은 박살 날 것이었다.
‘멍청한 놈 팀원들 두고 혼자 들어오다니. 네가 조금이라도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지옥을 볼 거다.’
도경의 독주에 모두가 열광하고 있었지만, 잭슨은 오히려 그를 비웃었다. 1초라도 도경이 발걸음이 멈칫한 순간 그는 지옥을 맛볼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는 자신과 알이 뒤에는 도경을 쫓는 3명의 팀원들이 있다.
독주한 만큼 적진 한가운데서 도경을 지켜줄 아군은 아무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만큼 손 봐주기 좋은 상황도 없지.”
씨익.
잭슨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 건방진 소리를 했던 도경을 향해 응징 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리라.
‘너무 티 나는데?’
피식.
자신을 살벌하게 보고 있는 잭슨을 보며 도경은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갔지만 도경은 오히려 그를 향해 비웃어 주었다.
터엉!
“!?”
휘이익!
“3점?”
“그래 멍청이들아. 애초에 골 밑 근처에 갈 생각은 없었다.”
반칙하려는 생각에 가득 찬 상대가 지키고 있는 골밑을 왜 들어간단 말인가?
그것도 3점을 두고 2점을 가져가기 위해서 말이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도경은 그런 멍청한 선택을 할 만큼 미련하지 않았다.
철썩!
“......”
닭 쫓던 지붕의 개가 된 상황에 피닉스팀 모두가 허탈하게 도경을 바라보았다.
가속도 줄이지 않고 자세도 대충 쏘아낸 슛인데 설마하니 저게 들어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
오싹.
웃음기 하나 없는 도경의 말.
도경은 피닉스팀 전원에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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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앗!
탕!
휘이이익!
“제길!”
“야! 이 멍청한 새끼야! 그걸 뺏기면 어떻게 해!?”
“닥치고 쫓아!”
3점 라인과 골 밑 정 가운데 있는 스몰포워드의 자리에 도경이 선 이후로 쉴 새 없이 양쪽 팀 서로 공수가 오고 갔다.
(피닉스)75-68(예체능)
휙!
철썩!
와아아아아!
(피닉스)75-71(예체능)
11점 차가 어느새 4점 차로 줄어들었고 마지막 쿼터에 예체능팀의 맹 축격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에 피닉스팀 코치는 서둘러 벤치에 자신들의 팀원들을 불러들였다.
삐익!
[타임아웃]
“젠장! 네 녀석들 대체 뭐 하는 거야! 똑바로 안 해!?”
“...코치 저 녀석이 괴물인 거라고요. 보셨잖아요.”
“.......”
보통 자신의 선수가 이런 나약한 말을 한다면 노발대발 했어야 했지만, 이번만큼은 지도자인 자신 또한 그 말에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빨간 머리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정말 믿을 수 없군.’
정말로 기가 막 힐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귀신에게 홀린 듯 그에게 공을 스틸 당하거나 그에게 패스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자연스러운 인터셉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유령처럼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어요.)
(거기 있는 줄 몰랐어요.)
(분명 위치를 확인했는데...)
도경을 경험한 선수들의 목격담은 도저히 하나같이 멀쩡한 것들이 없었다.
‘게다가 그 3점은...!’
인터셉트와 스틸도 두려울 정도인데 거리를 벌리려고 해도 3점으로 맹추격해오는 도경의 슈팅력에 도저히 손쓸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3점 슛엔 3점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오히려 예체능팀에게 3점을 허용하면서 이제는 쓸 수 없는 카드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버렸다.
그도 그럴게 이제 4점차다 리스크가 높은 전략은 더 이상 쓰면 안 되었다.
“2분 남짓에 이 정도의 득점이라니 템포가 너무 빨랐어... 우리가 제대로 말렸어.”
애초에 도경 이외에 예체능팀은 수비를 하지 않았다.
도경이 뚫리면 미련 없이 점수를 내주었고 곧바로 공을 잡아 빠르게 도경에게 전해주며 빠르게 3점을 뽑아내었다.
“차라리 느긋하게 시간을 끌어서 압박했었다면 승기를 잡았을 텐데 후... 이건 내 실수다.”
득점에는 득점으로 강자인 척 행세하려 들었다 지금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명백한 방심과 오만한 행동에 불러들인 결과에 그는 자신을 자책하며 자존심을 접고 자신들의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골 밑에서 저 녀석에게 몸싸움을 이끌어내. 그리고 잭슨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저 녀석의 부상을 노려라.”
끄덕.
“......”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기분은 더럽군.’
코치의 오더에 잭슨은 맡겨두라 고개를 끄덕였지만, 피닉스 멤버들은 조금 찝찝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비정상적인 추격을 끊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이겨야 하는 상황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은 멈출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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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시합 재개!]
스스슥
“뭐!?”
“지금 뭐하자는 거야?”
공을 가지고 앞을 나오는 피닉스 멤버들을 향해 예체능팀 선수들이 그들을 수비하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피닉스팀 멤버들은 당황했다.
수비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하는 것은 엄연히 수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통 농구를 함에 있어서 공을 보는 사람을 시선을 보내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데 예체능 멤버들 모두 공을 지닌 사람을 아예보지도 않고 자신이 맡은 사람만 보며 마크하고 있었다.
“......”
퉁퉁!
‘나를 안 막아!?’
자신이 공을 몰고 움직이는데 수비를 해오거나 마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잭슨은 어이가 없었다.
센터라인을 넘어 골 밑까지 천천히 움직이는데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뿌득!
“도발인가?”
공을 지닌 사람을 보지 않는 수비라니 눈이 먼 장님이 수비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눈먼 수비가 시간을 끌려는 피닉스 팀의 전략을 부수었다.
자신의 앞이 저렇게 보란 듯이 뚫려있는데 공을 돌리기나 시간을 끌기엔 이 모든 상황을 찍고 있는 카메라와 보고 있는 관중들의 시선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미친놈이...!’
이런 정신 나간 전략을 내세울 만한 사람은 딱 한 놈밖에 없었다.
아니 저놈이 분명했다.
모두가 저런 정신 나간 수비를 할 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인물은 저놈 한 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빨강 머리!”
퉁퉁퉁!
씨익!
“안 들어오고 뭐해?”
뿌득.
“그렇게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마!”
타다닥.
제정신이 아닌 전략이 만들어 낸 강제로 주어진 1대1 상황.
잭슨은 이를 갈며 도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박살내 버리겠어.’
상황은 꼬였지만 코치가 내린 지시는 딱 하나 도경을 박살내는 것이다. 그거에만 집중한다면 지금 상황을 당황할 필요 없었다.
터엉!
휘이익!
2m의 130kg의 센터가 도경을 향해 정면으로 점프하며 허공을 날았다.
[Slam dunk]!
후우웅!
잭슨의 무지막지한 덩크를 펼치며 도경에게 부딪혀 왔다.
이미 자리에 서 있던 도경을 향해 점프한 잭슨의 덩크는 오펜스 반칙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도경만 잡으면 이 지긋지긋한 게임은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칙이지만 공을 집어넣어 굴욕도 주고 부상도 입히고 승리도 얻고 여러모로 얻을 게 많은 반칙인데 못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끝이다!!!”
점프하며 자신을 비웃는 잭슨을 향해 덩크를 내리꽂는 잭슨을 보며 도경은 눈에 서늘한 한광이 폭사 되었다.
퉁!
휘이잇!
잭슨의 손이 덩크를 꽂기 위해 하늘 높이 들려 올려지고 있을 때 도경이 몸을 뛰어 올렸다.
덥석!
“이 자식 설마!?”
어느새 자신과 눈높이로 올라와 자신의 공을 정면으로 잡는 도경을 보며 잭슨은 분노를 터트렸다.
자신보다 신장과 체중이 밀리는 녀석이 허공에서 힘 싸움을 걸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까짓 게 나를 막을 수 있을 리 없잖나!”
꾸욱!
잭슨은 손에 쥔 공에 힘을 주며 도경의 손을 채로 덩크를 내리꽂으려 했다.
자신과 그의 힘의 격차를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꾸우욱!
“뭣!?”
그런데 손의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하다.
도경의 손 채로 넘어가야 할 공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뭐긴 뭐겠어 네가 약해 빠진 거지! 이 악물어라 짜샤!”
휙!
휘청.
“아아악!”
도경은 순식간에 잭슨이 쥔 공을 힘주어 넘겨버렸고 그 강한 힘에 잭슨은 짓눌려 공을 놓치며 허공에서 균형을 잃었다.
쿠당탕탕!
퉁! 퉁퉁. 데구루루.
툭.
2m의 거구가 허공에 추락해 지면에 곤두박질친 상황에 모두가 놀랐다.
‘내가... 저 녀석에게 졌다고?’
부들부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인식한 잭슨은 바닥에 누운 채로 자신의 앞에 서있는 도경을 눈에 담았다.
자신과 눈을 마주쳐 오는 잭슨을 향해 도경이 한 마디를 건네었다.
“내가 말했잖아 너에게 찝찝한 승리보다 더 좋은 것을 준다고 말이야.”
“?”
“완벽한 패배만큼 깔끔한 게 없잖아. 어때 이젠 껄끄럽지 않지?”
“아...”
그 말에 잭슨은 뒤늦게 도경이 자신에게 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았다. 그의 말대로 이젠 경기가 이기고 지는 것은 잭슨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1대1 상황.
힘 대 힘으로 전력을 다한 기량을 겨룬 승부에서 완벽하게 패배했는데 이기고 지는 걸 집착해서 뭐한단 말인가?
“제, 제기랄...”
툭!
육체적인 충격과 뒤이은 정신적인 충격에 잭슨은 결국 힘들게 의식을 붙잡고 있던 끈을 놓고 말았다.
“잭슨!”
---
잭슨이 후에 벤치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승부는 끝이나 있었다.
(예체능)86: 77(피닉스)
센터의 부재. 그리고 이마를 붉게 물들이면서도 코트를 날아다니는 도경의 활약에 예체능팀의 대승으로 경기는 끝을 맞이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