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온라인에서 때아닌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름 아닌 이번 주말 KBN에서 방영된 [스트릿 예체능] 덕분이었다.
[이거 리얼 이냐? 아무리 봐도 조작인데...]
┗[그러게 아무리 봐도 짜고 치는 것 같은데 JY 무리수 아니냐?]
┗[ㅋㅋㅋㅋㅋ. 뭘 짜고 치냐. 너는 짜고 치면 저렇게 뛸 수 있냐? 음모론을 제시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팩트는 가져오고 그래라. 조작 같은 소리하고 있네! 신인하나 뛰어주려고 지상파 방송이 조작한다고? 지상파 예능이 호구로 보이냐?]
┗[ㅇㅈ. 짜고 치기엔 너무 리얼하다. 외국인들 표정 지금 안 보이냐?]
┗[그래도 저런 말이 나올만해. 마지막 3분 대역전극은 계속봐도 말이 안 된다.]
┗[역전극이 아니라 학살극임 보고 진짜... 왜 연예인 하는지 모르겠음.]
한인 타운에서 미국팀 [피닉스]팀과 시합한 해외 원정 편은 일본 편보다 더욱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모두가 질 거라고 생각한 어려운 경기를 예체능 팀이 승리를 해서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예체능팀이 얻어낸 승리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감동과 드라마가 있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승리였다.
[3분의 기적! 예체능 순간 시청률 20% 돌파!]
[실사판 Slam dunk! 감동과 재미를 움켜쥔 스트릿 예체능의 통쾌한 승리.]
[스트릿 예체능 투혼이 무엇인지 보여주다! 예능을 넘은 감동 드라마.]
[박도경 효과! 예능계의 독보적인 블루칩으로 우뚝 서다!]
[한국의 강백호라 불리는 박도경. 부상 속에서도 독보적인 농구 실력!]
[박도경 프로농구팀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다!]
[스포츠음료 브랜드의 CF 계약체결! 포리 스위트의 이례적인 남성모델 발탁.]
[예능계에 무섭게 떠오르는 이상한 신인 박도경 그에 대해 밝히다!]
시청률 20%라는 예능프로그램으로 이례적인 일을 저지른 만큼 [스트릿 예체능]은 뜨거운 화제로 연일 기사화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제의 중심엔 한국의 강백호라 불리는 도경이라는 인물이 놓여있었다.
[진짜 방송 나오는 마다 사고 치네. 예능프로그램 3개에 이 정도 타율은 진짜 난 놈 아니냐?]
┗[이대로 예체능 고정됐으면 좋겠다. 다음 농구 편 꿀잼 예약.]
┗[ㄴㄴ. [아현]하도 있고 부상 때문에 담 주에는 참여 못 함.]
┗[아아... ㅠㅠ]
┗[솔직히 출연해도 문제 아님? 쟤 상대로 어떻게 이김?]
┗[ㅇㅈ. 이대로 출연했으면 게임이 시시해져서 애매하게 되었을 수도 있음. 어떻게 보면 박수칠 때 떠난거임.]
[와... 뒤늦게 봤는데 경기 진짜 살벌했네. 박도경 패기 지리는 듯. 저 덩치인 흑형한테 하나도 안 쪼네.]
┗[맞아요. 캐릭터 컨셉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상남자였음.]
┗[그래도 흑인한테 깜둥이라고 했던 건 심한 거 아니냐?]
┗[보니까 차별은 그쪽에서 먼저 시비 붙은 거더구만. 님은 남이 비웃으며 머리 만지려 들면 가만히 있음?]
┗[맞어. 남자가 남자 머리 건드는 건 상대를 개 좆 밥으로 무시해야 할 수 있는 것임. 가만히 있으면 호구 인증이지...]
┗[이건 거론할 것도 없이 빼박 임. 게다가 그쪽도 비하 심하게 하더만 솔직히 박도경이 미국인들 몰아붙일 때 나만 시원했냐?]
┗[그건 그렇고 박도경은 해외여행을 뒷골목만 전전했나? 슬랭어 찰지게 구사하네.]
[지금 운동 갤러리에 박도경 초인 설 나왔다. 한 경기에 점수를 50점 이상 뽑고 4쿼트 내내 몸싸움에 전력 질주에다 저런 플레이는 말이 안 된다고 함.]
┗[이거 레알 우리나라에서 NBA인재 썩히고 있는 거. 농구 스카웃 제의 들어왔다는데 농구선수로 전향했으면 좋겠다.]
┗[헬조선에 운동선수가 쉬운 줄 암? 게다가 박도경 나이를 생각하 셈. 이미 20대 중반에 훈련받고 전문농구선수로 전향하기엔 늦었음.]
┗[그래도 저 정도로 체력에 운동신경이면 나이를 떠나 가망 있을걸? 그러니까 프로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지. 농구 황태자 우지운이 박도경에 관해서 곧바로 프로에 뛰어도 손색없다. SnS로 글 남김.]
자신보다 신장이 큰 외국인을 상대로 마지막에 슬램덩크를 날린 도경의 모습을 보고는 대한민국 20, 30대 남자들이 도경에게 열광했다.
사기적인 운동신경과 화끈한 성격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붉은 머리를 지닌 도경의 모습이 그들의 향수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강백호 현신]
처음에는 농담 삼아 불리게 된 별명이었지만, 이제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실제 이름보다 저 별명으로 불리게 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농구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슬램덩크란 만화 속의 주인공과 똑 닮은 도경의 모습에 그 만화를 본 사람들 모두들 도경을 강백호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CF를 따내다니 회사 내부에 도경 씨에 대해서 칭찬이 자자합니다.”
“아, 네...”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기쁘지 않으십니까?”
“아... 좋긴 한데 얼떨떨해서요. 예능 방송이라는 게 이렇게 여파가 클 줄은 예상 못 했거든요. 어느 정도 화제 되더라도 잠깐 기사나 온라인으로만 될 줄 알았지 설마 CF까지 들어올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그 머리색은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습니다.”
피식.
“네?”
백미러로 도경의 붉은 머리를 바라본 차도한은 도경을 향해 실소를 지었다.
실소라도 자신을 향해 웃음 짓는 차도한의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도경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CF 체결한 결정적 도경 씨 머리색이 한몫했다고 하더군요. 아시지 않습니까. [JY] 강백호 말입니다.”
“설마...”
“그 설마입니다. 포리 스위트 기획팀 팀장이 슬램덩크 광팬이라고 하더군요. 그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기획을 성공시켰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믿기지 않는 비사에 도경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래도 일인데 그래도 된대요?”
“보통은 안 되겠지만 윗선에 몇몇도 팬이라고...”
“...”
“그리 허무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결국, CF를 얻어낸 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도경 씨의 농구 플레이 덕분이니까요.”
“오. 웬일로 그리 후하게 칭찬해주신 데요? 이젠 저한테 슬슬 정이 드나 보죠?”
“성과급을 받았습니다.”
“...쳇! 그럼 그렇지.”
‘애도 아니고 못 말리는군. 대체 어느 모습이 진짜 모습인지...’
똑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차도한을 향해 도경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고 차도한은 그런 도경을 보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저 모습을 보면 거친 야생마처럼 투혼을 발휘하며 농구코트를 누볐던 도경의 모습이 전부 거짓말 같았다.
“그건 그렇고 [아현]에서 생각해 보라던 아이디어는 잘 짜셨습니까?”
현재 도경과 차현식이 향하는 곳은 케이블 방송국 JTVC.
도경이 MC를 맡게 된 [아이돌 현장] 프로그램 회의를 위해 둘은 차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뭐, 어느 정도는 생각은 했죠.”
“음...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지만 여태 해왔던 게 있으니 믿어 보겠습니다.”
“어라 라?”
헤벌쭉.
“뭡니까? 기분 나쁘게...”
“정말로 저한테 정붙이고 있는 거 아니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무응답으로 대처하며 운전을 하는 차도한을 보며 도경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기분 탓이 아니라 차도한의 반응은 예전과 확연히 다른 반응이 분명했다.
평소라면 자신의 대답을 듣고 잔소리를 했을 그가 이제는 자신을 보며 믿어보겠다고 말을 했다.
격세지감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솔직해 지시죠. 저번 농구할 때 저한테 감동 받은 거죠?”
“큼...”
차도한이 자신에게 태도의 변화를 보일 계기는 딱 하나밖에 없다.
“그래도 피도 눈물도 없을 줄 알았더니 의외의 모습이 있었네요. 혹시 차 매니저님 농구 ...좋아하세요?”
“(정말) 좋아합니다....”
그 물음에 차도한은 멀리 시선을 던지며 짤막히 운전대만을 움직였다.
“하하하! 역시나!”
“큼큼...! 다 와 갑니다. 준비하십시오.”
“네네.”
도경의 예상대로 차도한은 사실 농구를 좋아했다.
보이는 것과 달리 운동신경이 지독하게 없어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사내 농구대회를 직접 주관할 정도로 농구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차도한이 농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슬램덩크(origin) 30권 대사 중에...
누군가가 건네주었던 만화책이 계기였다.
도경의 농구를 좋아하냐는 물음에 만화책 속에 위의 명대사를 떠올릴 정도로 그는 이 만화를 좋아했다.
주황색의 오리지널 31권과 하얀색 완전판 24권의 만화책이 꼼꼼히 래핑 되어 서재에 모셔져 있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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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VC에 도착한 도경은 아현팀의 회의실에 준비해놓은 아이디어를 꺼내며 3일 뒤에 있을 촬영에 진행에 대해서 브리핑을 하였고 제작진들은 도경의 의견에 미숙한 부분만 조금 조언을 해주며 도경에게 최대한의 자유권을 주었다.
신인이라도 아이돌 현장의 메인 MC가 된 이상 도경을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정진석 Pd의 방침이었다.
“후. 고생하셨습니다.”
우르르.
“그래 도경이 너도 고생했다. 네 말대로만 된다면 방송은 재미있을 게 분명하니 잘 준비해봐.”
“그래요? 그거 다행이네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도경과 [아현]제작진들의 회의가 끝이 나고 도경은 자리에 일어나 정진석Pd와 악수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네가 예능에서 활약한 덕분에 제작진들 모두들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하하! 그거 부담스러운 소리인데요? 어깨가 무겁네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런 놈이 그런 기획들을 내?”
도경의 앓는 소리에 정진석 Pd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경을 타박했다.
그도 그럴게 도경이 낸 기획 아이디어 태반이 자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없으면 낼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런 너무 티 났나요?”
“그래 자식아. 아주 기고만장해서 말이야.”
“아하하하! 저 박도경입니다. 요즘 핫한 거 모르세요?”
“남이 만들어준 밥상에 숟가락 얹는 거랑 하나하나 손수 밥상 차리는 거랑 같냐? 헛소리 말고 준비나 철저히 잘해 놔. 예능은 초반 컨셉에 의해서 수명이 결정되니까 말이야.”
혹시나 도경에게 주의를 줬지만 도경은 언제나 그랬듯이 무사태평한 태도였다. 그도 그럴게 도경에게 있어 음악과 춤을 다루는 아이돌 현장만큼 최적화 되어있는 프로그램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트릿 예체능]과 [라디오 수다]에서 확실하게 신인으로서 각인시킨 덕분에 당분간은 [아현]에만 집중하기로 소속사와 이야기가 협의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여서 도경이 어려움을 느낄 장애물은 그 무엇도 없었다.
“넵! 걱정 마십시오. 제대로 캐리 해드리겠습니다.”
“어휴...! 잠깐 뜬 거가지고 이 정도인데 네가 제대로 뜰 때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
“하하하! 그때는 각오하십시오.”
“에잇. 어서 꺼져.”
만난 지 오래 되지 않았지만 정진석 Pd와 도경의 사이는 많이 가까워진 듯싶었다.
정진석 Pd는 도경의 순수한 재능과 끼에 매료되어 있었고 도경은 허례의식 없이 좋은 방송을 만드는 거에만 집중하는 정진석Pd의 올곧음이 마음에 들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넵!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 촬영에 뵈요!”
후다닥.
“녀석 어지간히 좀이 쑤셨나 보군.”
나름 진지하게 회의를 하나 싶더니 진심은 꽤나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회의가 끝나 기쁜 마음이 담겨있는 도경의 경쾌한 스텝을 보며 정진석 Pd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언제 봐도 유쾌한 녀석이었다.
‘희한하게 밉지 않은 녀석이야. 장래가 기대가 돼.’
정진석 PD는 기대가 담긴 눈빛으로 도경을 바라보며 다음 주 촬영을 고대하였다.
조금 전에 도경을 타박했지만 사실 그에게 기대를 가장 많이 거는 사람은 정진석 Pd 본인이었다.
“과연 어떤 [아현]이 만들어질까?”
도경이 뜨면서 [아현]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진 만큼 어떤 방송이 만들어질지 매우 기대가 되는 정진석 P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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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
도경과 차도한은 사이좋게 층수가 표시되는 전광판을 보며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때요? 분위기 괜찮았죠?”
“네. 생각이상으로 많이 준비하셨더군요.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하하하. 사실 이것만 제대로 터트리고 자리 잡으면 다른 예능은 출연 안 하기로 사장님하고 약속했거든요. 제법 힘 좀 썼죠.”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제작진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하며 열의를 보였던 도경을 보며 내심 감탄했던 차도한은 도경을 향해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다 문득 아까 전의 용건을 떠올렸다.
“참. 사장님께서 연락을 달라고 언질을 주셨습니다.”
“네? 무슨 일인데요? 급한 게 아니라면 좀 쉬고 싶은데...”
“시간은 상관없으니 꼭 오늘 안에 전화 달라고 하셨습니다.”
“칫.”
도경의 성격을 고려한 박진용의 언질에 도경은 입술을 툭 내밀며 품속에 꺼놓았던 스마트폰을 켜고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음...? 컬러링이 바뀌었네? 본인 노래는 아닌 것 같고 누구 노래지?”
움찔!
‘이건!’
분명 예전에는 자기 노래로 설정했던 박진용의 컬러링이 다른 노래로 바뀌어 있자 도경은 의아함을 표시했고 그의 옆에서 박진용의 컬러링을 듣게 된 차도한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여보세요? 도경이구나. 회의는 잘했니?]
“그럭저럭 이요. 그나저나 연락하라고 했다면서요. 무슨 일 있어요?”
[있지. 그것도 아주 큰일이...!]
“네?”
예의상 물어보는 거였는데 설마 정말로 일이 있다고 대답해 올 줄이야. 도경은 잠깐 당황하고 말았다.
‘설마 클럽에서 놀았던 게 들켰나?’
두근두근.
농구 경기를 하면서 입었던 부상 때문에 쉬라고 받았던 휴식시간에 몰래 집 밖에 나가 클럽에서 질펀하게 미녀들과 광란의 춤을 추며 놀았던 것을 떠올린 도경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괜찮아. 조명도 어두웠고 같이 춤만 췄을 뿐이잖아. 아무 일도 없었어! 진정하자 박도경...!’
미녀와 상당히 부적절한 춤을 췄던 것은 애써 기억에서 삭제한 도경은 아무렇지 않은 척 박진용에게 용건을 물었다.
“무, 무슨 일인데요?”
[도경이 너...]
두근.
‘제길 들켰구나...!’
“네. 말씀하세요...”
떨리는 심장을 느끼며 도경은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며 박진용의 대답을 기다린다.
[앨범 하나 만들어야겠다.]
“죄송합니다.”
[응?]
“네?‘
엇갈리는 대답에 두 사람 모두 의아함을 담은 음성 내뱉은 가운데 도경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었다.
“앨범이요?”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