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갑자기 앨범이라니 무슨 소리에요?”
“어. 도경아 왔구나. 그리고 노크 좀 하고 들어와라.”
[JY 엔터테인먼트]
앨범제작 소식에 조금 상기된 얼굴로 박진용의 개인 스튜디오를 찾아온 도경은 혹시나 싶은 기대를 안고 물었다.
“어차피 저 오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것보다 저 앨범 만들어요?”
“어. 만들어야지.”
“진짜요?”
“근데 네 거 말고 이 애들 걸 말이야.”
툭.
“예?”
도경을 낚는 데 성공했다 생각한 박진용은 유쾌한 웃음 지으며 도경에게 서류와 외장 하드를 던져 주었다.
“쳇. 역시나 제게 아니었네요.”
“필살기는 맨 마지막에 써야지. 그러니 너는 기(氣) 게이지나 착실히 모으고 있어.”
“그놈의 필살기 타령. 게임 좀 그만해요. 이상한데 꽂혀선...”
“하하하. 네가 먼저 날 입문 시켰잖아. 그건 그렇고 난 네가 예능으로까지 뜰 줄은 몰랐다.”
“제가 난 놈은 난 놈이니까요. 것보다...!”
자신의 앨범이 아니라는 소리에 혀를 찼지만 내심 이럴 거라 예상한 도경은 아무렇지도 않게 박진용이 건네준 서류를 들어 올리며 종이를 한장 한장 넘기며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드림걸즈 프로젝트]
“이건 조금 예상 못 했는데요?”
“어때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고 말고 자시고...”
10명의 소녀들의 프로필과 그녀들의 월말평가 영상이 담겨있는 외장 하드를 통해 도경은 지금 박진용이 자신에게 작곡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저보고 애들을 맡으라는 거예요?”
평상시 곡의 멜로디만 작곡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일에 도경은 난색을 표현했다.
“응. 맞어.”
“너무 갑작스러운데... 게다가 이거 꽤 큰일이잖아요. 회사내부에서 허락했어요?”
열 명의 소녀들로 이루어진 드림걸즈.
요즘 [JY]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걸 그룹 프로젝트 사안인 것을 알기에 도경이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히 허락 안 했지. 프로듀싱을 한 경험이 없는 생초짜에게 회사 내부의 큰일을 맡길 리 없지.”
“그럼...?”
“하지만 저번에 네가 냈던 네 노래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압도적으로 1위로 통과했고 그 노래를 만든 제작자가 카일 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아... 그때 만들었던 노래들...! 그나저나 제가 카일이라는거 이젠 공식적으로 밝히시게요?”
“그래 이젠 슬슬 전면으로 나서야지? 연예계에 데뷔도 했는데 언제까지 얼굴 없는 작곡가로 있을 거야? 신비주의 그거 옛날에나 먹혔지 요즘은 씨알도 안 먹힌다.”
“음... 근데 그거 조금 곤란한데요?”
“왜? 뭐가 걸려?”
“카일이란 이름을 일부러 감추는 건 아닌데 지금은 조금... 제가 작곡가 활동을 했던 것을 어머니가 아신다면 제 수입을 확인하실 텐데 지금 제 통장 잔고가 많이 빈약하거든요. 분명 노발대발 하실 게 분명해요.”
도경의 말에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물었던 박진용은 도경의 대답을 듣고는 혀를 찼다.
“너도 참...!”
거대한 프로젝트를 앞에 두고 신나거나 불타오르질 못할망정 고작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도경이 못마땅했다.
“뭐, 그게 큰일이라고 난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하여튼 사람 놀라게 하는데 진짜 재주가 있어요.”
“저에겐 큰일이라고요.”
“참내... 사내놈이 간담이 작아서는... 야, 얼마야?”
“네?”
진심으로 난감한 표정을 짓는 도경을 보며 박진용은 그를 한심하게 쳐다봐주며 한껏 거드름 피우기 시작했다.
‘짜식. 이번에 사장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 주마!’
이번 기회를 통해 사장으로서의 위엄을 한번 과시해야겠다 생각한 박진용은 도경이 쓴 돈을 메꿔주기로 한 것이었다.
“네가 쓴돈 내가 메꿔 줄 테니까 말해 봐봐. 국민은행으로 네 핸드폰 번호가 계좌지?”
“저, 정말로 메꿔 줄 거예요!?”
“그래. 명색이 사장인데 회사의 유망한 작곡가 곤란하다는데 그 정도쯤은 해줘야지.”
“사장님! 사랑합니다! 드림걸즈? 까짓것 제가 멱살 잡고 1위까지 데려다 놓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이야 사장님 은근 화끈하셨네요. 존경합니다!”
“하하하. 원 녀석도 그래 얼마 넣어주면 되니.”
자신을 향해 촐싹거리며 아부하는 도경을 보며 박진용은 나쁘지 않은 기분에 웃음 지었다.
항상 자신을 동네 지나가는 아저씨 취급하던 도경에게 존경 어린 찬사를 들으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큰 걸로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그래? 6천 정도야 껌이지.”
쑥스러운 미소로 자신을 향해 손가락 여섯 개를 피는 도경을 보며 박진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뱅킹으로 숫자 6을 찍고 0을 찍어 내리기 시작한다.
6천만 원이란 거금을 쿨하게 봐로 쏴주려는 모습은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멋지다 홀로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서 도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뇨. 사장님 6억이요.”
“아. 6억이구나....... 뭐!?”
멈칫.
도경의 정정해주는 말에 박진용은 스마트폰에 0을 찍는 것을 멈추고 숙였던 얼굴을 들어 올리려 눈앞에서 싱글벙글 웃음 짓고 있는 도경을 바라보았다.
“6억?”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마지막으로 확인을 위한 물음을 던지는 박진용을 향해 도경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사살을 가한다.
“네. 6억.”
“이... 미친놈아!”
“헤헤헤헤.”
도경의 해 맑은 대답에 박진용은 자신이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그렇게 돈 없다고 티를 내며 고기를 얻어먹더니 사실 앓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돈이 없었음을 박진용은 뒤늦게 깨달았다.
“...너 뭐야? 무일푼으로 여행 다녔다며? 그런데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혹시나 해서 묻는데 너 현재 통장에 얼마 정도 남아있어?”
“음... 한 200만원 정도?”
‘역시나..!’
저작권료로 받은 작곡료ㄴ의 태반을 다 썼다는 도경의 대답에 박진용은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았다.
도경이 저만한 큰 액수를 썼을지 상상도 못 한 박진용은 받는 충격은 상당했다.
‘설마하니 도경이가 경제관념이 딸리나? 하지만 사치 같은 거를 부리거나 돈이 많이 드는 생활 패턴이 아니었는데?’
도경은 남자들이 흔히 관심을 보이는 외제 차나 시계 같은 명품 같은 거에 전혀 관심도 안 보였었고 항상 후줄근한 차림으로 집이나 은하수 카페, 회사에서 마련해준 작업실에서만 빈둥거리기만 하는 생활패턴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안 박진용은 도경이 저렇게 돈을 막 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도경아 혹시나 해서 그런데 돈 엄한 곳에 쓴 건 아니지? 도박이라던가. 주식 같은...”
“사장님! 절 어떻게 보시고?”
‘그래 그 큰 거금을 아무런 이유 없이 쓸 녀석이 아니지.’
꿀꺽!
자신을 어떻게 보냐고 묻는 도경을 보며 박진용이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도경의 대답을 듣고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디에다...?”
“여행하다가 만난 어려운 친구들 도와줬죠.”
“뭐? 6억 전부를...?”
“넵. 제가 이래 봬도 마음씨가 약하잖아요.”
“으 응...”
자신을 향해 뿌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도경이 때문에 할 말은 잃은 박진용은 고심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성준이때도 2억을 그 자리에서 줬다고 했지...!’
어려운 사람을 돋는 거?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돈에 관련된 일인 만큼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간의 돈 관계이기도 했다.
친구 보증을 잘못 서서 빛더미에 앉는 사람이 지능이 딸리거나 바보라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구인가...?”
중얼.
“네? 사장님 무슨 말 했어요?”
“아무래도 너 의외로 호구인 거 같다고.”
“에이. 호구라뇨. 그저 어려운 친구 도운 거죠. 다들 나중에 잘 되면 배로 쳐서 갚기로 했어요.”
“그래 그렇다면 차용증 썼어?”
“차용증은 무슨...! 술 한 잔에 진심어린 아이컨택에 한 번이면 다 된 거죠. 걱정마세요, 제가 돈 꿔준 애들 다들 착해요.”
“허...”
도경의 대답에 박진용은 도경이 돈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가치 관념이 생각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너,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네? 뭐가요?”
스윽.
“서 여사님 전화번호가...”
“아니 잠깐만...! 사장님 거기서 왜 우리 어머니가 나와요?”
덥석!
자신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하려는 박진용을 보고 도경은 대경해서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서 여사에게 죽거나 아니면 통장을 빼앗겨 평생을 용돈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놔! 젊은 놈이 돈 무서운지 모르고...!”
“에헤 이! 좋은 일에 썼다니까요. 아니 왜 평범하게 잘살고 있는 집안을 왜 풍비박산 내려 하실까? 자자. 진정하세요. 그냥 제가 카일인 거만 안 까면 되잖아요? 릴랙~스 하십시오. 사장님.”
도경은 어떻게든 박진용의 행동을 말리려 했지만, 오히려 그게 박진용을 더욱 흥분케 만들었다.
“야! 임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네가 카일 인 걸 안 밝히면 프로젝트가 엎어지잖아.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엎는 이유가 엄마 몰래 돈 쓴 걸 감추기 위해서라고 네가 남들에게 다 말할래? 나라면 쪽팔려서 접시에 코 박고 죽는 다 죽어!”
“아니... 프로젝트를 벌린 것 그쪽이면서 왜 나한테 그래요?”
“그래 그럼 진짜로 서 여사님에게 연락할까?”
“헤헤헤. 형. 말이 그렇다는 거지. 머릴 맞대고 좋은 방법을 찾아보도록 해요.”
“이럴 때만 형이지...?”
“하하하.”
“웃음이 나오냐? 진짜 사람 맘도 모르고 말이야...”
이번 프로젝트는 사실 드림걸즈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 내다보면 도경에게도 필요한 전략이기도 했다.
솔로에게만 맞춰져 있는 도경의 프로듀싱능력을 한층 더 늘리는 한편. 드림걸즈가 성공적으로 뜬다면 곧바로 그 후발주자로 카일의 정체를 언론에다 밝히는 동시에 도경을 화려하게 데뷔시키려던 게 그의 원대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6억이라...
질끈.
‘그래. 초반에 발견해 다행이라 생각하자.’
그나마 지금에 와서 도경의 잘못된 경제관념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박진용은 책상 위에 놓았던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 올렸다.
“6억. 내주마.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프로젝트를 엎을 수는 없으니 말이야.”
“정말 명안이십니다. 사장님!”
“대신에!”
“대신에?”
“차용증 끊은 후 나한테 잔소리 좀 들어야겠다. 도경아.”
씨익.
파르르르.
“아...”
박진용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발견한 도경의 안색이 핼쑥하게 변하였다.
‘큰일 났다. 진짜로 단단히 화났나 보네? 저건 나도 버거운데...’
미국팀과 경기가 끝난 후 부상을 병원 가서 제대로 치료받지 않고 강원동과 술 마시러 나갔다 박진용에게 들켜 혼났을 때를 떠올린 도경의 울상을 지었다.
“아, 형. 이제부터 진짜 돈 마음대로...!”
“앉아.”
“네...”
어떻게든 빌어보면서 박진용의 기분을 풀어 주려 했지만, 도경의 수고는 수포로 끝이났다.
‘오늘 집에 가긴 글렀구나.’
그 예상대로 도경은 오늘 자신의 집에 돌아가지 못하였다.
차용증을 끊어 6억을 입금받은 도경은 그날 박진용에게 2시간 내리 잔소리를 들은 후 교육실에 끌려가 재테크와 관련된 서적과 시청각 자료에 둘러싸여 감상문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탈출하려 하여도 옆에서 도경의 매니저 차도한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도경은 순순히 자신의 처벌을 감당해야 했다.
수 시간 후.
“흐~. 금전감각까지 신경 써주다니 [JY]는 정말 가족! 같은 회사네요...”
“...출발 하겠습니다.”
“네. 부탁할게요.”
부우웅!
실성한 듯 웃으며 회사 밖을 나온 도경은 차도한이 바래다주는 자동차에 몸을 싣자마자 기절하듯 쓰러지며 깊은 수면에 빠졌다.
도경이 모든 감상문을 제출했을 때는 이미 다음 날의 해가 하늘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6억이라...”
AM 6:30 이른 새벽의 시간.
도경과 덩달아 함께 밤을 샌 차도한은 조용히 차를 몰며 백미러로 천진난만하게 자는 도경을 향해 혀를 내둘렀다.
“정말 박도경 스럽다고 해야 하나?”
박진용에게 전후 사정을 들은 그는 도경이 정말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한편 또한 그답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도경이라는 이름이 형용사가 될 지경이다.
“딱히 돈 쓸데가 없어서 빌려줬다니 말이 돼?”
(그냥 딱히 쓸데가 없어서 빌려준 건데 무슨 내가 보증 들어서 집안 말아먹을 생각 없는 놈으로 보는 건가? 나중에 어려울 때 되면 나한테 돈 꾸기만 해봐라. 절대 안 꿔줄 거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재테크 서적이 왜 이리 많은 거야!?)
피식.
감상문을 쓰면서도 끊임없이 투덜거렸던 도경을 떠올리며 차도한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자신의 3년 수입을 무분별하게 썼음에도 반성 하나 없이 대한민국 3대 기획사를 운영하는 사장에게 돈을 꿔주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이를 가는 사람은 정말 도경이 유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엉망진창인 녀석이야.”
돈을 어떻게든 한 푼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현대사회의 현실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친한 친구도 신뢰 관계마저 헌신짝처럼 버린 일을 겪은 그에게 도경의 철없는 행동이 그리 한심하게만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은 똑똑한 너와는 다르구나. 용환아...’
유쾌함도 잠시 과거와 씁쓸한 인연에 차도한의 얼굴에서 미소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
부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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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우물.
쩝쩝.
다음 날 아침.
잠자는 시간은 짧았음에도 도경은 그가 좋아하는 집밥을 사수하기 위해 피곤함을 이기고선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흥, 흥흥~.”
“뭐냐 뭔데 그리 신났냐? 나는 피곤함에 맹렬하게 짜증 나는데 네가 신나있으니까 화가 난다.”
“뭐래? 내가 신나든 말든 뭔 상관인데? 동생한테 심술부리지 말고 밥이나 얌전히 먹지?”
“칫. 매정한 년. 빨리 숙소로 꺼져 버려라.”
“이게 동생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철썩!
도경의 말에 소희에게 반찬을 챙겨주고 있던 서여사는 그의 등짝을 향해 매서운 손을 휘둘렀다.
“악!”
“그냥 얌전히 밥 먹고 소희랑 같이 회사에 나가렴.”
“네...”
소희에게 심술부렸다가 서 여사에게 등짝을 맞으며 본전도 못 찾은 도경은 입을 삐죽 내밀고는 얌전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헤헤헤. 엄마 나 저거 줘.”
“그래그래 꼭꼭 씹어 먹어 우리 딸.”
“쟤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예전에 소희가 도경을 보며 투덜거렸던 말을 오늘날 도경이 남몰래 중얼거리며 자신의 앞에 역전된 풍경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던 와중 도경은 소희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늘 좀 되게 신경 썼네? 기분도 좋아 보이고... 혹시!’
“너 남자친구 생겼냐?”
“뭐래? 걸 그룹 활동할 여동생에게 그게 할 말이야?”
“참, 맞다! 내 동생 아이돌이었지? 데뷔를 안 해서 그런가? 자꾸 까먹게 되네? 으하하!”
“저게...!”
이상한 웃음으로 자신을 놀리는 도경을 보며 소희가 발끈해서 외쳤다.
안 그래도 데뷔를 앞두고 아무것도 진행상황이 없어서 초조해 하고 있었는데 요즘 예능에서 활약하는 오빠가 놀리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안 그래도 오늘 우리 데뷔곡 정해졌거든요?”
“오! 그래서 그렇게 기분 좋은 거였나? 근데 보나 마나 허접한 곡 아닐까? 요즘 사장님이 감 떨어졌다 하던데?”
소희의 기분 좋은 이류를 깨달은 도경은 짓궂은 웃음 지으며 소희를 골리기 시작했다.
울컥!
“사장님 거 아니거든? 유명한 작곡가님이 만든 곡이라고 했어. 오빠야말로 그렇게 여유 부리시지 마시지?”
피식.
“여유 부릴 때가 아니라고? 최고인 내가 여유를 안 부리면 대체 누가 여유를 부려?”
소희의 분에 겨워 발악하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한 도경은 그녀를 비웃었지만. 이내 소희의 이어지는 말에 웃음 지을 수 없었다.
“흥. 우리가 데뷔하면 내가 오빠 가요계 선배인데도?”
움찔.
“잠깐만. 네가 왜 내 선배야? 내가 너보다 방송 데뷔도 빠른데.”
“아직 오빠 앨범도 없잖아. 앨범 먼저 발매하고 음악방송 먼저 하는 게 선배지 안 그래?”
“...야! 그런 억지가 어딨어? 그래도 정식 데뷔는 내가 빨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소희의 억지에 잠깐 자신의 머릿속 상식에 혼선이 왔지만, 도경은 이내 데뷔일이 먼저인 사람이 선배라는 연연예계의 절대불변 법칙을 떠올리며 소희를 향해 비웃었다.
“아 그러셔요? 그럼 내가 선배 대우해줄게 오빠. 예능인으로서 말이야.”
“뭐? 예능인?”
빠직.
자신의 동생답게 한 마디 도지지 않는 소희의 말에 도경이 발끈했다.
도경 그 자신이 아무리 다재다능하더라도 그의 아이덴틴티는 가수라 자부하는데 감히 다른 분야를 가져다 선배 대우한다는 말은 그냥은 못 넘겼다.
“감히 이 몸을 어떻게 보고? 박소희 그 말 취소하는 게 좋을 거다. 이 마음 넓은 오빠가 한 번의 기회를 줄게.”
“싫은데? 못하겠는데? 억울하면 우리보다 먼저 앨범 내시던가요. 깔깔깔!”
“너 그러다 진짜 후회한다.”
“네네. 선배님 후배가 죄송했습니다. 후배가 죄송하지만, 선배님보다 가요계에 먼저 나가도 되겠습니까? 깔깔깔.”
빠득.
‘이 녀석 점점 입담이 매서워지네...’
드림걸즈 멤버들과 놀기 시작한 이후로 요즘 들어 깐죽거림이 최절정을 달성하고 있는 소희를 보며 도경이 이를 갈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도경은 서슬 퍼런 미소를 지었다.
“2시라고 했지...”
“응?”
“오늘 너희 드림걸즈와 그 유명하신 작곡가분이 만나는 시간이 말이야...”
“어? 어. 근데 그걸 어떻게?”
“사장님한테 들었어. 내가 듣기로 꽤 뒤끝이 길다는 사람 같던데 소희 너는 특히! 조심해야겠다.”
“뭐래? 우리를 맡을 작곡가님이 오빠같이 쪼잔한 남자일 리 없잖아? 괜히 샘나서 이간질하지 마시지? 남자가 졸려하게...!”
빠지직.
마지막 기회를 주려 했었건만 그 기회를 걷어차고 자신에게 극딜을 집어넣는 자신의 동생을 보며 도경이 이를 갈았다.
“아~. 그렇구나. 쪼잔한 남자일 리가 없구나.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
“응?”
“아아, 아니야. 밥이나 먹자.”
“뭐야? 이제는 쪼잔하다 못해 싱거운 남자가 되려고 하는 거야?”
“후후후. 지껄여라. 나는 밥을 먹을 뿐이다.”
평소와 달리 묘한 태도에 도경을 이상하게 쳐다보지만, 도경은 밥을 먹는 것으로 일관하자 소희도 관심을 끄고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달그락달그락.
우드둑. 우드둑. 그득. 뚝!
소희를 보며 구운 생선을 통째로 씹어 먹는 도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잘근잘근 씹어주마.’
박도경이란 뒤끝이 긴 찌질한 남자의 본능이 오랜만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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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