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25화 (125/357)

125화

연습실 무대 위.

조심스레 떨리는 한 소녀의 목소리가 자신의 색으로 주변으로 물들인다.

[러블리] 멤버중에 제일 낯가리고 소심한 미오가 놀랍게도 노래의 첫 도입부를 맡았다.

“후우우.”

[눈물이 멈추지 않잖아.

넌 나의 첫사랑이었잖아.

이별이 서툴렀던 이유는

넌 나의 첫사랑이기 때문이었어.]-미오.

‘잘했어 미오야!’

두근.

첫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히 노래에 감정을 소화한 그녀의 모습에 옆에서 노래에 빠져있던 [러블리]의 맏언니인 하린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미오가 만들어놓은 노래의 감정선을 이어받아 부드럽게 노래를 불렀다.

겁 많던 동생이 저 정도로 노력하는 데 자신도 힘을 내어야 했다.

[둘이 쌓아왔던 추억들 못 이룬 약속들이 떠올라.

다신 널 볼 수 없구나.

잘 알아. 알아~. 알아~!]-하린

나른한 인상과 맹한 구석과 달리 풍성한 음량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성격과 달리 파워풀하고 음색이 짙은 노랫소리에 곡의 감정이 천천히 증폭되기 시작한다.

[서투른 사랑이라도 알아.

아픈 건 똑같더라.]

미오의 목소리가 하린의 노랫소리를 거들기 시작하자 하린은 한결 더 편한 표정을 지으며 더욱더 진한 음색을 허공에 수놓으며 곡의 절정으로 걸어간다.

‘편해...’

‘노래 너무 좋다.’

서로의 파트를 나누었던 기존의 곡이 아니라 한땀 한땀 화음을 만들며 차분히 걸어가는 곡은 하린과 미오의 마음에 쏙 들었다.

편안한 옷을 입은 느낌을 주는 노래였다.

‘이거라면 할 수 있어.’

“후읍!”

항상 급한 템포에 무리해서 질러야만 했던 고음파트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하린은 오랜만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을 고음파트를 맞이했다.

[넌 나의 첫사랑~!. 서툴렀던 사랑~! 고마웠던 사랑~!

우~]-하린

쩌렁쩌렁.

“와...”

“대박.”

고음에 감정을 실을 충분한 여유와 예열을 한 만큼 그녀가 내지르는 고음은 사람의 가슴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언니 진짜 잘 부른다.’-미오

‘언니가 원래 저렇게 잘 불렀었나?’-주리

평소같이 노래를 불렀던 멤버인 미오와 주리가 놀랄 정도로 그녀가 지금 보이는 가창력은 놀라웠다.

씨익.

“얼마나 쌓여있었으면 저렇게 속 시원하게 부르냐.”

도경은 하린의 노래를 들으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곡가 놈아 이걸 봤으면 좋겠군.’

“이름이 한우신 이랬나? 저런 애들을 두고 그딴 곡을 주다니 멍청한 작곡가 놈...!”

[러블리] 멤버는 세 명인인 걸 고려하지 않은 파트분배, 기존 아이돌 곡과 차별성 없는 무난한 스타일로 [러블리] 멤버들 각자의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한 노래를 떠올린 도경은 작곡가에게 욕설을 내뱉어 주었다.

실력이 되는 작곡가였다면 애초에 저 애들은 기존에 발랄하고 신나는 아이돌 곡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맏언니 하린은 짙은 음색의 호소력 짙은 가창력을 저 소심한 미오는 차분한 목소리의 섬세한 감정처리 능력을 그리고 저 왈가닥 녀석은 전달력이 탁월하긴 한데...”

멤버들의 각자의 특색을 읊던 도경은 [러블리] 멤버의 마지막 주자인 주리를 보았다.

조그마한 몸 체구와 달리 제일 성격이 드세고 자신에게 많이 부딪혀 왔던 그녀를 보며 도경이 웃음 지으며 그녀를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가사는 다 외웠나 모르겠네...?”

주리가 맡은 부분은 다름 아닌 랩 분야였다.

이 노래가사 중 가장 풋사랑에 대한 미련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부분으로 드림걸즈의 랩을 담당하고 있는 채연에게 비중을 높여주기 위해 만든 만큼 긴 가사들로 수놓아져 있었는데 주리가 과연 모든 가사를 외워서 랩을 절지. 아니면 완벽하게 소화할지는 도경도 미지수인 상태였다.

‘내 차례구나!’

그런 도경의 걱정과 달리 주리는 자신의 차례를 앞두고 조금도 떨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들떠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와 달리 포텐을 터트리며, 즐거워하는 멤버들의 기분이 그녀를 고조시켰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단 더 아프기도 해.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보다 너에게 못 해줬던 게 떠올라.]

‘우리가 문제가 아니었어...!’

자신들도 모르게 기계처럼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도경이 준 곡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데뷔 후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즐겁게 노래를 부른 것은 처음인 까닭이다.

[먼저 사랑한다고 내가 많이 아낀다 말을 못 해줘서 미안해.

뻔뻔하지만 그래도 네 안에 내 모습 안에 풋풋한 첫사랑으로 남고파

하고 싶은 것도 못했지만 후회하진 않을 거야.]

“와~. 저걸 언제 다 외웠대?”

“요즘 애들은 진짜 랩 잘하는구나.”

“가사가 쏙쏙 들어오네.”

긴 가사를 조금의 실수도 없이 리드미컬하게 내뱉는 김주리의 랩 실력에 모두가 그녀를 향해 놀라운 시선을 보냈지만, 도경은 다른 점에서 그녀에게 실력을 눈여겨 보았다.

“연기를 해서 그런가? 표현력이 좋아.”

노래의 정서를 해치지 않는 선을 유지하며 점점 갈수록 감정이 짙어지는 랩을 선보이는 주리를 향해 도경이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들려주었던 가이드와 달리 미묘하게 다르게 랩을 하는 것을 보며 그녀가 원래의 노래에서 즉흥으로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묘한 차이지만 그 차이가 관중들의 귀를 집중시키게 만들고 있었다.

[눈물이 뚝 뚝 뚝. 떨어져 지지만 난 괜찮아

꾹꾹 참는 건 내가 잘하는 거니까.]

단순히 뛰어난 게 아니라 개성과 매력을 겸비한 랩이었다.

독특한 발성을 토대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사 전달력과 그녀만의 표현력이 어우러진 랩은 김주리란 소녀를 눈에 띄게 만들었다.

본능적으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보여주는 그녀의 감각과 재능을 보며 도경은 코를 긁적였다.

긁적.

“이거 아무래도 맛 들릴 거 같은데?”

도경은 자신 안에서 간질거리는 감각을 느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넌 나의 첫사랑.

나의 첫사랑.

서툴렀던 풋사랑 그리고 고마웠던 사랑.]

네가 행복하기를 기도할게.

꼭 행복해야 해 Oh~.]1

자신의 노래를 만나고 개화하는 재능들을 바라보며 도경의 창작욕이 무섭도록 솟구쳐 올랐다.

[러블리]멤버 들을 보며 그들을 위한 곡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때도 그랬지.’

회사에서 드림걸즈를 프로듀싱할 때를 떠올리며 도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곡과 가이드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신이 났던 도경은 자신의 창작욕에 몸을 맡겼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원래의 목표량을 훨씬 초과한 10곡의 노래가 들어가진 정규앨범이 만들어졌다.

피식.

“훽가닥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박진용은 단순히 도경의 기량과 데뷔를 위한 전략으로 프로듀스를 맡긴 것이었지만, 도경에게 제작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짝짝짝짝!

“감사합니다.”-하린

꾸벅.-미오

“훌쩍.”-주리

노래가 끝나고 연습실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녀들을 열창에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세 명의 소녀들은 주변의 반응에 기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하기 바빴고 이를 지켜보던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정리하면서 잠시 샛길로 갔던 방송을 진행해 나간다.

“어디 보자... 제 작곡료 계좌번호가...!”

“뭐에요 공짜로 주는 거 아니 었어요?”

“이게! 어디서 날로 먹으려 들어?”

하하하!

도경의 노래 하나에 서로 간의 쌓였던 케케묵은 감정은 말끔히 털어낸 러블리 멤버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심리적인 거리감이 많이 사라진 [러블리] 멤버들과 도경의 케미가 돋아나며 재미있는 상황들이 이어지고 이내 [아이돌 현장]은 성황리에 촬영을 마치게 된다.

“컷!”

“OK. 다들 정리합시다!”

짝짝짝짝!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촬영이 끝이 나고 모두가 인사를 나누거나 자리를 정리하며 벗어나고 있을 때. 도경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차 매니저에게 다가섰다.

“어땠어요?”

“...조마조마 했지만, 잘 수습이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부터는 그런 행동 하지 마십시오. 하마터면 촬영을 못 할 뻔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정진석 Pd 님에게 도경 씨가 [러블리]멤버들의 노래를 비판한 장면은 빼 달라 부탁드렸습니다.”

“네? 그게 제일 재밌는 부분인데요?”

“아무리 도경 씨라도 그것만큼은 안 됩니다. 시청자분들에게 많은 오해를 사게 될 겁니다.”

“음...”

정말로 자신은 상관없었지만, 차 매니저가 평소 그 답지 않게 자신의 촬영에 꽤나 마음을 졸인 티가 보여 도경은 그에게 딱히 딴말하지 않았다.

“여튼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차 매니저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 촬영 솔직히 긴박감도 있고 재밌지 않았어요?”

“그건...”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작곡을 통해 드러난 도경의 카리스마와 천재성. 그리고 이어지는 [러블리]의 완벽한 무대. 이것만 해도 훌륭한데 이 뒤에서는 솔직담백한 모습으로 웃음까지 사로잡는 이번 촬영은 예능에 문외한인 자신이 보더라도 도경의 말 따라 재밌었다.

“재밌었습니다.

“하하하. 그럼 오늘도 한 건 했네요. 그러니 사장님한테 잘 말씀 부탁드려주세요. 아시겠죠?”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젠 가실까요?”

“아, 그게...”

“?”

넉살 좋게 웃고 있던 도경은 차 매니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이 그에게 다가온 용건을 꺼냈다.

“오늘은 차 매니저님 먼저 들어가세요.”

“볼일 있으십니까? 저는 괜찮으니 목적지를 말해주시면 거기까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볼일은 저쪽에 있으니 말이에요.”

“무슨...?”

도경이 가리키는 방향에 [러블리] 멤버들이 서있는 것을 본 차도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경이 무슨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러 애썼다.

혹시나 이성 관계를 가지려 한다거나 도경이 경솔한 행동을 하려 한다면 그를 말려야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정말 저를 어떻게 보는 거예요? 차 매니저님이 상상하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니 걱정마세요.”

“정말입니까?”

“제가 이런 거 가지고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니까 좀 믿으세요.”

“그럼... 왜?”

그의 물음에 도경은 진한 웃음기를 머금으며 러블리 멤버들을 지켜보았다.

“오늘 투잡 좀 뛰려고요.”

“네? 투잡이요? 설마...?”

“그 생각이 맞으실 걸요? 그럼 조심히 먼저 들어가세요.”

“아...”

도경의 말에 차도한은 도경의 숨겨진 정체를 떠올리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도경은 이미 들뜬 기색으로 [러블리] 멤버들에게 다가가 용건을 꺼내고 있었다.

“곤란한걸...”

[JY]에 드림걸즈의 앨범을 제작하고 곧바로 다른 걸 그룹에게 가서 작곡하는 것은 별로 보기 좋지 못한 행동인 것은 틀림없었지만, 차도한에게 도경의 작곡가 활동을 막을 권한은 없었다.

애초에 도경이 [JY]와 계약 당시 은하수 멤버들에게 곡을 주기위해 작곡활동에 대한 자유권을 도경이 이미 확보해 놓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저쪽 매니저에게 듣기로 [러블리] 데뷔 날짜를 5월 초로 보고 있다고 하던데 잘하면 드림걸즈와 겹칠 수도 있단 말이지...!”

문득 이곳에 와서 매니저들과 이야기를 나눠 입수했던 정보를 떠올리며 [드림걸즈]와 [러블리]의 활동 기간이 겹칠 수도 있다는 가정을 상기한 그는 머릿속에 한 가지의 혹시나 싶은 시나리오 상황을 하나 떠올리고는 이내 머릿속에 지웠다.

피식.

“설마 겹치겠어? 겹쳐도 사장님이 엄연히 알아서 잘 하겠지.”

회사에서 드림걸즈와 함께 달콤함 꿈을 꾸고 있던 박진용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쉰 차도한은 근처 담배 휴게실에 가서 담배를 태우며 잡념을 지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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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러블리]와 함께한 아이돌 현장 1화가 방송에 전파 된 지 4주가 지나고 첫 방송 부터 확실하게 3%대의 높은 시청률을 찍고 시작한 아이돌 현장은 매주 화제가 되는 방송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돌 현장 4화차에 시청률 5.5% 돌파!! 4주 만에 쾌속 상승.]

[음원 차트를 변화시키는 케이블 방송의 탄생.]

[더 이상은 신인으로 치부할 수 없다. 까도 까도 드러나는 박도경의 능력!]

[매주 화제를 일으키는 신인 박도경 그의 성공 요인은?]

[박도경 단독 인터뷰.]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도경과 순진한 아이돌들이 음악으로 한데 묶여서 서로 티격대격하기도 하고 진솔하게 이야기도 나누며 노래 부르는 [아이돌 현장]은 매화마다 화제를 일으켰고 케이블 방송에서 이례적으로 음원 차트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방송이란 수식어까지 듣고 있었다.

“흐아암.”

그런 뜨거운 화제의 방송의 MC를 맡고 있는 도경은 현재 어울리지 않게도 순탄대로를 걸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빠 이리와 봐.”

“나 피곤한데... 그냥 자면 안돼?”

“이리 당장 안와!?”

“아! M/V를 공개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데뷔 기사가지고 이래야겠냐?”

매주 화제를 몰고 오는 당사자인 도경은 현재. 소희의 등쌀에 밀려 늦은 밤잠도 자지 못 하고 옴짝달싹 컴퓨터 모니터 앞에 묶여있어야 했다.

이유는 오늘 정오에 도경과 드림걸즈.

그러니까 화제의 작곡가 카일이란 화려한 라인업을 강조하는 드림걸즈의 데뷔기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12시다!”

“그래그래. 얼른 보고 자자.”

“칫. 계속 옆에서 초 칠거야 오빠? 애들한테 이른다?”

“...잘못했어”

“흥. 진작 그럴 것이지 조심해 애들이 오빠 벼르고 있으니까 말이야.”

“응...”

따다다닥.

하나뿐인 동생의 데뷔와 자신의 이름이 걸린 일인데도 무심한 오빠를 보며 혀를 찬 소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자기 그룹의 이름을 치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오, 떴다! 어...?”

“응? 왜 그래?”

자신들의 사진과 함께 기사가 달린 것을 기뻐하는 것도 잠시 소희는 이상한 제목의 기사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도경이 모니터에 떠있는 기사에 시선을 두다가 난색을 표하였다.

[대형기획사와 중소형 기획사의 회심의 비밀병기 과연 위력은?]

[드림걸즈 VS 러블리 대결의 마지막 승자는?]

[화제의 작곡가 카일 과연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한 작곡가의 이름 아래에서 태어난 두 걸 그룹의 골육상쟁.]

“아...”

Rrrr! Rrrr! Rrrr!

제목만 보기만 해도 긍정적인 기사가 아님을 안 도경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동시에 그의 주변은 소란 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쿠오오!

“야! 박도경 이게 도대체 뭐야!? 러블리 선배님들한테 정말 작곡해줬어?”

“아, 그게...”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수라가 강림한 소희의 고함소리가 도경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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