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정현의 대성통곡에 잠시 촬영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녀가 진정할 시간을 주기 위해 촬영을 잠시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거,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음...”
좀 전에 도경과 드림걸즈 소녀들의 상황극을 촬영한 장면들을 훑어보고 있던 제작진들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은 배꼽 잡는 웃긴 콩트를 예상했지 연극에서나 볼 벗한 정극이 튀어나올 줄은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예?”
“어차피 이걸 자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들 모두하고 있잖아?”
“...”
“상황극에서 연기를 펼친 후기 인터뷰 영상을 따서 잘 버무리면 돼. 어차피 이 방송이 드림이들 매력을 보여주는 거니까 괜찮아. 그래도 계속 이러는 건 위험하니까 우선 나는 도경씨 랑 이야기 좀 하러 갈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걸음을 옮기는 꿈소사PD를 보면서 그와 함께 일했던 제작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헐 웬일이래요? 컨셉을 해치거나 재미없으면 통편집도 불사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말이에요.”
“그러게. 뭐 잘못 먹었나?”
자신들이 예상했던 PD의 반응에 다들 당황하고 있을 때 옆에서 조용히 눈치보고 있던 막내작가가 나지막이 입을열었다.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응?”
“아까건 분명 저희 방송 콘셉트와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잖아요. 저는 시간 가는 줄 몰랐거든요. 연극이라는 거 처음 봤는데 매력 있네요. 나중에 연극 보러 놀러 다녀야겠어요. 저는 연극이 저렇게 재밌는지 처음 알았어요. 진짜로 연기하는 사람들의 연극은 얼마나재밌을 까요? 기대되네요.”
“아니... 막둥아. 저기 도경이씨와 정현이가 진짜 잘한 거야. 나도 혜화에서 연극 보러 꽤 다녔는데 저 정도로 열연하는 연극은 많이 없어.”
“네,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네 말대로 PD님이 자르지 않는 거잖니.”
“흐음. 그 말은 우리 도경오빠는 연기까지 된다는 말이잖아요. 이건 대박이야... ”
중얼.
“응? 도경 오빠? 너 혹시 박도경 팬이야?”
“네? 네...”
발그레.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던 선배 작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막내 작가를 바라보았다.
곱상하고 귀여운 얼굴을 해서 의심 없이 미소년계의 아이돌을 좋아할 줄 알았더니 이건 또 의외의 발견이었다.
“흐음 은근 취향 희귀하네...! 나는 너 곱상한 아이돌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네!? 뭐라 구요? 제가 그런 계집애 같은 애들을 좋아할 리 없잖아요?”
발끈.
“어, 어? 그랬어.”
“네!”
갑자기 발끈하며 화내는 자신의 후배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던 선배작가는 깜짝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온도 차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경이 오빠가 어디가 어때서요? 남자 중의 남자 몰라요? 도경이 오빠 은근 완소남이라고요..! 춤, 노래되지. 몸 좋지. 운동신경 좋고 유명한 작곡가에 이제는 연기까지! [JY]가 보물을 이상한데다 써서 그렇지. 도경이 오빠는 분명 제대로 뜰 거라고요.”
“어, 어... 근데 너도 네 입으로 얘기하지 않았어? 은근 완소남이라고...!”
“제가요? 아닌데요.”
“그, 그래.”
‘진짜 박도경 팬인가 보네...’
딱 잘라 단언하는 자신의 후배작가를 보며 선배작가는 그녀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정말로 필요할 때 이외에는 말을 잘 하지 않던 소심한 후배가 맞나 싶었기 때문이다.
“꽃길만 걷자 도경 오빠...! 흐흐흐.”
찰칵.
“.......”
평소 촬영장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오지 않던 막내가 왜 가져와 손에 꼭 쥐고 있었는지 밝혀지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후배를 이렇게 만든 도경을 바라보았지만, 도저히 자신의 후배가 저 정도까지 열광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참 취향 특이하네...”
자신의 후배가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 던 그녀.
하지만 그녀는 알까?
나중에는 그녀 또한 도경을 향해 입덕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
“저기 도경 씨. 잠시 이야기가 될까?”
“아...! PD님. 물론이죠.”
이재순에게 붙잡혀 땀을 뻘뻘 흘리며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도경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살았다는 기색으로 PD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를 얼른 반기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방송 때문인 거 같은데 잠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허허.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구나. 다녀오렴.”
“네. 감사합니다. PD님 가시죠.”
“응? 여기서 이야기를 해도...!”
“하하하! 아니에요 PD님. 저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아까 전 좋긴 했지만, 방송 콘셉트에는 좀 맞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다음에 저랑 상황극 할 애들하고 논의 좀 같이하시죠.”
“으응. 그래요 그럼.”
왠지 모를 박력에 꿈소사 PD는 도경의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도경의 뒤 따라 걸음을 옮겼고 도경은 남몰래 식은땀을 흘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늙은 생강이 무섭 다니까. 쓸데없이 날카로워.’
(연기 경험이 많은 듯한데? 어디서 그렇게 배웠나.)
(감정을 잡는 호흡법이 특이하더군.)
(발성을 평소에 훈련을 하나? 연극보다는 뮤지컬에 가까운 발성이었는데)
(감정처리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질문 하나하나가 말하기 난감한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애초에 자신이 연기 경험이 있다는 전제로 묻는 이재순의 질문들은 도경으로서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도경이 상대의 노래를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유추하고 알아가는 것처럼 이재순 또한 도경의 연기를 보고 박도경이란 인물을 알아가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대충 이야기를 지어내 넘어가겠지만, 다른 인물도 아니고 평생을 연기에 받친 이재순이다.
그의 질문에 신중히 대답하느라 도경은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도경이 할 수 있는 말은 스스로 독학으로 연기를 터득하고 남몰래 연습했다고 거짓말을 한 게 최선 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내 말을 그리 믿어주는 눈치가 아니었지.’
자신의 그런 대답에 썩 믿지 않는 눈치를 보인 이재순을 떠올린 도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대로 어떻게 말하겠어? 굶기 싫어서, 구걸하기 위해서 배웠다고 말이야.”
자신의 유랑단의 생활을 잠깐 회상한 도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점점 더 알고 싶어지는구나.”
이재순은 PD와 걸어가는 도경을 보며 더욱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면서 눈빛을 빛내었다.
“대체 그런 연기를 어디서 배웠는지 말이야.”
캐릭터를 넘어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려 들었던 도경의 연기는 매우 신선했다.
세련된 것도 테크닉적인 기술이 매우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그에게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려 드는 원초적인 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
상념에 빠졌던 이재순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
“그럼 다시 촬영 재개하겠습니다.”
[하나 , 둘!]
탁!
슬레이트를 치는 소리와 카메라의 전원 램프에 붉은빛이 들어왔고 도경은 웃음 지으며 아직도 눈이 벌게진 정현을 향해 대사를 쳤다.
“야. 울보야 뭘 잘했다고 울었어? 너 때문에 예능 노잼 됐잖아.”
“왜 저 때문이네요? 오빠야말로 누가 그런 연기 하래요? 막 가정사 가지고 치사하게 사람 서럽게 만들고 씨이..!”
“연기가 그런 거지! 어어..! 야 쟤 또 울라고 하네. 야 나 그러다 대역죄인 된다고 그만 울어! 그리고 너 걸 크러쉬잖아. 컨셉 안 지켜?”
“히잉...”
그 말에 정현은 인상을 찌푸리다 자신의 옆에 있는 소희의 품속에 얼굴을 푹 박으며 도경을 향해 고갤 돌렸다.
“뭔데? 재? 왜 갑자기 여자 여자 한데?”
“오빠가 뭘 알아? 원래 정현이가 우리 멤버들 중 가장 여성 스럽거든?”
“아... 몰라. 그냥 너희들 팬 관리나 잘해. 너희들 팬 좀 무섭던데...”
“시른데? 완전 시른데 와하하하!”-하루
폴짝폴짝!
도경의 울상에 갑자기 뜬금포로 일본인 멤버 하루가 도경의 앞으로 나와 방방 뜨며 그를 향해 나사 풀린 듯 웃었다.
버엉.
“뭐, 뭐야? 쟤는 또 무섭게 왜 그래? 너희들 나 놀카케 하려고 뭐 짰어?”
“아, 아니. 저기 하루야...?”
갑작스러운 하루의 돌발행동에 드림걸즈 멤버들과 도경마저 벙쪄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하루는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렸다.
“꺄하하하! 왜 이리 갑자기 웃기지?”
‘어린이 배역 맡더니 메소드 연기하나?’
갸웃.
“쟤 좀 위험한데...”
도경은 자신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차원 소녀 하루를 보며 도경은 왠지 앞으로 있을 상황극이 어려울 거라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예감은 불행이도 그대로 이루어 진다.
---
“까아악~! 까악~!”-다연
“꺄하하하하!”-하루
“여보 애들 좀 어떻게 해봐!!”
“몰라요! 저 지금 나가기 전에 식사 준비하느라 바쁜 거 안 보여요?”
“여보... 오늘 안 나가면 안 돼?”
“안돼요. 나도 오랜만에 밖에 공기 좀 마셔야죠. 오늘은 당신이 애들 좀 돌 봐요.”
“아...”
TV와 소파, 그리고 그 중간에 깔려있는 카펫에서 날뛰고 있는 다연과 하루를 보면서 도경은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거 일 났다. 애들이 제정신이 아니잖아...!’
#2. [평범한 가정집의 주말 풍경]
휴일에 느긋하게 쉬고 싶은 도경(아빠)이지만 오랜만에 외출하는 나현(엄마) 슬프게도 두 아이들(다연,하루)를 돌봐야 한다.
도경 VS 드림걸즈(C.ver)
미션: 육아를 훌륭하게 소화하라! (도경) VS 도경의 정신을 빼놓아라!(드림걸즈)
도경은 두려웠다.
지금 상황극에 주어진 대사가 끝이 나려고 하고 있었다.
‘작정하고 짰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이들의 배역을 맡은 다연과 하루를 보면서 도경은 암담해진 심정이었다.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지 저건 애들이 아니라 짐승 그 자체였다.
이상한 춤을 추면서 까마귀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다연과 바닥을 뱅글뱅글 구르면서 웃음소리를 터트리는 하루까지 이 두 소녀의 정신상태가 의심될 정도였다.
‘이 녀석들 너무 즐기고 있잖아?’
[똘기와 흥.]
다연과 하루가 보여주는 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아이라는 배역을 빌려서 자신들의 욕구를 마음껏 해방하고 있는 것이었다.
꿀걱.
아무리 도경이라도 연기를 할 생각이 없는 애들에게 상황극을 할 요령은 없었다.
“식사 다 됐다. 여보. 그럼 나갔다 올게요. 애들 밥 먹이는 거 잊지 말아요.”
번뜩!
“자, 잠깐!”
나현의 대사가 즉흥 상황극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도경은 서둘러 나현을 붙잡았다.
덥석!
풀썩.
“꺄악!”
지나가려던 자신을 붙잡아 세워 소파로 이끈 도경의 손길에 나현은 살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도경의 꿀 떨어지는 눈을 마주하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보 안 가면 안 될까? 나 여보랑 떨어져 있기 싫어.”
그윽.
“아...”
‘저건 연기야! 연기... 그러니까 정신 차려야...!’
‘어허! 그렇게 안 되지.’
정말로 진심 어린 애정으로 가득 차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도경의 눈빛에 나현의 여심이 맹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부지불식간에 멜로드라마에 있을 벗한 달콤한 상황에 처한 나현은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이를 눈치챈 도경은 이를 놔두지 않았다.
꾸욱.
“나현아.”
‘나현아!?’
콰쾅!
“오늘은 나랑 있자. 응? 그럴 거지?”
두근.
“......!”
화아아아악!
손을 꾹 잡고 아래에서 위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자신의 이름을 속삭이는 도경의 행동에 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응?”
“...”
두근두근.
장난만 치고 철없던 도경이 저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이름을 속삭이며 모성애를 자극하는 행동을 보이다니 믿을 수 없으면서도 생각 이상의 파괴력에 나현의 여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후후후! 완벽해 넘어왔어! 나가려는 나현만 붙잡으면 게임 끝이지. 상황극은 이대로 내 승리...!’
겁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나현의 감정을 느끼며 도경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기지에 감탄한 한편 이번 상황극은 낙승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다연아 엄마 아빠 뽀뽀한다!”
와장창창!
“!?”
“정말? 언니 그럼 우리 동생 생기는 거야?”
“응!”
화아악!
뻘떡!
“무, 무, 무, 무슨! 남사스럽게...!”
자신이 만들어놓은 무드를 단박에 박살 내는 하루를 바라본 도경은 신음성을 흘렸고 나현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도경의 손을 뿌리치며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밖으로 뛰쳐나갔다.
타다다닥!
“아...”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심정이 이러할까?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도망간 나현을 바라본 도경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툭툭!
“응?”
“헤헤헤. 놀자 아빠!”-하루
오싹
‘천연이가...? 어떻게 그 타이밍에 끼어 든거지?’
“놀아줘요! 까악 까악!”-다연
자신의 옷 소매를 당기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하루와 그 뒤에 두 팔을 펼치고 또다시 이상한 춤을 추는 까마귀 소리를 내는 다연을 보며 도경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앞으로 시작 될 즉흥 상황극을 두고 이 소악마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암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즉흥 상황극은 파국으로 맞이한다.
우당탕!
“그냥 처먹어 이 자식들아!!!! 넌 그 춤 그만 춰! 미쳐버릴 거 같아! 어디서 그런 거지 같은 춤을 배워서! 비행기? 그래 비행기 제대로 태워 주마!”
휘이익.
“꺄아아악!”
하루와 다연의 정신 나간 짓에 결국 이성을 잃은 도경은 폭주하며 하루와 다연을 번쩍 들어 올려 소파로 집어 던진 것으로 상황극은 도경의 패배로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내, 내가졌어...”
부들부들.
1대1
정극으로 한 방 먹이고 콩트로 한 방 맞은 도경의 얼굴에는 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를 본 드림걸즈 멤버들이 하나둘씩 도경으로 다가와 놀리기 시작했다.
“으히히히”-채연
“연기 천재라 말하던 사람 어디 갔나요? 도경 오빠 괜찮아요?”-시호
“바보라 한 사람이 바보다! 바보 바보! 앗, 하나는 바보 아니다.”-하나
“쌤통이다요.”-팡웨이
“풋.”-나미
패자를 조롱하는 그녀들의 말에 도경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소리 질렀다.
“야! 이젠 진짜 안 봐줘. 다음 애들 들어와!”
“후회하실 텐데...”
“후회는 무슨! 한국어도 못하는 애들한테 질 리 없잖아 어서 무대 위로 올라와!”
도경의 주도하에 드림걸즈와 도경의 세번 째 즉흥 상황극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도경은 자신의 입을 두드려 패고 싶은 심정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3 두 딸(나미,팡웨이)를 자신의 아내로 달라는 터무니없는 사위(도경)에 이를 반대하는 시부모(하나,시호)
도경 VS 드림걸즈(S.ver)
미션: 자신의 사랑을 허락을 받아라. VS 도경의 사랑을 저지하라.
쿠웅!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일본어 할 줄 안다며! 일본어로 말해라. 이 바보 녀석!”(일본어)
즉흥 상황극을 알리는 자신의 대사에 곧바로 치고 나오는 하나는 대사를 내뱉으며 컵을 도경의 등에 내던졌다.
퍼억!
“......”
평소 떠듬떠듬 말하는 바보 같은 모습은 찾을 수 없는 박력있는 하나의 모습도 놀라웠지만, 도경은 고개를 숙인 채로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었다.
‘일본어? 지금... 일본어로 대사를 친 거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생각에 도경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양옆에 있던 나미와 팡웨이를 바라보았다.
씨익.
“왜 그래요. 자기?”-나미
“당신? 무슨 일이야?”-팡웨이
도경의 조심스러운 눈빛에 잘 웃지 않던 나미와 팡웨이가 고소를 짓기 시작하더니 도경을 향해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대사를 쳤는데 이번에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들려온다.
“.......”
‘이... 이 자식들이...!’
부들부들.
한국어를 못한다고 놀렸는데 설마 진짜로 상황극에 한국어를 안 할 줄이야 상상도 못한 방법이었다.
“아버님은 일어를 하셔서 나미가 일어를 한다 치고 팡웨이는 중국어를 하니 어머님은 중국인이십니까!?”
“아닐세!!!”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어머니!?”
당황도 잠시 서둘러 드림걸즈가 준비해온 유일한 설정의 틈을 찾아낸 도경은 의기양양하게 소리를 질렀고 유일하게 한국인 출신인 시호는 도경의 말에 당당히 선언한다.
“팡웨이는 입양아네!”
빠직.
푸하하하.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선언하는 시호의 말에 도경의 얼굴이 구겨지며 자리에 벌떡 일어나 소리 질렀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 자식들아 막장이냐!!! PD님 이건 아니죠!”
아하하하!
도경의 외침에 즉흥 상황극은 웃음바다 되며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고 이내 형평성의 문제를 언급하는 도경의 의견에 모두들 한국어로 상황극을 진행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미 말릴 대로 말린 도경은 페이스를 잃고 탈곡기에 털린 것처럼 패배를 맞이한다.
“꺄하하! 이겼다.”
“크흑...! 이런 법이 어딨어?”
“쯧쯧. 그러게 왜 애들보고 한국어를 못한다고 놀린게야.”
“선생님이죠? 그런 방법을 가르쳐 준 게!?”
“허허허허.”
대사를 치면 불리한 것들은 외국인 설정으로 못 알아듣는 척 자신의 대사를 씹어 먹는 그녀들의 행동을 떠올리며 도경은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런 고난이도의 꼼수를 가르친 사람은 자신의 앞에 서있는 이재순 그밖에 없을 거라 도경은 확신했다.
“그나저나 애들이 벌써부터 도경이 네 벌칙을 무엇으로 할지 상의 중이더구나.”
“흥! 누구 마음대로요?”
“호오? 그럼 연기로 나랑 상대 한번 해보려고?”
“윽...”
눈빛을 빛내는 이재순의 눈빛에 도경이 아차 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봐주시면 안 돼요?”
“글쎄다.”
“아, 선생님! 정말 이러 시기에요?”
“하하하하!”
도경의 외침에 오랜만에 힘차게 웃는 이재순은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한 번 재미나게 연기해보자 꾸나.”
“......”
수십 년 연기 인생을 매진한 거성의 선어에 도경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열의에 그가 전혀 봐줄 생각이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힐끔.
“이거, 나 뭔가 지금 위기에 빠진 거야?”
화르륵!
뒤에서 자신을 보면서 무언가를 꾸미며 음흉하게 웃고 있는 10명의 소녀들과 앞에선 자신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재순에 도경은 오랜만에 자신이 몰렸다는 것을 자각하며 오랜만에 느끼는 위기감에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요. 어디 한번 재미나게 연기해 보아요!”
“허허허. 그래그래. 그거 기대가 되는 구나.”
위기에서 불타오르는 남자 그것이 박도경 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