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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34화 (134/357)

134화

마지막 상황극을 두고 도경은 의아한 시선으로 제작진을 향해 물었다.

“네? 먼저 연기를 하신다고요?”

“네네. 무슨 생각이 있으신지 살짝 상황극 설정의 변화를 주고 싶다고 하셔 서요. 물론 도경 씨가 괜찮다는 전제하에 진행됩니다.”

“흐음... 뭐 이번에는 대사도 없는 상황극인데 저는 상관없긴 한데...”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그럼 이재순 선생님이 먼저 연기를 펼치신 후에 도경 씨가 들어와서 상황극을 이어가면 될 겁니다.”

“네...”

‘무슨 생각이시지? 불안한데...’

도경은 이번 상황극의 설정을 떠올리며 무대 위로 먼저 올라서는 이재순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

저벅저벅.

끼익. 끼익.

“.......”

이재순은 무대 중앙에 올라서서 모두의 시선을 맞이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드림걸즈 소녀들과 도경 군이 연기를 잘해줬습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워 답례로 원래 상황극에 조금 변화를 줘서 연기에 힘 좀 줘서 펼쳐보려고 합니다. 저기 도경군이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에요.”

“어떻긴요! 그냥 원래대로 해주시면 안 돼요? 선생님이 연기에 힘주시면 저는 어떡하라는 거예요? 봐주세요!”

하하하하!

꺄하하.

도경의 외침에 객석에 앉았던 드림걸즈와 제작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연기 인생의 끝판왕인 이재순이 힘을 줘서 연기한다니 도경의 심정이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웃음도 잠시 이재순의 말에 모두가 묘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허허허. 저렇게 앓는 소리를 해도 도경이 너 때문에 이번 연기를 펼치는 거란다.”

“네?”

“이 노인네의 연기에 박도경이란 사람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개인적으로 많이 기대가 되서 말이다. 허허허.”

“.......”

“그래 노래로 치면 세레나데가 되겠구나. 네가 답가를 ”

이재순이 말한 내용은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줄 연기가 단순히 고마움의 표시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리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극장 안에 있었지만, 연기를 보여주는 이유는 오로지 도경 하나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근.

“음. 선생님. 조금 분위기가 이상한데?”-정현

“세레나데? 지금 선생님이 오빠한테 연기를 바친다는 거야?”-소희

“헐... 도경이 오빠 어떡합니까?”-다연

“대박.”-채연

“도경 오빠 괜찮으려니?”-시호.

객석 맨 앞에서 앉아있던 도경은 뒤에서 드림걸즈의 수군거리는 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무대 위에 올라서 있는 이재순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정말로... 진심으로 하실 생각이신건가?’

호기롭게 같이 연기를 섞어보자 얘기를 했지만, 이재순이 저 정도로 열의를 가지고 자신과 연기를 부딪쳐 올 생각일 줄은 조금도 상상도 못했다.

예능에서 자신보다 어리고 어린 아이들 앞에서 연기자도 뭣도 아닌 자신에게 진지하게 연기를 펼치려 드는 이재순의 행동은 도경이라도 당혹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허허허. 그럼 연기를 시작하지.”

번뜩.

도경의 두 눈을 마주하는 이재순의 눈이 활처럼 휘어가며 도경을 응시하였다.

---

‘후후후. 놀라는 표정이 보기 좋구나.’

도경의 표정을 발견한 이재순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많이 참아왔던 만큼 도경이 당황하는 모습에 속에서 묘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럼 시작해 볼까?’

#4 잠을 자는 아버지(이재순)를 깨우려는 아들(도경).

단순한 설정이긴 하지만 이재순은 이 설정을 크게 비틀어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에 대한 여파는 도경이 감당해야 했지만, 그는 도경의 양파같은 능력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면 이것만큼 확실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스윽.

저벅저벅.

“...”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이재순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확히 뭐라 할 수 없었지만, 스위치가 켜지듯 이재순이 집중하며 연기에 몰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터벅터벅.

느릿했던 발걸음은 어느새 무거운 발걸음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곱게 펴진 등은 어느새 어정쩡하게 구부정해지기 시작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변태하듯 천천히 자연스레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는 그 모습에 모두들 신경을 곤두세웠다.

꿀꺽.

본능적으로 무언가 터져 나올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계속 소름 돋는다.”-나현

“이게 언니한테 말로만 듣던 배우들의 카리스마 같은 거구나...”-정현.

“어... 왜 이리 가슴이 턱 막히지?”-하루

오싹.

TV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미지의 감각에 예민한 몇몇은 이재순의 연기에 반응을 보여 왔고 맨 앞에서 이재순의 연기를 보고 있는 도경은 그의 연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게 대배우.’

꾸우욱.

의자에 있는 손잡이를 잡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대단해...!’

걷는 거 하나뿐인데 온몸으로 자신의 정보를 전달해 오려고 들었다.

감각이 예민한 도경은 그 수많은 정보의 해일 속에 휘말려 이재순이 전해오는 캐릭터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절망했다.’

구부정한 등은 이재순이 살아왔던 인생을 말해주었고 무겁다 못해 늪에 빠진 것 같은 그의 발걸음은 그가 현재 매우 힘들어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갈 곳을 잃어 허공을 먹먹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그가 현 상태에 버티지 못할 것을 예견했다.

털썩!

“어떻게... 네가 왜...!? 네가 왜 뇌종양이야? 왜 네가 죽을병에 걸린 거니 도경아. 이건 말이 안 되잖니? 응?”

무대의 맨 앞에 걸터앉은 이재순의 얼굴이 인상이 찌푸려지기 시작하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사를 이어나갔다. 그의 앞에 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보였지만 이재순의 시야에는 그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술렁술렁.

“도경이 오빠가 뇌종양?”

“죽어...?”

“와.. 투명한 Tv보는 느낌이다. 기분 이상해.”

연기를 펼치는 배우와 객석에 앉은 관객과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 장소 안에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죽지마!!!! 왜 네가 죽어! 도경아...!?”

쩌렁쩌렁!!

깜짝!

찌릿찌릿.

아무런 전조 없이 소극장을 가득 채우는 한 아버지의 절규에 모두가 등골이 따가울 정도로 소름을 느끼며 머릿속이 새하얗게 마비 되어갔다.

“도경아...! 응? 도경아...! 네가 어떻게...! 끄으으으......!”

퍼억! 퍼억! 퍼억!

“죽긴 왜 죽어!? 죽지마아아!!! 죽긴 왜 죽어~! 어흐흐.”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후려치면서 도경의 이름을 부르며 울분과 절규를 토해내는 압도되는 이재순의 연기는 지독한 상처를 입은 아버지 그 자체였다.

그의 절규는 모두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이재순은 자신의 식은 눈물을 닦아 내었다.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고 잠잠해진 고요한 시간이 다가왔지만, 이재순의 연기를 보는 이들은 모두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꿀꺽 꿀걱.

술을 마시는 것을 무언극(마임)으로 표현하는 이재순의 행동 하나하나가 위태위태하게 느껴져서 였다.

“아마도 선생님이 무언극을 하는 것조차도 인식조차도 못하고 있겠지...”

허공에 술병을 움켜쥐는 손동작과 술을 털어 넣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목울대를 움직이며 수준 높은 기교의 동작들은 아마도 관객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표현보다는 그가 저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에 가슴이 쥐어짜 쥐고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TV로만 봐서 몰랐는데 배우라는 족속들은 다 저런 거였나...?”

자신처럼 이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완벽하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구현해 내는 이재순의 모습은 계속 봐도 질리지 않았다.

‘파동마저 다르게 느껴진다. 정말 대단해...’

감정의 파동을 형질마저 필요에 의해 바꾸는 그의 기예와 연기력에 도경은 감탄하고 또 감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재순은 지금 흉내 내기를 넘어서 다른 사람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젠 클라이맥스인가?”

이재순에게 휘몰아치는 감정을 느끼며 도경은 이재순의 연기가 끝이 다가옴을 알았다.

휙!

꿀꺽!

“아... 설마!?”

지독하게 비애에 젖은 표정으로 두 손으로 무언가를 까면서 조그마한 물체를 천천히 손안에 모으는 시늉을 하는 그 무언극에 모두들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이재순의 행동을 말리고 싶어 했지만 이내 손에 모은 것들을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고 소주를 거침없이 꿀꺽꿀꺽 삼키는 그 모습에 안타까운 단말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 먹었어...!”

“진짜 자살하는 거야?”

“안 돼... 어떻게!”

아무런 도구와 물건이 없음에도 사람들은 이재순이 현재 음독자살을 시도한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연기라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정말로 이재순이 자살을 시도한 것을 선택한 표정이었다.

스으윽!

휘청! 휘청!

약을 삼킨 다음 하늘을 쓱 한 번 쳐다본 이재순은 천천히 자리에 일어나 몸을 심하게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무대 위에 이부자리가 놓여 진 곳.

쿵!

부스럭부스럭.

술과 약에 크게 비틀거리면서도 이불 속안으로 들어가 곧게 이불을 피고 정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에 모두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상황극 설정상 평범한 잠자리였을 이부자리가 이재순 연기로 아들의 불치병에 비극적인 선택을 한 아버지의 최후를 맞이하는 잠자리로 탈바꿈 하는 순간이었다.

스읍 스읍! 후...!

스읍. 후...

스...

“......”

주르르륵.

긴 침묵 속 이불을 얌전히 덮고 있는 이재순의 숨소리가 옅어짐과 동시에 그의 감고 있는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며 그의 연기의 끝을 알렸다.

“오빠!?”

“도경오빠...”

평범한 잠자리가 음독자살이라는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결말에 모두가 넋을 넣고 있을 때 도경이 자리에 천천히 일어섰다.

“맞다 도경이 오빠 연기해야 했지...”

모두들 이재순의 연기에 정신이 팔려있다. 뒤늦게 도경이 있음을 깨닫고는 자리에 일어난 도경에게 시선을 모았다.

“저런 연기를 보고 어떻게 연기해...”-시호

“큰일 났다요....”-팡웨이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시선들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런 열연 뒤에 도경이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모두들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재순이 보여준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

‘끝내주잖아?’

씩.

두근두근.

모두의 걱정과 다르게 도경은 이재순의 연기를 보고나 전율에 온몸이 흥분으로 고조된 상태였다.

‘그런 연기를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도경은 웃음 지으며 이부자리에 누워있는 이재순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죽음마저도 재현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최대한 이환시키고 숨까지 죽이는 혼신을 다한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들어와라.’

이재순이 말했다시피 이것은 세레나데였다.

오로지 도경의 연기를 보기 위해 그만한 열연을 펼친 것이다.

‘진짜 어쩔 수 없잖아요. 이렇게 가슴에 불을 지피다니...!’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위치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원로배우가 연기자 출신도 아닌 새파란 20대의 젊은 청년의 연기를 보기 위해서 위해 저런 열연을 펼쳤는데 그 누가 안 넘어 올수 있을까?

“밥 빌어먹기 위해서,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배운 연기지만...! 그거라도 보고 싶으시다면 보여 드리겠습니다.”

도경은 자신의 연기가 그에게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남을 감동시키고 위해, 자신의 배우 혼을 위해서 연기를 갈고닦았던 이재순에게 그저 밥 빌어먹기 위해서 남을 속이고 다루기 위해서 배운 자신의 연기가 그에게 통할지 궁금한 것이다.

저벅저벅.

솔직히 전생에 뮤지컬이나 관중들을 다루기 위해 광대 짓은 해봤어도 이런 현대 시대의 정극은 도경에게 있어도 처음이나 다름없는 도전이었다.

그렇지만 도경은 이재순에게 자신의 연기를 부딪쳐 보고 싶었다.

“어디. 한 번 다시 빼앗아 보도록 할까요?”

도경은 관객들이 이재순에게 받았던 감동들을 다시 빼앗아 들려 하였다.

이재순은 마음에 들지 안 들지 모르겠지만 도경이 생각하는 연기는 감동을 주며 보여주는 것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고 마음을 빼앗는 게 연기였기 때문이다.

탁!

무대 위에 올라가는 순간 머릿속에 퓨즈가 꺼지는 감각을 맞이한 도경. 그가 눈을 감았을 땐 도경이라는 존재는 옅어지기 시작했다.

스윽. 탁!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도경은 자살한 아버지와 불치병을 가진 불쌍한 아들로서 세상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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