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40화 (140/357)

140화

2달 후.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초가을을 조금 남기고 한 드라마의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KBN] 16부작 퓨전 사극 시리즈

임꺽정(천지를 울려라!)

제작발표가 되기 전부터 소문이 자자했던 드라마의 베일이 밝혀지는 순간.

많은 기자들이 분주히 자리에 앉아 인터뷰와 질문 할 용지들을 꺼내놓고 주역 배우들의 등장을 기다린다.

“이번에도 트렌디 사극이라니... 전에 그렇게 두드려 맞고도 두려움을 모르는 건가?”

“자기 입으로 이야기했잖아 사극에 뼈를 묻겠다고.”

“그래도 저번 ‘달빛 아래’에서 가짜 사극이라고 혹평과 욕을 많이 먹었었잖아. 그런데 바로 다음 작품을 내보일 줄은 몰랐지. 천천히 준비해서 내도 될 텐데 말이야.”

수군수군.

[임꺽정] 제작 발표회에서 서로 친분이 있는 기자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32세의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극이란 어려운 소재로 연속 3연타의 대 성공을 거둔 차세대 사극작가 [정다영]에 대한 이야기로 분주하다.

“뭐, 이번에 판 거름 나겠지. 정다영 작가가 진짜인지 그저 운이 좋았던 작가인지 말이야.”

끄덕.

“하긴 사극의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항상 많은 명대사와 이슈를 가져오며 시청률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반대로 사극에 대한 고증보다는 그녀의 작품은 사극의 배경만 빌려 왔다는 혹평도 받기도 하여 아직 그녀가 진정한 사극을 다루는 작가로서는 의견이 불분명한 상태였다.

사극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로서는 매우 좋은 현상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러던 와중에 정다영이 이번 처음으로 옛 시대의 실존 인물 [임꺽정]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정하긴 한 듯해. 이번 출연자들 모두들 절묘할 정도로 섭외해왔네.”

끄덕.

“임완식 감독이 조금 꼬장꼬장 하지만 감각은 젊은 거 알잖아. 하루 이틀 드라마를 만든 사람이 아니니까.”

“일단은 배우 섭외로만 보면 성공적인 구성이야.”

연기는 믿고 맡기는 원로배우 [이재순] 과 충무로 대세 배우 [정용환].

남성 아이돌 그룹 [트리니타스] 연기자 출신 [한준우]와 이번에 발표한 앨범으로 사랑받는 걸그룹으로 등극하며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러블리]의 연기돌 [김주리].

그리고 요즘 나오는 예능마다 화제를 이끌며 연기까지 재능이 있음을 보인 [박도경].

임완식 감독이 어떤 의도로 이런 배우 진들을 섭외했는지 빤히 눈에 보일 정도였다.

연기파인 이재순과 정용환으로 드라마의 연기력 중심을 잡을 것이고 한창 인기몰이하는 아이돌의 멤버인 한준우와 김주리는 자신들의 팬덤들을 드라마에 데리고 올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도경의 존재는...

“...박도경은 홍보목적이겠지!”

“진짜 감독답지 않게 작품 외에도 치밀한 능구렁이라니까. 그나저나 조금 이상하지 않아?”

“응?”

“보통 홍보 목적으로 주연배우가 누구인지 밝히는 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잖아.”

“임완식 감독이 약간 이상한 쪽에 꽂혀 있잖아. 자기는 그게 멋이라 생각하나 보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정용환이 주연을 맡을 걸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그런가?”

갸웃.

옆에 있던 기자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보이면서도 그는 살짝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이 들었던 찌라시를 떠올렸다.

‘그렇지만 조금 이상한 소문을 들었단 말이지... 드라마 주인공이 정용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문을 말이야...’

피식.

“하긴 그럴 리 없겠지.”

꽤나 의미심장한 소문이었지만 그는 이번 임꺽정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상념을 털어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의 출연하는 배우진에서 임꺽정의 배역을 소화할 사람은 정용환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드라마에 주역들을 맡고있는 배우들을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시작 하나보군.”

단상 위에 올라온 MC의 등장과 동시에 드라마제작 발표회가 개최되었다.

[드라마에서 임꺽정의 스승이자 이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노야의 역할을 맡은 이재순 선생님 입니다.]

찰칵찰칵!

MC는 차분하게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신호를 주며 포토존으로 안내를 능숙히 하는 동시에 배우들이 맡은 배역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청석골 패거리의 참모이자 자유분방하고 재주가 많은 서림의 역할을 맡은 [트리니타스]의 한준우 씨.]

찰칵. 찰칵.

[드라마에서 임꺽정의 괄괄한 아내를 황운총의 역할을 맡은 [러블리]의 막내 김주리양.]

츠르르르!

찰칵!

MC의 안내에 분주하게 셔터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뒤에는 무언가를 빠르게 타이핑하는 기자들의 모습으로 발표회의 장소 공기가 후끈해 지기 시작한다.

“대범해야 해야 할지. 아이돌의 출신들에다 첫 사극 출연인데 비중 높은 배역을 줬잖아? 그저 단순히 팬덤과 홍보를 노린 목적으로 받은 건 아니나 본데?”

“저 둘이라면 그 정도는 괜찮지 않아? 아이돌로 보기에는 연기력은 이미 증명이 됐잖아.”

“사극하고 현대극하고 같나?”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이젠 임꺽정이 나올 차례인가?”

임꺽정의 아내인 배역이 나왔으니 이제 나와야할 사람은 드라마 주인공 임꺽정의 배역을 맡은 배우가 나올 차례였다.

[사랑스러운 김주리 양의 남편이 되어 많은 부러움을 사는 한편. 이번 드라마 주인공인 임꺽정이란 주역을 맡은 배우를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놀라지 마십시오.]

두 기자의 예상대로 MC는 드라마의 주역인 임꺽정에 대해서 언급을 꺼내기 시작하는데 무언가 태도가 의미심장했다.

그런 기자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은 MC는 그들에게 진한 미소를 보였다.

[저도 대본을 받았을 때 많이 놀랬 습니다.]

“응? 뭐지, 뭐가 있나?”

“설마... 소문대로?”

“소문?”

자신이 들었던 찌라시를 떠올리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 기자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 할 때 MC가 임꺽정의 배역을 맡은 인물의 정체를 밝힌다.

[요즘 자신의 다재다능한 재능을 과시하며 화제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죠. 그리고 이번에도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겠네요. 소개하겠습니다. [JY]이상한 신인 박도경 씨입니다.]

술렁술렁!

“박도경이 임꺽정?”

“대박. 정용환이 임꺽정이 아니라고?”

“주연을 연기 경험도 없는 초보한테 준다고?”

“이거 분명 먹히는 기사가 될 거야.”

도경이 [임꺽정]이란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았다는 발표에 제작발표회 장소는 놀라움으로 가득하기 시작하고 기자들은 서로 바삐 타이핑을 치기 시작한다.

“참내 세상사 별별 일 있는 건데 저리 놀랄 일인가? 안 그래요? 차 매니저님?”

“도경 씨가 이상한 거고 저게 일반적인 겁니다. 이상한 소리 말고 얼른 다녀오시지요.”

“네네. 다녀오겠습니다.”

“.......”

자신의 정장의 옷깃을 세운 도경은 자신감을 실어 포토존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런 도경을 보는 차도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두 눈으로 보지만 정말 믿을 수 없군.”

(봤죠? 내가 뭐랬어요? 자신 있다고 말했잖아요.)

“정말로 주인공 자리를 손에 가져올 줄이야...”

상반신을 드러내고 나온 도경의 몰골에 놀랄 새도 없이 자신이 주인공의 배역을 따왔다고 말하는 도경을 떠올리며 차도한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OST를 만들어갈 줄이야.’

나중에서 주변인을 통해 도경이 어떻게 오디션을 치러서 임꺽정을 얻었는지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옷을 찢는 열연을 펼치고 드라마의 OST를 준비했다면서 노래를 들려주며 지원자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감독에게 자신과 OST가 패키지라며 배역을 요구하는 배짱을 부리는 도경의 행동을 들었을 때 입을 너무나 벌려 턱이 빠지는 줄 알았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배역을 얻고 싶어 했을 줄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수치고 뭐고 없이 모든 걸 내던지는 도경의 행동은 다년간 매니저의 경험을 한 차도한 에게 있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항상 여유를 보이면서 세상 유유자적한 도경이 그 정도로 준비하고 필사적으로 오디션을 할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제대로 떠보도록 할까요?)

오싹.

“무서운 녀석...”

밴 안에서 상반신을 탈의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미래를 논해오는 도경의 모습에 차도한은 도경의 본질을 살짝 엿보았다.

자유롭고 유유자적했던 모습 뒤에는 사냥감을 잡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맹수가 도사리고 있음을 말이다.

“대체 너는 무얼 바라보고 있는 거냐?”

밴 안에서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어디론 가를 멀리 내다보는 도경의 눈빛을 떠올리며 차도한은 홀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꾸깃.

도경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차도한의 모습을 목격한 정용환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꾸겼다.

“왜 이리 기분이 안 좋지..?”

임꺽정이란 배역을 도경에게 빼앗긴 것보다 더욱 기분이 저조한 것을 느낀 정용환은 차도한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도경을 향해 돌렸다.

“박도경...”

화려한 셔터 속에 웃음 짓고 있는 그를 보면서 정용환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져 간다. 그가 열연을 펼치고 얻었던 남치근이란 캐릭터와 똑같은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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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셔터음이 터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도경을 보면서 기자들이 연신 감탄성은 내고 있었다.

찰칵!찰칵!

파바바밧!

“저게 박도경 이라고?”

“저렇게 잘 생겼었나?”

“드림걸즈 박소희 오빠라더니 역시 유전자가 좋긴 하구나.”

“슈트발이 장난이 아니네?”

풀 메이크업을 하고 붉은색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며 깔끔하게 2대8 가르마로 뒤로 넘긴 리젠트 머리스타일을 한 다음에 검은 정장을 입은 도경의 모습은 평소에 알려져 있던 도경의 모습이 아니었다.

“와... 저렇게 꾸미니까. 도경오빠 아닌 것 같네요.”

“허허허. 그것도 그렇고 어찌 저렇게 자연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지...”

“휘유-. 오늘도 승환이 녀석 난리를 치겠군. 크크큭.”

다들 각자의 감탄 속에 도경은 자신감에 가득 찬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Tv에서 활동적인 모습만 봐서 몰랐는데 묘한 분위기가 있네.”

“이런 자리 처음 아닌가? 보통 처음은 눈부셔서 어쩔 줄 모르는데 눈 하나 꿈적 안 하네.”

눈부신 카메라 플래시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그 태도에 카메라 셔터를 찍는 기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도경에게 빠져만 들어갔다.

‘카메라 플래시 받는 것도 꽤나 재밌네.’

환호성을 내지르는 듯한 빛의 향연에 도경은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카메라들을 쳐다보았다.

파바바바밧! 찰칵찰칵!

그와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다시 한번 플래시가 터져 나온다.

자신의 존재감을 발하는 도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 기자들의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후후후. 빛으로 마사지 받는 거 같아.’

자신의 행동에 시시각각 무의식적으로 보내오는 카메라 플래시들의 도경의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실시간으로 반응해 오는 무언의 함성이랄까?

많은 연예인과 스타들은 카메라플래시에 많은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반면 도경은 희희낙락한 얼굴로 더욱더 자신의 존재감을 빛내었다.

파바바밧 찰칵!

[자! 시간 다 됐습니다. 하하하! 역시 주인공 자리가 좋네요. 카메라 플래시 세례들이 장난 아니군요. 그래도 체력을 아껴두셔야 할 겁니다. 이번에는 드라마에서 임꺽정의 목을 조여 오는 냉정한 토포사 남치근의 역할을 맡은 정용환씨를 모실 테니까요. 정용환씨 이리 오세요.]

“쩝. 재밌었는데...”

정용환이라는 말과 동시에 도경에게 쏟아졌던 플래시들은 그를 향해 돌아가 빛을 터트렸고 도경은 이에 아쉬움을 보이며 자신에게 마련된 자리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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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타임이 끝나고 본격적인 작품에 대한 인터뷰가 시작된 시간.

임완식 감독과 정다영 작가에게 작품에 대한 질의응답이 오가기 시작되었고 역시나 질문의 주는 임꺽정과 도경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에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에게 주역을 주신 이유는?]

“줄 만했으니까 줬습니다.”

[드라마 녹화가 들어갔다고 하셨는데 진행 상태는 어느 정도입니까?]

“어린 임꺽정의 스토리가 담긴 2화는 편집이 끝났고 현재 성인연기자들과 촬영 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정다영 작가님. 작년 ‘달빛 아래’ 이후 빠르게 복귀작을 가져왔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에 대해서 말들이 많아서요. 아실 텐데요?”

[큼큼! 이번 사극에 처음으로 실존 인물을 쓰셨는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 작품들이 역사의 고증이 없다고 고증이 있는 인물을 다룬 건데요?”

[하.. 하하하.... 큼! 그렇다면 이번엔 정다영님도 벼르고 있는 작품이라는 건데 연기경험 없는 신인 박도경 씨에게 임꺽정이라는 주연을 맡겼는데 불안하지 않으신가요?]

“불안하냐고요?”

조금은 민감한 질문.

여태까지 일문일답으로 싸늘하게 대답을 하던 정다영 작가는 도경을 향해 시선을 돌려서 그를 본 후 처음으로 제작발표회에서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장담하는데 그만큼 임꺽정에 어울리는 인물은 없을 겁니다.”

[...!]

형식적인 대답을 하거나 까칠한 대답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정다영 작가의 처음 보는 모습에 기자들의 시선이 모두 도경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임완식 감독과 정다영 작가의 완고한 태도에 조금은 경직되었던 분위기를 느낀 MC는 이때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화제의 전환을 시도했다.

[하하하! 정다영 작가님의 이런 확신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요. 점점 드라마가 궁금해지는군요. 그렇다면 이번엔 현장에 뛰고 있는 배우들에게 질의응답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MC의 진행에 기자들은 눈빛을 빛내며 이 자리에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도경을 향해 시선을 보내며 손을 들어 올리기 시작한다.

휙!

“질문하겠습니다.”

그중에 한 중년 남성이 재빨리 제일 먼저 손을 들어 올렸다.

“하하하! 빠르시네요. 저쪽 제일 먼저 손든 기자분 질문받겠습니다.”

“[파란일보] 박명환 기자입니다. 도경 씨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임꺽정 배역 오디션에 정용환 씨와 박도경 씨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신인인 박도경씨가 임꺽정의 배역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일이 아녀서 조금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뒤늦게 조금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중년 기자의 말에 주변 기자들도 눈빛을 빛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에게 집중했다. 중년 기자의 말을 꺼내는 문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아이돌 현장]에 MC 자리 선정에 있어서 논란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도 [ED] 엔터테인먼트에 있는 트리니타스 최승환군이 있었는데요. 이번에도 비슷하더군요. 게다가 이번엔 [JY] 엔터테인먼트와 직접적인 악연이 있는 정용환 씨입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술렁술렁.

“.......”

중년기자가 꺼내는 발언에 발표회 안에 있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금 그가 꺼내는 말들의 의미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도경 씨에게 직접 묻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물어보세요.”

“도경 씨가 정용환씨의 연기력을 제치고 임꺽정이란 주역을 받을 만하다 생각하십니까?”

웅성웅성.

결국에는 민감한 부분을 파고드는 중년인의 물음에 몇몇의 기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저 기자 누구야? 첫 질문부터 뭘 저리 세게 때려? 분위기 이상해지게...”

“드라마 주연으로 처음 받는 질문이 저런 질문이라니 박도경도 안 됐군... 응?”

“웃고 있어?”

이번에는 도경의 반응에 기자들이 다시 한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면전에 대고 네가 주연을 받을 실력이 되느냐란 무례한 질문을 받은 도경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기자님 시시한 걸 물어보신다. 당연히 제가 정용환 선배님을 연기로 이길 리 없잖아요”

“!!!!!?”

콰쾅!

술렁술렁.

예상치 못한 도경의 폭탄 발언에 모두가 술렁이고 파란일보에서 나온 중년 기자는 먹잇감을 찾듯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지금 임꺽정 오디션에 연기력 이외의 외적인 요인이 개입한 것을 인정하신 겁니까!?”

“네.”

“도경 씨! 지금 무슨 소리를?”

웅성웅성.

도경의 이어지는 발언에 놀란 임완식 감독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의 발언에 감독으로서 자신의 커리어에 심각한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모두들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

벌떡.

여러 감정이 섞인 모두의 시선이 모여 있을 때. 도경은 웃음 지으며 마이크를 들어서 자리에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하하. 그렇다면 모두들 제가 임꺽정 배역을 얻었는지 궁금하실 거예요 그렇죠?”

저벅저벅.

슥슥

“응?”

자신의 정장 상의를 벗어 바닥에 아무렇게 던진 도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와이셔츠를 남은 왼손으로 잡았다.

“설마...!?”

찌지지직...!

옷을 벗으며 자신의 와이셔츠를 움켜쥐고 있는 도경을 보며 임완식 감독은 도경이 보일 행동을 예상하고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찌지직! 파앗!

팔랑!

“!!!!?”

“꺄악!”

도경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여자 몇몇은 비명을 질렀고 자신의 와이셔츠를 시원하게 찢어서 하늘로 날린 도경은 자신의 맨몸을 보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기자님 대답이 되었습니까?”

“네?”

“제가 임꺽정을 얻은 연기력 이외의 요인이요.”

“그게, 무슨...!?”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었지?”

도경의 행동에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있을 때 도경은 마이크를 자신의 입가에 대고 미소를 지으며 기행을 이어나간다.

“제가 임꺽정의 배역을 얻게 해준 일등공신. 제가 작곡 작사한 임꺽정의 OST [천지를 울려라] 시원하게 뽑아보겠습니다!!!”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하늘 땅 천지에 있는 모든 이들이여.]

무반주로 자신의 만든 노래를 부르는 도경은 뜨거운 눈으로 중년 기자를 향해 시선을 쏘아 보내며 열창을 쏟기 시작한다. 그 열창에 당황도 잠시 모두들 뜨거워지는 감정에 도경의 노래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인다.

[불꽃처럼 바람처럼 내 목소리를 천지를 물들인다.

나의 목소리를 들어다오. 천지의 있는 모든 이들아.]

무반주 속에 뜨거운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도경의 노래.

“아...”

기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도경이 어떻게 임꺽정의 배역을 따냈는지 이해하였다.

[천지를 울려라]

짐승 같이 잘 달련된 맨몸으로 거칠고 구슬프게 울부짖는 노래를 부르는 도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임꺽정의 현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대... 대박!”

모두가 넋을 놓고 도경의 노래를 듣고 있을 때 한 여성 기자가 이성을 부여잡고 떨리는 손으로 셔터를 누르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도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찰칵!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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