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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42화 (142/357)

142화

까딱까닥.

“.......”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도경은 밴 안에서 누워서 발을 천장 위로 까닥거리며 자신의 임꺽정 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본 안 읽으셔도 됩니까?”

“오늘은 액션 씬 이잖아요. 대사가 얼마나 되겠어요? 이미 다 외운 지 오래이니 걱정 마세요.”

“그래도..”

“괜찮다니까요.”

“......”

뒹굴뒹굴.

보통이라면 잔소리를 했을 테지만 이제는 도경이 보통이 아님을 이제는 인정한 차도한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를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 뒤척이지 마십시오. 그렇게 뒹구시면 기껏 세팅해 놓은 머리랑 의상들이 흐트러지지 않습니까.”

“세팅이라고 해봐야... 산발에다가 거적 데기인데요?”

“큼...”

그 말대로 현재 도경의 차림새는 그리 신경을 많이 써야 할 복색은 아니었다.

질끈 묶었지만 부스스한 머리와 회갈색 복장 위로 붉은 민소매는 옛날 양식의 낡은 복식이라 오히려 도경이 뒹굴수록 주름이 잡혀 더욱 자연스러운 핏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피식.

“왜 이리 안절부절못해요? 오랜만의 드라마 촬영이라 들뜬 거예요?”

뜨금.

“들뜨기는 누가 들떴다고 합니까?”

“......”

힐끔.

“그래요?”

도경의 말에 차도한은 움찔거리며 그 말에 강한 부정을 했지만, 도경은 그를 보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기 물건들은 뭐예요?”

누운 상태로 짐칸에 쌓여있는 온갖 물건들을 향하는 도경의 시선에 차 매니저가 얼굴을 붉혔다.

“워, 원래 모두들 저 정도는 합니다. 촬영이 끝나기 전까지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데 혹시나 없는 것보다는 낫지요. 나중에 분명 요긴하게 쓸 겁니다.”

드라마 중에서 여러 장소를 돌아다녀야 하는 사극 드라마 특성상 인적이 드물고 외진 곳을 많이 다녀야 하으로 차도한의 말대로 저 물건들을 미리 준비하면 요긴하게 쓰일 것은 맞지만 도경은 그래도 차도한이 들떴다는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씨익.

“주리가 있는 밴에 놀러 가봤는데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던데요?”

“큼...!”

고급 도시락, 구급 상자함, 피로 회복제, 종류별로 아이스박스에 담겨있는 음료수들과 잠옷을 시작으로 마사지와 족탕기까지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가지 온 차도한을 보며 도경이 진한 미소를 짓자 결국은 그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사실 도경의 말대로 오랜만에 맡은 드라마 촬영에 자신이 들떴던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촬영일수를 거듭하며 물건들을 추가하는 방식이지 첫 촬영에 저 정도의 물건들을 가져오진 않았기 때문이다.

“노하우입니다. 노하우. 주리씨 매니저랑 제가 경력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같을 리 없지 않습니까.”

“흐음...”

“촬영준비가 오래 걸리는군요...”

지그시.

“날씨가 좋군요......”

계속해서 느껴지는 도경의 시선에 차도한은 그답지 않게 말을 흘리며 멀리 아무것도 없는 밖의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피식.

‘진용이형 말대로 정말로 촬영현장을 좋아하는구나.’

임꺽정 오디션을 보고 나서 도경은 차도한과 정용환의 관계에 대해서 박진용에게 물었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도경은 대략적인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다.

‘상상도 못 했었지.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니 말이야.’

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좋아하고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 살았던 사람이 차도한이라는 존재라 한다.

현재는 포기했지만, 예전 차도한 열정이 넘치던 시절에 그의 목표는 자신이 스타를 키워 배우와 연기자들을 위한 소속사를 차리는 것이라 꿈이었다고 박진용은 이야기해주었었다.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차도한이라니 도경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티가 나긴 했어.’

생각해 보면 그가 얼마나 연기를 좋아하고 배우와 작품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도경이 연기를 이용해 사람을 속이려 할 때 진지하게 화를 내기도 했었고, 이재순을 보면서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존경을 표했고, 이재순과 연기를 펼치던 도경의 연기를 보고 나서부터 붉게 얼굴을 상기시키기도 하는 등 많은 동요를 보였었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사람이지...”

티를 내는 지 자신 본인조차 모를 정도로 그는 그만큼 배우와 연기자를 그리고 그들을 빛내는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자식도 바보 같은 놈이고 말이야.”

자신의 배우에게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을 한 때의 초조함과 욕심에 저버리는 선택을 한 사람을 떠올리며 도경은 쓴 미소를 지었다.

“그 얄미운 녀석은 언제 오려나?”

도경은 차도한을 저버린 어리석은 정용환을 떠올리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정신 제대로 차리는 게 좋을 거야.”

모두가 지켜보고 바라보는 앞에서 그를 괴롭혀 줄 생각에 도경은 자신의 의욕이 샘솟는 게 느껴졌다.

똑똑똑!

“도경 씨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나와 주세요.”

“네~!”

벌떡.

첫 촬영을 알리는 목소리에 도경은 누웠던 자리에 벌떡 일어나 신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나섰고 뒤이어 차도한이 도경을 향해 상기된 얼굴로 따라나섰다.

--

첫 촬영. 첫 신.

많은 사람들이 밴에서 나온 도경을 향해 시선을 던졌고 도경은 기운차게 그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도경 씨 의외로 인사성이 좋네. 이리로 와. 오늘 처음 촬영할 신에 대해서 설명해줄 게.”

“네.”

도경을 반기는 인물은 임꺽정 드라마의 액션과 스턴트를 담당할 [기파랑] 감독.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액션배우이자 스턴트맨으로 이 업계 쪽에서는 그의 명성은 매우 대단했다.

“배우들과 합은 서로들 맞춰 보았지? 어때 오늘 첫 촬영인데 자신 있어?”

“네. 자신 있습니다.”

“그래. 많이 기대하도록 하지. 우리 애들이 도경 씨 대단하다고 입에 침이 닳게 칭찬하더라고. 역시 괜히 그런 몸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봐?”

“하하하! 제가 몸으로 때우는 건 다 잘합니다.”

“그래그래. 아주 믿음직해.”

기파랑 감독은 도경을 너스레에 웃음을 띠는 한편 자신의 액션스쿨에서 도경의 실력을 칭찬했던 동료들의 말을 떠올리며 기대감이 담긴 눈빛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던데...’

다른 배우들의 액션을 지도하느라 도경의 실력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도경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은 들을 수 있었다.

액션과 합을 짜는 나날의 연속.

배우들의 액션을 가르치는 빡빡한 일과를 마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회사 차원의 회식 술자리에서 도경에 대한 감탄으로 이야기의 꽃을 피웠었기 때문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지. 녀석들이 그 정도로 감탄하는 배우가 없었는데 말이야...’

액션이나 몸을 험하게 쓰는 궂은일을 하는 스턴트맨 인만큼 그들만큼 배우에게 인색한 존재가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저질렀는지 몰라도 도경과 합을 맞춰 보았던 녀석들은 도경에게 홀딱 반한 상태여서 기파랑 감독은 매우 놀랐었다.

(감독님이 보시면 반하실 걸요?)

(천재입니다 천재!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요?)

(한 번 본 동작은 그냥 척척 따라 합니다.)

“명맥이 끊긴 아시아를 대표할 차세대 액션 배우일지도 모른 다라...”

피식.

술에 만취해서 내뱉던 자기 식구의 말에 기파랑은 피식 웃으며 도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촬영 장소로 가볼까? 오늘 첫 촬영인 만큼 힘차게 잘 부탁해 도경 씨.”

“네! 저만 믿으세요. 한 큐에 빠르게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액션스쿨 형님들 오늘 제가 제대로 푹 쉬게 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정말 자신감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너!”

스턴트맨들을 생각해 주는 도경의 말에 결국 기파랑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진지하거나 매일 날만 세우는 배우들만 상대하다 이렇게 격식 없는 녀석을 만나니 유쾌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

부스럭.

차로는 들어 올 수 없는 장소인 숲에 여러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며 자리 잡기 시작한다.

“휴우. 생각보다 꽤나 깊은 곳이었네.”

“그러게요. 그나저나 직접 촬영하니 신기하네요.”

“응 뭐가?”

“저는 드라마 처음부터 순서대로 촬영을 해 나갈 줄 알았거든요.”

드라마 촬영은 시공간이 뒤죽박죽인 혼돈의 카오스다.

TV 속에서는 순차적으로 시간과 공간이 흐르지만, 실제 촬영장에서는 직접 시나리오와 대본을 읽는 배우들조차 전체적인 스토리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카메라에 찍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로케이션 촬영과 세트 촬영 등 이쪽 저쪽 오가며 필요한 신들을 부분부분 잘라 한꺼번에 촬영하기 때문이다.

“참 그러고 보니 도경이 너 드라마 촬영이 처음이라고 했지?”

“그렇다니까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합니까? 선배님.”

“하하하! 그래도 그렇게나 연기를 잘하는데 믿겨야 말이지.”

“훗. 해 못하는 바는 아니죠. 제가 연기를 좀 잘해야 말이죠.”

“으응. 잘하는 건 맞는데 말이야... 진짜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응 뭐가요?”

호탕하게 웃음을 짓다가 떪은 감 씹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인물은 도경이 맡은 임꺽정의 절친 이봉학 역할을 맡은 배우 마성재 였다.

딱!

“너 같이 겸손이 없는 녀석은 처음이거든!”

“악! 뭐 하는 겁니까? 선배님!”

“아냐. 귀여워서.”

“귀여운 사람들 아주 잡겠습니다. 잡겠어요.”

“하하하! 엄살은...”

“엄살이라뇨...”

너털웃음을 짓는 마성재를 보며 도경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비주얼 하나 죽여준다.’

임꺽정인 자신보다 더욱 산도적 같은 외모와 격투기 선수 저리 가라 한 체격을 지닌 마성재를 보며 도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골 때리는 캐스팅이야...”

“응? 뭐라 했니?”

“하하하 아닙니다. 선배님. 아! 저기 기 감독님이 부르네요. 얼른 갈까요?”

“쩝, 그래 가자.”

“네.”

도적같이 생김새와 달리 감이 좋은 마성재를 보며 식은땀을 흘린 도경은 먼저 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이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후후.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 임꺽정 해야 했던 거 아닌지 몰라. 그나저나 조용해서 몰랐는데 정다영 작가님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게 분명해...”

마성재는 자신보다 나이가 14살 차이가 나는 큰 형님이었다. 그것도 보통 큰 형님이 아니라 누가 봐도 주눅이 들 정도로 살벌한 외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자신과 동갑친구의 배역으로 꽂아 넣는 정다영 작가의 취향과 센스에 도경은 그녀의 성격이 괴짜일 거라 확신했다.

“그래도 재밌어. 분명 마 선배님은 이번 임꺽정 조연 중에 제일 많이 뜰 게 분명해.”

처음에는 그의 비주얼에 당황했지만, 설정이 새롭게 추가된 대본과 마성재란 존재가 불러일으키는 시너지에 도경은 정다영 작가의 센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임꺽정에서 제일 독보적인 캐릭터 중 하나가 될 거야.”

씨익.

자칫 처절하고 무겁기만 할 드라마에서 이봉학 캐릭터의 활약이 기대되는 도경은 마성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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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리허설하도록 시작하겠습니다. 모두들 자리에 서주시고 두 배우님도 준비되셨죠?”

“네! 감독님.”-도경

“맡겨만 주십쇼.”-마성재

“마지막으로 소품 점검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들 각자의 위치를 잡은 배우들은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의 소품들을 꼼꼼히 확인하기 시작한다.

리허설이라고 해도 액션 장면인 만큼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안전에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도경 씨 준비 됐어요?”

“네. 사인 주시면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꽤나 고난이도의 액션신이 포함되어 있는 장면인 만큼 서로들 긴장감을 갖추며 집중하기 시작한다.

“.......”

완만하지만 지형상 꽤 높은 언덕 위에 선 도경은 심호흡을 고르며 아래를 내다보며 몸을 풀었다.

도경은 본인은 태연하게 몸을 풀고 있었지만, 관계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꿀꺽.

“아래에서 보니까 생각보다 높은데? 괜찮나?”

“몇 번이나 점검도 했고 본인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문제없을 거야.”

“아는데.. 그래도 긴장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

“쉿. 시작하시려나 보다.”

기파랑 감독이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며 모두가 숨을 죽이기 시작하고 도경은 언덕 위에 페인트로 표시 된 곳을 눈여겨보며 자세를 취하였다.

“Ready~!”

두근.

“후후후.”

모두는 걱정과 긴장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도경은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웃음 지었다.

기파랑 감독이 외치는 레디라는 소리에 마치 자신이 출발하기 전의 경주마가 된 느낌이었다.

“Action!!!!”

파아앗!

“멈추거라 이놈들아! 으하하하하!”

떨어지는 출발신호에 도경의 몸이 언덕 아래로 쏘아지기 시작한다.

쉬이이익!

숲속에 울리는 도경의 호령 소리와 함께 그의 호탕한 웃음이 촬영장소 가득 울려 멀리 펴지고 등 뒤에 매단 거대한 박도를 뽑아 든 도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임꺽정의 현신 그 자체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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