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백정은 사람 아니더냐!!?]
자신의 옷을 찢으며 일갈을 토해내는 도경의 모습이 TV 브라운관 화면을 통해 비춘다.
“꺅!”
꿀꺽.
“이야 무슨 놈의 몸이...!”
“와아... 한번 만져 보고 싶다.”
도경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도경을 감상하고 있었지만, 클로즈업되면서 다시 한번 정용환을 향해 외치는 도경의 외침에 이내 다시 드라마 속으로 빠르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나도 너와 똑같은 사람이다!!!]
[똑같다?]
[네 눈에는 이 피가 보이지 않는 것이야? 이 붉은 피가!!? 나도 너와 똑같은 색의 피를 지니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닌 뜨거운 사람이란 말이다!!!]
울컥.
“와 박도경 예능과는 완전 딴판이네...”
“진짜 연기 잘한다.”
도경의 몸을 보고 감탄하던 사람은 이어지는 도경의 열연에 또다시 감탄하며 도경이 연기하는 임꺽정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착각도 유분수지 백정 놈다운 지저분한 소리를 하는구나.]
모두가 임꺽정의 외침에 가슴이 뜨거워 져가고 있을 때 한 사람의 시리고 시린 목소리가 시청자들의 가슴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개나 소 돼지 같은 가축들도 뜨거운 피를 흘리고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어디 들어 본 소리 같지 않더냐?]
[너...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것이냐?]
피식.
[가축은 가축답게 얌전히 목을 내밀 거라.]
검에 묻은 피를 닦고는 나른한 어조로 말을 내뱉으면서 미소 짓는 남치근의 행동엔 임꺽정 같은 서민을 향한 비웃음과 냉정함이 서려있었다.
이를 깨달은 시청자들은 남치근을 향해 욕을 내뱉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현재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꺄악! 눈빛 봐.”
“내가 미쳤나? 왜 이리 섹시해 보이지?”
“와. 미친 존재감이다! 역대급 차도남이네.”
“악역 주제에 카리스마 더럽게 미쳤네. 주인공 임꺽정이 아닌건가?”
오만하고 차가운 양반의 표본을 보여주는 정용환의 남치근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고 남자들에게는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각인시키며 제대로 된 악역으로서 인정받았다.
[너희들이야말로 백정이다!]
[뭐라?]
서로의 상반된 존재감과 열연을 펼치는 도경과 정용환 두 배우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죽이기 시작하고 드라마는 이내 끝을 향해 달려간다.
[너희 윗놈들이야말로 백정 놈들이라 했다!!!]
파앗!
[짐승 같은 놈.]
휘익!
서거걱!
이글거리는 불과 모든 것을 얼릴 것 같은 차가운 서리가 부딪히고 이내 임꺽정은 남치근의 검에 몸을 베이며 피를 내뿜으며 땅에 무릎을 짚었다.
임꺽정도 지닌바 무력이 뛰어났지만 남치근에 비해서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호리호리한 몸을 지닌 것과 달리 남치근은 조선제일 검이라는 칭호를 지닌 검술에 있어서 달인의 경지에 들어선 몸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눈높이가 맞는구나.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다.]
[크윽.]
[마지막으로 가는 길 잘 기억해 두거라.]
자신의 검에 베여 무릎을 꿇은 임꺽정을 보면서 차가운 눈으로 본 정용환은 검에 묻은 피를 털면서 검을 들어 올렸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듯이 신분의 차이는 절대적인 세상의 순리이며 이 이치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퉷!]
[윽!?]
절체절명 냉정한 말을 내뱉으며 칼을 휘두르는 남치근에게 임꺽정은 피 섞인 가래침을 그의 얼굴에 내뱉으며 몸을 돌리며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서걱!
[크으윽!]
쿠당탕.
동시에 휘둘러지는 남치근의 검은 도경의 등을 길게 베며 피를 흩날렸고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며 자리에 일어난 임꺽정은 그를 향해 비웃었다.
[크크크! 꼴이 말이 아닙니다 나리.]
스윽.
[...네 녀석. 곱게 죽을 생각 말아라.]
[크크크! 누가 너한테 뒈져 준다고 하더냐? 내가 뒈지더라도 너한테는 절대 안 죽는다.]
질질질.
[하!?]
어깨를 부여잡고 절벽을 향해 뒷걸음질 치는 임꺽정의 행동을 바라본 남치근은 말없이 검을 내리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다라...]
피식.
[그 또한 재미있는 여흥이 되겠구나.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발버둥 치는 가축은 봤어도 지 고집을 못 이겨 죽음을 택하는 미려한 가축은 본 적이 없으니 말이야.]
[하하하하! 개소리를 하는구나. 비단옷을 입은 백정 놈아!]
[음?]
검집에 검을 집어넣는 남치근은 여유로운 미소를 내보이며 임꺽정의 행동을 보면서 승자의 미소를 지었지만, 임꺽정은 오히려 그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자진 따위를 한다더냐?]
[정신이 나간 것이냐? 그럼 지금 네가 하려는 행동이 살기 위함이더냐?]
[크크크! 뒈지든 말든 그건 네가 말한 그 잘난 하늘 놈이 정하겠지. 내 알 바 아니다. 다만...!]
[다만?]
[그래도 죽을 것 같지는 않구나.]
[뭐!?]
휘익.
[하하하하하-!]
[미친놈...]
호탕한 웃음을 보이며 절벽으로 몸을 날리는 임꺽정의 웃음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절벽 아래를 무심히 바라보던 남치근은 임꺽정을 향해 처음으로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으며 조용히 절벽 아래를 지켜보았다.
[토포사나리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괜찮다니요. 나리 지금 피를 흘리고 계십니다.]
찌이익!
[음?]
주르륵.
뒤늦게 남치근에게 달려온 관군 두 명이 절벽을 살피며 남치근의 안전을 살폈고 남치근이 피를 흘리는 것에 대경하며 자신의 붕대를 꺼내 그의 상처를 동요 매려 하지만 남치근이 그의 행동을 저지하며 칼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툭!
[내가 부상을 입어?]
[나리?]
[지금 너는 내가 천한 백정 놈에게 상처를 입었다 말하는 것이냐!?]
번쩍!
서거걱!
[커억! 대, 대체 이 무슨...!]
[보지 말 것을 보고 말하지 말 것을 입에 담은 네 잘못이니라.]
퍽!
털썩! 휘이이잉.
[히이익!]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동료를 베고 절벽 아래로 떨어트린 남치근의 행동에 두려움에 가득 찬 경악성을 내뱉은 관군 떨리는 눈으로 남치근을 바라보았다.
이에 남치근은 서늘한 눈빛을 토해내며 그 관군에게 말을 건네었다.
[보았느냐?]
[소, 소인은 아무것도 보지 못 했습니다.]
[허면 네 동료는 어찌 죽은 것이냐?]
덜덜덜.
[천한 백정 놈의 칼을 받지 못하고 죽은 것이 옵니다.]
철컥.
관군의 말에 남치근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다행이 너는 자신의 분수를 알아 다행이구나. 조정이 혼란스럽고 세상이 어지럽다 해서 너희들마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는 일을 저질러선 안 될 것이다. 네 동료의 죽음을 기억하고 떠올리며 항상 명심하여라.]
[예 나리...]
[이랴!]
히이이잉!
죽은 관군이 타고 온 말에 탄 남치근은 등자를 박차며 말을 몰며 이내 임꺽정이 떨어진 절벽에서 멀리 멀어진다.
[임꺽정 OST-천지를 울려라]
끝을 알리는 도경의 노랫소리가 TV속에서 울려 퍼지고 시청자들 모두는 말없이 화면에 올라오는 자막을 보면서 충격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
처절한 사투 끝에 벼랑 끝 절벽으로 몸을 날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임꺽정이나 자신의 수치를 발견한 관군을 망설임 없이 검으로 베는 남치근의 행동에 모두들 충격을 받은 것이리라.
“대박.”
“두 사람 다 존재감이 미쳤다.”
“한 치도 안 밀리네.”
먹고 먹히는 비정한 권력 싸움으로 빈번한 혼란스러운 조정 속에 피어난 남치근과 불합리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태어난 임꺽정.
드라마 내용이나 서로를 향한 열연으로만 보아도 이 둘의 관계가 지독한 숙적 관계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임꺽정 순간 시청률 15% 달성.]
뜨거움과 차가움을 겸비한 두 캐릭터의 앙상블은 단 1화 만에 성공적으로 화려한 시청률을 뽑아내었고 이러한 결과를 이끈 두 주역은 기쁨보다 서로의 연기에 더욱더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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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환아 시청률 15프로 넘었대 대박이야!”
자신들이 처음 찍은 임꺽정을 회사에서 모니터링하고 있던 정용환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매니저가 가져오는 기쁜 소식은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던 것이다.
“후...! 꼴이 영 말이 아니군. 저기 부분에 좀 더 눈빛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역시 생각대로 약하게 나왔어.”
“.......”
드라마를 모니터링한 그는 자신의 연기의 미흡한 것을 찾으며 이를 갈았다.
“운동량을 올려야겠어.”
아직은 드러나지 않지만, 도경과 원 테이크의 연기대결을 펼치는 만큼 체력소모가 생각보다 큰 것을 떠올리며 정용환은 표정을 굳혔다.
저기서 저런 눈빛 연기가 나온 것은 체력이 떨어져 지쳤던 요인 말고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벌떡.
“용환아 어디 가게?”
“사내 헬스장.”
“뭐? 지금 시각에? 지금 새벽 1시인데...”
“혼자 갈 테니 따라오지 않아도 돼.”
“어어 그래...!? 하하. 무리하지 말고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
“쯧.”
곤란한 매니저의 표정을 발견한 정용환은 혀를 차며 뒤돌아 홀로 연습실을 나왔다.
철컥.
“저게 무슨 매니저라고...!”
자기 배우가 욕심을 보이는데 난감한 표정을 짓고만 있는 매니저를 떠올리며 정용환은 이를 갈았다.
“하하하. 피곤한 성격이군. 매니저 월급이 박봉인데 뭘 그리 기대하는 건가?”
“누구?”
“하하하. 안녕하신가. [트리니타스]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차현식이라 하네.”
“차현식PD...”
뚱뚱한 중년인을 바라본 정용환의 눈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는데 그 태도가 한 식구를 만난 호의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이자가 왜 나를...!’
자신이 몸담은 ED 엔터테인먼트에서 차현식이란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정용환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활동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그가 회사 내에서 구사하는 영향력과 그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들은 적 있었기 때문이다.
“스폰 제의라면 거절합니다.”
차도한은 자신을 프로듀서라 소개하지만, 그는 절대 순수한 프로듀서가 아님을 정용환은 알았다.
뇌물은 물론 성 상납과 스폰 제의까지 다방면으로 어두운 쪽에서 활약하며 무명의 소속 아티스트들을 프로듀싱하는데 유명한 인물이 차현식이라는 존재였다.
“스폰 이라니 우리 회사에서 간판 배우를 맡고 있는 정용환에게 내가 그럴 리 없지 않은가. 내가 들리는 소문은 안 좋아도 착실하게 Give & Take를 지키는 신용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알 텐데? 허허허허! 그나저나 나에 대해서 들었을 텐데 제법 배짱 좋군.”
“이런 일은 확실히 선을 그어두는 것이 좋아서요. 그나저나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부탁할 게 있어서 왔네. 박도경이라고 알지?”
“박도경...? 그는 왜?”
차현식 PD의 검은 눈동자가 정용환을 담으며 웃음 지었다.
“우리 거래하지 않겠는가?”
“거래요?”
“그래. 거래. 알다시피 나는 Give & Take는 확실하다네. 이야기라도 한 번 들어보지 않겠는가? 거절하더라도 자네 쪽에게도 유용한 정보를 듣는 시간이 될 것은 보장하지.”
오싹.
“...유용한 정보?”
“하하. 여기선 그렇고 어디 조용한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 나누는 게 어떤가?”
끄덕.
“그러도록 하죠.”
밝은 복도가 어둠침침해지는 느낌에도 정용환은 차현식의 뒤를 따라나섰다.
차현식 그가 말한 대로 소문은 좋지 않지만 주고받는 것에서는 확실한 신용보장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옛날과 비슷한 상황이야...’
2년 전의 그 날이 떠오르는 정용환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찾아온 인물과 제안해 오는 거래.
왠지 모르게 이번에도 자신의 무언가가 크게 바뀔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정용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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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피도 눈물도 없는 건방진 놈!”
쩝쩝쩝!
“......”
“사람 베고 조정이 혼란스럽다고 탄식하는 건 무슨 심보래요? 무슨 저런 또라이 캐릭터가 있어? 그렇지 않아요? 차 매니저님?”
꿀꺽꿀꺽.
한쪽에선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를 모니터링하며 부족한 연기에 반성하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한쪽은 드라마에 푹 빠져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다.
도경은 정용환이 연기하는 남치근의 행동에 격하게 흥분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한 손엔 치킨 한 손엔 맥주. 누가 봐도 도경은 모니터링이 아닌 드라마에 푹 빠져있는 사람 그 자체였다.
“...알다시피 드라마일 뿐입니다. 그리 흥분할 이유가 있으십니까?”
“에이 저건 연기가 아니라니까요? 분명 진짜로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놈이 틀림없어요.”
“...그건 아닐 겁니다. 연기에 있어서는 항상 진심인 놈입니다.”
쩝쩝쩝.
지그시.
“경고에요.”
“......?”
“경고입니다.‘
우물우물.
“하아...”
도경은 차도한을 향해 짜게 식은 눈을 뜨며 치킨을 씹어 먹으며 그에게 뜬금없이 경고를 날렸고 차도한은 또 시작되는 도경의 기행에 결국 한숨을 내뱉으며 백기를 들었다.
“또 뭡니까?”
‘요즘 들어 이상하군. 자꾸 여자처럼 굴어.’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도경이 자꾸 여자처럼 히스테리를 부리며 틱틱 거리는 것을 느끼며 차도한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면 됐네요. 차 매니저님은 생각보다 되게 눈치 없네요...”
투덜투덜.
“하아...”
도경의 영문 모를 행동에 차도한은 한숨만 느는 것을 느끼며 도경의 행동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흘려버렸다.
‘쯧. 브로맨스 따위...!’
그런 차도한을 보며 도경은 살짝 빈정 상한 것을 느끼며 정용환을 떠올렸다.
신인인 자신에게 원 테이크 연기대결을 걸어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꾸만 자신을 향해 열연해오며 연기로 도발해 오는 그의 눈빛과 행동들이 떠오른다.
덕분에 상승작용으로 멋있는 장면들을 건져내었지만 계속해서 덤벼들어 오니 남자의 본능이 꿈틀거린다.
“내 강철 체력이 무서운지 모르고 덤벼오다니 건방진...! 흐물흐물 제대로 녹여주마. 흐흐흐!”
“......”
‘또 자신만의 세계에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나 보군.’
음흉하게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웃고 있는 도경을 보며 차도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천재라는 변명 하에 도경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헤실헤실
말은 그렇게 해도 별다른 술수 안 쓰고 정면에 와서 실력으로 붙는 정용환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도경은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며 앞으로 그가 펼칠 연기가 기대 되었다.
“으어어엉!”
“?”
깜짝!
“뭐야?”
갑자기 연습실 밖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도경과 차도한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저렇게 울만 한 사람이 있나? 신기한 일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도경과 차도한이 있는 곳은 [JY] 사옥 중에서도 정식으로 계약된 아티스트들만 들리는 곳이다. 연예인으로서 잘 나가거나 짬이 찬 존재들 이용하는 이곳에서 저렇게 애처럼 목 놓아 울만 한 사람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려나?”
철컥.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도경은 자신의 손을 쪽쪽 빨며 맥주를 들어 올린 채 밖으로 나가 울음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걸어갔다.
“괜찮다니까요. 명하 코치님. 뚝!”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나 같은 놈이 게스트로 네 파트너만 맡지 않았어도 좋은 점수 걷었을 텐데 정말 미안하다 하나야...”
“헤헤헤. 아니에요. 그래도 하나. 재밌었는걸요.”
“나는 재미보다 너한테 우승을...”
갸웃.
“응 이 목소리 익숙한데?”
걸음을 옮기자 독특한 두 남녀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걸음을 옮겼고 이내 울음소리를 낸 장본인을 발견하였다.
저벅저벅.
“켁, 역시나 명하 형이었잖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패션센스를 하고 있네. 그나저나 저기서 둘 다 뭐하는 거야?”
여자는 드림걸즈의 단순한 뇌를 지닌 일본인 멤버 하나였고 청승맞게 울고 있는 사람은 [JY] 소속댄스팀에서 안무를 짜는 유명한 안무가 신명하였다.
‘저 형은 변한 게 없구나...’
“그쪽 두 사람들 거기서 청승맞게 뭐 하고 있어요?”
“앗! 도경이? 이런 울어서 메이크업 번졌는데..!”
“어? 도경오빠?”
신명하는 도경이 K 스타 중간오디션 당시 여러 종류의 춤들을 배웠을 때 제일 많이 신세를 졌던 이로 고마우면서도 도경의 기억 속에 조심해야 할 사람으로 각인 된 특이한 인물이었다.
“아니 왜 내가 왔는데 메이크업을 고치냐고요.”
“그건 중요치 않아! 그나저나... 도경아!!”
후다다닥!
풀썩.
“윽!”
“너 잘 왔다! 우리 좀 도와줘라!”
더듬더듬.
“으드득..! 우리 명하 형. 손버릇 여전하시네. 부러지기 싫으면 이것 좀 놓고 얘기하시죠?”
꾸우욱!
온몸에 소름 돋는 감각을 느끼며 도경은 완력을 써서 그의 손목을 붙잡고 자신의 몸에 달라붙는 그의 손을 힘겹게 떨어트리는 데 성공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왜 꼴사납게 이곳에서 울고 있었어요?”
“그게... 일단은 네가 딱이야!”
풀썩.
더듬더듬.
“그러니까 뭐가 이 인간아...!”
다시 달라붙는 신명하를 보며 두 눈을 질끈 감는 도경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연습실에 괜히 나온 것을 깨달았다.
이 사람의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경이 너 여기 하나랑 춤춰보지 않을래?”
“뭐?”
“이번에 구상하고 있는 주제가 있는데 말이야 네가 나와 준다면 이번에는 분명...!”
“아, 아니...! 형 나 드라마를 촬영하고..”
“딱 이야! 너 아니면 안 돼...!”
글썽글썽.
꿀꺽.
‘분명 거절하면 그때처럼 울고불고 난리 칠 거야...’
자신의 난처한 얼굴을 보면서 눈에 눈물을 글썽이는 신명하를 보며 도경의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예전 자신에게 차여서 길거리에서 울면서 다리를 붙잡혔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형 저 몰라요? 제가 한 의리 하잖아요. 바쁘지만 제 능력 정도면 가뿐하죠. 맡겨 주세요! 하하하하!”
‘젠장! 제기랄! 멍청한 놈!’
“정말? 역시 너밖에 없다 도경아. 뽀뽀라도 해줄까?”
“아뇨...”
겉과 속이 다른 생각을 하며 도경은 옆에 있던 하나를 향해 매서운 눈초리를 뜨며 노려보았다. 엮이고 싶지 않은 골 때리는 차명하 보다 단순하고 순진해서 만만한 하나에게 도경의 원망이 쏘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꼬맹아 이게 대체 뭔 일인지 찬찬히 설명해 보지 않으렴?”
씨익.
“히끅.”
도경의 서늘한 웃음에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하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