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양홍아와 산속에서 혼인을 올린 임꺽정은 조선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가족에게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양주팔과 양홍아와 함께 귀향길을 나서 그의 고향 [청석골]로 가게 된다.
어디에서나 볼 조그마한 마을 [청석골].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들이 서로 얽히고설킬 줄은 그리고 이런 파국을 맞이할지는 임꺽정은 꿈에도 꾸지 못했으리라.
화르르륵!
[잘 타는군.]
없고 못 사는 고달픈 형편 속에서도 그래도 서로 도와가며 살아왔던 그의 고향이 현재 화마로 뒤덮여 까만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임꺽정 고향인 청석골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들여 닥쳤기 때문이다.
[이, 마귀 같은 놈 하늘이 두렵지 않으냐!]
빠드득.
[하하하! 두려우냐고 하였느냐? 두렵긴커녕 고마워서 하늘을 향해 절을 하고 싶을 따름이구나. 설마 인연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다니 정말 유쾌하기 짝이 없어.]
[뭐?]
남치근은 임꺽정이 절벽을 뛰어내리기 전에 한 말을 흘려듣지 않았고 그가 만약 살아난다면 자신의 고향인 [청석골]에 돌아올 것이란 여기고는 그 지역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임꺽정에 대해 언질 했을 뿐인데 놀랍게도 임꺽정이 사지 멀쩡히 청석골에 생환해서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남치근은 직접 [청석골]을 방문하였고 또 예기치 못한 인연에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재밌는 짓을 해줬어.]
씩.
항상 오만함과 냉정함을 겸비하던 남치근이 어울리지 않게 눈빛을 빛내며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섬뜩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질 않을 정도야.]
백정을 잡기 위해 과분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했던 남치근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실소를 흘리면서도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한 안광을 띄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남치근의 감정적인 모습에 모두가 섬뜩함을 느끼며 그와 거리를 벌렸고 임꺽정이 이를 악물며 남치근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니 빠지거라.]
[뭐?]
[아니 그렇습니까? 무(無)노야.]
[.......]
[저 백정 놈의 생환한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이곳에서 당신을 만날 줄이야...! 하늘이 저 천한 백정 놈과 저를 만나게 한 이유가 이제야 밝혀지는 듯싶군요. 여기서는 이름 없는 노인이라 하여 무(無)노야라 불리신다고 하여 불러보았는데 계속 그리 불러 드리올 까요?]
임꺽정을 무시한 남치근은 새하얀 얼굴을 붉게 상기시키며 두 눈동자를 쉴 새 없이 떨어가며 무노야라 불리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남치근이 무노야라 부르는 노인에게 지니고 감정과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치근아..!]
[예. 아버지. 다행히도 제 이름은 기억하시는군요. 서자 남치근이 인사 올리옵니다.]
깜짝.
[아, 아버지?]
남치근 입에서 뱉어지는 충격적인 말에 임꺽정과 주변 사람들은 대경하며 무노야를 향해 시선을 주었지만 무노야는 그의 말에 부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앞에 있는 남치근의 시선을 담담히 맞이하고 있었다.
[한때 저 대신 천하제일 검이라 불렸던 분이 이런 비천한 곳에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못했습니다.]
[네 말대로 한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이름 없는 무노야일 뿐...]
[그렇습니까... 남치현이 아니라 이름 없는 노인으로 살겠다. 지금 그리 말씀하시는 거지요?]
16년 넘게 보지 못했던 두 부자의 재회치고는 서늘하기 이를 때 없는 둘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죽이며 그 둘을 지켜보았다.
관군들과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앞으로의 상황에서 그 둘의 대화에 지금 이 상황이 좌지우지될 것을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깨닫고 있었다.
[지금 그 말씀은 가문을 저버리시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
화르르!
틱틱!
[네가 원한다면...]
[하...!]
선홍빛을 내뿜는 불똥이 남치근과 무노야를 스쳐 지나가고 침묵 속 긴 고심 끝에 무노야는 많은 의미가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남치근으로서 순순히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정녕... 정녕 제가 아는 그 아버지가 맞으십니까?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 없이 냉정하시고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던 사람이 지금 가문을 저버려도 상관없다 하신 겁니까?]
[그래 이제는 너의 가문이니라.]
[그걸 말이라고...!]
[남치현]
조선팔도 도적과 범죄자들의 두려움의 대상인 토포사 남치근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면서도 동경하고 닮고자 했던 이가 바로 남치현이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볼품없는 노인으로 전락한 사실은 남치근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빠드득.
[형님 때문입니까?]
움찔.
[형님이 없는 가문은 아버지에게 그렇게나 가치가 없단 말입니까?]
처음으로 남치근의 얼굴에 균열이 일며 상처받은 얼굴이 드러나고 생각을 읽기 힘들었던 담담했던 무노야의 얼굴에서도 숨길 수 없는 동요가 드러났다.
부르르.
이를 발견한 남치근의 표정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그건...!]
[됐습니다!]
스릉!
무노야가 무언가를 대답하기 전에 남치근은 그의 말을 중간에 끊고 검을 뽑아 올리며 그를 겨누었다.
[아버지는 저와 함께 가문으로 돌아가셔야 할 겁니다. 당신이 이룩하신 가문이 어떻게 번영하는지 그 두 눈으로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겁니다.]
[치근아...]
[그리고... 너희들! 남씨 가문의 치태를 지켜본 너희들은 모두...!]
[치근이 너 설마!? 아니 된다...!]
[죽어줘야겠다.]
너무나도 변한 자신의 아들에 무노야의 얼굴에 짙은 회한이 서림도 잠시 남치근의 들끓는 분노의 화살이 애꿎은 양민들을 향해 겨누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한 무노야는 대경하며 그를 말려 보려 했지만 이미 활시위는 쏘아 보내진 이후였다.
[모이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이다! 모두 치워라!]
[충!!]
화르륵!
척하면 척.
남치근의 뒤에 있던 관군들이 그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무기를 휘두르며 청석골의 사람들을 베기 시작한다.
푸욱!
[크아!]
[봉팔아~! 이 개자식들아!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갑자기 죽이려 드느냐!]
[이대로 있단 다 뒤진다. 다들 들고 일어나!]
[그래! 이젠 더 이상 못 참겠다! 개잡놈들!]
와아아아!
챙챙!
그리고 남치근의 말대로 청석골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 도적이 되어 관군들에게 반기를 들었고 그 중심에는 임꺽정의 친구들과 일행들이 있었다.
[역시 저놈이 거슬리는군.]
화마 속. 관군과 청석골 사람들의 전투가 벌어 여지고 정신없이 벌어지는 난전 속에 남치근은 맹활약을 벌이는 임꺽정 일행을 보며 눈빛을 빛냈다.
[받지 못한 빚은 받아내야겠지.]
화살을 들어 올린 남치근은 멀리서 관군들을 해치며 활로를 뚫고 있는 임꺽정을 향해 활시위를 잡아 댕긴다.
끼이이익!
[너의 역할을 다했으니 그만 가라.]
남치현을 만나게 해준 길잡이.
그의 쓰임이 다했으니 그 자신이 거두는 게 맞다 생각한 남치현은 매정히 그에게 화살을 쏘아 보냈다.
[잘 가거라.]
피흉!
손을 놓자마자 매섭게 쏘아지는 화살은 공기를 찢어가며 목표를 향해 날아간다. 화살이 쏘아진 가운데 임꺽정은 자신의 앞을 막는 관군을 뚫느라 정신이 없어 자신의 위험을 눈치채지 못 한다.
쉬이이익!
완벽히 무방비인 상태에 그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은 그를 당장이라도 뚫을 듯하였다.
[꺽정아! 안 돼!!!]
끼이익!
[음?]
모두가 정신없는 난전 속에 임꺽정의 가까운 곁에 있던 양홍아가 그에게 쏘아진 화살을 눈치채고 급하게 남치근이 쏘아낸 화살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다.
[하아...!]
퉁!
두근두근.
세상이 느려지고 난전 속의 일었던 소음은 지워 지져 가며 어느새 양홍아의 숨소리로만 가득하다.
[후읍!]
끼이이익!
드라마 속 모든 순간을 바라보던 시청자들은 양홍아가 남치근이 쏘아낸 화살을 잘 처리할 거라 믿었다. 산골짜기 속에 산을 누비며 활 하나로 사나운 맹수들을 잡은 양홍아의 활에 대한 재능을 알기 때문이다.
꿀꺽.
시청자들의 바램을 모르지 않는지 양홍아가 남치근이 쏘아 보낸 화살을 보며 집중하는 모습이 클로우즈로 잡혀 능히 해결할 거 같은 느낌을 주었다.
쿵!
[윽!]
피흉!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기분이 이러할까?
모두의 바람과 달리 양홍아가 화살을 쏘아 보내기 직전 누군가가 그녀의 몸에 부딪혀 왔고 덕분에 자세가 흔들리고만 양홍아는 옅은 신음성을 내뱉으며 활시위를 붙잡던 손을 놓았다.
쉬익!
푸우욱-!
[어!?]
느려졌던 세상은 쏘아 보낸 화살과 동시에 원래의 속도를 찾아갔고 끝내 모두가 눈을 질끈 감는 결과를 맞이한다.
[울컥!]
털썩.
자신의 가슴에 박힌 화살을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는 양홍하는 자리에 쓰러졌고 한참 앞에서 관군을 상대하던 임꺽정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는 뒤를 돌아섰다.
[홍아?]
[아...! 으!! 아...!]
[홍아야!!!!!]
타다다닥.
흰 비단옷 붉게 물든 홍아의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임꺽정은 이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절규를 토해내었다.
[아아아아아아!!!!!!]
푸슉!
얼마나 절규하고 있던지 그의 왼쪽 눈의 실핏줄이 터져 눈이 붉게 물들고 그 모든 모습을 바라보고 TV화면으로 바라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도경의 절규에 가슴이 찢어지는 감각을 맛보았다.
대사가 아닌 절규였을 뿐이지만 실제로 소중한 이를 잃은 것 같은 도경의 연기에 모두가 충격을 받으며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그의 절규를 넋 넣고 바라보았다.
임꺽정 OST-[천지를 울려라!]
그리고 멈추는 화면과 동시에 익숙한 노래가 들려오고 익숙한 자막과 광고가 TV화면을 뒤덮는다.
“아! 뭐야!!!?”
“홍아 죽어!? 죽는거야? 김주리 죽는 거야?”
“아! 언제 1주일 또 기다려!!!!”
“미쳤다. 스토리 전개를 예상치 못하겠네.”
“왜 이번에는 예고편이 없어?”
저번 주의 달달했던 임꺽정은 어디로 가고 이번에는 충격과 비정함을 안겨다 주는 한 주에 시청자들은 다음 주를 기다려야 하는 현실에 뒤늦게 다시 한번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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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28%.
임꺽정의 유소년기 시절 그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절체불명의 노인 무노야의 충격적인 정체와 가슴에 활을 맞고 쓰러진 양홍아.
그야말로 반전과 충격 그 자체인 이번 화에 시청률은 단숨에 껑충 뛰어올랐다.
“무노야가 설마 남치근의 아버지였다니... 와! 아직도 닭살이 가시지 않네.”
“주리 언니 어떻게? 오빠 정말 죽어요?”
“어. 죽는다니까 그러네. 아직 멀었지만 나중에 무노야도 죽어!”
“에!!!!”
“아!!!! 도경아 제발 스포는 하지 말라고!”
씨익.
“어. 그것도 누구한테 죽냐면!”
우당탕탕!
“하지 말라니까! 요즘 나 저 드라마 보는 낙으로 산다고!!!”
“하하하!”
또다시 시작되는 도경의 스포에 하나와 신명하가 비명을 질렀고 그에 멈추지 않고 도경은 웃음 지으며 이재순이 연기하는 무노야 남치현이 어떻게 죽는지 얘기하려 했지만.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난 신명하가 도경의 입을 막았다.
“두 사람 반응 보니까 오늘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떨는지 보이네요.”
“진짜 악취미야. 너.”
“정말로 오빠 성격 나쁘다. 그나저나 오빠가 전에 눈이 충혈 된 게 저것 때문이었구나.”
“응? 저거 CG 아니었어?”
“CG라뇨. 제 연기에 CG따위 있을 리 없잖아요. 하긴 CG처럼 완벽하긴 했죠. 훗!”
“......”
하나가 드라마를 보면서 예전 복도에서 마주쳤던 도경의 눈이 충혈되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그게 드라마 속 열연 때문에 실제 실핏줄이 터진 것을 깨달았고 이를 들은 신명하는 놀란 표정으로 도경을 보았다.
“진짜 너 정체가 뭐냐? 외계인, 외계인이지!?”
꽈악!
더듬더듬.
“아! 제발 그러지 말라니까요. 형, 이거 성추행이라고요.”
“뭐, 어때 같은 남자끼리... 악!”
“같은 남자끼리 계급장 때고 붙어 볼래요? 쯧.”
갑자기 자신을 덮치는 신명하의 손길에 도경은 익숙하다는 듯이 그의 손목을 잡고 힘주어 비틀었고 신명하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내 그의 손을 놔준 도경은 한숨을 푹 쉬며 자신의 옷 무새를 고치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에도 많이도 헤집었네. 덕분에 복장 다 흐트러졌잖아요.”
“흐흐흐. 그래도 눈앞에 임꺽정이 있는데 남자로서(?) 가만히 둘 수 없지.”
“딴지를 걸고 싶지만 걸면 제가 손해일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죠. 그리고 하나 너도 가만히 있지만 말고 명하 형 좀 말리고... 응?”
발그레.
이상하게 조용히 있던 하나를 향해 도경이 고개를 돌리자 얼굴을 붉게 물들인 하나가 보였다.
지그시.
‘저게 산도적 몸...!’
신명하가 흩트려 놓은 옷섬 안에 노출된 도경의 살결.
하나는 두 남자의 시선에도 눈치 채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도경의 속살을 대놓고 훔쳐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피식.
“쪼그마한게 벌써부터 밝히네. 인마 뚫어지겠다.”
“핫! 뭐가요?”
도경의 말에 뒤늦게 정신 차린 하나는 고개를 들어 확장된 동공 눈으로 도경을 보았고 도경은 그녀를 향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입 다물고 입에 고여있는 침이나 삼켜라.”
“네...”
꿀꺽.
“농담인데... 너도 참 나만큼 본능(?)에 솔직하구나.”
“헤헤헤. 칭찬이에요?”
농담으로 한 말인데 정말로 행하는 그녀의 행동에 도경은 할 말을 잃으며 순진무구한 하나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해맑게 도경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절레절레.
“좋을 대로 생각해.”
하나가 얼른 한국어에 능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도경은 문밖에 들려오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자리에 천천히 일어났다.
스윽.
“자 그럼 다들 일어납시다.”
“네?”
“응?”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는 도경을 향해 두 사람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내 문밖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그의 말대로 자리에서 일어날 때라는 걸 알았다.
똑똑똑!
“[스테이지(I)] 방송녹화 10분 전입니다 나와서 준비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춤꾼으로 유명한 아이돌들을 모아 댄스경연을 여는 [스테이지(I)] 드라마 임꺽정으로 늦은 밤을 달구었던 도경은 다시 한번 임꺽정으로 밤을 달굴 생각이었다.
“그럼 갈까 홍아야?”
“네? 저요? 저 말하는 거예요?”
“그럼. 내가 임꺽정이고 나와 춤추는 파트너인 네가 홍아지 그럼 누구겠어”
“에...”
“그리고 이거.”
덥석!
“윽, 뭐에요?”
도경은 자신의 손을 갑자기 잡아채 들어 올리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하나는 얼굴을 붉혔지만, 도경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 무언가를 꺼냈다.
“홍아라면 이걸 껴야지 않겠어?”
“아, 이건?”
스윽.
“그래 나의 진심이다.”
푸시시식!
드라마에서 임꺽정이 홍아에게 준 나무 가락지를 도경이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주며 속삭이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하나는 자신의 머리에 피가 쏠려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휴. 이렇게 순진해서 큰일이다. 큰일이야. 어떻게 연예계에 버티려나 모르겠네.”
콩!
“아~ 뭐에요!”
“뭐긴 서비스 좀 해준 거지.”
“아, 진짜 도경오빠 성격 나쁘다!”
“하하하!”
장난치는 맛이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를 보는 도경은 웃음을 터트렸고 촬영을 위해 대기실 문을 열어 복도로 먼저 나섰다.
하나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선다.
“같이 가요!”
“빨리 와라. 바보야.”
“하나 바보 아니거든요? 바보라고 놀리는 사람이 바보라 했어요.”
“지금 나보고 바보라고 했으니까 그러니 네가 바보지.”
“에..? 어? 그러네... 하나가...바보!?”
하나에 대한 도경의 놀림은 끝이 날줄 몰랐고 그 둘은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복도를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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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아...”
꿀꺽.
도경은 하나에게 장난치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하나의 뒤에 있던 신명하의 얼굴을 보았다면 그는 대기실 밖으로 나가며 호탕하게 웃지 못했으리라.
“킁!”
붉게 물든 얼굴과 흥분으로 확장된 코 평수의 신명하는 누가 봐도 수컷 특유의 욕정이 동한 표정이었다.
“제대로 찢어주겠어!”
의미 불명의 말을 내뱉은 그는 콧김을 세차게 내뿜으며 대기실 밖으로 나갔고 동시에 발걸음을 옮기던 도경은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을 움찔 떨며 걸음을 멈췄다.
오싹.
“뭐지?”
움찔.
“응? 왜 그래요 오빠?”
“어,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