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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48화 (148/357)

148화

“[스테이지(I)] 지금 시작합니다!!!”

자신들이 자초한 싸늘한 분위기 속. 땀을 삐질 거리며 두 MC는 진행을 이어나갔고 드디어 출연진들 무대 시작을 알렸다.

“그러게 잘 좀 진행하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을 한 MC들을 보며 도경은 혀를 차면서도 주변 출연진들을 살피었다.

게임으로 무대의 순서를 정하는 시간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 출연진들은 서로를 살피며 상대방이 어떤 무대를 할지 가늠하기 시작했다.

리허설마저도 보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친한 참가자들끼리는 서로에 대한 무대를 떠보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정말 가지각색이네. 누가 보면 코스프레 하는 줄 알겠어.”

피식.

이번 [스테이지(I)]의 무대의 주제는 [사극]

옛 시대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을 모티브로 한 이번 스테이지에서 출연진들은 다양한 복색을 살피며 도경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한국에 관련된 컨셉이 많이 없네요.”

“사극이라고 꼭 우리나라 걸 할 필요는 없으니까.”

“우와아. 다들 너무 예쁘다...!”

다양한 나라와 시대적인 컨셉들을 가져온 참가자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여성 참가자들이었다.

화려한 복색에 동서양을 넘나드는 시대적으로 미인으로 유명한 인물들을 컨셉을 준비해온 그녀들의 모습은 남성 참가자들보다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는 그런 여성 참가자들의 위용에 넋을 놓고 있었다.

“헤헤헤.”

“저게... 정신 못 차리네.”

경쟁자를 상대로 초롱초롱 선망의 눈빛을 보내는 하나의 모습에 도경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야.”

턱!

“에!?”

“이길 생각이 있는 거냐?”

꾸우욱!

“끄오우오!?”

벌떡!

갑자기 자신의 머리에서 느껴지는 말 못 할 고통에 하나는 이상한 소리를 입 밖으로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자신의 비명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서둘러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 앉았다.

“아! 뭐 하는 거예요!?”

“끄오우오가 뭐냐? 되게 웃긴 소리가 나왔네.”

“이이익..!”

탁! 탁! 탁!

“진짜 도경 오빠 성격 나쁘다.”

도경의 행동에 화를 내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은 것을 아는 하나는 분함을 풀 데가 없어 애꿎은 바닥을 두드리며 도경을 노려보았다.

“다른 참가자한테 넋 넣고 있을 때냐? 2번째로 무대순서를 뽑아놓고 아주 여유 부리네 하나 후배님?”

“그건... 헤헤헤.”

도경의 말에 하나는 서둘러 도끼눈을 풀고는 헤픈 웃음을 짓는다.

도경과 하나의 무대순서는 앞에서 두 번째. 임팩트를 줘서 기억에 남을 경연 특성상 많이 좋은 순서가 아니었다. 무대순서를 정하는 게임에서 맹활약(?)한 자신의 지은 죄를 알기에 하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많이 웃어. 웃으면 그래도 복이라도 온다고 하니 말이야.”

“네! 저 웃는 건 자신 있어요! 봐봐요.”

헤실헤실.

“......”

‘점점 멍청미가 더해지는데...? 이제는 바보라 하면 안 되겠다.’

정말 천진난만하게 헤실헤실 웃는 하나의 모습에 도경은 이젠 하나를 향해 바보라는 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진짜 바보한테 바보라고 하면 농담이 아니니까 말이야...”

그저 맹해 보여서 바보라고 놀렸던 거였는데 정말로 복잡한 정보량을 받아들이면 퓨즈 나가듯 꺼져버리는 하나의 단순한 구조의 뇌에 애도를 표할 수밖에 없는 도경이었다.

무대의 순서를 정하는 게임에서 제대로 멍청미를 선보였던 하나를 떠올리며 도경은 애잔한 눈으로 하나를 보았다.

지그시.

“응,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움찔.

“아니, 힘내라고.”

“네!!! 열심히 할게요.”

피식.

“나 원 졌다 졌어.”

“응? 뭐가요? 뭔지 모르겠지만 좋은 거죠? 왠지 그런 거 같은데...”

“그래 좋은 거야.”

“역시. 히히히.”

저리 맹해서야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까란 생각이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이처럼 순수한 하나의 모습에 도경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나의 웃음을 보면서 도경은 왠지 모르게 하나는 아이돌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활약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무대를 시작하겠습니다! [프리티걸]의 소연씨의 무대를 향해 많은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짝.

“흐아... 소연 선배님 오늘 너무 예쁘시다. 의상 봐요. 너무 섹시하지 않아요? 완전 부럽다!”

“응?”

무대 위에 올라와 포즈를 잡고 있는 소연이란 여성의 모습에 다들 감탄성을 흘리는 와중 하나는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화려한 복색에 몸매가 여실하게 드러나는 그녀의 복장에 하나의 시선을 발견한 도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맹하면서도 숫기가 없는 하나의 평상시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저런 의상을 부러워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야 너 저런 의상이 좋아?”

끄덕.

“저런 이뻐 보이는 무대의상을 입고 춤추는 건 모든 여자 댄서들의 로망인걸요?”

“으음...”

“응? 왜 그래요 오빠?”

“아니. 무대에만 신경 썼지. 조금무신경 했나 싶어서.”

다른 여성 참가자에 비해 수수한 복색인 하나의 의상에 조금은 자신이 무신경했다는 생각한 도경이 그녀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자 하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헤헤헤. 괜찮아요. 이 복장도 좋은 걸요? 홍아 복장도 예뻐요!”

“그러냐?”

“네!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수수하지만 전통복식의 문양이 새겨진 자신의 복장을 들어 올리며 웃는 하나의 모습에 도경은 고마운 마음을 품었다.

“짜식. 착해빠져서는...! 하나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 약속할게.”

“응? 약속?”

“그래. 약속할게.”

휙!

자신의 스케줄과 힘든 연습에도 군말 없이 따라주며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준 하나에게 도경은 보상을 해주기로 했다.

자신을 따라준 착한 아이에게 개인적인 선물을 해주고 싶은 것이었다.

‘여자 댄서들의 로망이라 그렇다면 간단하지.’

도경은 하나가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네 이름처럼 꽃이 되게 해줄게.”

“에?”

“비록 의상은 수수하지만 여기 있는 그 어떤 여성 참가자들보다 예쁜 꽃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아...!”

화끈.

쿵쿵! 딱!

도경의 말과 동시에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첫 번째 참가자인 소연이 화려한 춤을 추기 시작하지만 하나는 제대로 무대에 집중하지 못했다.

“꽃을 만들어 준다니 어떻게 그런 창피한 말을...”

콩닥콩닥.

‘시호 말이 맞았어.’

이번 건 대기실 때의 장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이 컸다.

쉽사리 얼굴에서 열이 식지 않는 것을 느끼며 하나는 자신의 멤버인 시호의 말을 떠올리며 그녀의 말에 동의하였다.

[도경 오빠처럼 갭 차이가 심한 사람이 사실 제일로 위험하니까. 다들 조심해.]

“그, 그래 조심해야지. 맞아! 드라마 때문일 거야.”

태연하게 훅 치고 들어오는 도경의 행동에 멋대로 설레는 자신의 심장을 드라마 탓으로 돌린 하나는 머릿속으로 울타리의 양을 떠올린다.

“야, 양 하나. 양 둘...!”

갸웃.

‘양? 쟤 또 왜 저래? 긴장했나?’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양을 세고 앉아있는 하나를 보며 도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나란 캐릭터는 참으로 독특하다 생각했다.

‘도경이 쟤는 갑자기 저렇게 훅 치고 올 때가 있다니까...’

두 사람의 동상이몽.

그리고 그것을 모두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신명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경이는 죄 많은 남자구나.”

오싹!

“뭐, 뭐에요?”

신명하의 중얼거림에 온몸에 소름이 돋은 도경은 그를 질색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신명하는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였다.

“......,”

--

짝짝짝짝!

“와아아!”

첫 번째 무대가 끝이 났다.

클레오파트라를 컨셉으로 한 [프리티 걸] 김소연의 무대가 끝이 나고 패널들과 MC들의 극찬을 하고 있을 때 도경 일행은 스태프의 신호를 받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 무대를 꾸밀 자신들의 순서이기 때문이다.

“갈까요?”

“네!”

“그래 오늘은 1등 해보자!”

각자의 각오가 서린 단말마를 뱉으며 일행은 무대 뒤로 돌아가고 있었고 이번 무대를 꾸미는 데 도움을 줄 크루들이 도경 일행을 반기었다.

“하나야. 이번엔 1등할 거야.”

“헤헤헤. 네, 힘낼게요! 아자!”

“아자!!!”

“도경 씨 우리 하나 부탁드려요!”

“하하. 맡겨만 주세요.”

“오오오! 믿음직스럽습니다.”

“하하하...”

힐끗.

‘이거 하나한테 푹 빠져 있구만.’

분명 신명하가 데려온 크루들인데 모두들 하나같이 하나에게만 관심이 집중 되어있는 것을 본 도경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하나를 바라보며 아이돌은 아이돌이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것들이 나한테는 응원 안 해 주냐?”

“됐거든요. 명하 형은 저번처럼 실수했다 울지나 마세요.”

빠직.

“시끄러워 짜식 들아. 소품이나 확인해.”

“우우우!”

“징그러운 자식들...!”

잊고 싶은 저번 무대의 실수를 지적하는 말에 신명하는 얼굴을 붉히며 크루들을 향해 소품을 검사하라며 윽박질렀고 모두들 신명하의 말에 야유를 퍼붓지만, 그의 말대로 마지막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끼익 쿵.

“명하 형. 물건들 괜찮아요. 주문대로 제대로 왔어요.”

“그래. 그럼 슬슬 준비하자.”

“네.”

상자에서 조심히 꺼내는 물건을 바라보며 신명하는 살짝 걱정스런 눈빛을 띠며 도경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일회용이라 리허설 때 못했는데 도경이 너 진짜 자신 있어?”

“걱정 말고 저만 믿어요.”

“정말 니 자신감이 부럽다. 지금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말이야.”

“은근 쫄보 라니까.”

“시끄러워 니 간댕이가 이상한 거야.”

“하하하.”

--

“......”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주해지는 뒷 무대. 준비를 맞춘 인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다림을 갖고 있었다.

도경은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고 신명하는 크루들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며 하나는 스텝을 밟으면서 자신의 춤을 점검했다.

“후우우...”

하하하하!

밖에서는 방청객들의 웃음과 시끌벅적한 소리 가운데 MC들이 도경과 하나의 무대를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번 두 번째 무대는 임꺽정 박도경과 ‘드림걸즈’ 하나의 무대입니다.]

[컨셉이 ‘깨고 싶지 않은 꿈’이라는데요.]

[과연 저희들에게 어떤 꿈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자! 그럼 두 사람이 펼치는 꿈을 보도록 할까요? 모두들 큰 박수로 두 번째 무대를 맞이해 주세요!]

와아아아!

......!

MC들의 호응에 남성 방청객은 뜨거운 함성을 내질렀고 여성방청객들 정확히 말하자면 최승환의 소녀 팬들은 싸늘한 적막을 지키며 무대를 응시하였다.

퉁!, 퉁!, 퉁!

투웅!

“!?”

수군수군.

그사이 밝았던 무대의 조명들은 하나둘 꺼지기 시작하고 도경은 어둠 속 무대 가운데에 천천히 걸어 나와 자리 잡고 서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관군들의 복장을 하고 있던 크루들이 도경을 애워 쌓는다.

우르르.

“......”

어두운 조명 속 발소리와 희미하게 움직이는 윤곽에 방청객들 모두 조용함을 지키며 무대를 응시하였다.

왠지 모르게 기대되는 고조감에 모두 숨을 죽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근두근.

관객들의 기대감이 담겨있는 적막에 무대 위에 서 있던 사람들도 모두들 고조되기 시작하고 자신들의 심장박동을 억누르며 가운데를 응시한다.

‘도경아 우린 준비됐다. 준비되면 신호 줘.’

크루들을 대표하여 신명하가 열망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무대의 가운데 서 있던 도경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기 시작한다.

스으윽!

두근..

‘공기가...!’

그의 주변으로부터 공기가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하고 도경을 둘러쌓고 있던 크루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감각이 날카롭게 서는 것을 느꼈다.

끄덕.

“시작하죠.”

투우웅!

“!?”

모두의 중심에 서 있던 도경의 미세한 고개 끄덕임과 동시에 무대 밖에 있던 스태프가 사전에 논의한 대로 도경을 중심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

스스스슥.

불빛이 들어오는 신호탄이 터짐과 동시에 도경을 둘러쌓고 있던 관군들이 반시계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돌기 시작한다.

미세하게 몸을 상하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도는 관군들 속에 도경은 홀로 오연히 서서 그들을 무시하며 손에 쥔 술병을 들어 올려 고개를 꺾어 들어 마시기 시작한다.

콸콸콸!

마시는 건지 얼굴을 적시는 건지 모를 정도로 술병에 있는 술들을 쏟아내는 도경의 모습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어지럽게 움직이는 관군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휘이익!

“크큭! 크하하하하!”

오싹.

부르르.

술병을 던짐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도경의 광소에 방청객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웃음소리일 뿐인데 모두 등이 따가워질 정도의 소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야아아아!”

휘익!

모두가 그 웃음소리에 숨을 죽이고 있을 때 도경의 앞에 있던 신명하는 배에 힘주어 소리를 내질렀고 그의 신호와 함께 관군들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도경의 앞으로 쏘아졌다.

파바밧!

투웅!

빠르게 쏘아지는 관군들을 향해 동시에 도경도 그들에게 맞춰 움직였고 그는 손에 쥔 박도를 거칠게 휘둘렀다.

휘익!

팡!

털썩!

도경이 손에 쥐고 있던 박도를 휘두를 때마다 조명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고 도경의 발밑에는 어느새 도경을 덮쳤던 관군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있다.

휘이이익!

쾌도난마(快刀亂麻).

먼저 덮친 것은 관군인데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비호처럼 사방에 몸을 날리며 거칠게 박도를 휘둘리는 도경의 모습만이 보인다.

투웅!

팡!

박도의 휘두름에 맞춰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더니 리드미컬한 특유의 리듬을 띄우고 그 장단에 맞춰 도경과 관군들이 치열한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방!

으하하하하하!

무대 위를 미친 듯이 반짝이는 조명에 맞춰 웃음을 터트리는 도경의 모습은 가히 광인(狂人)가도 같아 미친 듯이 웃으며 박도를 휘두르는 도경의 살벌함에 모두는 숨을 죽이고 그에게 혼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서거걱!

세상을 향한 분노를 터트리는 일갈과 모든 것을 일도양단할 것 같은 도경의 휘두름에 반짝이던 조명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

꿀꺽!

퉁!

“후우, 후우!”

투웅!

어둠으로 물들었던 무대에 조명이 다시 비췄을 때는 무대 위에서 서 있는 인물은 오로지 도경 혼자만이 존재하였다.

팟.

“......”

무수히 쓰러져 있는 관군들을 둘러보는 도경이 보이고 그를 비추던 조명은 다시 꺼졌다 켜지더니 그의 주변에서 격전을 벌이고 쓰러졌던 관군들은 환상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데구루루

“!?”

모든 것이 환상일까? 무대 위에 존재하는 것은 도경과 그의 발밑에 어느새 놓여있는 사과만 한 크기의 붉게 빛나는 구슬뿐이었다.

씨이익!

도경은 넋 나간 사람처럼 그 구슬을 바라보더니 이내 진한 미소를 피어 올리더니 구슬을 향해 박도를 무심히 휘둘렀다.

스팟!

탕!

휘이익!

티딩!

붉은 구슬은 허공을 솟구쳐 올라 도경의 박도위로 떨어져 데구루루 구르고 도경의 흔들림 없는 자세에 구슬은 이내 힘을 잃고 박도위에 멈춰 섰다.

“......”

‘뭐지?’

수군수군.

“왜 멈춰서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방송사고?”

격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도경이 정자세로 박도를 들어 올린 채 붉게 빛나는 구슬을 응시하며 오랜 시간 그 어떤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자 관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꾸욱.

‘더! 더! 내게 집중해.’

소란스럽고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도 하나의 공통점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도경에게 모두의 신경이 칼날처럼 곤두서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이잉!

곤두서고 곤두서서 모두의 감각이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도경은 속으로 웃음 지었다.

‘지금!’

스으윽!

벼려지고 벼려지던 감각이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 자신에게 모여 있을 때 도경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박도를 움직였다.

스스스슥!

기묘한 움직임에 맞춰 기묘한 궤도를 그리는 박도.

그리고 그의 박도 위에 있던 홍옥은 그 궤도에 따라 이끌리기 시작한다.

“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도경의 움직임에 누군가 감탄성을 내뱉는다.

그저 검을 휘두르고 그의 휘두름에 붉은 구슬이 이끌릴 뿐인데 붉은 구슬이 어둠을 그리는 궤적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휘익!

과연 이것을 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춤을 추는 것인지는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도경이 불규칙적으로 휘두르는 박도와 그의 움직임에 모두가 눈을 못 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우우웅!

허공을 가르는 박도.

그 박도에 이끌려 홍옥(紅玉)과 도경은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고 그 춤에 사람들은 딱 한 가지 밖에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름답다.’

붉은 혼을 그리워하고 달래는 도경의 검무(劍舞).

도경은 그 검무의 이름을 홍아(紅雅)라 지었다.

티잉!

“......”

애달픈 붉은 구슬의 소리가 모두의 가슴을 적시기 시작하며 도경이 펼치는 세계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도경 오빠...”

무대 뒤에서 박도를 휘두르며 붉은 구슬을 이끄는 도경의 기에를 바라보던 하나는 입가를 멍하니 벌리며 확신했다.

저 무대 앞에선 순서 따위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체... 구슬이 나보다 더 예뻐 보이겠다.”

자신을 이쁜 꽃처럼 두드러져 보이겠다는 도경의 약속.

하지만 도경이 이끄는 구슬보다 예쁠지 하나는 확신이 서지 않아 무대 뒤에 울상을 지을 뿐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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