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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49화 (149/357)

149화

콜록! 콜록!

“헉! 헉...!

후두둑.

무대 앞에서 도경의 검무에 모두가 홀려 넋을 잃고 있을 때. 무대 뒤에서는 도경과 함께 합을 마쳤던 크루들이 숨을 고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헉헉! 진짜 말도 안 된다. 다들 나만 그런 거 아니죠?”

끄덕.

“맞아. 나는 진짜로 칼에 베이는 줄 알았다니까.”

“누워있을 때 칼 휘두르면서 눈빛 봤는데 진짜 장난 아니었다니까. 어우, 아직도 소름 돋는다.”

“연기한다더니 정말로 사람이 저렇게 휙휙 바뀔 수 있는 거구나.”

“진짜 살벌하더라. 야. 이거 봐봐. 등에 땀 젖은 거...!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크루들은 도경에게 박도로 베였던 자신들의 몸을 쓰다듬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짜 칼에 스치기만 했던 가벼운 접촉인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베인 것처럼 화끈해지는 듯한 기시감을 맛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기라고 그게 말이 돼?’

부르르.

모두가 도경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을 때. 신명하는 자신의 목을 감싸며 도경이 휘둘렀던 박도를 떠올리며 핼쑥한 안색을 지었다.

“진짜 목이 날아간 줄 알았다고...!”

다른 멤버들은 몸통이나 팔과 다리를 베이며 쓰러졌지만 신명하는 도경에게 목을 베였다.

도경이 횡 방향으로 휘두르는 박도에 자신의 의식이 일순 희미해졌던 감각을 상기하며 신명하는 질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꿀꺽.

합을 맞추는 사람들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도경에게 베여 쓰러진 신명하.

그는 일순간 마주쳤던 도경의 두 눈빛을 떠올리며 자신의 등에 따가울 정도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오싹.

“진짜 말도 안 되는 녀석...”

이글거리는 ‘분노’와 ‘광기’

그 뜨거운 분노와 광기를 목격했던 신명하는 도경이란 존재가 정말 불가해의 존재라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능력부터 시작해 그가 내뿜는 존재감은 도저히 도경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었다.

부우웅!

휙!

펄럭!

“하...”

연습실에서 수십 번을 봐왔던 검무.

눈을 감아도 다음 동작이 어떤 게 나올지 알고 있을 정도로 익숙한 검무였지만, 얇았던 목검에서 실제 드라마에 쓰이는 두터운 박도를 사용하니 박력 자체가 아예 달랐다.

“정도라는 게 있지 리허설과는 너무 달라.”

리허설하고 본 무대가 원래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도 너무나 차이가 심한 도경의 무대.

무대 위에서 홀로 독주하고 있는 도경을 보며 신명하는 자신들이 용케 저런 놈과 합을 맞췄다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예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원래는 이 내가 직접..! 응? 어라? 어? 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무대를 보여주고 있던 신명하는 잠시 투덜거리다 뒤늦게 자신의 깜빡한 계획을 떠올리며 비명을 질렀다.

“도경이 옷을 못 찢었잖아?!”

원래대로라면 마지막에 도경에게 베일 때. 쓰러지는 척 도경에게 달라붙어 옷을 찢을 계획이었는데 신명하는 그것을 새삼스레 까먹고 있음을 자각했다.

“대체 왜? 어떻게 그걸 어떻게 까먹고 있었던 거지?”

분명 무대의 오르기 전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회심의 노림수였는데 그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 신명하의 당황하면서도 자신과 시청자들의 욕망을 채울 기회를 놓쳤다는 것에 울상을 지었다.

“아, 실수할 게 따로 있지. 그걸 까먹다니 멍청한 짓을 해버렸어...”

자신의 실수를 탓하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신명하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는 알까? 그가 안타까워하는 실수가 사실은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본인은 자각 못하고 있지만, 도경과 합을 맞추던 신명하는 분명 도경의 옷을 찢을 계획을 확실하게 지니고 있던 상태였다.

서걱.

“......”

다만 도경의 박도가 그의 목을 스쳤을 때. 그는 자신의 흑심을 채울 계획을 이룰 수 없었다.

1, 2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의식이 송두리째 날아갔기 때문이다.

신명하는 자신의 의식이 도경의 칼질에 날아갔다는 놀라운 사실을 나중에 방송을 통해서 알게 된다.

“명하 형! 슬슬 준비할까요?”

“아, 맞다. 오늘 자꾸 왜 이러지? 모두들 도경이 신호를 주면 던지면 돼.”

도경의 무대에 정신을 팔려있던 신명하는 자신이 정신이 조금 산만하다고 생각하며 뒤늦게 준비해온 소품을 두 손에 쥐어 올렸다.

“형 근데 진짜로 막 던져요?”

“왜? 걱정돼?”

“그럼 안 불안해요? 눈 뜨고도 힘들 걸 이렇게 어두운 무대에서 해내야 하는데 당연히 걱정되죠.”

“걱정?”

피식.

“걱정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네?”

도경을 향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크루의 말에 신명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크루와 자신의 다른 점을 새삼스럽게 자각했기 때문이다.

“야! 쟤 박도경이야. 그냥 마음껏 던져.”

“그래도...”

“마음껏 던지래도? 도경이 다 알아서 한다니까?”

“허. 형은 당사자도 아니면서 대체 자신만만 확신을 해요?”

“음... 그냥 지켜 봐.

“뭐라구요...?!”

씩.

“보면 알 거라고.”

영문 모를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그 시선에 신명하는 웃음지으며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확신이란 감각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겪어봐야 알지.”

도경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가 무모하다고 생각하고 그의 실패를 걱정한다. 하지만 도경을 겪어본 사람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로 도경이란 존재를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감각이었다.

그 감각을 얻는 순간

사람들은 도경을 바라보며 설렘과 두근거림을 가지고 딱 한 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힌다.

두근.

‘이번엔 무얼 보여 줄 거냐?’

설렘과 두근거림이 교차하는 사이 신명하는 쥐고 있던 물건을 꾹 움켜쥐며 도경을 향해 기대감을 품은 채 시선을 고정했다.

---

“......”

팅! 팅 팅 팅!

부우웅!

박도를 크게 휘두르든, 작게 휘두르든 붉은 구슬은 도경의 박도에 이끌리듯 따라가며 이리저리 붉은 궤적을 그리어 간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기엔 신기에 가까운 기예나 마찬가지였다.

휙!

텅! 퉁퉁.

거칠게 휘두를 때는 붉은 구슬은 박도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높게 솟구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박도 위로 올라오는 붉은 구슬은 인제 와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데구루루...

스으윽.

팅!

서정적인 사극 노래에 맞춰 움직이는 도경의 검무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나 마찬가지였다.

도경이 움직이면 붉은 구슬이 춤을 추고, 붉은 구슬이 춤을 추면, 방청객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은 붉은 구슬궤적을 멍하니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힐끔.

‘슬슬 판이 마련되었으니....’

검무에 집중하고 있는 와중에도 피부로부터 느껴지는 관객들의 호흡과 시선에 도경은 그들 모두의 집중력이 고조될 대로 고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젠 메인을 먹을 차례지!’

모두의 시선을 모으고 모두의 감각을 고조시킨 것들은 모두 시동을 건 것에 불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결과를 걷어 들이는 것만이 남을 뿐이었다.

티잉-!

휘이익!

쿵!!!

화들짝!

구슬을 강하게 튕기며 도경은 자신의 몸을 회전시켜 허공에 떨어지는 구슬을 향해 박도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부드럽게 구슬을 받던 때와 달리 거칠기 짝이 없는 휘두름은 절대 구슬을 받으려고 하는 동작이 아니었다.

펑!!!

푸스스스.

박도의 부딪힘과 동시에 펑 소리와 함께 붉은 구슬은 산산조각 나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렸다.

“아...!”

동시에 붉은 구슬에 홀려있던 관객들은 가루가 된 붉은 구슬을 보며 자신들도 모르게 아쉬움에 신음성을 내뱉었다.

요정처럼 붉은 궤적을 남기며 자신들을 홀렸던 구슬이 도경의 박도에 맥없이 박살나는 모습은 허무하기도 하고 덧없음에 쓸쓸한 감정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준비해!)

끄덕.

타다닥!

스으윽!

관객들은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느끼며 허공에서 빛을 발하며 천천히 흩날리고 있던 붉은 가루를 지켜보고 있을 때.

무대 뒤에서는 도경을 지켜보고 있는 신명하와 크쿠 팀원들이 서둘러 간격을 두고 정해진 자리에 서서 자신이 쥐고 있던 붉은 구슬들을 들어 올려 도경을 향해 겨누었다.

꿀꺽!

도경은 무대 뒤에 있는 팀원들이 자신의 손을 잘 볼 수 있도록 비스듬히 서서 박도를 쥐고 있던 박도 날을 사선으로 비틀어 보였다.

‘자...’

투웅!

‘시작해 봅시다!’

번뜩!

‘신호다!!!’

“던져!”

휘이이익!

사선으로 향하는 박도의 칼날이 바닥을 툭! 치는 순간 신명하는 눈빛을 빛내며 도경을 향해 있는 힘껏 구슬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에 있던 크루 멤버들도 쥐고 있던 구슬을 순차적으로 도경을 향해 던지기 시작한다.

휙! 휙! 휙! 휙! 휙! 휙!

깜짝!

“뭐, 뭐야?!”

갑작스럽게 사방 군데 양옆으로 쏘아지는 구슬에 방청석의 사람들은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을 때 도경은 자신이 쥐고 있던 박도를 양손으로 잡아 날아오는 구슬을 향해 박도를 거침없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익!

펑!

끼기긱 휙! 펑펑펑!

부우웅 팟!

투웅!!

파바바밧!

쏘아지는 구슬의 개수만큼 도경의 손속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박도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휘둘러지고 칼날의 궤적밖에 남지 않고 그와 동시에 박도와 충돌하는 붉은 구슬들은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로 허공을 수놓기 시작한다.

펑펑펑펑펑펑!

휘이익!

펑펑!

파스스스스!

허공으로 튕겨 나가는 구슬까지 놓치지 않고 마무리하는 도경의 검술에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본다.

영화 속에서나 볼 벗한 아름다운 광경이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붉은 구슬들이 도경의 박도에 터져나갈 때마다 반짝이는 별 가루가 되어 허공에 휘날리며 무대를 가득 메웠다.

펑펑!

퍼엉...!

구슬들이 다 터지고 날 때쯤에 무대는 붉은색의 별 가루로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하고 도경은 붉은 별 가루 안개 속으로 자신의 몸을 숨겨 관객들의 시야에 벗어났다.

스스스스.

“......”

스윽!

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의 소강상태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은 무대 위에 어느새 두 사람의 인영이 멀리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감탄성을 내질렀다.

“홍아다!”

“붉은 구슬은 홍아 였어...!”

부르르.

동안개가 걷히고 바닥에는 반짝이는 붉은빛으로 가득한 무대 위에 드러나는 도경과 하나의 모습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광소를 터트리며 미쳐 날뛰는 임꺽정]

[붉은 구슬과 함께하는 씁쓸한 임꺽정의 검무]

[붉은 별 가루 속 등장하는 홍아.

하나같이 무언가를 전해오는 정보의 해일 속.

도경의 떨리는 눈빛이 무대 뒤 화면에 클로즈업 되고 그의 애달픈 눈빛을 바라본 관객들 모두들 본능적으로 임꺽정과 홍아 사이에 매우 안 좋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아...”

“설마?”

“홍아가... 죽은 거야?”

수군수군.

‘됐다.’

하나, 둘 방청객에 앉아있던 이들이 도경과 하나가 준비해온 무대의 스토리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이내 무대에 감정까지 이입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춤을 즐기고 감상하는 것을 넘어 감정을 이입해 무대를 바라보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는 도경이 고생한 과정들을 결실을 거둬들였을 때가 왔음을 의미했다.

‘관심을 모아 감각을 고조시키고 스토리를 전달해 감정까지 이입 시켰어...! 이제 남은 것은 딱 하나!’

길고 길었던 수많은 사전작업.

그 모든 것들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두근두근.

‘준비됐어?’

끄덕.

‘준비됐어요.’

도경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하나를 바라보며 무언으로 묻자 마주 편에 서 있던 하나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가운데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수많은 연습을 한 파트너답게 하나는 도경의 눈빛과 뜻을 단박에 이해한 것이다.

씩.

“그래...”

투욱!

터텅!

손에 저릴 정도로 꾹 쥐고 있었던 박도를 바닥에 떨어트린 도경은 천천히 하나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띠리링! 띵띵~!

적막 속에 잠시 끊겼던 노래는 부드럽고 천천히 흘러나왔는데 구슬프고 애달픈 음을 띈 노래로 두 사람의 무대의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켰다.

저벅저벅.

단순한 걸음.

분명 단순한 걸음인데 슬픈 음에 맞춰 움직이는 도경의 한 걸음 한걸음은 사람들의 가슴에 파문을 남기기 시작한다.

하나에게 다가서는 저 조심스러운 걸음에서 그의 심정이 그대로 녹아 나왔기 때문이다.

스윽.

조심스러운 걸음 끝에 두 남녀는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몸을 밀착한다.

두근두근.

서로를 향해 기대고 있던 두 연인.

도경과 하나는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감각을 고조시켜나가며 서로에 대한 감각을 연결한다.

띠링!

휘이익!

그 둘의 감각이 연결된 순간.

현을 튕기는 맑은 음 하나가 무대 위를 울리고 동시에 도경과 하나는 눈빛을 빛내며 서로의 몸을 밀접한 상태로 빠르게 움직인다.

파앗!

사아악.

두 남녀의 움직임에 바닥에 깔렸던 붉게 빛나는 가루가 허공으로 흩날리며 그 둘의 움직임을 따라 휘 맴돌기 시작한다.

“아아아...!”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무대 위를 두 사람의 춤에 관중들은 입을 벌리며 탄성을 내뱉었다.

도경이 언급했던 마지막 하나.

[감동의 피날레]란 조각이 모두 맞춰지는 순간 잊을 수 없는 무대가 펼쳐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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