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사사삭!
휘익~.
붉게 물든 은하수 무대 위에서 두 남녀는 말없이 서로와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한다.
훽!
타다닥.
[감동]
사람들은 신나거나 즐거운 감정을 만나는 것은 의외로 접하는 것도 가지기도 쉽다. 자신이 어딜 가서 무얼 어떻게 하면 즐거운지 본능적으로 알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감동이라는 감정을 만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감동을 찾아갈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 였다.
계기는 가질 수 있지만, 감동이란 감정은 예상치 못한 만남과도 같아서 무언가를 시도한다 하더라고 그 감정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펄럭~!
휘이잉.
‘아름답다.’
그런데 현재 즐기기 위해 온 이 예능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은 그 예상치 못한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의 이상의 것을 열린 상태로 받아들이는 순간.
무의식과 몸은 저기 앞에 있는 두 사람의 춤을 놓치지 말고 똑똑히 보라고 요구한다.
휘릭.
스르르륵!
바닥을 쓸며 휘날리는 별 가루는 하나의 긴 소맷자락 휘두르는 방향에 따라 흩날리며 반짝인다.
솔직히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도경을 중심으로 돌면서 천진난만 웃음을 짓는 하나의 모습은 마치 요정과도 같았다.
툭!
타다닥!
퉁!
펄럭!
그녀의 장단에 맞춰 도경 또한 웃음을 지으며 춤을 추었다.
하나가 유려하고 화려하게 춤을 춘다면 도경은 최소한의 움직임을 보이며 하나의 춤 동작을 돋보이는 춤을 선보였다.
덥석!
훽!
하나가 내뻗는 손을 잡은 도경은 그녀를 끌어당기어 밀어주고 하나는 그 힘을 이용해 더욱 더 자유롭게 춤을 추면서 곡선을 그린다.
휘리릭! 팡!
꿀꺽!
별것도 아닌 그 자연스러운 일체화 된 호흡은 이상하게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보여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고 각기 다른 동작이 한 동작처럼 맞아떨어지는 모습에 관객들의 심장이 뛰었다.
스르륵.
“와...!”
“너무 이쁘다...! 하나 너무 이쁘잖아?”
“이미지가 전혀 다른데?”
“예술이다.”
도경의 품속에서 몸을 휘게 하며 아름다운 활을 그리는 하나의 우아한 자세에 모두가 감탄하면 탄식 성을 내뱉었다.
술렁술렁.
좀 전에는 도경의 카리스마와 그의 기예에 감탄했다면 이번에는 그녀의 본연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 것이었다.
“칫!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빠득.
모두가 그 둘의 아름다운 춤을 감탄하고 있을 때.
도경과 하나의 무대를 보고 있던 트리니타스의 최승한은 혀를 차며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쯧. 그냥 단순한 동작들의 나열일 뿐인데 오버들 하고 있어. 관객들 수준 낮네.”
“......”
막상 동작 하나하나 따져보면 기본기만 이용한 난이도 낮은 동작들 이다.
그리 큰 힘도 필요하지 않고 복잡함도 없는 단순한 동작의 나열에 감탄하는 관객들을 향해 최승환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조용한 욕설을 옆에서 듣고 있던 최승환과 무대를 같이 꾸밀 크루의 맡고 있는 리더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힐끔.
‘진심인가? 그래도 같은 일을 하는 종사자라면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 줄 알 텐데? 대체 얼마나 글러 먹은 거야?’
최승환과 같이 연습을 하면서 그의 실체를 알아서 어느 정도 학을 뗀 상태지만, 설마 이 정도로 성격이 비틀려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알면 알수록 춤을 추는 같은 사람으로 그에 대해 절로 혐오감이 일어났다.
‘단순한 동작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많은 안무가들이 골방에 박혀 저런 동작을 찾기 위해 얼마나 피땀 흘리며 공을 들이는데 이 한심한 놈은 보고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돈만 아니었으면...’
빠득.
자신의 여성 크루에게 치근덕거렸던 것부터 시작해 이번 무대를 준비하면서 정말로 우여곡절을 겪게 했던 최승환을 보며 그는 이를 갈았다.
크루 단체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홍보를 위해 받았던 일거리였는데 오히려 수년간 일궜던 크루가 최승환 덕분에 박살 날 뻔했다.
‘진짜, 보이는 걸 그대로 믿었으면 안 됐는데 말이야...’
계약하기 전에는 TV 속에 비추는 것과 같이 예의 바르고 인상이 좋았던 청년이었지만 계약 후에는 갑과 을의 입장을 이용해 크루들을 하인처럼 다루는 등. 여태까지 연습시간에 한 번도 제대로 나온 적이 없을 정도로 최악의 파트너였다.
“하... 제대로 쪽 당하겠네.”
1달도 안 된 3주였지만 정말로 길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그는 도경과 하나를 바라보며 씁쓸함을 담아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화려한 무대를 구성하긴 했지만, 일반인은 몰라도 춤을 추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최승환이 얼마나 손발을 안 맞췄는지를 알아차릴 게 분명했다.
휘이익!
“...”
한 몸처럼 움직이는 도경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려하게 움직이는 두 사람의 동작 속에 그들의 재능과 함께 땀을 흘린 밀도 높은 연습시간이 엿보였다.
그 안에 녹아있는 둘의 유대감은 그에게 있어 한없이 빛나 보였다.
화끈.
솔직히 댄서로서 너무나 창피했다.
프로로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팀원들을 다독이며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자신이 준비해 온 무대를 떠올리며 그는 얼굴을 붉혔다.
“진짜 겉보기엔 모르는 거구나...”
다소 가벼워 보이고 뛰어난 재능과 눈에 띄기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자기중심적일 것 같던 도경이 저런 춤을 출 줄은 예상도 하지 못 했다.
스슥.
휙!
말없이 묵직한 존재감으로 철저히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그의 춤에선 하나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가득했다. 누군가와 달리 자신을 돋보이는 것에만 얽매이지 않고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어떤 건지를 그 누구보다 도경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한 건데...”
빠드득.
“다신 겉보기로 사람 판단하지 않겠어.”
처음에 인상만 좋았던 최승환과 너무나 비교가 되는 도경의 모습에 그는 자신의 뼈저린 선택에 대한 교훈을 얻으며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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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닥. 휙!
덥석.
투욱!
“와아!!!”
높게 점프하는 하나의 몸을 흐트러짐 없이 받아내며 부드럽게 바닥에 놓아준 도경의 모습을 보며 모두 감탄성을 내뱉었다.
“깔끔하게 다음 동작하고 연결 되는 거 봐. 얼마나 연습한 거야?”
“어떡하냐? 다음 순서인 우리는 큰일 난 거 같은데?”
“......”
“하나는 잘 추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박도경은 대체 뭔데?”
한 동작. 한 동작.
도경과 하나가 얼마나 합을 맞추는 데 노력해왔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지 알 수 있기에 참가자들은 두 사람에 대해서 감탄성을 연발로 내뱉는데 정신없었다.
그중 여성 참가자들이 두 사람을 향해 많은 감탄성을 내뱉었다.
“진짜 저렇게 딱 맞기 힘든데 저 두 사람 뭐야?”
“꺄악! 하나 너무 예쁘다!”
“안무들이 하나에게 너무 잘 맞는다...”
수수한 복장 속에서도 하나 본연의 아름다움이 흘러나오는 무대에 여성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를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과도한 노출이나 자극 없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흘러나오는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여자로서 댄서로서 모두가 원하고 소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런 파트너가 있다니 진짜 부럽다...!”
끄덕.
“맞아.”
무대 위의 모든 요소들이 하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와중. 그 무엇보다 하나의 아름다움을 떠받치는 도경이라는 존재에 여성참가자들은 눈빛을 빛냈다.
[이상적인 파트너]
과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떠받쳐 주며 상대를 돋보이게 해주는 도경이란 존재는 여성댄서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이상적인 파트너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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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그런 부러움을 사고 있던 당사자인 하나는 현재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수많은 동작을 구현하는 그녀의 얼굴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최승환은 비웃었지만, 간단한 동작 구성이라도 쉴 틈 없이 짜여 움직이는 춤은 그야말로 많은 체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눈빛에는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아. 오히려...!’
타닥. 휘이익!
‘너무 행복해서 날아갈 거 같아!’
우웅.
마치 자신의 몸이 두 개가 된 감각. 도경이란 이름의 다른 신체 기관이 생긴듯한 소름 끼치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서로가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실시간으로 몸에서 정보를 전달한다.
(괜찮아 더 할 수 있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네!)
수십, 수백 번의 연습 때에 맛볼 수 감각에 하나는 즐거움에 속으로 신나서 어쩔 줄 몰랐다.
춤이 좋아 어릴 때부터 춤을 배웠고 성인이 돼서는 데뷔를 하기 위해서 이 악물고 춤을 춰왔던 하나는 현재 자신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닥. 탁!
꿈틀.
파아앗!
분명 육신은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는 데 어디선가는 끊임없이 활기를 내보내며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스텝을 밟으면 밟을수록 그녀의 세상은 가속하고 동작을 크게 펼치면 펼칠수록 몸은 날아갈 만큼 가벼워진다.
‘정말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말로만 듣던 무아지경이란 거짓말 같은 세계.
이 세계는 정말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감각을 자신에게 안겨 주었다.
같은 동작이라도 자신이 어떻게 하냐에 따른 미세한 차이가 감지되고 그 차이에 따라 일고 있는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그 말이 이런 뜻이었어.’
처음에 도경과 연습실에 함께 연습할 때 얼마나 놀랐던가?
항상 자신만만하고 괴물 같은 재능 덕분에 연습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도경이 무대를 앞두고 하루 종일 춤을 추며 연습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오빠 뭐가 그렇게 즐거워요?)
(즐겁지. 그도 그럴게...)
지독하게 연습을 하는 사람은 보았어도 연습을 즐기는 사람을 처음 본 하나는 도경에게 그리 물었어 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그 물음에 도경은 소매로 땀을 훔치며 웃음 지으며 그녀의 물음에 답해 주었다.
(춤은 춰도 춰도 항상 새로운걸!)
그 말을 들었을 땐 하나는 도경이 그저 자신 이상으로 춤을 좋아한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였어!’
탁탁탁. 후우웅!
콩닥콩닥.
나중에는 도경에게 노력으로 지지 않기 위해 그와 함께 수십, 수백 번 지겹게 연습했던 춤이 분명한데 지금 추는 춤은 완전히 새롭게 느껴졌다. 분명 연습했던 대로 몸을 움직이고 있긴 한데 낯선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니, 낯설게 다가오다 못해 이제는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까먹을 정도로 몸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인다.
휙!
빙그르르.
몸을 아래로 숙여 바닥을 쓸며 위로 빙그르르 올라오는 하나의 주변으로 붉은색의 별 가루가 휘날린다.
와아아아!
정말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는 하나의 모습에 관객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 순간이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그들의 환호성과 동시에 감당키 어려운 희열에 하나의 마지막 의식은 끊어져 가고 그녀는 자신의 본능에 몸을 맡겨 몸을 움직였다.
붉게 물든 은하수 같은 무대 위에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피식.
‘정말로 꽃이 되었네.’
도경은 이 순간만큼은 관객들의 눈에 자신이 보이지 않을 것을 알았다.
순수하게 춤에 빠져들어 그녀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생기 가득한 싱그러운 꽃향기는 한 사람의 존재를 지울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우웅.
‘진짜 순진하다니까.’
능력을 조금만 사용해 감각을 고조시켰을 뿐인데 스스로 알아서 각성해 꽃으로 개화한 하나란 소녀를 바라보며 도경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순수한 심성이 일으킨 눈부신 성장이 너무나도 기꺼웠던 것이다.
씨익.
춤추면서 정말로 행복하게 웃으며 교차하는 도경과 하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눈부셔서 감탄성을 흘렸다.
“아...”
저 무대 위는 모든 게 영원했으면 싶은 완벽한 낙원이었다.
아름다운 장소.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두 연인이 춤추는 모습은 모두에게 말 못 할 감동을 안겨주며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었다.
“계속 보고 싶다. 하지만 끝나겠지...”
한 관객의 중얼거림대로 도경과 하나의 춤은 끝을 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끝을 직감한 관객들은 안타까운 신음성을 뱉으며 뒤늦게 무대 컨셉이 왜 ‘깨고 싶지 않은 꿈. ’인지 알게 되었다.
일장춘몽(一場春夢).
어둠과 함께 사라지는 홍아를 향해 안타깝게 손을 뻗는 임꺽정과 그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두 연인의 춤을 보지 못해 안타까움을 아쉬움을 느끼며 모두들 홍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
댄서와 관객들 모두가 완벽하게 무대에 몰입해야 나올 수 있는 반응에 스튜디오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지만 이내 환해지는 무대 위로 달려 나와서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무대의 끝을 알리는 인사를 올리는 하나의 모습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뒤늦게 스튜디오 안을 함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 채웠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감동을 준 무대에 모두가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이지(I)]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그것을 목격한 관객들은 자신들이 느꼈던 행복이 시궁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맛보게 된 사실을 말이다.
[스테이지(I)]
그들은 안타깝게도 도경의 예견대로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