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점수 발표하겠습니다.]
패널들이 침 튀기며 극찬했던 도경과 하나의 무대.
춤에 대한 전문가이든 비전문가이든 간에 모두들 한 소리로 두 사람의 무대를 향해 감탄하며 칭찬하느라 바빴다.
심지어 경쟁 상대자인 참가자들마저 연신 극찬하지 않았던가? 두 사람은 이번 스테이지(I)에 강력한 우승 후보란 생각에 모두들 도경과 하나의 무대가 몇 점이 나올지 관심들을 모았다.
띠리리리!
퉁!
[208표]
“헐......”
300명중 208표.
얼핏 보면 낮은 투표수는 아닐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스테이지(I)특성상 보통 우승자들의 투표수가 200대 후반에 결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도경과 하나는 터무니없이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었다.
[프리티 걸] 소연이 [233표]를 받았고 드림걸즈 하나가 [208표]를 받은 것으로 무대의 승자는 프리티 걸 소연에게 돌아갔다.
“......”
“208표?”
믿기지 않는 결과.
모두가 극찬했던 무대가 설마 1번째 무대에서부터 떨어질 줄이야.
정말로 예상도 못 한 상황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칭찬하기 바빴던 패널들과 참가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웅성웅성.
“지금 저 무대가 떨어진 거야?”
“말이 돼?”
“에이-. 뭔가 잘못된 거겠지.”
방송녹화 도중에도 믿기지 않는 결과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MC둘은 식은땀을 흘리며 제작진에게 눈치를 줬다.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잘못 된거야?)
휙휙!
MC의 눈초리에 제작진은 손으로 X를 그리며 개표에 오류가 없음을 알렸고 이를 본 MC 둘의 표정은 더욱 황당함으로 얼룩졌다.
자신들이 춤에 대해서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결과는 명백히 오류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지?”
“어쩌긴...!”
‘이럴 때일수록 프로답게 해야지.’
자신들뿐만 아니라 방청객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도경과 하나의 무대에 대한 결과에 납득 못하고 있는 난감한 상황 속에 다부진 턱을 지닌 MC가 이때야말로 자신의 능력이 필요한 때라고 여기며 눈빛을 빛냈다.
“어수선하지만 진행은 해야지.”
“방법 있어?”
“뭐, 한던 대로 하면 되겠지. 맡겨둬.”
아나운서 출신으로 프리랜서로 독립하고 다년간 MC를 해온 선현욱은 옆에 있는 자신의 파트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맞장구 쳐줘.”
끄덕.
“알겠어.”
[이야. 이거 정말 뭐가 뭔지 알 수 없네요.]
선현욱은 마이크를 들어 올리고는 웃음 지으며 도경과 하나를 향해 멘트를 뱉으며 상황을 진행시켜 나간다.
현장 분위기가 아직까지는 무마시킬 수 있다 생각한 그는 서둘러 공기를 환기시켰다.
[패널들과 전문가들은 그렇게 극찬했는데 역시 일반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조금 다른 가 봅니다.]
[아~. 그럴 때가 있긴 하죠. 대중성과 예술성의 간극처럼 조금 무대가 예술적이었나 보네요. 하하하.]
웅성.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선현욱의 시작으로 그의 옆에 있던 김정주 MC가 그의 멘트를 돕는 말을 내뱉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아쉽지만 도경군과 하나양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무대였는데 저희로서도 아쉬운 결과네요.]
선현욱 과 김정주 MC 둘은 상황을 빠르게 넘기기 위해 도경과 하나를 향해 걸음을 옮기었고 그 둘의 마지막 소감을 묻기 시작했다.
[우선 하나양. 소감한마디 해주시죠.]
“......”
[하나씨?]
“에...?! 아, 네... 음...... 네.”
[하하하하. 하나양이 이번 무대는 많이 기대했었나 보네요. 할 말을 잊지 못하네요. 하나양 괜찮아요. 저에게는 정말 좋은 무대였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하하. 네, 너무 의기소침하지 말고 힘내요.]
평소처럼 쑥스러운 웃음과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던 하나가 아니었다.
혼란스러움과 자신이 받은 결과에 납득이 가지 못하는 심정이 역력한 그녀의 표정에 신현욱 MC는 무안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어리네. 신인이라 표정 관리를 못 하네. 또 분위기 처지잖아... 쯧!’
웃는 얼굴과 달리 속으로는 촬영 녹화장의 분위기와 자신들을 난감하게 하나의 모습에 혀를 차며 그는 하나의 옆에 있던 도경을 향해 눈을 돌렸다.
‘빨리 넘어가자.’
씩.
[하하. 하나양은 많이 아쉬움이 남긴 것 같은데 도경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게요. 도경씨 생각도 한번 들어볼까요? 하나 씨. 대신 말 좀 해주시겠어요?]
크루의 대표로 서있는 신명하는 그 둘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저게 말이야 방귀야. 아무리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정말 너무하잖아!’
누가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을 납득시키기 위해 예술과 대중성을 들먹이며 무대를 폄하하고 그 결과에 혼란스러워하는 하나의 표정을 아쉬움이란 단어 하나로 포장한다.
게다가 이 부담스러운 상황을 빠르게 넘어가기 위해 도경에게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을 안 주고 인터뷰를 하려는 신현욱과 김정주의 두 MC 모습에 눈가 찌푸려졌다.
‘자기들 일 아니라는 거지?’
그들의 태도에는 훌륭한 무대를 보여준 도경과 하나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 자신들의 일 처리에만 급급한 그들의 모습에 화딱지가 날 수밖에 없었다.
‘역대 최소 표가 194표인데... 208표라니. 이건 진짜 말이 안 되잖아...!’
빠득.
형평성이 어긋나도 제대로 어긋난 문제임에도 저리 뻔뻔하게 넘어가려는 MC들과 제작진들 행태에 절로 이가 갈렸다.
‘이러려고 우리가 그렇게 연습한 게 아니라고!’
이런 대우를 받기 위해서 그 고생을 하며 연습하고 준비했단 말인가?
모든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깟 프로그램이 뭐라고 이런 수치를 당해야 하는 지금 이 상황에 신명하는 방송이고 뭐고 다 엎어버리고 싶은 깊은 분노를 느꼈다.
“저기 진짜로 제 생각 말해도 될까요?”
[하하하. 뭔가 의미심장한데요? 도경씨 성격에 막 욕할까 봐 무섭네요.]
[맞아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도경씨가 그리 말하니까 뭔가 너무 무섭네.]
원래라면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회심의 멘트였는데 도경의 반응과 관객들은 그의 의도한 대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둘의 행동은 현재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박도경 표정관리 안 되는 거 봐.”
“어휴. 눈치 없나? 계속 깐죽거리는 거 봐.”
“누가 봐도 충격 먹었는데 굳이 건드려서 인터뷰를 해야 해?”
“그나저나 대체 투표수 왜 저래? 뭔가 조작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야?”
도경과 하나의 무대 덕에 훈훈했던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조용하지만, 스튜디오 안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형평성에 대해 긴가민가하며 두 MC들의 가벼운 태도에 대한 싸늘함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기류를 같은 방청객에서 느끼고 있던 소녀들은 무언가 찔리는 표정으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언니 어떻게요? 상황 지금 조금 이상해진 것 같은데...”
“몰라! 내가 알 봐야?”
“그래도... 지금 이 상황. 우리 때문이잖아요.”
“그럼 너는 저기 박도경하고 하나가 우리 오빠 이기는 걸 보고 싶어?”
“그건... 아니죠.”
“그래. 아이돌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돕겠다는데 뭐가 이상해. 그냥 조용히 있어. 어차피 우리한테 아무것도 못 하니까 말이야.”
“......”
내심 이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기엔 그녀들은 미성숙했다.
‘나를 위해서 한 것도 아니고 오빠를 위해서야...!’
팬들에게 있어 최고의 주문.
그 어떤 것을 해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이 절대 주문을 읊으며 그녀는 최승환을 향해 몽롱한 시선을 보내며 바라보았다.
씨익.
“오늘 우리 애들에게 서비스해줘야겠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최승환은 표정관리 못하는 도경을 보며 웃음 지으며 자신의 소녀팬들에게 무엇으로 보답할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 최승환은 지금 이 상황이 자신의 소녀팬들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뭐, 일부러 그러라고 저 녀석과 말을 섞은 거니까 말이야. 후후.’
최승환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팬 관리만큼은 철저히 하고 그녀들의 특성에 대해 파악해 두었다. 그것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힘의 근원이자 어떻게 이용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유용한 노예가 되어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스러운 노예들은 의도한 대로 훌륭히 일을 마쳐주었다
“아하하. 오늘은 오랜만에 발 뻗고 자겠어.”
키득키득.
눈엣가시 같았던 도경.
그렇기에 그의 행보를 눈여겨봤고 그가 실패를 해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도경에게 실패와 굴욕을 동시에 안겨 준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최승환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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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죽는군.’
악의로 가득 찬웃음과 파동을 느끼며 도경은 속으로 최승환을 비웃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신에게 이런 조악한 술수나 쓰는 그의 선택에 불쌍하다 싶을 정도였다.
‘팬들을 이용하는 거야 내 알 바 아니지만, 다만...’
도경은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하는 그의 태도를 비판할 생각은 없었다.
그 또한 가르드 대륙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수많은 적들과 권모술수를 치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파멸시킨 경험이 있기에 깨끗한 사람인 척 할 생각이 없었다.
‘힘을 휘두를 땐 조심은 했어야지.’
깨끗하진 않지만, 도경은 힘을 휘두를 때 별것도 아닌 것을 이유로 휘두르지 않았다.
힘을 휘두를 때는 도경은 선을 확실히 그어가며 행동했다.
도경에게 선이란 자신에게 악의를 품은 자와 호의를 품은 자. 그리고 최승환은 자신에게 악의를 품은 자였다.
‘슬슬 시작해 볼까?’
피식.
파멸까진 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둬들일 최승환의 미래에 도경은 웃음 지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하하하! 제가 뭘 욕이나 하겠어요.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요.”
[응?]
굳었던 표정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활짝 웃는 도경의 모습에 모두들 놀랬다.
천진난만한 하나조차도 의기소침해 마다하지 않는 상황 속에 크게 웃음 짓는 도경이 모두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라? 도경 씨는 하나처럼 아쉽지 않은가 보네?]
‘그래. 그래도 MC를 해서 그런지 눈치가 있구나.’
자신들이 좀 전에 내뱉었던 멘트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고 있는 것을 느끼며 난감했는데 고맙게도 알아서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도경을 보며 선현욱과 김정주는 미소 지었다.
도경도 그 둘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씨익.
“네 괜찮습니다. 다만 하나에게 미안하네요.”
[응? 미안하다고요?]
“네.”
[뭐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거죠? 그래도 실수 없이 잘 마무리하지 않았나요?]
‘미안하지 너희들한테...!’
도경은 MC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방청객 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방청객들에 비해 확실히 연령이 어린 소녀들을 확실히 보면서 도경은 천천히 또박또박 한마디씩 건네었다.
“제가 인기가 없어서 [팬]이 없어서 말이에요.”
[네!?]
“제가 팬이 없잖아요. 이래서 팬 없는 연예인 생활은 서러운 가 봐요.”
[하하하.... 도경 씨가 팬이 없긴요. 이미 임꺽정으로 지금 인기몰이하시는데 배부른 소립니다.]
“하하하. 그런가요? 그럼 유독 이곳에만 제 [팬]이 없는 거였네요. 아쉽네요. 하하하.”
웅성웅성.
계속해서 한군데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면서 [팬]이란 단어를 강조하면서 말하는 도경의 말에 MC 둘은 뒤늦게 도경이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는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로 굳어버렸다.
“저,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 해도 될까요?”
[하하.,,하... 뭐 또 할 말이 있는 건가요?]
“네! 별건 아니고요...!”
‘뭘, 또 이야기 하려고..!?’
도경은 진한 미소를 피어 올리지만 MC 둘의 얼굴은 죽을상이었다.
그가 무엇을 내뱉을지 예상이 가지 않겠지만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도경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만족하시죠? 그러니까 이젠 저 미워하지 않는 겁니다.”
“...!?”
웅성웅성.
도경의 말에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MC들은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도경의 말을 끊었지만 헛수고였다.
[큼큼! 도경 씨. 뭔가 오해의 발언 소지가 있은 것 같은데?]
“오해요? 제 무대가 고작 208표를 받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은데요?”
[에이~. 도경 씨 너무 막 나간다.]
[그래. 도경 씨. 결과가 납득이 안 가는 심정은 이해하는데 이렇게 막말을 하면 안 되지.]
“그래요? 그럼 한 번 확인해 볼까요?”
[응!?]
저벅저벅.
“자! 제가 오해를 한 건지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이잉.
MC들이 말릴 새도 없이 무대 앞으로 나선 도경은 방청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웃는 와중에 자신의 목소리에 능력을 담아 외쳤다.
“이 모든 게 제 오해라면 저는 은퇴하도록 하겠습니다.”
[으, 은퇴!?]
도경의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에 모두가 당황해하고 도경은 모두의 이목을 이끌며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저와 하나에게 표 주신 분들은 손!”
우웅!
스스스.
도경의 말에 그에게 표를 주었던 사람들은 한둘씩. 도경이 했던 것처럼 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방청객들이 일사천리로 빠르게 손을 들어 올리는 덕분에 빠르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게 이상한 광경을 발견하고는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도경과 하나에게 표를 주었던 사람들 모두가 손을 드는 가운데 속에 덩어리로 뭉쳐서 손을 들지 않는 그룹이 이곳저곳에서 띄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든 그룹들이 하나같이 소녀라는 이상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인위적인 현상에 모두가 따가운 눈초리로 그녀들을 바라보았고 무대 위에서 손을 들어 올리고 있던 도경은 손을 내린 후 뒤 돌아 MC를 둘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다행이네요. 저 은퇴 안 해도 되겠네요.”
[......]
제대로 폭탄을 던진 도경의 행동에 MC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수습한다거나 진행을 하기에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피식.
‘그러 길래 왜 건드려?’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던 최승환의 얼굴이 흙빛으로 바뀐 것을 바라보며 도경은 웃음을 터트렸다.
“멍청한 놈. 1등은 축하한다.”
세상에서 제일 쪽팔린 1등.
그것을 거머쥘 불쌍할 주인공을 보면 나오는 것은 웃음밖에 없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