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54화 (154/357)

154화

[BAOBAB]

청담동에 고급스러운 건물 안으로 들어선 두 남자.

“간단한 이야기 할 것 치고는 꽤나 휘황찬란하네요.”

“그런가? 보통이라고 생각하는데.”

황금색의 바오밥 나무가 새겨진 문을 열고 드러난 바 안의 풍경은 도경의 말대로 화려했다.

바안의 가운데는 거대한 바오밥 나무와 주변으로 오아시스의 풍경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는 가게.

꽤나 이국적인 풍경 속에 많은 사람들이 술과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하긴 너는 신인이이였지. 아직 이런 곳의 경험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어.”

피식.

“뭐, 조금 다르지만, 그렇다고 하죠.”

‘애송이 취급받아 버렸네. 재밌는 경험이야.’

자신의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 정용환의 말에 도경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어떤 종자인가?

여행 내내 다녔던 곳들의 주된 장소들 중 하나가 다양한 술집들과 바였다. 험악하고 더러운 술집도 돌아다녔지만, 이곳보다 화려한 곳도 돌아다닌 경험이 많았다.

고급스러움에 위축되기엔 이미 도경이 겪은 경험들은 다사다난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니 한국의 술집들은 돌아다닌 적이 별로 없구나.’

보통 술을 마셔도 은하수 카페 안에서만 지인들과 마셨던 것을 깨달은 도경은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국에 있는 술집들을 돌아다니자 생각을 문득 떠올렸다.

“앉지.”

“네.”

가게 안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2층 자리에 앉은 도경과 정용환은 서로가 원하는 술을 주문하고 침묵을 지키며 자리에 앉아 아래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

“......”

솔직히 따라 오긴 했지만, 도경은 정용환에게 할 말은 없었고 용건이 있는 정용환은 도경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있으니 두 남자는 평행선을 이루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것은 주위환경 분위기가 침묵을 지켜도 볼거리들이 많아 그리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이곳 어때? 괜찮지?”

“네. 나쁘지 않네요. 깔끔도 하고 이색적인 게 볼거리들이 많네요.”

씩.

“다행이야. 사실 이곳은 나에게 인연이 있는 곳이거든.”

“인연이요?”

도경의 질문에 마침 시켰던 술과 과일 안주가 나오고 글라스와 술병을 받아들인 정용환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이곳에서 도한이 형을 만나 스카웃 제의를 받았거든.”

“아, 그래요?”

피식.

“처음에는 호스트 제의인 줄 알았다니까.”

“하긴 선배님 정도의 얼굴의 바텐더라면 꽤나 그런 제의를 많이 받았겠네요.”

“그래. 그래도 이곳에서 명물이라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했으니 말이야.”

“여자 손님들에게 말이죠.”

“하하하. 맞아.”

정용환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의 바텐더로 이곳에 일할 때 명물로 소문날 정도로 가게에 많은 손님이 왔었다.

그중 여성손님이 태반이라는 건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많이 놀랐어요. 선배님 쪽에서 갑자기 술 한잔하자고 해서 말이에요.”

“...그래. 그럴 거야.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우린 첫 만남 부터가 꼬였으니까.”

“뭐, 좀 그랬죠.”

도경의 말에 정용환은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사실 도경과 정용환의 사이는 애매했다.

오디션장에서 차도한을 사이에 두고 서로 소란을 벌이기도 하였고, 임꺽정 배역을 두고 경쟁하여 도경은 임꺽정을 정용환은 남치근을 맡게 되는 등. 좋은 사이를 구축하기엔 조금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일이 껄끄러운 것들이 많았다.

‘겉보기와 달리 많이 취했나? 파동이 많이 흔들리네. 자책? 혐오? 뭐지? 무슨 일 있나?’

여태껏 드라마 촬영을 간단한 인사와 촬영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는 서로 교류를 가진 적 없는 둘.

그런 둘이 현재 술을 가운데 두고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도경은 정용환이 평소와 달리 감정동요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 하느라 짠을 못했군.”

스윽.

“아직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그러네요. 시간은 많죠.”

팅.

글라스를 자신에게 들어 보이는 정용환을 물끄러미 보며 도경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글라스 잔을 부딪쳤다.

벌컥벌컥!

“크으!”

“원샷”

꽤나 도수가 있는 양주를 시켰음에도 둘 다 한 번에 털어 마신다.

“오랜만의 술이라 그런가? 잘 들어가네. 다시 한잔할까?”

쪼르륵.

“오늘...”

“응?”

잔을 비우자마자 술병을 들어 올려 자신의 잔에 그리고 도경의 잔에 술을 채우는 정용환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도경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평소랑 많이 다르시네요.”

“하하. 평소 내 모습이 뭔데?”

“연기밖에 모르는 기계랄까? 흐트러짐 없이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

“그래? 연기밖에 모르는 기계라...”

도경의 말에 정용환은 자신의 턱을 손으로 받치며 무언가 생각에 빠졌다.

“.......”

덕분에 도경과 정용환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지만 도경은 애써 그 침묵을 깨지 않았다.

정용환의 사색을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도경의 배려를 느꼈던 것일까? 정용환은 도경을 보며 천진난만한 눈빛을 빛냈다.

“그거 알아? 사실 나는 그렇게 연기에 별생각 없었던 거.”

“음? 의외네요.”

정말로 의외의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정용환이 작품을 대하고 연기하는 모습은 정말 배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지독하고 철저했기 때문이다. 연기에 대한 자부심과 작품에 대한 열의는 절대 돈만 보고 하는 연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사람 인생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더라. 다 이게 도한이 형 때문이지.”

“차 매니저님이요?”

“그래 그 바보 같은 형 말이야. 예전하고 많이 바뀌어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하던데? 너도 슬슬 알 텐데? 그 형이 얼마나 똥고집이고 병적으로 작품과 배우를 사랑하는지 말이야.”

끄덕.

“그렇긴 하죠. 얼마나 귀찮게 하냐면...”

만물상처럼 밴 안에 가득한 잡동사니들과 식단과 수면까지 관리하려는 차도한의 행태를 말하는 도경의 이야기를 들은 정용환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말에 동조했다.

도경에게서 듣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까닭이다.

두 사람의 공통분모인 차도한의 존재가 입 밖으로 나오자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지기 시작했다.

“하하하. 역시 그랬구나. 많이 분위기가 바뀌었다 했는데 그 형은 여전히 변함없어...”

물끄러미.

“....”

“저기, 뭐 좀 물어 봐도 될까요?”

“응? 물어볼 거?”

피식.

“아마도 도한이 형과 내 관계를 묻고 싶은 거겠지.”

“맞아요. 솔직히 선배님이 차 매니저님한테 보이는 태도 조금 이상한 거 아시죠?”

“인정해. 하지만 그만큼 그 형이 나에게 보통 존재는 아니어서 말이야...”

정용환은 도경에게 자신과 차도한과의 만남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처음 인연과 만남은 오래된 소년 만화에서나 볼법한 서툴기 짝이 없는 혈기왕성한 만남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배우 하자니까!)

(아니, 배우는 아무나 해요? 그리고 생활비 벌기도 빠듯한데 그만 하세요.)

(아니라니까! 너 재능 있어. 너 전번에 여성들에게 한성구 성대모사 치는 거 봤는데 분명 잘할 거라고.)

(참나... 작업멘트 하나 보고 재능은 무슨...! 그리고 [JY]에서 연기자 키운다는 소리는 못 들어 거든요? 당신 사기꾼 아니에요?)

(이렇게 어설픈 사기꾼이 어디 있어? 이번에 새로 [JY]에서 배우들을 육성해서 키우는 거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들어와. 초기에 개국공신이 될 기회라고!?)

(개국 공신은커녕 생고생할 것 같은데요? 저는 바텐더 하는 게 목적이니까.)

(야, 바텐더는 무슨 솔직히 네가 만든 술 더럽게 맛없다고 다들 네 얼굴 보고 사는 거니까 그 꿈은 접지그래?)

(뭐라 구요. 말이면 단 줄 알아요?)

한창 서로가 혈기왕성한 시절에 만난 첫 만남.

결국은 정용환은 차도한에게 설득당해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의 말대로 [JY]에서 초기에 연기자를 키우려고 하는 만큼 정용환은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받고 빠르게 데뷔할 수 있었다.

“개국공신? 참 내 내가 그 인간한테 속아서 얼마나 고생 했는지 아냐? 데뷔만 빨랐지 수모란 수모는 다 겪고 진짜 제대로 밑바닥에서부터 구른 거 이야기 하면 책 5권정도 나올 걸?”

달그락.

“......”

업계에서 가수 아이돌만 키우던 [JY]엔터테인먼트에서 키운 연기자에 대한 불신. 그리고 무명의 신인보다는 쓰더라도 인지도 있는 아이돌을 출연시키고 싶어 했던 탓에 정용환은 끼어 팔기 그 이상의 제대로 된 배역을 받지 못했다.

덕분에 정용환이 주로 활동하고 맡았던 배역은 끼어 팔기를 받았던 단역과 [JY]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의 출연 이외에는 나머지는 골방에 틀어박혀서 연기연습을 해야 했다.

골방에서 독하게 연기연습을 한 것도 곰팡이 피고 습한 지하단칸방에서 있기 싫어서 그랬던 것이었다.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맞아. 고생 많이 했지. 지금은 나아졌다고 해도 너희 회사 예전에는 정말 주먹구구식이었어. 차라리 사업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덜 했을 텐데 워낙 음악만 하는 사람들 위주로만 회사를 굴러 가서 말이지.”

‘심하긴 했구나... 하긴 다들 딴따라였을 테니까.’

정용환의 말을 들은 도경은 박진용을 떠올리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말대로 초창기 [JY] 엔터테인먼트가 얼마나 어설펐던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정용환이 회사를 옮긴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다만 납득이 가지 않는 게 있지.’

“그래도 우리 회사에서 성공하시지 않으셨어요? 말 들어보면 정용환 선배님의 첫 주연 드라마 성공 후 독립영화까지 대박 치면서 [JY] 연기자로서 입지를 다지셨잖아요. 굳이 저희 회사를 떠나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그것도 그런 형태로...?”

기획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대우하지 않는다면, 아티스트가 떠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정용환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대중의 인지도를 얻는 연기자 되는 데 성공하였다.

성공함과 더불어 차도한이 했던 말처럼 [JY]소속의 제대로 된 배우가 될 수도 개국공신으로 간판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

말을 들어보면 고생한 만큼 대우 또한 어느 탑 스타 부럽지 않게 계약조건을 제시해주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함께한 매니저를 그렇게 버리고 돌아설 만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후후후. 그런 형태로 헤어질 이유라...”

도경의 말에 정용환은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

“욕심이 났기 때문이지.”

“욕심이요?”

“내가 19살 겨울방학 때. 서울로 상경하고 도한이 형을 만나면서 무명시절이 4년. 도한이 형이 준비할 시간을 달라며 군대에 가서 1년 반.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연치 않게 도한이형 따낸 독립영화랑 케이블 드라마가 터지는 데까지 2년이 걸렸어. 정신 차리고 보니까 이미 나는 20대 중후반이더라. 아, 뭐 내가 늙었거나 고생했다고 이야기 하는 게 아니야. 다만...!”

“다만?”

“더 뜨고 싶었다는 거지.”

“네?”

“하하하. 뜨고 싶었어. 그것 말고 더 이유가 있겠니?”

갑자기 자신의 연대기를 이야기하다 뜨고 싶었단 이야기를 꺼내는 정용환의 말에 도경은 살짝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뜨고 싶다라는 이유로 차도한을 버린 이유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첫 번째 성공을 가지게 된 계기는 그가 따온 작품 때문이 아니겠는가.

“선배님의 실력과 열정이라면 그런 더러운 수를 안 써도 뜰 수 있었을 텐데요. 아니, 떠나더라도 차 매니저님에게 비수를 꽂지 않고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싸늘.

“후후후. 그래 네 말이 맞아. 내 실력이면 시간이 지나면 뜰 수는 있었겠지. 그리고 도한이 형하고 그런 결말도 맞이하지 않았을 거야. 근데 나는 단순히 뜨고 싶었던 게 아니야.”

“네?”

“젊은 나이에 뜨고 싶었던 거지.”

“!?”

벌컥벌컥.

글라스에 담긴 주홍빛 액체를 벌컥 마시는 정용환은 입가를 닦으며 쓴 미소를 지었다.

“도경이 너는 저 하늘 위에 있는 탑 스타들의 공통점이 뭔 줄 아니?”

“......”

“젊을 때 제대로 뜬다는 거야.”

“...!”

“제대로 떠야!”

탁!

테이블 위에 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정용환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작품을 가질 수도 있어.”

정용환은 자신의 기세에 지지 않고 맞서는 도경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정말 대단한 녀석! 너 같은 녀석이야말로 톱스타가 될 자질을 타고난 녀석이겠지...’

욱신.

정말 속이 쓰릴 만큼 대단한 신인이다.

데뷔하자 1년도 안 된 사이에 춤과 노래. 예능이며, 드라마며 대중들의 시선을 주목 모으고 있는 괴물 같은 신예.

도경과 함께 연기한 정용환은 도경이 그 누구보다 성공할 것을 확신했다.

‘나는 네 녀석이 부럽다...’

자신과 달리 실력으로만 그 자리에 올라설 도경.

그리고 그의 옆에서 그를 보조하고 지켜볼 차도한을 떠올리며 정용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꾹.

‘그래서 부숴 버리고 싶기도 해...!’

[질투]

부러움과 질투라는 그 감정이 자신 안에서 들끓는 게 느껴졌다.

취기에 몸이 비틀거림에도 정용환은 또렷이 도경을 주시하며 눈빛을 빛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