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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55화 (155/357)

155화

자신을 향해 질투의 눈빛을 보내는 정용환을 보면서 도경은 그가 돌아선 이유가 단순하지만 가벼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

‘이거는 단순히 욕할 수 있는 게 아니네.’

도경의 눈에서 싸늘함이 사라졌다. 그도 그럴게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용환이 말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

정상에 올라가서 원하는 작품을 가지고 싶다.

“하하. 이해했구나. 역시 너는 보이는 것과 달리 단순하지 않았어.”

배우들은 눈에 머무르는 감정을 잘 읽는다.

도경의 눈에서 떠오른 온도 차를 느낌 정용환은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너도 알잖아? 이쪽 판은 참 잔인하다는 거. 나이에 맞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야. 특히 20대 때 탑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더욱더 한정되어 있지. 실력가지고는 될 수 있을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거야.”

“......”

점점 체계화 되는 엔터테인먼트와 자신들의 아티스트들을 어떻게든 뜨게 만들기 위한 치열한 전쟁 속에 정용환이 몸담고 있던 [JY]는 배우에 대한 매니지먼트 능력이 많이 부족했고 비즈니스적으로 너무나 요령 없이 깨끗했다.

“뭐, 그것에 대해서 비판할 생각은 없어. 예전에는 그런 회사운행 방침에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배우인 나에게 있어 회사의 운영과 한계는 나를 절망하게 하기에 충분했어...”

오래 버틴 지금에야 이것이 강점이 되고 경쟁력이 되었지만, 정용환이 있었을 때는 그에게 있어 족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회사의 힘이 아닌 힘들게 차도한과 정용환 둘이서 이뤄낸 배우로서의 첫 성공.

보통이라면 이 기세로 고공행진을 할 것이라 생각을 하겠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JY]는 미국진출의 실패로 인해 국내 음악 기획사로서 정체성을 다시 찾고자 내실을 다지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그것은 정용환에게 큰 절망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도경이 너라면 내 상황에 어쩔래? 힘겹게 얻은 첫 성공을 시작으로 쭉쭉 올라가야 하는 배우가 있는데 아이돌에게 투자하는 회사에 있다면 말이야.”

“그야...”

배우로서 크기 위한 양분이 필요할 때. 자신이 속한 소속사는 다른 곳에 양분을 쏟고 있었으니 정용환의 그 당시의 어떤 심경을 느꼈을지 대략 짐작이 갔다.

‘회사도 정용환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문제다...’

지극히 흑백을 가리기 힘든 현실적인 문제에 도경은 할 말이 없었다.

내실을 다진다는 회사의 선택은 틀린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투자한 아이돌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익으로 회사의 내실을 훌륭하게 다지게 되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정용환이 회사에 나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면, 그가 지금처럼 성공했을지를 생각해 본다면 회의적인 결론 이를 수밖에 없었다.

아삭.

“가수와 아이돌에게는 성공을 위해 무대가 필요하듯이 배우에게는 작품이 필요하지. 그 당시의 나에겐 CF가 아니라 작품이 필요했어. 하지만 그 당시 내 소속사는 그것을 해주지 못했지.”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과일로 입안에 있는 독한 알콜을 씻어내는 정용환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작품이 뜨고 인지도가 오르면 자연스럽게 배우를 찾는다 생각하는데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좋은 작품. 스타를 향해 나아갈 것 작품들은 이미 다른 이들이 선점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20대의 어린 배역들이 주인공을 맡는 제대로 된 작품들은 유독 치열하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 운 좋게 얻어걸린 한 번의 성공과 [JY] 운영능력으로는 그 자리를 차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틀리지 않았어!’

만약 그 당시 소속사를 옮기지 않았다면 평작 속에서 헤엄치며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기회를 기다려야 했을 것이라 정용환은 확신했다.

“어때? 내 선택이 조금은 납득이 가?”

끄덕.

“이해합니다.”

정용환의 입장과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범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자리이다.

끊임없는 노력은 기본으로 해야 하고 자신의 젊음과 시간을 투자하며 모든 것을 다 쏟아내어야 닿을까 말까 한 자리.

그 자리를 위해 어떨 때는 밑바닥의 인간이 되어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할 정도로 정상이란 자리는 그리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었다.

소속사를 등지고 자신과 오래함께 했던 매니저를 버린 것은 어떻게 보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저라도 그 상황이라면 소속사를 등지고 떠났었을 겁니다. 차 매니저님을 져버린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응?”

다만 도경은 정용환의 행동에 납득이 가지 않는 게 있었다. 그리고 왜 정용환에게서 자신이 짜증이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왜, 후회하는 거죠?”

움찔.

“후회? 내가 후회한다고?”

“네. 선배님은 지금 후회하고 있어요.”

또렷한 눈빛으로 흔들림 없이 전해오는 도경의 말에 술을 마시려던 정용환의 손을 멈추고 자신이 그 말에 심하게 동요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후회...? 내가 후회하고 있다고?’

틀리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2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 [JY]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업적을 [ED]에서는 마법같이 이루어 내었다. [ED]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배역은 어떻게 해서든 가져왔고 자신은 탐욕스럽게 그것을 먹어치우며 성공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현재 손에 꼽는 대세 스타 배우가 되었다.

지금 임꺽정에서도 도경과 더불어 투 톱으로 40프로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또 다른 성공의 길을 걸어갈 자신이 후회한다?

“그럴 리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회라니. 자신의 여태껏 노력했던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단어였다.

정용환은 도경의 말을 부정하려 하였다.

“하... 후회라니 그럴 리 없잖아. 너 재밌는 말을...”

“차 매니저님 때문이죠.”

덜컥.

“......”

‘참내 정도가 있지. 두 사람 다 어쩜 이리 똑같을까.’

자신의 말 한마디에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동요하는 정용환의 두 눈에 도경은 한숨을 내뱉었다.

“버렸으면 미련 없이 앞만 보고 가야지. 대체 뭐 하는 건데요?”

“.......”

‘두 사람 다 말이야.’

믿었던 동생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를 받아 마음의 문을 닫은 매니저와 성공을 위해 자신의 매니저를 저버린 스타.

이 둘 다 도경이 봤을 땐 갑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차도한은 아직도 상처와 미련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상처를 준 정용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머쥐고 성공의 길을 걸어가는데 후회와 자책이란 얼룩에 물들어 있었다.

피식.

“정상을 향해 가는 거 아니었어요? 왜 지금 와서 쓸데없이 갈팡질팡하세요.”

‘질척이는 것을 보는 것만큼 짜증 나는 게 없는데 말이야.’

도경은 이 두 사람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찢어지면 다들 제 갈 길을 가야지. 별것도 아닌 일로 두 사람 다 과거에 얽매여 제대로 나아가지 못 하는 모습은 갑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거야말로 되게 바보 같은 거 알죠?”

울컥.

“...시끄러워.”

“음?”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그게 그리 쉬운 거였으면...!”

‘젠장!’

도경의 올곧은 음성에 정용환이 흥분한 노기를 띠며 그를 노려보았다.

‘꿈을 꾸게 해주고 항상 응원해주었던 형을 배신해야 했던 내 맘을 네가 알아!?’

정용환은 그렇게 속마음으로 그렇게 소리 질렀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았다.

아니, 내뱉을 수 없었다.

남을 원망하거나 힘 들다고 푸념하기엔 자신은 배은망덕한 가해자였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미련 없이 앞만 보라고? 그래! 그래서 미친 듯이 노력했단 말이다!’

자신이라고 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도경이 말하지 않아도 차도한의 등에 비수를 꽂은 순간 정용환은 뒤돌아보지 않고 쭉 앞을 보며 달려왔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더욱더 필사적으로 성공을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용환은 성공을 함에도 향락과 사치 따위에 한눈팔지 않았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꾸준한 연습. 배우로서 톱스타란 목표를 위한 미래설계에만 집중했던 나날이었다.

‘괜찮았었단 말이다. 그런데 다 네가 망쳐났지...’

그런데 한 인물을 만난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자신이 걸어왔던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다 너 때문이란 말이다.’

도경을 보면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이 다시 일어섰다.

숨 가삐 달려오며 힘겹게 성공을 이루었지만, 도경이란 존재를 볼 때마다 자신의 성공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나도 저럴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과 달리 톱스타로 향하는 길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고 있는 도경의 존재를 보며 정용환은 자신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 선택이 사실은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괴롭히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개소리!’

뿌드득.

“후우...!”

심한 내적갈등 속. 정용환은 숨을 고르며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온갖 충동적인 말들을 그에게 내뱉고 싶었지만, 자신의 속마음들을 도경에게 내뱉는 순간 자신이 밑바닥으로 추락할 것을 알기에 그는 꾹 참았다.

진흙탕 같은 마음을 새파란 후배 앞에 보이기엔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잠시 흥분했군.”

“선배님은 정말 쓸데없이 고집이 세네요. 그냥 속마음을 터트리는 게 나았을 텐데 말이에요.”

“...그러기엔 멀리 왔지.”

“쩝, 개폼잡기는...!”

중얼.

‘똥고집!’

도경은 정용환이 자신의 자책과 후회를 자신에게 터트려 주길 원했다. 그렇다면 그가 내뱉었던 마음들을 그대로 차도한에게 전해 줬을 텐데 말이다.

‘어렵다. 어려워...! 둘 다 더럽게 어렵게 산다.’

조금만 융통성 있는 사람이라면 쉬웠을 텐데 정용환과 차도한 두 사람 한 고집하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는 책임감이 강한 남자들이었다.

이런 유형들일수록 꿍해 있으면 풀기 어려운 것을 아는 도경은 입맛을 다셨다.

‘후, 무리려나?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응어리는 풀게 해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촬영 중. 열연한 나머지 몸을 혹사시켰던 정용환이 비틀거리던 모습을 보며 걱정 어린 눈초리를 보내었던 차도한의 모습이 떠오른다.

쓸데없는 오지랖 좀 부려볼까 했는데 부질없었던 모양이었다.

---

“......”

도경이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있을 때.

정용환은 또한 도경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어 있었다.

‘짜증 나지만 이 녀석은 나랑 다르다.’

계속해서 도경을 보면서 속에서는 그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심이 솟아오르지만 정용환은 그 감정을 억누르며 깊은 고심에 빠지었다.

욱신.

‘정용환. 뭘, 인제 와서 망설이는 거냐?’

꾹.

추잡한 마음과 술기운은 그의 선택을 계속해서 종용하지만, 그는 섣불리 그 감정에 몸을 맡기지 않았다.

‘도한이 형.’

계속해서 자신의 눈앞에 이른 거리는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안돼!)

(형!)

(어떻게 회사를 등칠 생각을 하니? 성공하고 싶다는 네 마음을 알겠지만, 이 방법은 잘못됐다. 내가 중재할 테니까. 솔직히 사장님한테 이야기하자.)

(형! 정말 이럴 거예요? 눈 한 번만 딱 감으면 박현석 감독 작품의 주연을 맡을 수 있다고요.)

(야! 정용환이!!!)

(...!)

정용환과 [JY]와 재계약을 앞둔 시점.

갑자기 [ED]에서는 정용환이 자신의 소속사로 온다는 소문을 퍼트렸고 이에 [JY]는 사실무근이라며 강경한 대응을 보였다.

미국진출 실패 덕에 주가가 흔들리고 있는 와중 자신의 소속사에 뜨고 있는 배우가 소속사를 이전한다는 소식은 더욱더 상황을 악화 일로를 겪게 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JY] 측에서는 구두지만 정용환이 자신과 재계약을 할 거라는 의사를 확인했기에 [ED]가 계속해서 그런 소문을 퍼트린다면 법정소송까지 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형. 제발요 원래는 말하면 안 되는 건데 형이니까 얘기하는 거예요...! 그냥 저랑 같이 ED로 가요. 네?)

하지만 불행히도 [ED]와 정용환은 한패였다. 그 사실을 뒤늦게 정용환에게 들은 차도한은 곧바로 그에게 큰 화를 내고 있었다.

(용환아! 이딴 더러운 수작질로 성공하려고 해선 안 된다. 신용을 어겨선 안 된다고!)

울컥.

(...더러운 수작질이요?)

피식.

(음?)

(신용이라. 지금, 신용이라고 말했어요? 정말 잘도 그런 단어를 입에 담네요.)

(용환아!)

[ED]에서는 거부하기 힘든 거래를 정용환에게 제의하였고 대신에 자신들이 가져온 한 가지의 시나리오를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건 바로 [JY]를 등지는 [노이즈 마케팅]이었다.

(신용은! 형하고 배역하나 제대로 따오질 못하는 무능력한 소속사에서 먼저 저버렸잖아요. 그러니 그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죠.)

신생엔터테인먼트임에도 불구하고 [JY]에게 시비를 거는[ED]엔터테인먼트는 누가 봐도 뒤가 구렸지만, 박현석 감독을 직접 만나 작품의 주연 자리를 약조 받은 정용환은 눈이 돌아간 지 오래였다.

힘겹게 작품을 히트 친 후.

배우로서 활약하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반년간 CF 말고는 변변치 않은 작품의 시나리오를 받았던 그에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용환이, 너 어떻게 그런 말을...!?)

(왜요? 제가 못할 말 했어요? 저, 할 말 되게 많아요.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

(저한테 약속했잖아요! 자기만 믿으면 남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스타가!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이게 뭐나 구요!? 지키질 못할 약속을 대체 왜 하신 거냔 말이에요!!!)

그 당시 여태까지 쌓여왔던 갈등과 서운함이 폭발하고 그것은 해선 안 되는 말을 내뱉게 하고 말았다.

(사기꾼...!)

(...!)

(할 마음 없으면 내 눈앞에 사라져 사기꾼아! 더 이상 내 발목을 잡지 말란 말이야!!!)

---

욱신.

잊고 싶던 기억을 회상한 정용환은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굳은 표정을 지으며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도경을 바라보았다.

‘이미 바닥을 찼잖냐. 대체 뭘 망설이는 거냐...!’

욱신욱신.

소속사에서 건넨 달콤한 제의. 그리고 또 다른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야 하는 순간 자신의 가슴이 쿡쿡 찔려오는 통증에 정용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기랄..!”

덥석!

“!?”

정용환은 거칠게 술병을 낚아채며 남은 술들을 자신의 입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주르륵.

‘뭐야?’

갑작스러운 정용환의 행동.

도경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제길! 제기랄!’

도경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용환은 자신을 향해 욕설을 내뱉으며 술을 들이킬 뿐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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