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크으으!”
탁!
양주병에 있는 독한 술을 다 들이킨 정용환은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술병을 내려놓은 그는 도경을 보며 의미 불명의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재밌는 일이 생길 거야.”
“재밌는 일?”
“내가 자리에 일어나면 아주 아름다운 여성이 너에게 다가올 거야. 그리고 그 여성은 너를 유혹 할 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말이야.”
“음...!”
“너에겐 두 가지의 선택지가 펼쳐질 거야. 그녀를 거부하느냐? 아니면 그녀와 함께 달콤한 하룻밤을 보낼 것이냐.”
“......”
“바보가 아니라면 내가 말하는 재밌는 일의 의미를 알겠지?”
아무런 고조 없이 말하는 정용환의 말에 도경의 표정이 굳고 말았다. 지금 그가 말해오는 내용이 어떤 것인지 대강 파악이 되었기 때문이다.
‘함정이었나? 그건 그렇고... 함정인 걸 왜 알려주는 거지?’
설마하니 이 자리가 함정 일 줄이야.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던 도경이었다. 연기로 정면으로 부딪쳐온 정용환의 성격상 이런 수법을 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함정에 자신을 데려온 당사자가 함정임을 밝히는 그 이율배반적인 행동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았다.
‘뭘까?’
도경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며 정용환의 행동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정용환의 흐트러진 언행들과 조금 전 크게 갈등하며 심하게 꿈틀거렸던 그의 파동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자신의 의지로 함정을 판 사람이라면 보일 수 있는 유형의 것들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추측하며 도경은 눈빛을 빛냈다.
‘정용환이 판 함정이 아니야. 뒤에 누군가 있다.’
이 함정은 정용환의 것이 아니었음을 도경은 확신했다.
도경이 겪은 정용환은 자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남자임과 동시에 자신이 저지른 과거에 발목을 잡혀있는 요령 없는 남자였다.
“[ED]엔터테인먼트입니까? 아니, 정확히 이런 함정을 파놓은 사람은 누굽니까?”
“......”
“후후후. 그것부터 묻는 거야? 보통은 왜 자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냐 묻지 않아?”
“선배님의 프라이드와 차 매니저님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겠죠. 물어 볼 필요가 있을까요? 속만 쓰릴 텐데 말입니다.”
“,,,재수 없는 놈.”
“하하. 제가 조금 잘났죠.”
도경의 말에 정용환은 정말로 도경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놈이 신인이라고...?’
정용환은 저런 놈을 신인으로 부른다는 것은 신인이란 단어에 모욕이라 생각했다.
연예계 경험이 짧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대범함과 영리함을 겸비하고 있는 도경이란 존재는 정말 비상식적이었다.
‘겉보기와 달리 정말 짜증 날 정도로 영리한 녀석이야.’
보통이라면 자신에게 왜 그랬냐며 물어볼 테지만, 도경은 냉정하게 자신의 행동을 분석하고는 자신이 아닌 뒤에 [ED] 엔터테인먼트를 유추하며 정확히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확신하며 묻는다.
그 도경의 냉철한 모습에 절로 혀가 차졌다.
“쯧.”
‘그 당시의 내가 저랬다면...’
자기 주변의 상황을 유추하고 살피는 능력까지 무엇 하나 빠짐없는 도경의 모습에 말 못 할 씁쓸함이 올라온다.
“[ED]엔터테인먼트의 차현식 PD.”
“차현식 PD...!”
“그래. 조심해라. 아주 교활하고 위험한 작자이니 말이야.”
이미 함정에 대해서 알려준 이상.
굳이 차현식 PD와의 의리를 지킬 필요도 없었기에 정용환은 순순히 도경을 노리는 그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
도경은 그런 정용환의 행동에 정용환이 자신에게 악감정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아니 오히려 그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피식.
“그나저나 너무 후배에 대한 정이 돈독한 거 아닙니까?”
“나 또한 이런 장단이 별로 마음에 안들뿐이야.”
“네네. 아무렴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그 말에 도경은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정용환이 내적으로 심한 갈등할 겪을 만큼 그에게도 무언가 사정이 있음을 예상할 수 있는데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그가 솔직하지 못하다 생각했다.
“제길. 괜한 시간 낭비만 했어.”
벌떡.
도경의 그 많은 의미가 담긴 미소에 정용환은 낯 간지러운 감각에 자리에 일어났다.
페이스를 잃은 것은 지금까지라도 충분했다. 이미 이 자리에서 얻을 것도 볼일도 없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이 자리에 벗어나기로 하였다.
“어, 벌써 가시게요?”
“그럼? 술맛 떨어지는 네 녀석하고 술을 계속 먹을까?”
도경의 말에 한심 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정용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외투를 챙겨 입었다.
“그래도 그렇게 금방 가면 조금은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
“애초에 너만 여기에 데려놓으면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상관없어. 시늉 정도는 했으니 나에게는 뭐라 말 못 하겠지.”
“그래요? 그럼 괜찮겠네요.”
“뭐?”
우뚝.
자신을 챙기는 그 말에 정용환은 몸을 멈추고 도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이 신인은 뭐란 말인가?
함정에 빠져 큰 곤욕을 치룰 뻔했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가 넘치다 못해 궁지에 빠트리려고 했던 자신을 챙기기까지 한다.
‘도한이 형이 정말 말도 안 되는 녀석을 맡았군.’
“너에게 걱정 받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으니. 너나 잘해라.”
“까칠하긴...! 자존심이 밥 먹여 줍니까? 대체 폼을 왜 이리 잡는 겁니까?”
“또라이 같은 놈. 도한이 형은 아무래도 연예인 복이 없나 보군. 나도 그렇고 이번에는 너 같은 놈을 맡다니 고생길이 훤하겠어.”
피식.
‘대신에 꿈을 이루겠지.’
하나부터 열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 녀석이라면 분명 도한이 형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 거야.’
물끄러미.
저런 놈이라면 자신이 못 해낸 일을 차도한에게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도경이 가수 출신이라고 해도 그와 연기를 같이 맞춰본 정용환은 도경이 앞으로 나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연기는 빠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작품과 연기 하는 것을 즐기며 그 정도의 연기력을 지니고 있다면 연기를 안 하고 못 배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저 대로 쭉 변하지 않고 앞을 걸어간다면 도경은 차도한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스타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조금은 빚을 갚은 걸까...?’
차도한에 대한 마음의 빚.
그것이 추하게 들끓는 갈등 속에서도 도경을 도운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정용환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번에는 틀리지 않은 선택을 한 것 같구나. 묘한 기분이야.’
자신이 못해내는 것을 해내는 도경을 보며 씁쓸한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도경에 대해 잘못된 생각들을 하지 않게 된 정용환은 자신의 선택이 이번에는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
단 몇 초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을 뿐인데 정말로 진이 다 빠지는 순간이었다 생각하며 정용환은 도경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그럼 이만 나는 가보도록 하지.”
“선배님. 잠깐만요.”
“응? 뭐 더 할 말이라도 있나?”
“임시관계에요.”
“뭐?”
등을 돌리는 정용환을 향해 도경은 그를 불러 세웠다.
그가 착각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한 가지는 확실히 그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저와 차 매니저님 관계 말이에요. 임시입니다.”
움찔.
“임시?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언젠가 찢어지는 관계라는 거죠. 회사 내 팀장급 매니저 중에 전속으로 담당하는 연예인이 없고 신인의 궂은일만 맡는 유일무이한 별종이라네요. 뭐, 저야 유능한 매니저를 만나서 개인적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말이에요.”
“그런... 멍청한! 회사, 회사에서 그렇게 대우하는 거야?”
도경이란 괴물 같은 신예를 차도한이 맡은 것을 보며 그래도 그의 사정이 나쁘지 않은 줄 알았더니. 모든 게 자신의 착각이었다.
“아니요. 사장님은 전속연예인을 붙여주려 하는데 차 매니저님이 본인은 연예인을 전담할 자격이 없다며 거부하시더라고요.”
“!?”
“참, 사람이 왜 그렇게 요령 없이 사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죠?”
씨익.
“.......!”
꾸깆.
도경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정용환을 바라보았고 그 미소에 정요환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형이...! 도대체 무슨 자격 타령이야 잘못은 내가 했는데!’
도경이 건네는 말에 방금 전. 조금은 가벼워졌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정용환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울컥!
“젠장! 그놈의 똥고집! 알아서 하라고 해!”
그에 짜증나는 마음이 솟구쳐 오른 정용환은 도경에게 화풀이를 하며 거친 발걸음을 옮기지만 이내 몇 발자국 가다 멈추고 말았다.
이대로 가기엔 자신이 도경이 도운 의미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우뚝.
“야! 박도경.”
“네.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이 능구렁이 같은 새끼...! 너 일부러 그랬지?”
“뭘 말입니까?”
“이익...!”
(자격이 없다며 거부하시더라고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메아리에 정용환이 분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됐고! 데려가라.”
도경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는 느낌이었지만, 정용환은 결국 백기를 들어 올리며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뭘 데려가요?”
“새끼야. 내가 너 이뻐서 도왔겠냐? 도한이 형 데려가라고!”
버럭.
“하하하! 네 맡겨만 주십시오.”
“나쁜 새끼...”
자신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도경을 보며 정용환은 욕을 뱉어주고 싶었지만 구차해질 것 같아 빠른 걸음을 옮기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
“하하하.”
서둘러 바에서 나가는 정용환을 보면서 도경은 웃고 말았다.
어찌나 속마음을 드러내는게 서투르기 그지없는지. 그의 붉어진 귀를 떠올리며 도경은 웃고 말았다.
“이제야 본심을 말하네.”
정용환과 차도한 두 사람 다. 이렇게 몰아붙이고 자극해야 속마음을 보이니. 그 매니저에 그 스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직 가능성은 있겠어.”
속마음을 표현 못 하고 꿍해 있는 찌질한 한국남성 둘을 보며 도경은 자신이 제대로 오지랖 좀 부려보자 마음먹었다.
어차피 남의 일이라 하지만 남의 일이라도 눈앞에서 계속 얼쩡거린다면 그것은 자신의 일이 되기도 했다.
“받은 은혜는 보답하는 게 도리지.”
심한 내적갈등을 하면서도 올바른 선택을 한 정용환을 떠올리며 도경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성의 질투보다 남성의 질투가 무섭다고 할 정도로 남자가 질투심을 품고 상대를 노리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도 자존심에 비례하여 강해지는 질투라는 감정이었기에 정용환이 겪었던 내적갈등은 쉬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용환이 그것을 이겨 내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대단한 일임을 도경은 알았다.
자신의 잘못과 모자람을 인정해야만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저기...!”
“음?”
“혹시 임꺽정의 박도경이세요?”
한창 정용환과 차도한의 사이를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던 도경의 근처에 4명의 여성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골라 먹으라는 건가?’
피식.
정용환이 고했던 아름다운 여성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도경은 실소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섹시],[청순],[도도],[귀여움] 네 가지 타입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들이 도경을 향해 호감이란 감정을 띄우며 그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차현식이라고 했나? 뭐 하는 사람이려나?’
함정에 꼼꼼한 디테일 같은 것이 느껴졌다.
꽃뱀을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남자 연예인 특성상. 개인으로 다가오는 것보다 또래 친구들끼리 놀러 온 것 같은 설정으로 다가오는 전략은 그야말로 치밀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2층 Vip만 올 수 있는 조용한 장소에 취향껏 고를 수 있는 미인들이 마련되어 있는 구성은 그야말로 웬만한 남자 연예인들은 당할 수밖에 없는 함정이었다.
“꺼져.”
“뭐, 뭐라고요!?”
하지만 이미 함정임을 아는 이상 도경에게 있어 놀잇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도경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미인들을 향해 모진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나 지조 있는 몸이야.”
피식.
“못난이들한테 취향 없으니까 꺼지지?”
“...”
정말로 상상도 못 했던 폭언에 4명의 여성들의 아연실색한 얼굴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도경이 저런 반응을 보일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조 있기는 분명 헤픈 놈으로 알고 있는데?’
분명 자신들이 조사한 것으로 거릴 것 없는 개방적인 성격이고 남미의 미녀들과 구른 전적이 있을 정도로 여자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신들을 향해 꺼지라니 너무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호호호. 오빠 재밌다.”
“재미는 너희들이 있는 것 같은데? 꺼지라고 했는데 못 들었냐? 비싼 몸이다. 오를 나무를 처다 봐라.”
“뭐, 뭐라고?”
거릴 것 없는 도경의 말에 결국 웃던 그녀의 얼굴에 금이 가고 말았다.
빠직.
‘이 새끼 진짜 또라이 아니야?’
‘어, 언니 어떻게요?’
힐끔.
“칫. 어쩔 수 없지.”
미인계도 우선은 말이 통해야 쓰지.
저렇게 꺼지라고 강짜 놓는 상대에게 어떤 수도 쓸 수 없었다. 이 이상 비위 좋게 들러붙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그림이었다.
‘플랜 B로 가.’
끄덕.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지만 미인계를 지시한 자는 그야말로 철저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그녀들에게 어떻게 할지 계획을 주었기 때문이다.
4명의 여성들은 서로를 향해 눈빛으로 신호 주더니 자신들끼리 보이게끔 고개를 끄덕이며 2번째 계획을 시작하였다
“꺄아아아!”
“음!?”
정말로 갑자기 난데없이 비명 지르는 여성에 도경은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던 웃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언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건 나야말로 묻고 싶다만...?”
“지금 저희 성추행 하셨잖아요.”
“음... 꺼지라고 하는 게 성추행인가?”
“이익!”
도경과 4명의 여성의 대치하며 서로를 노려보았고 그 소란에 주변 사람들이 그들에게로 몰리기 시작했다.
“뭐야? 저거 박도경 아니야?”
“성추행?”
“무슨 일 있나? 왜 저기에 사람이 모여 있어?”
“지금 박도경하고 여자들 몇이 실랑이 벌이고 있대. 박도경이 성추행 했다는데?”
“헐? 진짜?”
수군수군.
남자 연예인의 여성 문제는 세계 인종 불문하고 어디서나 쉽게 접하고 익숙한 가십 거리였다.
그렇지만 언제 접해도 재밌는 사건.
그것도 한창 인기 주가를 띄우며 화젯거리인 도경의 존재에 모두들 재밌겠다는 시선으로 도경과 여성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품속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기 시작한다.
“참내... 급 떨어지게.”
피식.
주변의 상황을 인지한 도경은 재밌겠다는 미소를 지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앞에 있는 여성들이 꽤나 큼직한 대가를 받았구나 생각했다.
“해보자 이거지?”
스윽.
정용환을 신경 써서 조금 어울려 주며 빠지려 했건만, 제대로 물려버린 상황.
도경은 4명의 여성들을 보며 적당히 상대하려던 자세에서 제대로 살풀이 하려는 마음가짐으로 바꾸었다.
“지금 너희들은 나를 죽이겠다고 선포 한 거야.”
"주, 죽여?"
움찔.
“대체 뭔 말 하는 거예요?”
“남자 연예인한테 성희롱 누명을 씌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면 알텐데?”
남자 연예인에게 있어 성추행이란 누명을 씌우는 것은 그야말로 그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죽이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의미.
“너희들을 어떻게 박살내야 할까나...”
자신의 선을 간단하게 넘어선 그녀들을 향해 도경은 기세를 피어 올리며 앞의 여성들에게 천천히 다가 걸어갔다.
저벅저벅.
“뭐, 뭐예요? 오지 말아요!”
“연예인이면 다에요...?”
“아...”
사람들이 모이고 시선의 주목을 받음에도 당황하지 않는 도경의 모습에 여성들이 오히려 당황하며 도경을 향해 윽박질렀지만 도경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응. 더 지껄여봐.”
쿠웅!
“꺽!”
‘뭐, 뭐야? 목소리가 안 나와?’
오싹.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서서 여자들을 살벌하게 노려보는 도경의 모습에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도경과 여자의 대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상황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타다닥!
“너! 이 새끼! 내 여자 친구한테 뭐 하는 거야!?”
“오, 오빠!”
“희진아 괜찮아? 무슨 일이야?”
“그게 저 사람이 내 몸 만지며 성희롱했어.”
“뭐어?”
우르르.
도경과 여자들의 두 인영의 대치 상황 속에 갑자기 나타난 4명의 남자들은 흉흉한 기세를 피어 올리며 인파들을 뚫으며 자신의 여자 친구들에게 다가왔고 연유를 물은 남자친구의 질문에 여성은 도경을 가리키며 성희롱이란 단언에 힘주며 대답하자. 그녀의 말을 들은 남성이 인상을 구기며 도경에게 향했다.
“너 이 새끼 뒤지고 싶냐?”
“!?”
덥석.
찌이익!
팅~!
도경에게 거칠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붙잡아 올렸는데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도경의 셔츠가 찢어져 단추가 뜯겨 나갔다.
툭! 툭...! 데구루루.
“.......”
남자라면 누구나 자존심이 상할 상황.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단추를 말없이 바라보는 도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의 멱살을 붙잡은 남성을 향해 눈을 마주쳤다.
“아, 이거 마음에 드는 셔츠였는데...!”
“뭐?”
“이거 맘에 들어 했던 셔츠...”
“하!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 셔츠가 중요해?”
“응. 중요해.”
씨익.
사내의 그 말에 도경은 눈빛을 빛내며 그의 팔을 붙잡고 그를 향해 해맑게 웃음 지었다.
덥석!
툭!
휘익!
부우우웅!
“어?”
도경의 웃음을 보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은 믿기지 않게도 공중을 가볍게 한 바퀴 돌며 몸을 띄우더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쿠당탕탕!
“커어억!”
곤두박질친 사내는 바닥에 등에서 받은 충격에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맛보며 고통에 몸을 떨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대자로 몸을 누워 최대한 숨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끄으으.”
그 와중에 자신의 옷무새를 가다듬는 도경이 보였다.
“이거. 엄마가 선물로 사주신 거거든.”
“......!”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도경의 마마보이 발언에 모두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도경은 옷무새를 고치며 차현식이라는 존재를 떠올렸다.
‘미인계에, 성희롱에, 치정싸움이라...’
“거, 진짜 제대로 지저분한 놈이 구만.”
하나하나가 상대방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겠다는 악의적인 함정들.
왠지 제대로 박살내고 싶은 놈을 찾은 듯한 느낌에 도경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지어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