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63화 (163/357)

163화

삐비비빅!

탁!

부스럭.

“오늘인가...?”

3일 전에 모든 드라마 촬영을 마친 정용환은 피곤한 얼굴로 자신의 침대에 나와 기지개를 힘껏 피웠다.

꼬르륵.

“배고프다...”

긁적긁적.

뱃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와 동시에 자신의 배를 긁적이는 정용환은 부엌으로 걸어가 선반에 있는 라면을 꺼내 들어 냄비에 물을 받으며 아침밥을 준비한다.

풀썩.

라면에 물이 끓을 때까지 소파에 드러누워 리모콘을 들어 올려 채널을 틀어 재밌는 예능프로그램을 찾는다.

피식.

“한량 백수가 따로 없네.”

TV 브라운관에 비추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말았다.

갓 서울에 상경했던 때가 떠오른다.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그때가 떠오르네.”

라면에 천 원짜리 비엔나소시지가 아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기보다 비싼 스팸을 집어넣는 사치를 부리며 좁았던 6평의 조그마한 방이 100평으로 넓어진 환경과 20인치의 작은 TV가 80인치로 큰 TV 변하였지만 그 당시가 떠올랐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왠지 아쉽네...”

전과 달리 많이 휑한 자기 집의 거실을 바라보며 정용환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집도 애초에 배우의 품위유지를 이유로 받았던 소속사의 것. 이젠 이곳을 나가야 하는 정용환은 일하느라 제대로 집을 즐기지 못한 것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하였다.

힐끔.

“5천 조금 남나?”

소파 앞에 놓인 통장을 들어 올린 정용환은 통장을 펼치며 검소해진 숫자를 보며 묘한 느낌에 종이에 적혀있는 숫자를 쓰다듬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명색이 대세 배우란 존재의 통장에 담겨있는 금액이라 믿을 수 없는 조촐한 액수.

“생각보다 많이 남아서 다행이야.”

고소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정용환이 전속으로 계약을 맺었던 광고회사에서 그에게 위약금을 물기 시작했고 정용환이 가장 정신없을 때를 골라 [ED] 에선 그에게 계약 해지서를 들이밀었다.

덕분에 정용환은 드라마 촬영 이외에는 고소에 이곳저곳에서 날아오는 위약금들을 해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었다.

“CF 계약을 많이 안 맺어서 다행이었어.”

십 억대가 들어있던 돈이 단돈 5천만 원에 홀쭉해졌지만, 실망보다도 빚을 지지 않았던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현재 정용환의 심정이었다.

그렇게 생각도 할 것이 만약 그 본인의 소비패턴이 검소하지 않거나 계약 맺은 업체가 한 두 군데가 많았다면 그는 억대의 빚을 졌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사람 인생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다니까. 그나저나 집은 어떡하지? 5천으로 살만한 곳을 구하기엔 빡셀텐데...”

부글부글.

“아...! 물 넘친다.”

벌떡.

지금 살고 있던 집도 나가야 하는 정용환은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시. 라면 국물로 끓어 넘치는 냄비를 향해 서둘러 달려가 라면과 김치통을 들고 가지고 와서 소파 앞의 테이블에 두고 앉는다.

모락모락.

꿀꺽.

“맛있겠다.”

냄비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라면을 바라본 정용환이 입맛을 다셨다. 요즘 들어 식탐이 부쩍 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그래. 골치 아픈 생각보다는 일단 배부터 채우는 게 우선이지.”

후후!

후루루릅!

쩝쩝!

항상 날을 세우고 철두철미했던 정용환을 떠올리자면 지금의 정용환은 왠지 나사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독기를 품어도 모자란 좋지 않은 상황에 그런 그의 모습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편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기도 했다.

딩동!

“응? 누구지?”

멈칫.

“나를 찾아올 사람은 없을 텐데...”

쿵쿵!

“이리 오거라. 이 문을 열거라!”

“박도경?”

지금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용환의 눈에서 의아함이 서렸지만 바로 문밖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껄끄러운 녀석이 자신을 찾아온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 녀석. 갑자기 왜 여길...”

쿵쿵!

“게 아무도 없는 것이냐?”

“...”

쿵쿵쿵!

“어허! 문 열래도!?”

쾅쾅쾅!

“젠장! 저 또라이 자식 왜 갑자기 찾아와서...!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벌떡

문밖에 이상한 상황극을 벌리며 창피하게 소란피우는 도경의 행패에 결국 손에 쥔 젓가락을 내팽개친 정용환은 벌떡 일어나 현관문의 인터폰을 들어 올리며 소리 질렀다.

“시끄러워!!”

“응?”

“멀쩡한 벨 두고 왜 문을 두드리는데?”

“하하하. 그럼 재미없잖아요.”

“그래? 이제 재미 봤으니까 얌전히 가지?”

“에이. 야박하게 왜 그러실까. 우리 사이에 선배님 자살했나 싶어서 놀러 왔구만. 문 좀 열어줘요.”

“하아...”

천진난만하게 넉살을 부려오는 도경을 인터폰 화면을 보며 정용환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내가 기자회견인 것을 알고 나름 신경 써준 건가? 그건 고마운 일이긴 한 대 그래도...’

“껄끄럽단 말이지...!”

솔직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경과 자신의 애매한 관계부터 시작해 그와 자신의 사이에 껄끄러운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휑한 집안을 보이며 동정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있을 땐 더욱더 말이다.

“와...! 문 당장 안 열어요? 기껏 왔더니만 진짜 보내는 거 아니죠? 그러다 진짜 후회할지도 모른다?”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아, 열라고! 열어! 열어줘요! 선배님! 현기증 나잖아요.”

“그만해!”

벌컥!

은근슬쩍 존대에 반말을 섞어 쓰며 문을 위아래로 쿵쾅거리는 도경의 만행에 결국 참지 못한 정용환은 짜증을 내며 문을 거칠게 벌컥 열고 말았다.

문짝이 떨어질 때까지 쿵쾅거릴 것 같은 도경의 기세에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러게 진작 여시지.”

“너어...!”

부스럭!

“!?”

“드라마 보면서 술 한잔합시다.”

“뭐? 한낮에 술?”

“하하. 모처럼 휴식인데 친구들이 바빠서 놀 사람이 없거든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한가득 가져온 DVD와 한가득 담겨있는 술병을 들어 보이며 도경은 웃음 지어 말하며 그를 밀치고 멋대로 집안으로 들어선다. 그를 황당이 바라보던 정용환은 뒤늦게 멋대로 들어선 도경을 말려보려고 하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

“뭐예요? 그만 좀 튕기고 나랑 놀아줘요. 어차피 백수니까 시간 많을 거 아니에요?”

울컥!

“너...!”

“라면? 이야 나이스 타이밍일 때 왔네.”

타다닥.

“하......”

무심한 어조로 자신을 백수라고 말하면서 라면을 향해 달려가는 도경의 뒷모습을 보며 정용환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미쳤지. 나를 반면교사 삼아서 성공한다는 놈이 저 녀석인데 나를 걱정한다고? 개뿔이다!’

후루릅!

“......”

애써 끓인 라면이 애꿎은 녀석의 주둥이로 들어가는 모습에 정용환은 할 말을 잃었다.

“으음! 맛이 미묘하네. 선배 이거 물 조절 제대로 한 거...”

“꺼져!”

“에이. 안 먹는다. 치사하게 한 젓가락 먹었다고 치사하게 구네.”

“꺼지라고!”

자신의 중요한 날을 제대로 망치는 도경을 보며 어떻게든 다그쳐 보지만 그 강적은 진드기처럼 꿈적도 하지 않는다.

“하하하!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

“진심이야!”

“자자 튕기지 말고 이거나 틀어놓고 있어요. 저는 잔하고 얼음 가져올게요.”

툭.

“College?”

“미국 드라마이던데 재밌더라고요.”

DVD를 건네며 오히려 사 온 술들을 식을까 봐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며 본격적으로 놀 준비를 하는 도경의 모습에 정용환은 자신이 절대 그를 내보낼 수 없음을 알았다.

College(S1-S3)

소주 13병, 맥주 3병, 청하 1병

“하하하!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

“으...!”

아침부터 강행을 시작한 도경의 술 파티와 드라마.

중요한 기자회견이 있음에도 술병을 잡으며 주신이 강림한 도경의 페이스에 정용환은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온갖 선동과 내기를 이용하며 먹였고 게임에도 응하지 않자 남자의 자존심을 긁으며 술을 먹였기 때문이다.

“우우욱!”

후다다닥!

“하하하하!”

“......”

결국 화장실로 달려가는 정용환.

정용환 그는 믿기 힘들 게도 기자회견 2시간 전까지 도경과 어울려 줘야 했다.

--

[기자회견실.]

웅성웅성.

많은 기자들은 로비에 모여 목이 빠지라 정용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용환의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얼마 남지 15분 남짓한 짧은 시간.

그것은 동시에 그가 참여했던 드라마 임꺽정의 마지막 화도 끝을 다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

[......]

임꺽정이 이끌고 온 청석골의 패거리 전부 화살에 꽂혀 고슴도치가 되어 바닥에 놓여있었다.

콱!

[허억! 허억!]

[이해할 수 없군.]

[흐흐흐! 네 녀석들이 우리를 이해해 줬다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와서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부하들의 희생으로 화살비속에 보호받았던 수령 임꺽정만이 남아 있었다.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벅지에 화살을 박혀 있었지만, 도경은 개의치 않고 피를 흘리며 정용환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게...]

[?]

지익 지익.

[이게 네 녀석이 원하는 것이냐?]

다리를 끌면서 앞을 걸어가는 도경이 연기하는 임꺽정의 모습은 처참 그 자체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카메라 앵글을 높이 올려 하이앵글로 전지적 시점으로 잡아 풀 샷으로 때리는 광경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도경의 뒤로 일직선 앞으로 놓여있는 청석골 패거리들의 주검이 보였기 때문이다. 화살비 속에서 자신의 수령을 이끈 흔적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탕 시켰다.

[이런 자포자기식의 개죽음이 네가 원하는 것이냐 말이다!]

[크크크!]

정용환이 연기하던 남치근이 임꺽정을 보며 물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임꺽정은 백정에 미천한 놈이지만 자신의 삶을 태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한 녀석이었다. 아무런 전략도 없이 정면에서 소리 지르며 이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올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었다.

임꺽정의 이런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에 남치근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더러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는 가축과도 다르지 않다고 하더니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쯧...! 끝까지 짜증나는 놈이구나.]

[클클클!]

스릉.

저벅저벅.

그의 말에도 웃음만 터트릴 뿐.

아무런 대답 없이 임꺽정은 위태위태하게 앞을 걸어온다.

[......!]

꿀꺽!

백정이지만 조선을 뒤흔들었던 도적 임꺽정의 최후의 발걸음에 모두의 이목이 쏠려 있는 상황. 관군 쪽에서는 그를 막으려면 진작 막을 수 있었지만, 명종 이환의 제지로 임꺽정은 앞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우뚝.

집념이 담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던 임꺽정은 남치근 바로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산발이 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불끈!

[저 뒤에 있는 녀석이 왕이더냐!!?]

[음?!]

쩌렁쩌렁!

다 죽어가던 사람이라 믿을 수 없는 포효.

도경의 외치는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리듯 우렁차게 울려 장내의 있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도적놈 하나가 무서워서 얼굴조차 계집애처럼 천 뒤로 숨은 게. 정녕 조선의 왕이란 말이냐?]

뿌득.

[네놈...!]

휘이익!

[멈추어라.]

우뚝!

[...!]

바로 앞에 검을 든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뒤에 있는 자신의 왕을 모욕하는 임꺽정의 행동에 남치근이 진노한 표정으로 검을 그에게 휘두르려던 찰나. 임꺽정의 목소리가 명종 이환에게 움직이고 말았다.

저벅저벅.

[전하. 위험하옵니다.]

[시끄럽다. 조선 제일 검이라 칭해지는 토포사가 있는데 무엇이 그리 위험하단 말인가? 정녕 과인을 도적놈 따위가 말한 대로만들 생각이더냐?]

[전하!]

[아니면 조용히 나를 따라 오거라. 조선 팔도를 뒤흔들었던 대도적을 보는 것이다. 좋은 유흥이 될 것이다.]

[...]

잠깐의 실랑이.

아무런 호위 없이 신하만을 대동해오는 오는 명종 이환이 오만한 웃음을 그리며 임꺽정에게로 다가왔다.

[전하 위험하옵니다.]

꾸벅.

[되었다. 다 죽어가는 놈이 뭐가 무서울까.]

[허나...!]

[괜찮대도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구나.]

[...알겠사옵니다.]

남치근은 명종 이환의 옆에 호위하며 임꺽정을 향해 시선을 고정 시킨다. 그가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한다면 당장이라도 벨 기세였다.

[도적놈. 주제에 기개가 대단하구나.]

[네 녀석이 왕이냐.]

[그렇다. 그나저나. 아까 전에 과인을 도발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느냐?]

명종 이환이 임꺽정의 도발에 응한 이유가 밝혀진 순간. 임꺽정은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큭! 그렇다. 그래도 멍청한 왕은 아니었구나. 나는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무엄하다!]

임꺽정의 말에 이환의 옆에 있던 신하가 대경하며 언성을 높였지만, 그의 행동은 오히려 왕의 역정을 사게 된다.

[스읍!]

[저, 전하...!]

[이번에도 쓸데없이 낀다면 내 친히 너를 벨 것이야.]

[...!?]

스윽.

[그래. 물어볼 게 있다고? 내게 물어볼 게 무엇이냐. 내용에 따라서 비루하지만 너의 마지막 어울려줄 의용이 있다.]

[......]

스윽.

임꺽정은 명종 이환과 눈을 마주치며 숨을 고르며 피투성이인 왼손을 들어 올려 보인다.

그리고 그를 향해 묻는다.

[천하디천한 내 피는 붉다. 네 녀석의 피 색은 무슨 색이더냐?]

[뭐라?]

[봉학아!!!]

[!!!!?]

[꺽정아!!!]

도경의 부지불식간의 외침에 모두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관군의 복장을 입고 있던 임꺽정의 소꿉친구 이봉학이 튀어나왔다.

‘저 녀석은 이봉학? 그렇다면 저기 쓰러져 있는 녀석은 대체?’

자신의 뒤를 선점하며 튀어나와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이봉학을 보며 남치근은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화살비 속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인물이 갑자기 멀쩡히 자신들 쪽에서 튀어나왔으니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휘익.

그렇지만 그의 몸은 최우선을 향해 움직였다.

[전하 위험합니다!]

[어딜!]

휘익!

부우우웅!

서걱!

[크으윽! 이 녀석이!]

남치근의 흐트러진 틈을 타서 도경이 박도가 그의 몸을 베었고 그 와중에 남치근은 그의 공격을 허용하지만, 최대한으로 몸을 비틀어 최소한의 공격만을 허용하고 곧바로 칼을 휘둘러 그에게 반격을 가한다.

휙!

서걱!

[크악!]

임꺽정과 남치근이 서로가 한 번씩 교환한 칼날에 피를 흩뿌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활시위를 당기며 달리고 있던 이봉학은 눈빛을 빛내었다.

도경이 만들어낸 틈에 화살을 쏘아 보 낼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죽어라!!!]

투웅!

휘이이익!

명종 이환을 향해 바르게 쏘아져 가는 화살.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그의 화살은 정확하게 그를 향해 쏘아진다. 하지만 남치근은 도경의 공격에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이봉학을 주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안 된다!!]

휘익!

푹!

[크학!]

이봉학이 명종 이환에게 날린 회심의 화살은 남치근의 어깨에 맞으며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떨어진다.

[!!!!?]

[아...!]

[제길! 한 발 더...!]

푸욱!

[큭!?]

이봉학은 그 상황을 보고 기민하게 등 뒤에 있는 화살을 뽑아 들려 했지만, 그의 가슴을 뚫고 나오는 창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봉학아!!!]

[쿨럭!]

푹 푹 푹!

창 하나를 시작으로 꼬챙이가 되는 이봉학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임꺽정을 보며 웃음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려 보이더니 앞으로 휘젓는다.

[멍청한 놈아 뭘 보고 있냐!]

[!?]

휙휙!

[다들 개죽음 만들 셈이냐? 가거라 꺽정아!!!]

그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임꺽정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뒤 돌며 박도를 들어 올려 자신의 모든 힘을 짜내 명종 이환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히익!]

푸욱!

친구 이봉학처럼 임꺽정의 박도도 예상과 다른 이에게 가서 꽂힌다.

[!?]

[아아...! 전하 어찌...!?]

[과인을 지키는 게 신하 된 도리로서의 덕목 아니더냐.]

이환이 자신의 옆에 있던 신하를 밀쳐 방패막이로 쓴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그는 비정하게 웃음 지으며 임꺽정을 바라보며 고한다.

[아무래도 과인의 승리인 것 같구나.]

[끝이다! 지겨운 놈!]

푸우욱!

[컥!?]

이환의 기지로 잠깐의 틈 사이 남치근은 쓰러진 채로 얼른 임꺽정의 복부에 검을 쑤셔 박았다.

비틀비틀.

[으으으...!]

고개를 푹 숙이며 검이 박힌 채 자신이 쥐고 있던 박도를 놓친 채 뒷걸음질 치는 임꺽정.

[끝났다...!]

스윽.

남치근은 그 모습에 끝났다 생각하며 그답지 않게 방심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덥석!

[크아아아!]

쑤욱!

[아니!?]

타닥! 휘이익!

[전하!!!]

성난 포효를 지르며 고개를 숙였던 임꺽정이 어깨에 박혀있는 화살을 뽑으며 명종 이환에게로 번개처럼 날아 들은 것이다.

잠깐의 방심.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을 불러일으켰다.

푸욱!

[아아아악!]

[크크크!]

명종 이환의 가슴에 틀어박히는 화살.

임꺽정은 화살에 박혀 흐르는 이환의 피를 보며 웃음 짓는다.

[네 녀석 피도 붉구나! 너도 천한 놈 이였어! 으하하하!]

[이 개잡놈이!]

퍼억!

[큭!]

찔러 넣었다고 해도 칼이 아닌 화살.

부상당한 사람의 힘으로 꽂아 넣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임꺽정에게는 남아있는 힘이 한 톨도 없었다.

[하하하...]

털썩.

[이 개잡놈이!!!!]

힘이 빠짐과 동시에 무릎을 꿇는 임꺽정을 보며 명종 이환의 얼굴이 붉히며 있는 힘껏 그를 걷어찼다.

퍽!

휘이이이.

그와 동시에 느려지는 세상 속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임꺽정은 숨 가삐 불태웠던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쿨럭쿨럭!]

씨익.

피투성이임에도 해맑게 웃음 짓는 임꺽정.

그가 쳐다보는 세상은 한없이 푸르러서 최후의 순간에는 허탈함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크크크.... 크하하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초월하는 도경의 웃음소리가 모두의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휘이익!

콰직!

[......]

“......”

처음부터 끝까지 처절했던 사투를 겪어왔던 임꺽정이란 한 남자의 생(生)은 검은색 화면으로 끝을 맞이한다.

[천지를 울려라]-OST

두둥!

마지막 들을 임꺽정의 OST를 들으며 시청자들은 말을 잊지 못한다.

그저 임꺽정의 최후가 전해주는 먹먹함에 젖어 도경의 노래를 들을 뿐이었다.

---

[기자회견실.]

‘저 정용환은...!’

찰칵찰칵!

파바바바밧!

찰칵!

임꺽정을 보내는 드라마가 끝을 맞이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도 자신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다만 그 끝이 평범하지 않았다.

“오늘부로 은...! 꺼억!”

“!!!?”

웅성웅성.

“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긴장했나 봅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비장했던 얼굴이 당황함이 역력한 표정의 정용환.

그는 서둘러 침착하게 속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자신이 오늘 발표할 용건을 꺼내 들려 했지만 이내 창피함에 얼굴이 붉게 물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제가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용환은 오늘부로 한국 연예계에 은퇴를 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꺼어어억!”

턱!

“히끅!”

“.......”

기자들과 정용환 사이에 긴 정적이 흐른다.

‘아...’

정용환은 자신의 인생에 지우고 싶은 순간을 뽑으라면 고민 없이 바로 말할 자신이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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