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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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정적 사이 정용환의 얼굴을 달아오를 데로 달아올라 붉어져 있었는데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정용환의 눈빛은 정말 그 자신도 당혹감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국에서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상황을 떠올리면 정신은 혼미해질 지경이다.
‘역대 사상 최악의 은퇴발표.’
“하... ”
누가 봐도 현재 그는 멘붕을 겪고 있는 표정임을 알 수 있었다.
정용환의 생소한 모습에 모두가 숨죽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음을 터트리기엔 이 자리에 있는 사안들이 심각했었고 이런 정용환은 처음이었기에 막 다루기에도 애매하여 모두가 침묵을 유지하며 정용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보다시피...!”
“!?”
잠깐이지만 길었던 정적 속.
정용환은 자신의 입을 막았던 손을 내려놓고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잔했습니다.”
‘내려놓자...’
무언가를 포기하고 체념한 표정.
창피함과 취기가 합쳐진 그 반응에 기자들 모두들 속으로 설마설마했던 사실을 직접 정용환의 입으로 확인하며 정용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플래시들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
차르르르륵!
찰칵!
‘하하. 어떤 기사를 써 내려갈지 눈에 선 하네...’
저들이 어떤 기사를 쓸 생각으로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지 예상이 가는 바 정용환은 쓴 웃음을 지었다.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제 입장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조금 전의 긴 트림 이후 속이 많이 편해짐을 느낀 정용환은 뜨끈뜨끈해지는 볼을 쓸어 올리며 정면을 마주하였다.
“저 정용환은 오늘로부터 연예계에 은퇴를 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충격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앞에서 3번이나 은퇴를 입에 담았던 만큼 기자들은 덤덤하게 정용환의 은퇴를 받아들였다.
덕분에 정용환은 자신이 하고 싶던 말을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저를 응원해주셨던 팬분들과 지인들에게 그나마 저의 떳떳한 모습을 남겨드리고 싶어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긴말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송구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에도 실수할까 봐.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하려 애써서 노력하는 정용환의 모습이 보인다. 신중을 기한다 하더라도 술에 취한 모습이 잠깐잠깐 말하는 틈새에 묻어나왔는데 자신의 취기와 싸우는 정용환의 모습은 절로 실소가 나왔다.
“정용환에게 저런 면모가 있었나?”
“그러게 카메라 앞에서는 항상 갑갑하게 철벽 치는 이미지였는데 의외네.”
“은퇴만큼은 정용환이라도 쉬운 게 아닌 문제니 말이야...”
“그래도 기자회견 전에 술 마신 연예인은 정용환이 최초 아니야? 시청자들은 어떻게 보려나 모르겠네. 오히려 욕먹는 거 아니야?”
“은퇴한다고 하잖아. 솔직히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뭐, 완전히 만취한 것도 아니고 눈살 찌푸려질 정도는 아니어서 괜찮을 것 같은데?”
“하긴 오히려 저 모습이 나을지도...”
항상 완벽한 모습으로 청산유수로 인터뷰했던 정용환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정용환의 은퇴 선언에서 기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에게 친근감을 느껴버렸다.
정용환이 원했던 굵직하고 깔끔한 마무리는 날아간 듯싶었지만, 그의 취한 모습은 다른 쪽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중이었다.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저의 입장표명은 이것으로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을 성실하게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10분 남짓도 되지 않은 정말로 짧은 은퇴 선언.
그리고 이어지는 질의응답시간을 가진다는 정용환의 말에 기자들이 벌떼같이 손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은퇴를 입에 담으면서도 편안한 기색을 띠는 정용환의 모습은 초탈한 분위기여서 뭐든지 답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질문 있습니다!”
“정용환 씨...!”
“고소 건에 관련하여...!”
우르르!
많은 기자들 손을 든 가운데 정용환이 한 기자를 골라 질문을 받기 시작하였다.
“지금 떳떳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은퇴를 한다 하셨는데 여태까지 나왔던 기사들과 소문들에 대해서 인정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은퇴는 책임회피 그 이상 그 이하는 되지 않는다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시나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어왔던 만큼 정용환에 대한 질문은 첫 질문부터 가시를 잔뜩 품었던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평소라면 자신의 프라이드에 조금은 얼굴을 붉힐만한 질문들이었지만 정용환은 이미 모두 내려놓은 상태라 침착하게 그 그자의 질문에 답변하기 시작한다.
“제가 인정하는 기사는 오직 제가 소속사를 나오며 저지른 자작극 하나이며 그 이외에 스폰서나 자살한[ED] 연습생과의 관계는 거짓입니다.”
“자살한 소녀의 일기장에는 [ED] 엔터테인먼트 연예인과 사귀고 있다고 적혀있는 것과 더불어 정용환 씨의 이야기가 많이 적혀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사해 본 결과 연기자 지망생인 그 연습생이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연예인은 정용환 군이 유일했고 말이에요. 그런데도 정용환 본인은 아니란 말씀이시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여태껏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시며 의혹을 증폭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정용환은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기자들은 쉽게 믿는 눈치들이 아니었다.
기자로 닳고 닳은 인생을 살아왔던 만큼 남녀 관계에 있어 남자 연예인의 말만큼 믿을 수 없는 것이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특히나 정용환같이 사생활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배우일수록 더욱더 그러했다.
“후...”
기자의 그 질문에 정용환은 한숨을 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 말해버릴 수도 없고 갑갑하군.’
기획사에서 꾸민 자작극 시나리오와 매니저의 배신. 차현식 PD의 존재와 [ED] 엔터테인먼트의 실체를 다 말할까 싶었지만, 그것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진흙탕 싸움과 더불어 더욱더 시끄러워 질 것을 알기에 정용환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더럽고 추잡한 결과로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 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시면 믿으셨겠습니까?”
“네?”
하지만 이대로 조용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싶진 않았다.
“제가 괜히 기자회견을 열었겠습니까? 이곳에서 발표한 저의 은퇴조차도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으로 오해받는 와중에 제가 그전에 말했다면 순순히 믿는가를 물어봤습니다.”
정용환의 역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하는 기자였다.
그의 말대로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사람들을 쉽게 믿을 생각이 없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
“대답이 된 듯싶군요. 다음 분의...”
“하지만! 공인으로서 그래도 한 마디 정도는 언질 정도는 줘도 되었을 텐데요? 너무 무책임한 태도 아닙니까?”
“무책임?”
꿈틀.
기자는 자신이 아무 말도 못 한 상황이 조금은 기분이 상했던지 정용환을 쏘아붙였지만, 그것은 정용환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는 정용환이 아무것도 잃을게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했다.
“소속사의 계약해지도 군말 없이 받아들였고 광고업체의 수십억의 위약금들도 순순히 전부 치렀으며 팬분들에게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은퇴함으로 제 자신의 과거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하는데 제가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고소는..”
“그 부분은 제 변호사님이 제대로 밝혀주실 예정입니다. 필요하시다면 제 스케줄 일정과 사생활 모두를 오픈할 생각입니다.”
“.......”
배우 정용환의 모습이 아닌 인간 정용환의 모습.
차도한이 바에서 만났던 바텐더 시절의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는 거칠게 없던 정용환의 원래 모습이 기자회견 단상에 놓여 있었다.
“대답이 되었다면 다음 질문받겠습니다.”
찰칵!
처음으로 보는 정용환의 모습에 한 여기자 그 모습을 카메라 셔터를 눌러 담았다.
거칠 게 없는 정용환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용환의 질의 응답시간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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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라.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건가?”
피식.
“멍청하긴...”
차현식 PD는 화면에 비치는 정용환의 은퇴선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툭.
“조금만 기다렸다면 은퇴를 안 해도 됐을 텐데 이번에도 잘못 된 선택을 했군. 멍청한 놈.”
씨익.
도경에게 건네받았던 USB를 꺼낸 차현식은 멍청한 선택을 한 정용환을 향해 비웃을밖에 없었다.
조금만 기다렸다면 정용환의 상황이 바뀌었을 것을 아는 까닭이다.
“저럴 줄 알았다면 고소 취하는데 돈 쓰지 않는 건데... 애꿎은 돈만 써버렸군.”
정용환을 향한 악의적인 소문과 고소를 취하하고 소속사에서 정용환을 순순히 놔주기로 했던 도경과의 거래내용을 떠올리며 차현식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정용환에게 언질해주지 않았던 거지?”
차현식은 박도경이 자신들과의 거래를 정용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들의 거래에 대해 알았다면 정용환은 은퇴라는 소리를 입에 담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뭐, 나야 일석이조인 상황이지만 말이야. 오히려 잘 됐군.”
뭐 여러 가지 그들만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차현식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은 자신에게 나쁘지 않은 까닭이다.
대세 배우를 은퇴시켜 업계에 자기 권위의 건재함을 과시했고 무서운 신인 박도경의 데뷔앨범까지 손에 얻었다. 이거만큼 수지 남는 장사는 없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나와 달리 박도경 너는 제대로 헛수고한 것 같구나.”
헛고생 한 도경의 모습을 상상하며 유쾌함에 웃음을 터트리는 동시에 차현식은 도경과의 거래를 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안 됐어. 꽤나 재밌게 해줬는데 말이야.”
(앨범을 준다는 건가?)
(그건 조금 날로 먹는다는 생각하지 않아? 뭐, 그래도 상관없긴 한데 뻔하게 말고 재밌게 가보자고.)
(재밌게?)
(여기에 있는 노래 중 당신이 고른 한 곡으로 나는 싱글앨범 데뷔. 나머지 곡은 내 앨범에서 사용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지. 옵션으로 1위 못하면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 하나 들어주지. 반대 상황이면 당신이 하나 내말 들어주기로 하고 말이야.)
(너...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왜 쫄려?)
(뭐? 하하하하하!)
“건방졌지만 간만에 제대로 웃었었지.”
거래이면서 음악가로서 서로의 자존심을 건 1위 내기를 건 도경의 제안은 사실상 작곡가인 자신에 대한 도발이자 도전이었다. 신기한 건 그런 도경의 도발을 알면서도 차현식은 넘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질 게임임도 불구하고 자신의 패를 보이며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오는 상대의 존재는 차현식에게 있어 신선한 자극을 안겨다 주었기 때문이다.
“너도 저렇게 만들어 주마. 후후후.”
스크린에 비치는 정용환을 바라보며 차현식은 기대되는 미소를 지었다.
유능한 재능을 지녔음에도 나락으로 추락해 제 발로 연예계를 걸어 나가는 정용환처럼 도경 또한 그리 만들어줄 생각에 절로 입가가 찢어지는 것이었다.
[질문 있습니다. 선배님!]
[너가 거기서 왜 나와? 집에 안 갔어?]
[헤헤헤. 그냥 데려다주기만 하는 건 조금 아쉬워서...!]
[맙소사...]
흠칫.
“음? 이 목소리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
차현식은 서둘러 화면을 주시하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고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박도경...!”
화면에는 붉은 얼굴로 해맑게 웃는 도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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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웅성.
“박도경? 박도경이 여긴 왜?”
“데려다줬다고? 박도경하고 정용환하고 친한가?”
모든 질문에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던 정용환의 질의 응답시간이 끝나가려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도경의 등장은 모두를 황당케 하였다.
“선배님 질문해도 됩니까?”
“안 돼. 싫어 또 쓸데없는 소리 할 거잖아.”
“와 너무한다. 술 상대까지 해줬는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술 가지고 다짜고짜 쳐들어온 건 너잖아. 너 때문에 오늘 내가... 아니다. 도경아 제발 좀 그냥 가라.”
“와. 후배 대우 하고는...”
차르르륵!
찰칵찰칵!
인상을 찌푸리며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도경과 정용환에게 기자들 모두 시선을 모으며 두 사람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임꺽정의 두 조연이 한데 모여 있는 지금 이 상황은 화제가 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간다 이거죠?”
“응? 너 지금 무슨 소리를...? 설마... 너!? 야! 너 그러지 마라!”
갑자기 미국이란 단어를 내뱉는 도경을 향해 정용환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다급히 그를 말려 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었다.
“여러분 정용환 선배님 미국으로 갑니다. 은퇴하고 스스로 힘으로 다시 처음부터 도전해보고 싶다고 미국 가신답니다!”
쾅!
웅성웅성!
“미국?”
“정용환 씨 정말 은퇴하고 미국으로 떠나십니까?”
“무슨 이유로 미국으로 가시는 겁니까?”
“미국에서 처음부터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실 생각입니까?”
“네! 여러분 선배님. 돈도 없고 영어 하나 쥐뿔도 못하는데 미국 가서 연기자 생활 하신 답니다. 좀 말려주세요!”
“.......”
다 끝나가는 분위기 석유를 콸콸 부어 다시 불을 지르는 도경의 행동에 정용환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도경과 전에 나누었던 어떤 대화를 떠올렸다.
(아, 왜요! 해외 진출해보라니까요.)
(야! 그게 쉽냐? 그리고 이젠 연기 안 한다니까.)
(진짜 그 같잖은 똥 폼 잡지 말고 한번 가보라니까요. 어차피 연기밖에 못하는 백수잖아요.)
(싫다니까? 네가 아무리 도발해도 이 문제는 은퇴로 결정 내렸어.)
(하 그놈의 똥고집...! 선배님 후회합니다.)
(어이구 무서 워라. 오금이 저려서 화장실이나 가야겠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죠. 전 말했습니다. 후회하지 말라고...!)
(후회는 개뿔.)
쪼르륵!
“저... 미친놈...!”
정용환은 도경의 말대로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자신이 왜 저 녀석의 마지막 말을 왜 무시했었을까? 녀석은 또라이 중에 상또라이였는데 말이다.
설마 자신의 뜻을 위해서 없는 말을 만들 줄이야. 상상도 못 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정용환 씨! 대답해주시죠. 박도경 씨의 말이 맞나요?”
“아니...”
“굳이 미국으로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데 영어 하나 못하는데 정말로 연기자 생활을...”
“그게...!”
“돈이 없다고 들었는데 위약금 때문입니까? 혹시 빚도 있으십니까?”
“하......”
바글바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정용환에게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며 아비규환인 상황이 펼쳐졌다.
기자 회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찰칵칼칵!
펑펑!
미친 듯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에 정용환은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을 바라보았는데 그 당사자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소악마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게 제 말 순순히 듣지 그랬어요.’
씨익.
정신없이 달려드는 기자 사이에서 도경의 천진한 미소에 정용환은 오늘로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멘탈이 바스라진다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나중에 이 경험이 정용환의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내가 손해 본 게 얼마인데 누구 마음대로 빠져?’
정용환의 두 눈은 꺼멓게 죽어있지만, 도경의 두 눈은 그와 달리 어떻게든 하드 캐리 하겠다는 도경의 강한 집념으로 이글거렸다.
그 두 눈으로 고개를 돌린 도경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일순간 눈빛을 빛내었다.
‘보고 있냐?’
휙.
카메라 저 너머에 자신과 정용환을 보고 있을 차현식의 존재가 느껴졌다.
“다음은 네가 후회하게 될 거다.”
도경의 선전포고.
서로들 최고라 자부하는 두 사람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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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사상 초유 취중 진담 기자회견.]
[고소취하. 자식 잃은 부모의 애꿎은 분노.]
[정용환 깊은 반성 초심으로 돌아가 미국에서 처음부터 다시 도전하다!]
[존경하는 선배의 은퇴와 무모한 도전을 막으려는 후배의 우정.]
[집조차 없어서 빈털터리 정용환 그는 지금 어디에?]
“하, 진짜야...?”
정용환의 안색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니, 더욱더 안색이 안 좋아진 상태였다.
“나... 진짜 미국 가야 해...?”
본인이 생각에도 없던 미국행이 결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가히 강제추방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상황에 정용환이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여관방에서 한숨을 내쉬는 것뿐이었다.
“비자랑 비행기 표값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며 가장 싼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는 정용환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애달파 보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