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상암동 DMC에 있는 MBN 방송국에 있는 수많은 스튜디오 중 한 군데가. 지금 때아닌 열기로 후끈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워어어-!]
와아아아!
꺄아악!
[가면 가왕]
가면을 쓰고 노래경연을 벌이는 프로그램 [가면 가왕] 주말마다 안방을 책임지는 굵직한 음악 쇼 프로그램으로 요즘에는 그 인기가 시들시들해지나 싶었는데 한 참가자의 출연과 동시에 탄생한 한 명의 가왕에 의해서 다시 인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가면 가왕에서 4연속 우승을 거머쥔 가왕 [백설 왕자]라 불리는 참가자의 존재 때문이었다.
삐이이이!
짝짝짝!
“백설 왕자! 백설 왕자!”
무대 위에 한 청년이 하얀색에 금박이 박힌 화려한 귀족 가면을 쓰고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청중들은 그의 열창에 열광하는 중이었다. 예상치 못한 선곡들과 그런 선곡들을 목소리를 자유자재대로 바꿔가며 소화하는 그의 무대는 오늘도 모두를 매료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이건 안 봐도 승패가 났네.”
“끝을 모르네. 설마 망한 아이돌 노래를 가져올 줄이야.”
“대체 누굴까?”
“노래 진짜 잘 부른다.”
그리고 패널 객석에 앉아있던 연예인 판정단들은 백설 왕자에 대한 감탄하며 과연 그가 누구일지 정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나 음악계 종사자들일수록 그의 존재에 대해 충격을 받고 궁금해하고 있었다.
괴랄 할 정도로 넓은 음역대를 넘나드는 실력을 지닌 백설 왕자의 정체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햐~. 천의 목소리다. 천의 목소리야...! 대체 누굴까?”
끄덕.
“저는 포기했어요. 저걸 목소리 듣고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맞춰요? 듣자 하니 어린 데다 외모도 장난 아니라던데 정말 누구인지 궁금해 죽겠어요.”
“그러게 말이야. 처음에 제작진들이 힌트를 많이 주길래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와선 누구일지 상상이 안 간다.”
저런 가왕은 처음이었다.
라운드를 거듭하는 가왕 특성상 버릇이나 습관 같은 흔적들이 드러나게 되는데 백설 왕자에게는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울게 하소서 파리넬리의(Lascia ch'io pianga)], [Lazenca, Save Us], 이글스의 [Desperado] 등 완전히 상반된 노래들을 가져와서 다른 음색과 톤들로 완벽하게 구현해서 부르는데 도저히 추측해서 맞출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백설 왕자 보니까. 정말 그 말들이 맞는 거 같네요.”
“응? 뭐가?”
“요즘 가요계에 제2의 황금기가 온다는 소리가 말이에요.”
“하긴, 좀 심상치 않긴 하지. 요즘 확실히 지금 난놈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죠?”
한국 가요계가 심상치 않았다.
우후죽순 생기는 엔터테인먼트와 아이돌들의 대세였던 한국 가요계가 새롭게 변할 조짐이 보인다고 업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고 있었다.
전반적인 아이돌들의 실력향상에도 그 이유가 있었지만 유행과 한 가지의 일색으로 판을 쳤던 가요계에 다양한 시도를 하는 움직임들이 활성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진용이 말로 그 녀석이 데뷔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가요계 변화의 조짐에 그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저절로 떠올랐다.
작곡가인 그에게 있어 한국 가요계에 변화라는 키워드에 맞춰 자연스럽게 제일 먼저 떠오른 이름이 그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카일...!”
일반 대중은 박도경이란 이름이 친숙하겠지만 음악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경을 카일로 구분 지을 정도로 카일이란 이름을 친숙히 여겼다.
대중과 음악업을 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도경은 그만큼 다른 것이었다.
‘만약 데뷔한다면...’
“어떤 곡으로 데뷔할까?”
천재 작곡가가 과연 어떤 곡을 들고 가수로 데뷔할지 절로 기대가 되었다.
와아아!
피식.
“정말로 황금기가 올지도...!”
잠깐의 딴 생각에 빠져있던 때에 들려왔던 환호성.
그것에 잠깐 다른 생각을 했던 상념들을 지운 그는 백설 왕자의 노랫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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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18대 가왕은 누구일까요?]
두두두!
경연이 끝나고 18대 가면 가왕이 정해져야 하는 시간.
원래라면 누가 될지 모를 상황에 모두가 숨을 죽이며 결과발표를 기다려야겠지만 관객들은 이미 고개를 돌려 백설 왕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에서 이미 관객들의 반응에서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벌어졌기에 우승자가 누구일지 모두가 아는 것이었다.
[우승자는~!]
두구두구!
“짜증나는 군.”
툭.
띠리리!
결과발표 되기 직전 한 남성이 짜증 난 표정으로 TV를 끄며 손에든 리모콘을 테이블에 던져 버렸다.
“대체 몇 번이나 질질 끄는 건지...!”
일인 만큼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 했지만 매주 똑같은 BGM과 질질 끄는 MC의 진행방식에 질릴 대로 질린 그는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강운이 녀석 이미 주목을 모을만큼 모았으니. 다음 주만 출연하고 관두게 해야겠어.”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담배를 거칠게 무는 남성은 차현식 PD. 그는 놀랍게도 백설 왕자가 [트리니타스]의 김강운이라 말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3주 더 출연을 하기로 약조되어 있었지만 더 이상 이 방송을 보고 싶지 않았던 차현식 PD는 백설 왕자의 출연을 마무리 짓기로 결정했다.
백설 왕자인 김강운으로 톡톡히 시청률의 효과를 받던 가면 가왕은 난데없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지만 그의 시야에는 그들의 사정 따윈 생각지도 않았다.
뭉게뭉게
“후~.”
“그나저나 너무 조용한데...!?”
툭툭!
차현식이 타인을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대상들과 자기의 앞을 막는 장애물뿐이었다.
“녀석치고 너무 조용해...!”
뻐끔뻐끔.
[박도경]
차현식 현재 들어 그가 가장 신경 쓰고 있던 인물을 떠올리며 도경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떠올려 보았지만 이내 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알 수가 없군.’
그의 데뷔까지 앞으로 2주 남짓. 그런데도 그 어디에서도 도경에 데뷔를 알리는 기사나 정보 따위들이 들려오지 않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가수들에게 있어 앨범 활동이란 앨범만 딱 만들어서 내는 것이 아니었다.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동시에 기자들의 언론플레이로 대중들에게 데뷔나 컴백을 알려야 했고 대중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들의 모든 수를 동원해 이목을 끌어 그들 앞에 노래를 불러야 했다.
특히나 데뷔를 앞둔 가수라면 더욱 이것저것 많은 활동들을 보여야 했는데 현재 도경에게선 그 어떠한 움직임조차 없었다.
‘자신의 인기를 믿고 만용을 부리는 건가?’
“아니야... 그렇게 단순한 놈은 아니었어. 분명 노리는 게 있어.”
예능과 드라마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도경의 입장을 고려하면 이런 태만한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고 납득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차현식은 도경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서로 거래에 대한 각서를 쓰고 지장을 찍을 때. 자신을 보던 그 눈빛은 절대로 태만하게 움직일 사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도경에게는 노림수가 있다고 차현식 PD는 확신했다.
“뭐, 그래 봤자 소용없겠지만 말이야.”
피식.
차현식은 상대방을 얕보는 실수나 자만을 하지 않았다.
이기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사전에 모든 것을 준비하고 전략을 짜놓는 그의 완벽주의 성향은 도경에게도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차현식은 도경의 회심의 수가 무엇이 되었든 소용없을 거라 확신했다.
“꽤나 재밌을 거다. 후후후.”
김강운의 솔로 데뷔는 11월 04일. 그 날 한낱 한 시에 같은 무대에 설 도경과 김강운을 떠올리며 차현식은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미소 지었다.
도경이 준비한 회심의 한 수가 어떻게 실패하고 자신이 준비해 놓은 무대 위에서 도경이 어떻게 발버둥 칠지 기대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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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 엔터테인먼트]-홍보팀장 실.
두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라고 사전녹화가 안 된다고? 무대순서는?”
“2번째 무대.”
“2번째? 지금 앞에서 2번째 무대를 받아왔다는 거야?”
“그래...”
“....!”
[JY] 홍보팀 팀장 이명한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매니저를 바라보며 납득가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자신들이 속해있는 곳은 대형기획사다. 소위 말해 음악방송 프로그램에 주문을 요청할 수 있을 정도로 짬이 되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JY] 임에도 믿기 힘들게 음악방송에 까였다는 것이었다.
“이거 조금 이상한데? 너, 거기서 무슨 실수 했어?”
“내 짬에 실수할 게 있겠냐?”
“그럼 도대체 왜...?”
듣도 보지도 못한 놈에게 무대를 달라는 무리한 부탁도 아니고 도경에게 대형신인인 만큼의 대우를 요구했던 건데 거절당했다니 그야말로 이해 안 가는 일이었다.
“네 말대로 이상해.”
“응?”
“여기뿐만이 아니야. KBN, JTVC를 제외하고는 다 허탕이야.”
“그 말은...!?”
명백하게 무언가의 힘이 작용한 흔적을 알리는 말에 홍보팀장의 눈은 날카롭게 치켜떠 졌다.
“뒤에 누가 있다는 거야?”
끄덕.
“그래. 그것도 CP 급의 선을 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
최소 방송국의 부장급의 인사를 움직일 수 있는 힘. 그것을 들은 홍보팀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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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 씨. 여기 마실 거요.”
“하하! 염색하나 하는데 뭘 이런 것까지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꿀꺽꿀꺽.
[홍대 XX 헤어]
자신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흑막의 손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경은 홍대 근처의 유명한 헤어숍에서 희희낙락하며 염색을 하는 중이었다.
가게에서 직접 타준 미숫가루를 마시며 도경은 가게 안에 구비되어 있는 만화책을 읽고 있는 중 이었는데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 위로 록키 발보아의 얼굴이 크게 프린팅 되어있는 회색 맨투맨을 입고 맨발에 스니커즈를 신고 있는 도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량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어서 연예인이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평범 그 자체였다.
“생각보다 연예인 포스가 없네?”
“응. 조금 평범하다. 카메라에 비춘 것과 많이 다르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성격은 좋아 보이지 않아? TV 보면 막 한 성깔 할 거 같던데 의외로 얌전하네.”
“맞아. 나도 그 생각 했는데 지금 보니까 동네 오빠 같고 되게 친숙한 느낌이네.”
“깔깔깔. 맞다. 약간 골목대장 같은 스타일이네.”
‘골목대장 스타일이라.’
피식
“하긴 평소에는 그렇게 막 연예인 같은 느낌이 들지 않지.”
잠시 볼일 보러 화장실을 들렸다. 도경이 앉아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던 최정훈은 헤어 숍 직원들을 말을 듣고 피식 웃을 수 받게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요즘 핫한 연예인인데 저렇게 저평가를 받는 도경이 웃긴 것이다.
“하하. 골목대장이라 어울리네.”
“골목대장? 저한테 말이에요?”
“응. 직원들이 너 되게 평범하대. 골목대장 같은 스타일이라나?”
도경의 물음에 최정훈은 캠코더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도경에게 해주었다.
꿈틀.
“참 나 진국을 못 알아보는 누나들이구만. 내가 어딜 봐서 골목대장이에요? 안 그래요?”
“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 형!”
“하하하!”
도경의 반응에 최정훈은 결국 큰 소리로 웃음소리를 터트리고 말았다. 발끈하며 기분 상해하는 도경의 리액션이 웃긴 것이었다.
자신을 보고 짓궂은 웃음을 짓고 있는 최정훈을 보며 도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형. 의외로 카메라 들고 있으면 성격 나빠지는 거 알아요?”
“내가?”
“네. 뭐랄까. 카메라만 손에 들리면 겁이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랄까? 근데 이것도 영상 찍는 거예요? 기획에 없던 거잖아요.”
“뭐 겸사겸사지.”
“네?”
원래 기획하고 잡았던 컨셉과 관련 없는 영상까지 찍는 최정훈을 보며 도경은 궁금해 물었지만, 최정훈은 제대로 답변해 주지 않고 도경을 놀릴 뿐이었다.
“평범한 모델인 만큼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해야지.”
“뭐라구요?”
부들부들.
“하하. 농담이야. 농담! 천하의 박도경인데 설마 진심으로 내뱉을까?”
“훗. 그렇죠?”
서둘러 말을 바꾸는 최정훈의 말에 도경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에 비춘 자신을 바라보며 남자 특유의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턱을 이리저리 돌리고 쓸어보며 자화자찬하기 시작하다.
“이야. 요즘 저도 제 인기가 무섭다니까요? 나는 새도 제 근처로 지나가면 떨어질까 봐 걱정이에요.”
“비둘기가?”
“형!!”
“하하 농담이야 농담.”
“이 사람이...! 어디서 그런 나쁜 것만 배웠어요? 예전에 착했던 형은 어디 간 거예요.”
“누구한테 배웠겠어? 너한테 배웠지.”
“제가요? 언제요? 저 그런 적 없거든요?”
“은하수 때 영상 보여줄까?”
“.....아뇨.”
씨익.
‘다루기 쉽다니까. 재밌는 영상을 뽑을 수 있겠어.’
평범한 만큼 반응들이 하나같이 싱싱한 도경의 리액션에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은 최정훈은 도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도경 씨. 이번 싱글앨범 데뷔곡 [One Step]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응? 갑자기 상황극 놀이? 형 심심해요?”
마치 인터뷰를 하듯 던지는 자신의 앨범에 대한 질문에 도경이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지만 최정훈은 능글맞게 웃음 지었다.
“왠지 한번 해보고 싶어서.”
“참 철없기는...!”
“그래요. 그래서 도경 씨의 [One Step]은 어떤 노래인가요?”
피식.
그래도 재미는 없는 것은 아닌지 도경은 피식 웃으며 빠르게 최정훈의 상황극에 어울려 주었다.
그도 이제는 연예인 다 됐다고 카메라가 자꾸만 자신을 비추고 있으니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이었다.
“어떤 노래이냐면...!”
개구쟁이 저리 가라는 듯 장난기 넘치는 미소가 최정훈의 캠코더 카메라 렌즈에 비춰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