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월화수목금토일 불가사의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 거리.
얼마나 사람이 많은 것을 설명하자면 [걷고 싶은 거리]의 가까운 지하철 입구는 9번 출구이지만 한창 피크인 시간에는 홍대를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홍대역 9번 출구보다 다른 출구로 나와 걷는 것이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을 만큼 사람이 치이는 곳이었다.
우글우굴
씨끌벅적.
우르르.
홍대에서도 걷고 싶은 거리라 불리는 이곳은 홍대를 대표하는 거리 중 하나로 그중 가장 특색 있고 유명한 것이 바로 ‘버스킹’ 문화다.
인디 뮤지션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인 만큼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버스킹해오는 문화가 발달하였고 인제 와서는 버스킹의 메카라 불릴 정도로 누구에게나 유명한 곳이 되었다.
쿵쿵!
띠리링! 땅! 쾅! 쿵!
[아아아~! 소리 질러~.]
와아아아!
꺄아~!
버스킹의 메카라 불리는 만큼 수많은 공연이 거리에서 펼쳐졌다.
젊은 청춘들은 공연과 다양한 볼거리를 구경하며 즐기고 있는 와중 머리가 살짝 희끗한 한 중년남성이 기타를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띠링...!
“후우.”
힐끔.
중년 남성은 자신의 옆에서 공연하고 있는 팀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노랫소리가 또 묻히는구나...”
쿵쾅! 쿵쾅!
시끄럽게 옆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그는 자신의 버스킹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통기타와 조그마한 앰프로 노래를 부르는 자신으로선 저 옆의 공연 팀의 고가의 앰프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음악 소리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 전부터 몇 번 언질 줬는데도 말이야.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건가?’
“괜히 자리를 양보해 줬군.”
툭.
30분 전에 왔던 열 대명의 젊은 아이들.
자신들의 공연을 할 자리가 필요하다며 자리를 조금 내줄 수 있냐 양해를 구해왔던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자신의 선택을 지금의 그는 조금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킹이라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데 이 아이들은 그것을 지켜 줄 생각이 없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많이 변했구나...’
자신과 달리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공연 팀 쪽으로 눈길을 줬던 그는 착잡한 눈길로 그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홍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이젠 그만둬야 할 때인가?”
중얼.
통기타를 들고 홀로 쓸쓸히 버스킹했던 중년인의 이름 이장현.
요즘의 홍대거리와 어울리지 않게 70, 80의 한국가요를 부르는 버스킹을 해왔던 그는 자신이 이제는 슬슬 이 거리를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었다.
점점 이 거리에서 자신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알았던 거리가 아니야. 너무나 낯설게 변했어.’
집보다 익숙했던 이 거리는 너무나도 변해버려 마치 처음 보는 거리처럼 낯설기 그지없었다. 초창기의 순수했던 홍대를 기억하는 이장현에게 지금의 홍대는 너무나 씁쓸할 따름이었다.
“후... 이건 잘못됐어.”-
자신들의 음악(자작곡)을 들려주기 위해서, 자신들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고 들려주는 시간을 위해 수줍게 노래를 불렀던 뮤지션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어느샌가 자신을 보여주고 과시하고 인기를 쫓는 음악들로만 가득 찬거리가 돼버린 것을 느낀 이장현은 지금의 버스킹 문화는 잘못되었다 생각했다.
쿵쾅! 쿵쾅!
우웅!
띠리링!
쾅쾅쾅쾅!
“......”
서로가 사람들의 주목들과 호응을 더 받기 위해서 유행하는 음악소리들로만 볼륨을 높이는 이 거리의 풍경은 마치 현대 사회상을 그대로 옮긴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주목받기 위해 앞만 보고 주변을 보지 않고 주류(Major)만 쫓으며 즐기는 젊은 아이들의 모습은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면서도 안타깝기도 했다.
‘더... 좋은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가 70, 80의 노래를 불렀던 이유.
지금의 그들의 것도 좋지만 자신에 겪었던 과거의 것들에게도 좋은 노래가 많았고 우리나라 가요에도 다양한 노래가 많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그의 조그마한 욕심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외침은 저 소음 너머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듯하였다.
“후후. 괜한 꼰대질이었나?”
자신이 그렇게 반겼던 변화의 바람.
더 풍성한 음악과 뮤지션들로 나아질 거라 생각하며 희망을 품었던 거리의 미래가 사실은 소음공해로만 뒤덮인 장터가 된 것에 그는 짙은 회의감을 느끼며 자리에 일어섰다.
스윽.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듯. 이제는 자신이 이곳을 떠나야 할 듯싶었다.
“가시는 거예요?”
“응?”
“좋은 노래들 잘 듣고 있었는데 벌써 끝나다니 아쉽네요.”
“아... 학생은? 저쪽 벤치에 앉아 있던?”
끄덕.
갸웃.
후드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왠지 어디선가 낯익은 인상이라 생각한 이장현은 자신의 앞에 있는 청년이 벤치에 앉아있었던 인물인 것을 떠올리고는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이 청년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부르셨던 노래들 다 옛날 가요들인가요?”
“그래. 70.80에 하나같이 유명했던 노래들이었지.”
“어쩐지 노래들이 하나같이 좋더라고요.”
“하하. 젊은 친구가 보기 드문 취향을 지니고 있구만.”
“그런가요? 정말 좋았는데...”
자신의 말에 고개를 갸웃 이는 청년을 보며 이장현은 웃음 지었다.
의외의 청중이었지만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고 이렇게 일부러 말까지 걸어준 청년이 고마웠다. 조금이지만 씁쓸한 마음이 보상받는 느낌에 그의 굳었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나저나 1인 방송하는 BJ 하는 친구인가?”
“아...!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제 일상을 담는 영상하나 찍고 있는 중이에요.”
“영상? 과제 같은 거 하는 건가?”
“과제요? 하하하 뭐,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하죠. 그나저나 좀이 쑤셔서 그러는데...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부탁?”
후드를 쓴 청년을 친구로 보이는 이가 카메라로 열심히 촬영하기에 요즘 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1인 방송하는 BJ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에 괜히 아는 체한 것 같아 머쓱해 하는 이장현은 청년이 의외의 부탁을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노래 한 곡 불러 봐도 될까요?”
“응? 노래?”
“네. 제가 한 노래하거든요.”
씨익.
“아...!”
해맑은 미소. 그 미소를 바라본 이장현은 두 눈은 휘둥그레 떠졌다. 어디서 낯이 익다 생각했던 청년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박도경?”
“넵. 제가 그 박도경입니다.”
저벅저벅.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이장현을 뒤로 한 도경은 앰프에 기대어진 그의 기타를 들어 올리며 기타 현을 가볍게 퉁기었다.
띠잉~.
시끌벅적한 이곳에서 들리지 않는 가벼운 울림. 하지만 이장현에게는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울려왔다.
스윽.
스르륵.
두꺼운 후드 모자 아래로 흘러내리는 새빨간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오는 가운데 이장현은 그의 머리색보다 도경의 반짝거리는 눈빛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생기가 가득 찬 도경의 두 눈이 자신의 두 눈을 마주하며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박도경의 첫 번째 청중이 돼 주시겠어요?”
지이이이!
띵~!
띠링! 퉁! 띠리링!
자신의 기타 줄을 한번 가볍게 쓸어 올린 후. 자리에 앉아 무덤덤하게 연주를 시작하는 도경의 기타 소리가 앰프를 통해 허공에 울려 퍼진다.
흠칫!
“이건...!”
그런 도경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이장현은 뒤늦게 자신의 귀로 들리는 연주를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 떠난 후(86)?”
조금 전 자신이 연주하면서 불렀던 노래.
31년 전에 나온 알 리 없는 오래된 옛 곡 [그대 떠난 후(86)]를 지금 도경이 연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이젠 곁에 없지만
사랑했던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
--
둥둥! 띠리링!
씨익.
‘좋은 노래 맞잖아.’
도경은 자신이 부른 노래를 자기 귀로 직접 들으며 웃었다.
방금 전 이장현이 연주하고 불렀던 곡 [그대 떠난 후(86)]는 좋은 노래였다. 노래를 떠올리자마자 알아서 저절로 곡을 연주하는 자신의 몸이 직접 증명하고 있었다.
씨익.
좋은 노래는 한 번 들으면 잊지 않는 도경은 실수 없이 연주하며 조금 전의 대화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하하. 젊은 친구가 보기 드문 취향을 지니고 있구만.)
‘아저씨 이거 좋은 노래에요.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한 남자가 잊지 않고 부를 정도로 말이에요.’
이 곡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도경은 이 곡은 작곡가와 가수가 따로 있는 노래가 아닌 것을 알았다.
그 시대상을 생각하면 젊은 감성적인 멜로디 라인과 애절한 여성의 감수성이 듬뿍 담긴 가사는 분명 한 사람의 싱어송라이터의 의해 만들어지고 불린 노래라 도경은 확신했다.
‘분명 뛰어난 여성 일 거야.’
둥둥! 둥!
[어느 날 우연하게 사랑을 알게 되었지만
사랑 할수록 시간이 지나갈수록 슬픔은 커져만 가고]
이별에 대한 그리움. 여성 특유의 애절하고 섬세한 아련한 감각이 담긴 이 노래에 동화되는 와중 도경의 머릿속에 한 여성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쓸데없는 뇌내망상일 수 있지만,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한 여성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다.
스르륵.
‘불쌍한 여자...’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 소녀의 심장을 가진 여인.
슬퍼서 울고 싶어도 외로워서 울고 싶어도 결국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맑고 큰 눈방울로 의연한 척 씩씩히 웃음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낙인처럼 떠올랐는데 이런 도경의 추측과 상상들은 놀랍게도 맞아 떨어졌다.
[장덕순(28)]
[그대 떠난 후(86)] 곡의 주인은 여성은 장덕순이란 다소 순박한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대한민국 최연소 작곡가로 음악을 만든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이자 여성들에게 힘든 시대 속에 순수히 음악 하나로 빛을 발했던 천재였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천재들이 그렇듯이 그녀는 2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렇기에 그녀를 향해 비운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여지기도 했다.
[나 혼자면 어때요? 난 아직 어린걸요.
슬프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가사에는 그녀가 슬픔에 얼마나 익숙하고 의연한 척하려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드러났다. 그것을 경쾌한 멜로디 라인으로 애써 가리려 했기에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노래 [그대 떠난 후]였다.
띠디딩! 띵! 퉁!
“...!?”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작곡가의 주인이 원하는 대로 의도하는 대로 더욱더 경쾌하고 생기발랄하게 기타를 연주했다. 온전히 노래에 녹아들어 오래된 옛 유산에 도경이란 생기를 불어넣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이 곡을 만든 창작자에게 보답하는 도경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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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보고 있어요?’
따다당!
우우우웅.
씨익.
어느새 한두 명씩 자신의 곁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기척을 느낀 도경은 웃음 지으며 자신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장현을 향해 눈웃음 지었다.
찡긋.
‘아저씨는 틀리지 않았어요.’
이건 이장현이란 한 사람을 위한 공연이었다.
주변의 모든 이가 자신의 즐거움과 인기와 호응을 얻기 위한 노래를 틀 때도, 듣는 사람이 없음에도, 자신이 옛 곡들에게 받은 감동을 사람들에게 나누기 위해 묵묵히 노래를 불러왔던 그를 위한 공연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나누기 위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도경에게 전달되었다.
‘봐봐요. 아저씨.’
자신은 좋은 노래라 굳게 믿었건만 ‘옛날’이란 시대의 단어에 가려 외면받는 현실과 흐름에 자신을 투영하며 쓸쓸함에 젖어있던 이장현을 멀리서 지켜봤던 도경은 그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좋은 노래랍니다.’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으며 젊은 애들도 그것을 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노래를 듣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의 존재가 이장현에게 곧 증명할 것이었다.
‘그러니까 잘 보세요.’
스윽.
경쾌한 리듬 속에 이끌린 사람들을 보며 도경은 기타를 치는 가운데 자리에 천천히 일어나 정면을 마주해 보였다.
관객과 청중들이 모여들려는 조짐이 보이는 이 타이밍에 모두에게 한 방을 먹여야 하는 것을 도경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따당!
“흡!”
순간 기타연주를 멈춘 도경.
도경은 무반주 속에 마이크를 집어 들어 올리며 한껏 숨을 머금은 후 노랫소리를 터트렸다.
[나 혼자면 어때요? 난 아직 어린 걸
슬퍼지며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찌잉~!
움찔!
소리높인 도경의 열창에 도경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과 길거리를 지나치던 사람들 모두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추며 도경을 바라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가운데 시선을 잡아끄는 도경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아...!”
‘반짝인다.’
그런 도경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장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멍하니 벌렸다.
30년 전의 곡을 부름에도 반짝이는 도경이란 존재감과 그의 노래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미워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
파아앗!
‘옛날’이란 단어에 묻혀서 색이 바랬던 곡을 선명하게 모두에게 펼쳐 보여주는 도경의 노랫소리가 올곧게 뻗어가며 홍대에 가득했던 모든 소음을 삼켜버린다.
스르륵!
“어? 박도경? 저거 박도경 아니야?”
“와아아아! 박도경이다!”
“꺄악!”
열창하는 가운데 벗겨진 후드에 드러나는 도경의 정체에 모두가 놀람의 함성을 질렀지만 도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곡에 집중하며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
연예인으로 함성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곡을 모두에게 들려주기 위함이기 때문이었다.
‘도경의 70, 80’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도경은 이장현을 위해 그에게 들었던 70, 80노래들을 사람들 앞에 모두 열창하기 시작했고 제대로 된 버스킹이 어떤 것인지 모두에게 증명해 주었다.
띠리링!
와아아아!
짝짝짝!
그의 70,80 메들리가 끝났을 땐 모두들 박수를 치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이잉!
“대박...”
그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최정훈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