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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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의 버스킹을 1주일 후.
사람들은 도경에게는 새로운 별명을 하나 더 붙이기 시작했다.
「거리의 음유시인」
도경이 요 1주일 사이 하루 온 종일 유명한 지역들을 다니면서 버스킹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대, 신촌, 남산, 혜화, 이태원, 한강, 강변 등 버스킹을 할 수 있는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버스킹 문화의 재 부활. 통기타의 재등장!]
[장소 가리지 않는 박도경의 라이브에 지역 상인들이 기쁨의 비명을 지르다.]
[온 거리에 출몰하며 노래를 부르는 박도경. 그를 파헤쳐 본다.]
[화끈함이 뭔지 보여주다며 음주 노래하는 박도경?]
[박도경의 앞으로의 행보!]
신출귀몰하게 성실하게 하루온종일 도경이 버스킹을 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장소 가리지 않고 중요한 것은 도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박도경은 가수다.’
도경의 버스킹을 통해서 사람들은 도경의 본질은 가수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경이 여태껏 자신의 끼와 재능을 통해 만능연예인의 면모를 내뿜으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었지만, 이번 버스킹을 통해서 사람들은 도경이 공연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근본적으로 진짜배기는 가수라는 것을 알았다.
[버스킹의 신이다!!!]
┖[ㅇㅇ 무슨 콘서트 보는 줄 사람들이 떼창하네.]
┖[아니. 그것보다 진짜 사전에 홍보도 안 하는데 저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고?]
┖[훗. 직접 들어봐라. 클라스가 다르다.]
┖[뭔데? 그렇게 오짐?]
┖[질질 싼다. 영상으로도 좋지만 직접 들어봐야 함. 뭔가 근본적으로 울림 같은 게 다름.]
┖[헐...! 그렇게 말하니까 대박 궁금하다.]
[박도경 조련술 봐라. 사람들이 알아서 정렬하네.]
┖[진짜 난 놈은 난 놈. MC 괜히 하는 게 아닌 걸 보여줌. 말 진짜 잘하더라.]
┖[111. 진짜 말 잘함. 그리고 관리도 엄청 잘해요! 저 직접 앞에서 공연 봤는데 사람 많은 버스킹에서 이렇게 쾌적하게 공연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인 듯.]
┖[ㅇㅇ 보니까 버스킹 매너가 몸에 뵀더라. 보통은 공연하기 급급한데 주변을 볼 줄 암. 통행에 조금만 불편을 끼칠 기세를 보이면 칼같이 음악 끊고 자리 뜨더라.]
[신기한 게 저렇게 하루 종일 아침부터 밤까지 버스킹을 할 수 있나? 안 힘든 가?]
┖[맞아요. 무슨 하루에 동영상이 몇 편이 올라오는지 모르겠음. 검색하는데 영상 너무 많음.]
┖[보니까 천성인 듯. 생활형 버스킹이 자연스레 몸에 뵈어 있더라. 안 그러곤 저렇게 못 함.]
┖[맞아요. 저거 보면서 박도경이 외국에서 무일푼으로 여행 어떻게 했는지 납득되더라고요. 진짜 연예인 안 해도 기타 하나면 굶어 죽진 않겠더라고요.]
┖[인정. 버스킹 비 하루 보니까 50만이 넘는 거 같더라. 월급으로 치면 1천만이 넘음.]
┖[그럼 뭐함. 술집에서 다 쏘더만! ㅋㅋㅋㅋㅋ. 이러라고 준 돈이라면서 쏘는데 영상 찍지 말라고 하더라. 이유가 알려지면 엄마한테 등짝 맞는다고 이야기하는 데에서 현웃 터짐.]
┖[ㅋㅋㅋㅋㅋ. 나도 그 영상 봤는데 진짜 개 또라이임.]
[저렇게 살면 진짜 살맛 나겠다.]
┖[ㅇㅇ 다른 것 모르겠고 진짜 노래할 때 즐거워 보임.]
┖[맞어. 나는 박도경이 떠서 조금 변한 거나 거만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탈하더라. 방송 모습 하고 지금 모습하고 같은 듯.]
┖[잘난 척하는 데 미워 보이지 않는 신기한 캐릭터.]
┖[그나저나 소속사에서 뭐라 안 하나? 그래도 연예인인데 방송 활동 안 하고 버스킹만 하니 말이야.]
┖[인성교육하고 사생활은 엄격해도 그래도 JY가 아티스트 활동에는 관대하니까.]
┖[이건 좀 나는 생각이 다른 게 한창 주가를 올리는 애가 버스킹을 하는 건 조금 아니지. 지금 도경이라면 CF를 찍거나 차기작 혹은 가수 데뷔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이니까 말이야. 잡다하게 활동하는 것보다 크게 한방 터트리는 게 훨 낫지.]
┖[그러고 보니 박도경 가수데뷔를 안 했네 ㅎㄷㄷ. JY뭐 하냐? 일 안하냐?]
온라인상에서의 반응처럼 도경의 버스킹은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와 호평을 동시에 이끌어 내며 천천히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뛰어난 노래 실력은 기본이고 진심으로 음악을 즐기며 노래를 부르는 그의 버스킹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남겨 주었기 때문이다.
‘여유와 삶을 즐기는 삶.’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버스킹을 하는 가수들은 많았지만, 도경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가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다른 가수들이 단발성 이벤트로 끝내는 버스킹과 달리 도경의 버스킹은 그의 삶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더 나아가 주변 상권까지 상부상조하는 그의 버스킹은 그야말로 이상적이었다.
도경의 SNS에 이곳에서도 찾아와달라고 하는 글이 달릴 정도로 도경의 버스킹은 현재 성황리에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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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당동 [라이온].
풍성한 갈기를 가진 사자가 새겨진 바(Bar)에 앉은 박진용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도경에 대한 기사와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녀석... 아주 신났네. ”
도경의 버스킹 영상을 바라본 박진용은 웃음을 터트렸다. 데뷔를 앞두고 버스킹 여행이라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지금도 연락이 되질 않는 것을 보니 버스킹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내 속 타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끼익.
어수룩해 보이지만 대형 기획사를 운영하는 몸. 도경의 데뷔무대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이유를 찾은 박진용의 머릿속에 온통 도경에 대한 걱정밖에 없었다.
‘버스킹의 효과가 나쁘진 않아. 하지만...’
“하필 차현식 PD와 엮이다니...!”
뒤늦게 알아버린 도경과 차현식PD의 관계.
도경의 미니앨범이 싱글 앨범이 된 이유와 제대로 된 무대를 받지 못한 이유. 도경에게 모든 연유를 들은 박진용은 처음으로 도경에게 잔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화를 내었다.
그런 위험한 인물과 만남을 가지고 단독으로 모종의 거래를 한 도경이 행동이 너무나 경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걱정 하지 마세요. 1위하면 돼요. 별거 아닌 문제에요.)
(너, 그게 지금 말이라고?)
(그럼 제가 그런 음흉한 작자가 만든 노래에 밀려서 1위 못할 거 같아요?)
(...)
(형. 제가 실망시킨 적 있어요?)
(......)
“치사한 새끼. 꼭 필요할 때만 형이지...!”
도경의 그 말에 박진용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대로 도경은 자신을 실망을 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쁜 일을 하기 위함도 아니고 정용환과 차도한을 위해 벌어진 일을 알기에 무작정 뭐라 할 수도 없는 박진용은 그저 갑갑할 뿐이었다.
“하아... 너무 겁이 없어.”
처음으로 도경이 평범하지 않은 천재라는 것에 박진용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 작자가 어떤 사람인줄 아냐. 녀석아...!”
차현식 PD는 그는 정말로 위험한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유명한 일화들이 많았지만 그중 가수와 배우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며 한류 톱스타였던 손일택을 차현식 PD가 몰락시킨 일화가 가장 유명했다.
사건의 발단은 술집에서 으레 일어나는 남자들의 자존심 때문에 벌어지는 시비 문제였는데 4집 앨범의 준비를 위해 차현식 PD와 함께 작업을 한 손일택은 작곡가 주제에 콧대가 높은 태도를 지닌 차현식 PD가 마음에 안 들었고 앨범제작이 끝나자마자 뒤풀이 자리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 차현식PD에게 시비를 걸며 모욕을 안겨주었다.
손일택은 차현식 PD의 머리에 술을 끼얹은 것이다.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그는 차현식 PD를 비웃을 뿐이었고 그런 손일택을 향해 차현식 PD는 차가운 미소만 남긴 채 말없이 술자리에서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일택은 약물과 성매매혐의로 물의를 일으키며 연예인으로서 몰락한다. 나중에 들리는 얘기로는 거액의 부동산 사기까지 당하여 빛에 허덕이는 손일택은 스폰을 전전하며 남창으로 사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손일택의 빛을 변제해주고 스폰 고객을 찾아주는 사람이 바로 차현식 PD라는 것이다.
「검은 손길」 차현식.
모든 것이 손일택의 복수와 몰락을 위한 차현식의 치밀한 공작이었던 것이다.
‘무서운 사람이지.’
차현식의 무서운 점은 그의 거미줄 같은 넓은 인맥과 보이지 않는 뒤에서 상대방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뒷공작을 펼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사람의 욕망을 이용한 함정을 말이다.
자신의 그림자 하나 남기지 않는 그의 검은 손길은 항상 상대방의 파멸을 가져왔고 이번에는 불행히도 도경에게 그의 손길이 뻗어졌다.
“만나고 싶지도 않고 애들한테 평생 만나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박진용에게 있어 차현식 PD는 독 같은 존재였다.
빛나는 재능을 유혹하고 망가트리는 독. 평생 얽히기도 만나고 싶지도 않은 인물이 그인 것이다.
박진용이 자신 회사의 전 직원에게 여자가 있는 술집에 못 가게 하는 철칙과 기획사 안에 있는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신경 쓴 데에는 차현식 PD가 기여한 부분이 컸다.
저벅저벅!
“!?”
박진용이 복잡한 감정 속에서 술을 들이켜고 있을 때 한 남성이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후후후. 이거 요즘 잘 나가는 대형기획사 사장님이 일개 작곡가인 나를 보자고 할 줄이야.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박진용에게 다가온 인물은 놀랍게도 그가 다시보고 싶지 않았던 차현식 PD. 그것도 서로의 대화를 들어보니 그를 먼저 부른 것은 박진용 본인인 듯싶었다.
“오랜만입니다. 차 작곡가님.”
꾸벅.
“어이쿠. 사장이 그렇게 머리를 쉽게 숙여도 되나? 하하하.”
“......”
“쯧. 재미없기는...”
박진용의 태도에 차현식 PD는 혀를 차며 그를 바라보다 그의 마주 편의 있는 자리에 풀썩 앉았다.
“어디 보자. 업계에서 제일로 깔끔 떨기로 유명한 박사장이 나를 불렀다라...”
“이유는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씨익.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차현식은 재밌다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진용 사장만큼은 업계에서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기 때문이다.
‘데뷔앨범 CD를 돌렸던 애송이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사람 인생이라는 게 정말 알 수가 없군. 언제 봐도 신기해.’
그 당시에 맞지 않는 정서와 그리 뛰어나지 못한 외모를 지닌 박진용이 이렇게 성공할 줄은 차현식 PD를 포함하여 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가 탄생시킨 돌연변이 같은 존재를 뽑으라면 박진용은 다섯 손가락 안에 뽑힐 거라 생각하는 차현식 PD였다.
“박도경 때문이지?”
끄덕.
“맞습니다.”
박진용의 애송이였던 과거를 떠올리던 차현식 PD는 상념을 접고 본격적인 용건을 꺼내었다. 업계에서 자신을 꺼리는 박진용이 자신을 부른 이유야 그것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도경이를 한 번 봐주시면 안 되시겠습니까?”
“흐음... 그건...”
“10억 드리겠습니다.”
“!?”
박진용이 차현식 PD를 불렀던 이유.
도경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말하지 못했지만, 박진용은 도경이라도 차현식 PD를 이기지 못할 거라 여긴 것이다.
무엇보다 봐 달라며 차현식 PD에게 10억을 제시하는 그의 태도는 대형기획사의 사장이라 믿을 수 없는 저자세를 취한 것과 다름없었다.
“10억이라...”
갑작스러운 큰 액수에 차현식 PD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박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대한민국 3대 기획사라 불리는 사장이 이 정도로 저자세를 취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만큼 중히 여긴다는 건가?’
피식.
“박사장이 TG, LSM에 밀리는 이유가 뭔지 알아?”
“...”
“정에 약하다는 거야. 힘을 가졌으면 비정하게 휘두르기도 하고 손해가 될 거 같으면 버리기도 해야지. 아주 물렁물렁해. 클클클.”
“거래 받아주시는 겁니까?”
“10억. 분명 탐나는 금액이긴 한데 말이야...”
모욕적인 언사임에도 불구하고 박진용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의 의사를 물었다. 이에 차현식은 어깨를 으쓱이며 미안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품속에 있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팅!
“곤란하단 말이야.”
“네?”
‘분명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텐데...?’
10억.
단순히 눈만 감으면 들어올 액수가 자그마치 10억인 것이다.
사적인 감정보다 자신의 이득과 이성을 철저히 따르는 차현식 PD 성격상 거절할 이유가 없었는데 그런 그가 거절의 의사를 표해왔다. 이는 박진용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10억입니다. 손해는 아니실 텐데요? 이유가 있습니까?”
후우.
뭉게뭉게.
“하하. 그 당돌한 놈이 작곡으로 나에게 내기를 걸어와서 말이야. 그거 아나? 난 박도경의 데뷔곡이 뭔지 알고 있다네.”
“!?”
피식.
“아아. 역시 모르고 있었군.”
박진용의 표정을 본 차현식 PD는 재밌다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과 도경의 모종의 거래가 있음을 알았지만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른 눈치였기 때문이다.
“그 녀석이 나에게 데뷔곡을 가져와 건넸다네. 그리고 말하더군. 1위를 걸고 내기를 하자고 말이야.”
“!!?”
‘도경이 이 미친 녀석!’
“후후. 이제 왜 곤란한지 알겠나?”
“......”
차현식의 PD의 말에 박진용은 눈을 질끈 감았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패를 내밀고 1등을 할 수 있다고 면전에 대고 얘기하는 건 그야말로 너 따위는 눈감고도 이길 수 있다는 도발이나 진배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하필 차현식 PD에게 저지르다니 그야말로 맹수의 입에다 자신의 얼굴을 집어넣는 것과 같은 멍청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박도경 그 녀석은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거지.”
“20억...!”
“응?”
그 말에 박진용은 입술을 꾹 깨물며 결연한 표정으로 마지막 딜을 제시했다.
“내기 승패는 상관없이 20억 드리겠습니다. 도경이에게 손일택에 했던 것처럼 해코지만 해주지 마십시오.”
“뭐라고...? 하하하하!”
탕탕탕!
박진용의 말에 차현식은 테이블을 쿵쿵 치며 박장 대소 하고 말았다.
설마 이 정도로 아낄 줄이야. 자신의 아티스트를 위해 이 정도로 희생을 할 줄이야. 자신으로선 정말 상상도 못 할 행동을 하는 박진용의 존재에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박 사장이 박도경을 많이 아끼는군. 그 정도로 박도경이 가치가 있나?”
끄덕.
“있습니다.”
차현식 PD의 조소가 담긴 웃음에도 박진용은 흔들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듯 말한다.
“그 녀석은 우리나라 가요계의 미래입니다. 20억은 싼 편이지요.”
“미쳤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군.’
“어쩌시겠습니까.”
“흐음...!”
박진용의 두 눈을 바라본 차현식 PD는 혀를 내둘렀다.
굳건한 확신과 신념이 서린 그의 두 눈에 차현식은 어느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손익을 계산하기 시작하였다. 대형기획사 사장이 저 정도로 아끼고 도는 녀석을 건드리기엔 자신에게도 리스크가 확실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써 피곤한 상대에게 척을 질 필요 없지. 적당히 굴욕만 주고 끝내는 게 좋겠어.’
끄덕
“하하. 그렇게 말하는데 내 박 사장의 성의를 받을 수밖에 없군.”
차현식 PD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박진용 사장에게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거래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의 표현이었다.
“.....”
“악수 모르나? 무안하게 할 텐가?”
“그럼. 잘 부탁드리...”
자신의 앞에 들이 밀어진 차현식 PD의 손을 침묵하며 잠깐 바라보던 박진용은 한숨을 내뱉으며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뻗었다.
“멈추십시오.”
움찔.
“당신은...?”
“!?”
“응?”
거래가 성사되려는 막판에 한 명의 불청객이 나타났다.
그 인물에 박진용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차현식 PD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불청객에 대한 정체를 물었다.
“박사장이 아는 사인가? 그쪽은 누구지?”
“매니저입니다.”
“매니저?”
두 사람의 은밀한 거래를 막은 인물은 그야말로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도경의 옆에 있어야 할 그녀가 현재 두 사람이 있는 장소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뵙는군요. 박도경 매니저 백아현이라 합니다.”
“박도경 매니저? 이거 놀라야 하나? 대체 그쪽이 여길 왜 여기 있는 거지?”
“전언을 드리러 왔습니다.”
“전언?”
“그렇습니다. 원래라면 드릴 일도 없을 테지만 도경 님 주변 사람에 차현식 PD님이 접촉하면 드리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싸늘.
“꼬리를 붙인 건가? 점점 재밌는 짓을 해주는군. 그래 그 전언이란 말이 뭔지 한번 들어볼까?”
산전수전 겪은바 백아현이란 매니저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차현식 Pd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지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끄덕.
“얼마든지.”
미소는 그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나타내는 부분이었지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백아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도경의 주문을 충실히 따라 그의 전언을 전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내 주변 사람에게 개수작 부리지 마라. 더러운 노인네.”
“뭐? 노인네?”
“흑막놀이 그만하고 곧게 늙어라. 노인네. 고추 안 선다고 내시처럼 히스테리 부리면서 평생 그렇게 못나게 살 거냐?”
“하...!”
울그락불그락.
차현식의 PD의 지어졌던 미소가 순식간에 걷혔는데 시뻘게지고 있는 차현식 PD의 얼굴색은 그가 현재 평정을 잃고 있는 것을 증명하였다.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그의 얼굴색은 점점 더 붉게 변하고 있었지만 백아현은 멈추지 않고 도경의 마지막 전언을 전하는데 충실할 뿐이었다.
“왜? 열 받냐? 꼬우면 다이다이 뜨시던가? 아, 못하지? 그러니까 뒤에서만 수작질 부리지. 그렇게 자기 자신 곡에 자신이 없나 보네?”
빠직.
“작곡가 딱지 떼라 찌질한 새끼. 수작 부려봐 다 박살 내줄 테니까. 묫자리나 찾으면서 짜져나 있어라.”
“이상 끝입니다. 그럼 이만 저는 가보겠습니다.”
“.....”
무표정으로 폭언에 가까운 전언의 끝을 알린 백아현은 차현식 PD에게 인사를 올린 후 뒤돌아 제갈 길을 간다.
폭언을 내뱉은 사람이라 믿을 수 없는 깔끔한 그녀의 태도에 자리에 남겨진 두 사람은 말을 잃고 정적을 유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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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
띠리링. 퉁! 띵~!
‘아, 내가 가서 직접 얘기해줘야 했는데 아쉽다...!’
한창 버스킹중인 도경은 차현식 PD를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가운데 백아현을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그 자리에 없어도 그녀가 어떻게 차현식에게 폭언을 내뱉었을지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피식.
‘많이 열 받을 거다.’
무표정이 자신의 폭언을 전달했을 백아현의 존재에 대해 속 시원함을 느낀 도경은 마이크를 들어 올려 외쳤다
“하하하. 신나잖아! 다들 소리 질러~!”
와아아아!
믿음직한(?) 백아현이란 매니저 덕분에 종로3가에 있던 도경의 버스킹은 성황리에 끝을 맞이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