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사전 리허설 때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어?”
“그게...”
“그게 뭐? 제대로 말 안 해?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방송 하루 이틀 해? 죄송할 짓을 왜해?”
“죄송합니다.”
“하...”
MBN 음악센터 PD는 주변 스태프에게 말 못 할 거친 욕설과 폭언을 퍼부으며 주변의 스태프를 들들 볶았다. 음악방송에서 음향사고는 여러 번 있었지만 아예 노래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MR저 정도까지 심하게 튕긴 것은 그로서도 처음 보고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씨발! 오늘 제대로 들들 볶이겠네. 가뜩이나 위에서 쪼아대고 있는데...!’
반주라고 할 수 없는 MR이 끝이 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도경과 팀원들을 바라보며 PD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화를 냈지만 아무리 봐도 도경의 데뷔무대를 망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나마 팬덤이 작은 도경에게 터져서 다행인가?’
오히려 신인가수로 데뷔하는 도경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음악센터 PD였다.
인지도와 인기는 많았지만, 극성인 팬덤이 없는 도경이라면 이슈가 오래가거나 크게 되지 않을 거라 예상한 PD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일단 다음 무대를 사전에 녹화했던 무대로 진행하고 음향 체크해. 그리고 이번 사건 책임자 놈 찾아와.”
“네!”
PD의 불호령이 멈추고 구체적인 오더가 떨어지자 제작진과 스태프들을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두가 숨 가삐 움직이고 있을 때 FD를 맡고 있는 한 남성이 쭈뼛쭈뼛 눈치를 보면서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
“응?”
“박도경 소문으로 한 성격 한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적당히 사과하면 되겠지. 그리고 지가 꼬우면 어쩔 건데? 걔는 가수 안 할 거래? 뭘 그런 쓰잘데기 없는 걸 신경 써? 이번 사건 원흉이나 빨리 찾아와.”
“네, 네...!”
후다닥.
FD를 쫓은 음악센터 PD는 눈앞에 있는 수많은 화면을 주시하며 조금 전 입술을 깨물며 무대 아래로 내려가던 도경의 모습을 떠올렸다.
방송계의 뜨거운 감자인 도경의 소문을 그 또한 익히 알고 들었지만, 도경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지상파 방송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1%~2%대의 초라한 성적임에도 음악방송의 PD의 위치는 절대적이라 할 정도로 가수들에게 ‘갑’이었기 때문이다.
‘가수 하고 싶으면 더러워도 참아야지 어쩌겠어?’
가수들이 자신의 신곡을 홍보할 무대와 인지도를 얻기 위한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을 진출을 위해서는 음악방송의 출연은 필수 관문이라 할 정도로 절대적이었기에 음악엔터테인먼트들과 가수들은 음악방송을 총괄하며 맡고 있는 PD와는 절대로 척 을지지 않았다.
그 점을 알기에 음악센터의 PD의 위치에 있는 그는 도경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일을 만들어낼지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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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
빠드득.
“......”
고요한 정적 속.
백아현을 제외하고 자신과 함께 온 댄서들과 스태프들을 먼저 회사로 보낸 도경은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 홀로 이를 갈고 있었다.
“하...”
10시간 이상의 긴 기다림 속에서 가지는 첫 데뷔무대가 그딴 어이없는 결말을 맞이할지 상상도 못 했다.
“차라리 MR이 아예 끊겼으면 직접 노래 부르면서 춤출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반주가 튕기는 것도 정도껏 이어야지 멜로디 라인자체가 전혀 보이지 않는 소음 속에 댄스곡을 하는 것은 도경이라도 무리였다.
“하긴. 그 작자가 그걸 예상하지 못 할리 없겠지.”
수신불명의 문자 한통.
하지만 그 문자를 보낸 자가 차현식 PD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제대로 한 방 먹었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도경에게 있어 MR이 튄다는 생소한 경험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설마 자신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노래를 부르지 못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도경의 속은 현재 끓어오르는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쪽팔려.’
자신의 무기력한 모습이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보였다는 것과 그것이 영원히 영상매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자각한 도경은 심한 굴욕감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지만... 인정할 건 해야겠지.”
일의 원흉인 차현식 PD를 떠올리며 오랜만에 원초적으로 일을 해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도경은 이내 그러한 욕망을 털어내었다.
권모술수를 모르는 촌뜨기도 아니고 차현식 PD를 향해 비겁하다고 욕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도경이었다, 오히려 도경은 차현식 PD의 힘을 인정했다.
“한수 배웠다 생각하자.”
방송프로그램 여러 개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CP(Chief Producer)에게 닿는 인맥과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킬 정도의 영향력은 그의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 자기 영역이라 이거지.”
업계관계자들과 박진용이 그를 피하려 했던 이유를 실감한 도경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을 벼루였다.
똑똑똑!
덜컥.
“열 좀 식히셨습니까?”
“조금? 이렇게 제대로 한 방 먹은 적은 오랜 만이니까 잘 정리가 안 되네.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됐어?”
“네. 1위 축하 자리에 나갈 시간입니다.”
“축하할 마음이 없는데 축하 자리에 참여해야 한다라... 진짜 음방활동은 피곤하거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자신의 무대가 끝나고 난 뒤에도 1위를 위해 자리를 지켜야 하는 비합리적인 음악방송의 시스템에 도경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매니저인 백아현에게 피곤함을 호소하며 동의를 구해왔지만 당연한 얘기지만 냉정한 그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세상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동생분인 소희 양과 드림걸즈 아이들 좀 본받으시죠. 어린 소녀들이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의젓하게 불평불만 없이 소화합니다. 성장하시길. 그리고 차현식 PD에게서 1위를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울컥.
“누가 뭐래?”
“알면 되었습니다.”
“칫... 요즘 들어 잔소리 심해지고 있는 거 알아? 누가 보면 진짜 매니저인 줄 알겠어.”
“맡은 바 일은 확실히 하려는 성격이라 말입니다.”
“웃기시네. 세상 어느 매니저가 자신의 소속 연예인 전화번호를 수신 거부 해놓냐?”
“모두들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 겁니다.”
“뻔뻔하게...!”
“가시죠. 일 마저 하셔야죠. 받은 만큼 일한다가 신조 아니셨습니까?”
괜히 심술이 난 도경은 그녀를 향해 툴툴거렸지만 백아현은 끄덕하지 않고 오히려 도경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잔인함을 보여 주었다.
“무대도 망쳤는데 마무리는 잘 지으셔야죠.”
“윽! 너 말이야. 아는지 모르겠는데 매니저 역할에는 스타의 멘탈 케어도...”
“네네, 알겠습니다.”
빠직!
“으아아. 말을 말지 말아!”
0.1초 만에 성의 없게 대답하는 백아현의 태도에 도경의 미간에 사거리의 혈관 마크가 떠올랐는데 이내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도경의 발걸음에 그가 얼마나 심통이 나있는지 쉬이 알 수 있었다.
씨익.
“후후후. 매니저란 일 슬슬 할만한 것 같아.”
도경의 뒷모습을 보며 고소를 짓는 백아현은 매니저란 직업이 조금은 마음에 드는 것을 느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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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1월 1번째 주 음악센터 명예의 1위는...!]
[마하1A4! 축하드립니다.]
푸슈슛!
와아아아!
꽃가루와 환호성이 가득한 무대 위. 수많은 가수들 사이에서 1위를 한 남성 아이돌 그룹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트로피를 거머쥐며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짝짝짝!
그중 붉은 머리색의 남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동료가 있는 아이돌이 태반인 무대 위에서 홀로 동떨어진 채 누가 봐도 ‘나는 기분이 나빠요’란 표정으로 떫은 감을 씹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짜증나 슬슬 내려가도 될까? 시원한 술 한 잔 먹고 싶다. 이런 게 사회생활의 고초라는 걸까?’
항상 모두의 관심과 환호성의 중심에 있다가 엑세트라처럼 뒤에서 박수치는 상황에 도경의 심통은 배배 꼬이다 못해 인내심은 끝을 고하고 있었는데 도경은 필사적으로 머릿속에 시원한 맥주를 떠올리며 터지기 일보 직전의 자신을 꾹 참아냈다.
‘얼마 안 남았어. 참자 참아...!’
중얼중얼
최악 중에 최악의 하루. 심통이 날대로 심통이 난 하루 속에 도경은 서둘러 자신에게 자유의 시간이 오길 간절히 고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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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웅성.
도경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음악방송은 끝이 났음에도 도경의 인내해야 하는 시간은 끝이 날지 몰랐다.
탁탁탁탁탁!
‘하...’
오늘의 스케줄의 끝을 기다리는 그의 조바심을 나타내듯 도경의 오른발은 정신 사납게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30분이 넘었어. 대체 언제 오는데?”
도경은 현재 음악센터의 책임자인 PD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도경뿐만이 아니라 오늘 출연한 대부분의 가수와 아이돌들은 복도에서 줄을 서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무대를 열심히 꾸며준 제작진과 스태프들에 감사함을 표시하기 위함과 무대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였다.
“진짜 쓸데없는 관례가 많아.”
“동감합니다.”
이번만큼은 백아현도 도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취지는 좋을지 몰라도 이미 스태프들과 제작진에게 인사를 올린 지 오래인 상황 속에 PD 한 명이 오질 않아서 30분 이상을 많은 출연진들이 한 장소에 줄 서서 대기하고 있는 비합리적인 상황은 백아현 또한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인들은 방송 관련자에게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서 신인이 아닌 자들은 자신들의 평판을 위해서 지켜야 하는 자리.
서로 각자 간의 이유는 있지만, 이상하게도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은 버릴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 입니다!!!]
꾸벅!
“......”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울려 퍼지는 인사 소리.
PD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줄을 서고 있던 출연자들은 그를 향해 90도의 정확한 각으로 인사를 올리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엿 같네.’
인사하는 파도 물결 속. 도경은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자신의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무대를 거하게 망친 이유도 있지만 무언가 이러한 수직적인 구조를 당연시 여겨는 이 장소의 공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마음 같아선 인사도 뭐고 떠나고 싶은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참자 참아. 이제까지 참은 게 아깝잖아. 눈 딱 감고 인사 한번만 하면 돼.’
마지막 한 톨의 인내심을 내는 도경은 심호흡을 내쉬며 이제는 자신과 가까워진 PD를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자.”
중얼.
자신만의 마법의 단어를 읊조리는 도경.
그렇다. 오늘따라 그답지 않게 참고 있었던 이유의 많은 지분은 그의 주변인에게 악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속사, 더 나아가 자신의 곡을 받는 사람이 피해를 받을까 하는 만에 하나의 걱정이 그의 행동을 제약했던 것이다.
오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케이블 오디션에 출신들의 아이돌들이 지상파 음악방송에 출연 못하는 게 현실인 이 바닥은 제대로 뜨기 전 까지는 낙엽 스치는 것을 조심하듯 그야말로 사소한 것이라도 조심해야 했다.
저벅저벅.
“안녕하십니까! 신인 가수 카일 박도경이라 합니다.”
‘후아! 이젠 진짜 끝났다.’
PD에게 인사를 건넨 도경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한숨을 내뱉으며 모든 난관을 끝마쳤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다 끝났어. 훌륭했어. 오늘은 코가 삐뚤어지게 마실 거다.’
오늘의 고난을 버틴 상으로 스스로를 알콜 세례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씻어낼 생각에 젖어있던 도경은 예상치 못하게 훅 들어와 자신을 덮치는 난관을 마주하고 말았다.
우뚝.
걸음을 옮기며 제 갈 길을 갈 것 같은 PD가 도경에게 다가와 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아~ 도경 씨구나. 복도에 기다리고 있었네?”
“네?”
“아니 소문으로 도경이 네가 한 성격한다고 하던데 나는 박차고 나갈 줄 알았는데 역시 JY가 인성교육이 좋긴 좋나 봐. 하하하.”
빠직.
‘뭐?’
환한 웃음을 지은 PD는 도경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위로하듯 가볍게 두드리며 그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도경의 무대에 벌어진 일에 대한 사과와 격려를 하기 위한 행동인 듯싶었다.
툭툭!
“참 운도 없지 하필 MR이 튕길 줄이야. 우리가 많이 미안해.”
‘운이 나빠?’
빠직!
“그래도 음방에 음향사고가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니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
‘좋은 경험?’
빠직 빠직!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젊을 땐 사서 고생도 한다고 말이야. 이런 경험들이 나중에 다...!”
‘나보다 어린 게...!’
빠직 빠직 빠직!
세상에는 가만히 있는 것만큼 못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 PD가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미안함이란 감정과 진심이란 마음이 결여된 그의 위로는 잔인하게도 도경의 인내로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트리고 있는 것이었다.
“다음에 오면 내가 신경 써서 무대 준비 해줄...”
빠지지직! 쾅!!!
“글쎄요. 다음에 있을지 모르겠네요.”
“뭐......?”
싸늘하다 못해 한기가 서린 목소리가 도경의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누가 봐도 노기가 서린 그 목소리에 사람 좋던 웃음을 짓던 음악센터 PD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다음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 이 새끼가 미쳤나? 너 지금 나한테 개기는 거냐?”
꽈아악!
“네. 한번 개겨 보렵니다.”
꾹!
“엇?”
부들부들.
PD는 도경의 말에 그의 어깨에 올렸던 손에 힘을 주며 살벌하게 그를 노려보았지만, 도경은 가소롭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PD의 손목을 붙잡으며 해맑게 웃었다.
“그쪽 말처럼 젊으니까 사서 고생해볼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이거 놔!”
우둑!
“크아악!”
PD의 고통스러운 단말 성이 복도에 울리고 도경은 그 모습을 보면서 서슬 퍼렇게 웃었다. 진작에 이럴 걸 이제 와서는 왜 참았는지 모를 정도로 가슴 속이 시원했다.
‘음방? 그런 좆같은 시스템 다 필요 없어. 다 엎어버리고 내 갈 길 간다.’
자신의 성질을 못 참고 벌인 도경의 이 행동은 나중에는 대한민국의 가요계의 생태계를 바꾸는데 크나큰 변화를 가져온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