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딸랑.
[스팟부동산]
혜화역과 이화사거리 중간 근처에 있는 한 부동산을 운영하는 중년여성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나와 부동산의 문을 열었다.
“에구구. 슬슬 싸늘해지려고 하는걸?”
관절통 있는 부위가 슬슬 뻐근해지는 것을 보아 이번 겨울은 빠르게 찾아올 것 같은 예감한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추석이 지나고 부동산에서 많이 바쁜 시기. 부지런히 발품을 다녀야 그녀로서는 싸늘해지는 날씨는 그리 썩 반갑지 않았다.
“대박손님이 와야 하는데 말이야... 달마 대사님 힘 좀 써줘 봐요.”
“......”
요즘 들어 제대로 건수를 못 건진 그녀는 자신의 사무실 컴퓨터의 전원을 키고는 벽에 붙어있는 달마도에 그려진 달마대사 보며 툴툴거렸다.
장소는 바뀌어도 15년 넘게 자신과 함께 해왔던 달마도는 그녀에게 있어 남편 다음으로 친숙한 대상이었다.
피식.
“하긴 남편이나 대사님이나 시들한 건 익숙하지.”
“.....!”
15년간 묵묵부답인 달마대사를 향해 남자라면 누구나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말에 달마도에 그려진 달마대사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험상궂어진 듯하다.
딸랑!
“응?”
“저기. 방 보러 왔는데요.”
‘뭐야? 자취방 찾으러 온 손님인가?’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한 남학생에 그녀는 자신에 뒤에 걸려있는 곁눈질로 달마도를 보며 피식 웃었다.
‘힘 좀 쓴 게 겨우 이거요?’
“.....!”
꿈틀.
그녀는 피식 웃으며 달마도에게 한심하다는 듯 말을 속으로 건네며 자취방을 찾으러 온 손님을 맞이했다.
“그래요. 학생 방 보러 왔어요?”
“네... 방이라고 해야 하나? 방이면 방이죠.”
“응?”
“그게...!”
학생의 이어지는 말에 부동산 주인인 중년여성의 표정에 화색이 깃들기 시작한다.
펄럭!
벽에 걸린 달마도가 의기양양하게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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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기사도 올리기 전에 사과 영상이라니. JY도 급했나 보네. 정말로 박도경이 PD를 폭행한 건가? 하긴 저번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으니...!”
예능, 드라마, 가요계까지 빠르게 섭렵해 들었던 괴물 신인 박도경의 결말이 폭행 사건이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시시한 결말이나 다름없었다.
“초유의 신인이 될 수 있었는데 정말 아깝게 됐어.”
예전에도 폭행 사건에 대한 기사가 난적 있던 도경이 이번에도 그와 같은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으니 사람들에 대한 도경의 이미지는 이미 좋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개인적으로 팬이었는데 미안하게 됐어.”
기자의 얼굴에 쓴 미소가 걸렸다. 팬이지만 지금은 자신 또한 물의를 일으킨 도경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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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처음부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 분명 이번 사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연예계 관계자 사람들 모두는 도경을 공식 사과 영상을 라이브로 시청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JY 박도경이라고 합니다. 저는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의를 일으킨 빌미를 제공한 점에 죄송하다는 말씀과 더불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망설임 없이하며 자신만만하던 도경이 고개를 아무 말 없이 우선 적으로 숙이는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이내 도경의 이어지는 발언에 업계관계자들을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저 박도경은 지금 시점으로 음악 활동을 위해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술렁
“진심인가? 이거 너무 센 발언인데? 대체 무슨 생각을하는 거지?”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도경의 선언은 깜짝 놀라기 충분한 것이었다.
가수가 되려는 사람이 자신의 앨범을 홍보하기 위한 방송에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에 케이블과 다양한 홍보 수단인 매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해도 가수에게 있어 음악방송이 중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음악방송만큼 가수들에 대한 무대를 완벽하게 꾸며주고 영상으로 기록하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도경처럼 댄스를 보여 줘야 하는 가수에게는 절대적이라 할 만큼 음악방송의 힘은 필요했다.
[일단은 제가 물의를 일으킨 책임은 이 정도면 되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폭행 사건에 대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이 영상 보고 계시나요?]
“응?”
그 말과 함께 어떠한 해명도 없어 반성만 해 보였던 도경의 태도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돌변하더니 모두가 아는 도경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추기 시작했다.
[MBN 음악센터 박구현 PD 님. 아까부터 이번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해명하지 않던데 이해합니다. 여자한테 엎어치기 당한 게 쪽팔리셨겠지요. 그래도 그렇지 저한테 폭행이란 누명을 씌운 기사들에 대해서 꼭 입을 다무는 모습이 참 가관이라 생각합니다 거기 복도에서 사건을 본 사람이 몇 명이라 생각 합니까? 나중에 밝혀질 텐데 왜 그리 버티는지 저는 이해가 안 가네요. 혹시 제가 앞으로의 가수 활동을 위해서 입을 다물고 쉬쉬하며 넘어갈 거라 생각했나요? 저를 몰라도 그것은 큰 오산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무대가지고 같잖은 갑질 하는 겁니다. 저 방송국 출연 못할까 봐 덜덜 떠는 놈 아닙니다. 인생 한번 살지 두 번 삽니까? 까짓것 MBN에 출연 안하렵니다. 진짜 따질게 한 둘이 아니고 더럽고 치사하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PD 님 말처럼 젊으면 사서 고생한다고 하는데 고생해볼 생각이라 서요. 덕분에 목표가 생겼습니다. 방송국 힘 따위 없어도 성공하는 가수 그런 가수가 되도록 할 겁니다.]
“와... 박도경 미쳤네.”
조곤조곤 한 사람을 겨냥해서 물어뜯는 도경의 모습을 보며 연예계 기자는 멍하니 도경의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서둘러 자신의 노트북을 펼쳐 기사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의 영상은 화제가 될 것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야 그럴게 도경의 발언은 방송국에 대한 선전포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방송국의 힘이 없어도 성공하는 가수.’
연예계에 몸담고 있으면 있으면서 방송국의 힘을 부정하는 신인의 발언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방송국을 이루는 근간은 PD.
그런 PD 한 명을 공식적으로 개망신 준 것도 모자라 방송국의 힘 따위 필요 없다는 식의 발언을 내뱉은 도경의 모습은 그들에게 도전으로 비춰져 분명 기분이 상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MBN 블랙리스트는 따 놓은 단상이네. 또라인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앞뒤 생각 안 하고 다 들이받네.”
[아! 그리고 팬 여러분. TV에서 제 노래가 안 나온다고 실망하시지 마세요.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답니다.]
“응?”
[내일부터 아니, 정각이 지났으니 오늘부터겠네요. 저는 오늘부터 매일 소극장에서 공연을 가질 생각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제 스타그램에 기재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신나게 놀아 봐요. 그럼 이만 좋은 하루들 되시고 저도 휴식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뭐...!”
휙.
사과와는 어울리지 않는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기자는 타이핑을 치고 있는 것을 멈추고 동영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와 동시에 짓궂은 웃음을 짓는 도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지금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동영상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영상의 끝을 알렸다.
“와... 지금 공식사과영상에 자기 공연을 홍보한 거지?”
툭툭툭!
기자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쓰고 있던 글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도영상의 끝마침과 동시에 포털에 기재해야 할 기사였으나 도경의 마지막의 돌발 발언에 다른 글을 써야 할 듯싶었기 때문이다.
“진짜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신경이냐고?”
씨익
보통이면 짜증 날 벗 하지만 기자의 얼굴에는 짜증보다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박도경 진짜 너는 My Way 구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아.”
타다닥.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사람은 그야말로 기자한테 최고지.”
탁탁!
도경의 스타그램의 주소를 찾은 그는 최신 글에 기재 되어있는 포스터 이미지를 저장하며 웃음 지으면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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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신이시여. 진짜 저질러 버렸어.”
도경의 영상이 끝나고 박진용은 고개를 풀썩 책상에 받고 말았다.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을까? 나도 미쳤지 저걸 허락하다니 진짜 그때 미친 거였어.”
도경의 폭탄 발언.
아니, 그는 이미 도경이 무엇을 저지를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을 눈앞으로 목격하니 등이 따갑다 못해 식은땀이 흘렀다.
“최현식 PD에 이제는 방송국까지 적으로 돌려세웠으니...”
마치 돌아오기 힘든 전쟁터를 걸어가는 자식을 보는 기분이 이러할까?
도경의 험난하기만 한 여정이 눈에 선한 그로서는 도경의 행동을 묵인한 것이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맨날 이런 식이지. 도경이 그놈의 자신감에 항상 홀려버려.”
진짜 원래의 자신이라면 절대 허락할 일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빛을 빛내며 자신을 직시하는 도경의 모습에 이번에도 또 넘어가 버린 박진용이었다.
(팬을 위해 여는 콘서트가 아니라 팬을 만드는 콘서트를 하는 거예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세운 도경의 계획.
「팬을 만드는 콘서트.」
보통의 콘서트라면 고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팬이 생겨야 여는 행사이지만 도경은 역발상으로 콘서트를 열어 팬을 만들 계획을 꺼내 들었다.
처음에 말장난 같은 도경의 계획을 들은 박진용은 고개를 저으며 반대와 우려를 표시했지만 의외로 구체적인 예시와 아이템들을 꺼내 드는 도경의 말에 박진용은 그와 시간 가는 지 모르고 밤을 지새워 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후... 진짜 이제는 성공하기를 빌 수밖에 없다.”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쪽박.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상황 속 박진용 사장이 할 수 있는 것은 도경의 성공을 기원하는 것일 뿐이었다.
“모두 너한테 달려있다. 잘 해봐라 도경아...!”
19시간 뒤.
매일 스타를 눈앞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도경의 「소극장 콘서트」가 시작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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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탕탕탕탕!
위이잉!
“서둘러 얼마 안 남았어!”
“카메라 구도 세팅은 어때?”
“테스트해봤는데 괜찮습니다.”
“좋아!”
100평 남짓 조그마한 소극장.
수많은 사람들이 땀 흘려가며 무대를 꾸며가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고가의 음향장비부터 시작해 조명까지 조그마한 소극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덩치 큰 장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위용을 내뿜고 있었다.
“생각보다 고칠게 많았구나.”
“같은 무대라도 연극 중심의 소극장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요.”
두 남녀가 사이좋게 나란히 소극장에 있는 좌석에 앉아 모습이 바뀌어가는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정체는 도경과 백아현 매니저였다.
둘은 현재 소극장의 새 단장에 참여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제는 완성이 거의 다 돼서 숨을 돌린 겸 늦은 식사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우물우물.
꿀꺽!
힐끔.
근처에 가까운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세트 3개를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있는 도경을 보면서 백아현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먹을 게 넘어가십니까? 빚이 35억을 넘는데 말입니다.”
“응. 별로.”
“즉답입니까...”
도경의 즉답에 백아현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불안해서 잠도 못 자고 먹을 것도 목으로 못 넘길 텐데. 정말 도경님의 신경은 어디가 잘못된 게 분명합니다.”
“그런가? 투자에 그런 말이 있잖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고 말이야.”
이 소극장의 계획을 세운 것은 시간으로 따지면 이틀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도경은 자신만의 소극장을 뚝딱 만들어 내었는데 이를 옆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던 백아현은 도경이 일반상식과 먼 존재라는 것을 또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임대나 전세라는 방법을 두고 굳이 무리해서 소극장을 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음...”
건물을 임대하거나 세를 놓아도 될 것을 굳이 사겠다고 박박 우기며 자신이 번 돈을 모두 털어놓고 모자라서 대출을 까지 받아 35억이란 빚을 져가며 소극장을 사고 리모델링하는 도경은 백아현의 눈엔 정말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그래도 이게 맞아...”
“네?”
“나중에 이곳을 보면 알거야.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겨나고 어떠한 가치를 만들어 낼지 말이야. 그 가치 앞에선 35억은 푼돈도 안 될걸?”
“그게 무슨...!”
“도경 씨. 음향 테스트 부탁드립니다!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네.”
도경의 의미심장한 모습에 백아현은 그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이내 무대 위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도경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씨익.
“그래 서비스다.”
“네!?”
“첫 관객으로 직접 이 몸이 맛보기를 보여주지. 혹시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
백아현의 그 모습을 지켜본 도경은 그녀를 향해 웃음 지으며 리퀘스트 곡을 요청하였다.
“좋아하는 노래요?”
“그래. 어서 뜸 들이지 말고 ”
“그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그녀의 의문을 빠르게 해소시켜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 도경은 백아현의 요청한 곡의 제목을 듣더니 고개를 무대 위에 올라가 자신을 부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자리에 앉아있는 백아현과 눈을 직접 마주쳤다.
씨익.
“잘 들어.”
“......”
소극장 오픈 전까지 3시간.
300석이 있는 이 조그마한 소극장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관객들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에 가슴이 절로 뛰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35억이란 빚은 도경에게 있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둥.
둥.
띠리리~.
스윽.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선율이 차가운 소극장안의 공기를 포근하게 감싸기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도경은 마이크를 입가에 살며시 가져다 대며 눈을 감았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안겨다 주지.’
눈을 감았지만 도경은 보았다.
객석에 가득 차 있는 관객들과 그들을 노래로 사로잡고 있는 자신을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