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시끌벅적한 회의가 끝이 나고 출연진들과 PD끼리 회식 자리.
회의하기 전 도경이 정현동에게 저지른 실수 덕분에 회식 자리는 훈훈하게 돌아갔다.
우걱우걱.
“어우~. 맛있네.”
“하하. 다행이네요...”
“현동이 너는 진짜 잘 먹는다. 나는 나이 들어서 그런가? 잘 안 들어가던데”
우물우물.
‘그쪽이 더 만만치 않거든요?’
티는 나지 않지만 계산을 해야 하는 도경은 먹는 고기양이 정현동보다 유이열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현동이 퍼포먼스라면 유이열은 실세였다.
도경은 저 마른 몸으로 어떻게 저렇게 저리 먹는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옆에 놓인 고기 접시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대략 15인분은 넘었지...?’
건장한 남성 다섯 명이 먹는 거치고는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도경이 온 가게는 소고기 1인분에 평균 4만 원에서 5만 원 사이에 고가의 고기 전문점 집.
그 말은 오늘 도경이 써야 하는 금액이 100만 원 이상 지출해야 한다는 것인데 덕분에 도경의 속은 고기를 굽는 숯불처럼 새카맣게 타는 중이었다.
‘오늘도 한 소리 듣겠구나...’
대출을 받아서 소극장을 구입하며 빚을 진 도경은 당연히 서여사에게 한 소리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서여사는 도경이 대출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에게 가계부를 쓰고 매일 쓰고 자신에게 확인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도경에게는 귀찮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성준이 때는 2억. 그리고 지금은 수십억을 넘는 액수를 상의도 없이 하룻밤 만에 쓰는 도경의 돈의 씀씀이를 생각해 본다면 가족으로서 당연하게 취해야 할 조치였다.
‘가계부라니... 빨리 돈 벌어야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야.’
이 세계에 음유시인으로 잘 나갈 때는 금은보화를 펑펑 써댔었고 전쟁 중에는 당장 오늘내일하는 환경 속에 아끼다 똥 될까 하는 생각에 봉급은 받자마자 아끼지 않고 팍팍 썼던 도경이었다.
그런 비상식적인 금전 감각을 지닌 도경에게 있어 일일이 돈 쓴 것을 기재하는 가계부는 그야말로 번잡스러운 일이었는데 덕분에 도경은 돈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되었다.
단지 가계부를 쓰기 싫다는 황당한 이유로 말이다.
으적으적
“이모 여기 등심 2인분만 가져다주세요.”
“현동아 나는 치마살 3인분 시켜 줘 여기 고기 맛있다.”
‘그만 좀 먹지... 다들 밥은 안 먹나? 어떻게 고기만 먹냐...’
자신의 주머니 사정과 처한 상황을 알 리 없는 두 사람의 주문은 도경에게 야속하게 들릴 따름이었다.
우물우물
‘맛있긴 맛있네...’
이미 계산할 액수가 150만 원이 넘을 때는 도경은 머릿속에 계산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순순히 자신의 앞에 놓인 고기를 먹으며 맛을 즐기고 있었다.
예전에 은하수 멤버들끼리 모여 술과 고기를 먹으며 만족했던 곳이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래 일단 후회 없이 먹다 죽자...!’
“참!”
움찔.
‘뭐지?’
갑자기 모두의 주목을 끄는 정현동의 행동에 도경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그의 말에 자신의 입안에 넣던 고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희 둘 사이는 괜찮은 거냐?”
“네?”
“...!?”
자신과 김강운을 사이를 묻는 정현동의 투명스러운 말에 도경은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훈훈한 회식 자리에서 그것도 당사자들이 서로 바라보고 있는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사이를 물어보는 정현동의 저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심술부리는 건가?’
연예계에서 인간관계만큼 민감한 사안이 없는데 그것을 모두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면전에다 묻는 그의 무신경함에 도경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랑 도경이 형 사이야 오늘로 두 번째 보는 거라 그리 좋고 나쁜 사이가 형성될게...”
“그거 말고 너희 둘 사이 안 좋기로 유명하잖아.”
“......”
그냥 넘어 갈 생각이 없었던지 정현동은 단도직입적으로 도경과 강운의 사이를 콕 집어 물었고 결국 강운은 정현동이
“정확히 말하면 제가 아니라 저희 팬하고 도경이 형하고 사이가 좀 나빠요. 그래도 저는 별로 도경 씨에게 악감정이 없어요.”
“그래? 그러면 너희 둘은 괜찮다는 거야?”
“네. 그런데 도경이 형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꿈틀.
자신을 바라보는 김강운의 시선에 도경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말았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거슬리는 게 있을 때 나오는 도경의 버릇 같은 거였었는데 도경은 김강운의 대답이 가식적이라 생각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운이는 그렇다는데 도경이 너는?”
“흐음. 솔직히 말하면 껄끄럽죠. 소속사 사이부터 시작해 최승환 선배님 사건도 그렇고 저기 강운이하고 서로 데뷔도 겹치고 여러모로 엮인 일이 많아서 최악의 상성이죠. 게다가 저쪽 팬들이 장난 아니게 저 싫어해서 말이에요 댓글들 엄청 살벌합니다.”
“그건 도경이 형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알기로 시작은 도경이 형이 먼저 했다고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피식.
두 사람은 차분한 톤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말속에 묘한 날이 서 있어 주변 공기를 불편케 하였다.
“말은 똑바로 했으면 좋겠는데? 시작은 그쪽 팬이 먼저 한 거지. 가수한테 가창력가지고 비교하고 폄하하는데 발끈 안 하면 그게 가수야? 팬이라 감싸주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아닌 건 아니지 않아? 보니까 너 내 상황을 모르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야.”
전에 도경이 소극장에서 자신의 가창력에 대한 비하 댓글을 읽다 열 받은 나머지 [트리니타스] 전곡을 완창했던 날 이후로 도경과 트리니타스 팬들의 사이는 손쓸 도리도 없이 악화되고 말았다. 도경의 완창 후 원작초월이란 제목의 동영상들이 커뮤니티 온라인 곳곳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도경의 S-live와 스타 그램에는 지속해서 도경에 대한 수많은 악플들이 달리는 홍역을 치르는 중이었고 도경은 그 부분을 집어 강운을 바라보았다.
“그 부분은 인정해요. 하지만 꼭 반응을 그런 식으로 해서 도발하고 화를 돋워야 했을까요? 그런 결과가 벌어지지 않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전부터 느낀 건데 도경이 형은 성격이 너무 불같다고 생각이 드네요. 공인으로서 연예인으로서 조금은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나요?”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욕을 먹어도 문제 생길까 봐 쉬쉬하며 넘어가고 빌빌거리는 게 연예인이고 공인인가? 나는 그런 줏대 없는 아티스트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네 생각은 어때?”
“제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요...?”
“.....”
“그런가? 내가 듣기에 그게 그거 같은데 말이야. 아무래도 서로 가치관이 다른 거 같네. 상성이 안 좋아.”
끄덕.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서로를 마주치며 눈빛을 빛내는 도경과 김강운의 모습에 정현동의 옆에 있던 유이열은 조용히 그의 귓가에 대고 이 사태에 대해서 물었다.
소근.
“뭐야 저 둘이 뭐 무슨 문제 있어? 지금 고기가 넘어가냐? 너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잖아!”
“아~. 형 몰랐구나. 도경이랑 [트리니타스] 팬들하고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해. 그러니까 저 둘이 불편한 건 당연한 거고 말이야. 그리고 이야기 꺼낼 건 꺼내야지. 앞으로 같이 여행 다니면서 합숙연습도 하고 버스킹도 해야 하는데 말이야. 이런 건 미리 서로들 터놓고 말하는 게 깔끔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긴 한데 둘 다 성격이 풀고 할 성격이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 어린놈들이 형들 앞에서 건방지게 말이야...!”
“야 너는 지금 농담이 나오냐? 정 PD! 저 둘 정말 괜찮겠어? 딱 봐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잖아.”
부드럽고 따스한 성품의 성격의 소유자인 유이열은 도경과 김강운을 보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였지만, 정진석 PD는 그와 달리 도경과 김강운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 지었다.
“괜찮아. 애초에 저 둘이 부딪힐 줄 예상했으니까 말이야.”
“뭐? 그걸 알면서도 쟤네 둘을 캐스팅 한 거야?”
“응.”
“아니 왜?”
그의 대답에 유이열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이번 예능은 노래경연도 아니고 버스킹을 통한 힐링과 여행이 테마인 프로그램인데 굳이 갈등이 생길 멤버를 뽑은 정진석 PD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뭐 노리고 있는 그림이 있는 거야?”
“음... 재밌잖아.”
“재밌다고? 저게?”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도경과 김강운의 모습이 재밌다고 말하는 정진석 PD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웠지만 그는 오히려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보다가 자신의 앞에 있는 된장국에 숟가락을 뻗는다.
“응. 재밌잖아... 잘난 놈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게 말이야. 쟤들도 고생 좀 해봐야지?”
“와...! 정진석 PD. 그렇게 안 봤는데 성격 나쁘다. 이거 단순히 여행하고 힐링하는 테마인 느긋한 예능프로그램이 아니구나?”
“응? 현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유이열은 태연하게 된장찌개를 먹는 정진석 PD에 더욱더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었지만, 예능인 정현동은 정진석 PD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고는 미소 짓고 있었다.
“하하. 맞아요. 현동 씨. PD가 착해서 뭐하겠어? 원하는 그림만 얻으면 되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아까처럼 그렇게 둘 사이에서 흔들면서 불 좀 질러줘.”
후릅.
“이야. 나도 예능판 잔뼈가 굵다 생각했지만 정 PD는 심하다. 내가 정 PD가 하라는 대로 하는데 그러다 방송사고 나면 나는 몰라요?”
“하하하. 괜찮으니까 팍팍 부탁합니다.”
“맡겨만 줘요.”
“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지 모르겠네...”
척하면 척 서로가 원하는 바를 알아듣는 예능PD와 예능인 두 사람은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 둘에게 공감하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 유이열은 자신의 빈 잔에 맥주를 채우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흐흐흐.”
힐끔.
“.......”
무언가 못된 생각으로 작당 모의를 하고 있는 글러 먹은 어른 둘,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서로를 노려보는 있는 혈기왕성한 청년 둘.
‘후~. 나는 힐링 하려고 이 방송에 출연한 건데 말이야...’
[힐링].[여행].[음악]
자신을 섭외했던 제작진들이 강조했던 키워드와 전혀 다른 상황에 유이열은 자신도 모르게 욱신거리는 두통을 느껴졌다.
힐링은커녕 골치 아픈 트러블로 가득 찬 여행길이 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 팀 정말 괜찮을까...”
꿀꺽꿀꺽!
자신이 잘못된 번지수를 찾아온 것에 절망한 유이열은 그저 애꿎은 맥주를 마셔 될 뿐이었다.
---
[라이브 원스] 인터뷰.
-도경-
“네? 회식할 때 영상 찍었다고요?”
“네.”
“무슨 첩보물 찍어요? 언제 근데 그거 쓰실 거는 아니죠?”
“쓸 거라서 말해드리는 거예요. PD님이 말씀하시길 이번에는 100% 리얼로 나갈 거라고 하네요.”
“아, 리얼 이라... 네 알겠습니다.”
도경이 무언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작가는 곧바로 도경에게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럼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원스 라이브에 출연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성준이 때문에요.”
[네?]
“제 One Step이 성준이 녀석 때문에 순위 떨어졌잖아요?”
[네에... 그런데?]
“여기를 통해서 화력 지원받으려고요.”
[...!?]
“작가님 왜요? 리얼 이라면서요. 리얼로 대답한 건데 뭐 문제 있어요?”
[아뇨......]
“하하하. 다행이네요. 자, 그럼 인터뷰 시작 할까요!?”
[......]
받은 대로 돌려주는 도경의 심술보가 발동하기 시작했고 작가는 도경에게서 리얼한 인터뷰가 무엇인지 제대로 겪게 된다.
---
-김강운-
[강운 씨랑 도경 씨가 사이가 안 좋다고 하는데 버스킹 괜찮으시겠어요?]
“처음엔 조금 걸렸지만 그런 저와 도경이 형의 사이를 아는 PD님과 제작진분들께서 의도하시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
[그, 그렇군요. 이거 책임이 막중한걸요?]
“네. 잘 부탁 드려요.”
꿀꺽.
빈틈없는 훌륭한 대답 하지만 묘하게 책임감 느껴지게 만드는 김강운의 분위기에 인터뷰하는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속을 알 수가 없어. 아직 어린데 분위기가 장난 아니네.’
조금 전 인터뷰에서 내숭이나 필터링 없이 직설적으로 말을 막 던지는 도경과 달리 김강운은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로 작가에게 큰 온도차를 느끼게 했다.
[하하. 열심히 하도록 할게요. 그나저나 도경 씨는 화력지원 받으러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데 강운 씨의 출연한 동기가 뭔가요?]
“화력 지원이요?”
[네. 도경 씨는 음원 순위 떨어졌다고 화력이 필요하다고 이번 방송에 출연했다고 하네요.]
“그 형답네요. 저는 견문도 넓히고 싶고 유이열 선배님하고 같이 작업하면서 여러모로 음악적인 고찰을...”
[네. 역시 아직 어려서 그런가요? 도경 씨와는 달리 너무 성실한 답변들이라 조금 아쉽네요. 자.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도경 씨와 앞으로 노래를 부르게 될 때도 있을 텐데 그의 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마지막 질문.
당연히 바로 대답이 나올 거라는 김강운이 의외로 대답하지 못하자 인터뷰한 작가는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김강운의 이름을 불렀다.
[김강운 씨?]
“아, 죄송합니다. 음... 도경이 형 노래요? 활력 그 자체랄까? 정말 힘이 엄청난 노래라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거 같은데요?]
작가의 질문에 순간 김강운의 진심이 묻어 나왔다.
굳은 표정, 짜증 서린 눈빛으로 김강운은 도경의 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불편해요.”
[네?]
“자의식 덩어리에요. 멋대로 휘두르고 침범하는... 소음같이 시끄럽고 피곤한 노래.”
[......]
“물론 개인적인 스타일 차이에요. 솔직히 말할까 말까 고민해서요. 조금 심했나요? 편집해주셔도 돼요.”
“아니에요. 덕분에 재밌는 인터뷰가 되었는걸요? 수고했어요. 강운 군 이젠 가셔도 돼요.”
“네. 편집 잘 부탁 드립니다.”
꾸벅.
“네. 저희만 믿으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김강운의 뒷모습을 보며 작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문난한 대답으로 심심했던 김강운의 인터뷰 속에서 한 줄기의 빛처럼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과 조금 이미지가 다른 아이야. 여튼 재밌는 구도가 되겠어.”
씩.
인터뷰에서 도경과 김강운의 두 사람의 차이점과 흥미 깊은 공통점을 발견한 작가는 웃음 지었다.
(강운 씨의 노래에 대해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짜증나요. 사람 감정을 흉내 내는 듯한 로봇을 보는 느낌이랄까. 혐오스러워요.)
가수로서 음악인으로서 서로에 대한 노래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
그것이 그 둘의 공통점은 이번 버스킹에 주목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재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