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85화 (185/357)

185화

[이제는 슬슬 마무리할까요?]

“우우~!”

[나 힘들어. 버스킹인데 얼마나 뽑아먹으려고 그래?]

“하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많은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도경의 버스킹은 어느새 많은 인파를 끌어모았는데 그 인원만 보아도 200명은 거뜬히 넘는 듯싶었다.

사람은 사람을 모은다고 했던가. 도경과 술집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인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도경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어느새 주변은 사람들로 빼곡히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바글바글.

‘슬슬 문제가 되기 전에 끝내야겠어.’

성벽을 올라 시계 탑 있는 곳에서 도경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인파 너머의 도경을 보기 위해 벤치 위에 서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띄는 상황에 도경은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아쉬울 때 끝내라는 말이 있죠? 이젠 마지막 곡 갑니다. 막곡은 제 첫 싱글앨범...]

“One Step-!”

피식.

[어이! 사람들이 오해하겠다. 누가 보면 내가 돈 주고 바람잡이 고용한 줄 알겠어.]

“술사라!”

[호응하는 거 봐서.]

푸하하하.

---

“햐... 저게 아까 걔 맞아요? 아주 날아다니네.”

“진용이한테 말을 듣긴 했지만, 진짜 저건 타고났다 타고났어.”

절레절레.

도경의 버스킹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이열과 정현동은 혀를 내두르며 도경의 버스킹을 감탄하는 중이었다.

도경을 아는 영국인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도 놀라웠지만 버스킹을 하는 도경은 더욱 놀라웠다.

인간 쥬크박스가 된 것처럼 관중들이 듣고 싶어 하는 영국노래를 불러주며 모두의 귀를 사로잡았고 간혹 자신이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도경은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검색해 듣고는 단번에 코드를 따서 기타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야말로 신기(神技)라 할 수 있는 재주에 관중들은 더욱더 도경에게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국노래니까. 못 알아 듣겠지만 One Step은 알아들을 테니까 그것만 열심히 따라 부르면 됩니다. One step. step step. 그다음에 Don’t stop! 참 쉽죠?]

“네-!”

[하하하. 솔직히 그 가사가 제가 부를 노래의 전부에요. 한 걸음, 할 걸음 느려도 좋으니까 걷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메시지에요. 저쪽에 세월의 기품을 고스란히 가진 아름다운 레이디 엠마 할머니도 덩치는 큰 주제에 사랑 고백도 못하고 벌벌 떠는 패트릭도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레이첼같은 사람들에게 활력과 용기를 주고 싶었거든요.]

“.....”

[참! 같은 노래긴 한데 저번에 술집에서 신나게 방방 뛰었던 노래랑 조금 다를 거야. 그래도 마지막엔 신나는 것보다 감동 코드가 좋잖아?]

키득키득.

“형. 도경이 영어로 뭐라고 하는 거야? 뭔가 분위기가 되게 훈훈한데?”

“그게...!”

여유롭게 자신의 노래를 소개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도경의 멘트와 진행에 유이열은 감탄 또 감탄하였다. 도경이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MC로서도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어야 그렇다 치지만, 저런 건 가르친다고 배울 수가 있는 게 아닌데 말이야 정말 대단하다. 도경이 저 녀석은...’

낯선 타지에서 외국인에게 말 한마디로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별(Star)이 될 재목이다. 그것도 세계에 먹히는 별이...!’

유이열은 도경의 능력을 목격하며 확신했다.

도경은 한국 밖에서도 먹혀주는 스타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

띠리링.

[힘겨워도 발을 멈추지 마.

One step. step step.

One step. step step.]

도경의 부드러운 목소리의 울림을 간직한 노랫소리가 영국 체스터 시계탑 거리에 울려 퍼진다.

[이젠 타인의 시선에

발을 멈추지 않을 거야.

매일 가슴 뛰는 길을 걸음을 옮겨

남들은 예상치 못한 Step]

용기 낸 나의 첫 걸음.]

우웅.

기묘한 울림이 사람들의 가슴을 간지럽힌다.

그 간지러운 감각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소리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신기하게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힘차게 스텝.

누구보다 독특한 한 걸음.

용기 내는 스텝.

누구보다 특별한 한 걸음.

Yeah~]

머엉-.

도경의 목소리, 도경의 표정, 도경의 눈빛, 도경의 작은 몸짓과 행동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었다.

평소에도 눈이 가지만 단연컨대 지금처럼 노래하는 도경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고 확신 할 수 있었다.

띠리링

아아ㅡ!

한곡, 한곡 다른 분위기와 모습으로 눈을 뗄 수 없는 고조감과 몰입감을 느끼게 하는 불가사의한 존재감은 그가 노래 할 때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One Step!

심장 고동이 끝나지 않을 때까지 내딛는 발걸음!]

따다당.

체스터에 있는 영국인들이 물 건너 동양에서 올라온 붉은 보석에 매료되는 순간이었다.

“저건...”

부르르.

‘대체 뭐지...!?“

단 한 사람에게 모두가 빨려들고 있는 가운데 도경이란 불가해의 존재에 김강운은 몸을 떨고 있었다.

---

[체스터 숙소]

“이야아! 박도경! 너 다시 봤다. 진짜 너 대박이더라! 나 진짜 소름 돋았어.”

“현동형님 제가 누굽니까? 한국에서 물 건너온 최고의 가수 아닙니까? 그 정도는 해야죠.”

“맞다. 도경이 너 진짜 뻔뻔하더라. 아무리 잘 모르는 외국인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를 한국에서 온 최고의 싱어라 소개하냐?”

“네? 저는 사실을 말한 건데요?”

“와... 진짜 배포 하나는 진짜 내가 봤던 사람 중에 최고다.”

“하하하. 최고는 뭐라도 좋은 거죠. 아! 고기 익은 거 같은데 이젠 먹어도 될까요?”

“그래 먹어도 돼.”

[원스]팀은 시계탑에서 열은 첫 버스킹은 대성공을 축하하는 시간으로 숙소에 마련되어있는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고 있었는데 모두들 먹음직스러운 고기와 시원한 맥주에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

‘그건 뭐였지?’

모두가 즐거운 바비큐 파티로 시끌벅적한 가운데 김강운은 맥주 캔을 잡은 채로 도경의 버스킹을 떠올렸다.

“달랐어...”

중얼.

도경의 마지막 노래 [One Step.]

김강운은 현재 도경이 불렀던 그 마지막 노래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편곡 때문인지 알았지만 그건 아니야.’

처음에는 신나는 댄스곡을 잔잔한 어쿠스틱으로 풍으로 편곡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이내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다른 노래에 비해서 마지막에 도경이 불렀던 노래는 확연히 무언가 다른 것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의 뜻도 말도 모르는 외국인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 정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증유의 것이 김강운은 신경을 쓰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상한 노래...”

‘분명 뭔가 다른 게 있는데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도경 덕분에 오늘 김강운의 버스킹은 그리 큰 호응과 주목을 받지 못하였지만, 김강운은 그런 것에 대해서 기분을 나빠하거나 분해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김강운에게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노래는 그에게 있어 잘 사용할 수 있는 소모품 같은 것일 뿐 그렇게 소중한 것이 아니었다.

“뭘까? 뭔가 달라. 대체 뭐가 다른 거지...?”

까득.

하지만 버스킹이 끝난 이후로부터 김강운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따오는 건 어렵지 않아. 그런데...! 어째서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은 거지?’

자신이 불렀던 노래를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의 노래를 카피해서 불러주면 된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뛰어난 재능과 기량은 지닌 김강운은 그런 것이 가능했다.

노래에 애착은 없었지만 자신의 능력만큼은 믿었던 김강운.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따라 부를 수 없을 것 같은 노래가 나타난 것이다.

머릿속의 시뮬레이션으로 도경의 창법, 그의 행동과 몸짓 모두 구현하고 따라해 보지만 그때 봤던 것과 같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김강운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비틀었다.

“대체 뭐냐고...!”

까드득.

김강운의 손에 쥐어진 맥주 캔이 아무도 모르게 찌그러지기 시작한다.

---

힐끔.

“슬슬 영향을 받기 시작했구나.”

피식.

김강운을 바라보는 정진석 PD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눈빛을 빛내었다. 이제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후후. 도경이 녀석하고 있으면 평소처럼 있기 힘들 거다.’

도경과 함께 [아이돌 현장]을 촬영하는 정진석 PD는 도경이 지닌 기질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변화]

도경에게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본인은 알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도경과 함께한 아이들은 어떻게든 영향을 받았고 평소 하지 않던 행동들과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강운이 네 차례다.”

워낙에 포커페이스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정진석 PD는 지금 김강운이 도경에게 동요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번 방송에서 정진석 PD가 가장 많이 관찰한 인물이 다름 아닌 김강운 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조그마한 변화에 정진석 PD는 희망했다.

“네가 진심으로 노래해 줬으면 좋겠구나. 꼬맹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김강운을 바라보는 정진석 PD는 쓴 미소를 입가에 띠며 자신 앞에 있는 맥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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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원스]

체스터 2일 차.

“스페셜 공연이요?”

“네. 어제 길거리 버스킹이 성황리에 잘 끝나지 않았습니까?”

“네. 그런데요?”

“소모적으로 길거리 버스킹을 또다시 하는 건 조금 식상하다 생각이 들어서요. 제작진들과 상의 끝에 조금의 변화를 주어 특별기획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스페셜 공연?”

“네. 그렇습니다.”

“에휴. 오늘 길거리에서 버스킹 할 노래도 다 짰는데... 차라리 진작 빨리 얘기해주시지 그랬어요.”

“하하. 갑작스럽게 생각난 아이디어라서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유이열 씨.”

“에휴. PD님 표정 보니까 오늘도 강행군이네 강행군이야.”

힐끔.

정진석 PD의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 유이열과 정현동은 오늘도 하드한 일정이 될 것 같아 혀를 내둘렀고 가만히 있던 도경은 의아한 시선을 내비치며 정진석 PD를 바라보았다.

‘일정을 변경한다고? PD님. 요즘 좀 이상한데?’

정진석 PD가 성향이 실험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익히 아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방송 촬영 도중에 서로 간의 약조한 일정을 파기하고 변화를 줄 만큼 급작스러운 성격은 아니었다.

기획은 자유롭게 촬영은 한 치의 빈틈없이 철저하게가 정진석 PD의 모토임을 알기에 도경은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지만 이내 정진석 PD의 이어지는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조금 힘들 수 있지만, 오늘 일정을 잘 따라주신다면 제가 장담하는데 오늘 하루는 말할 수 없는 보람을 얻을 겁니다.”

“헤에. 뭔가 재밌는 곳으로 가나 보네요? 그래서 오늘 저희는 어디로 가나요?”

“매기스 센터.”

“네?”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

정진석 PD의 입에서 나온 생소한 이름의 목적지에 모두들 영문을 모를 표정을 짓자 그는 [원스] 팀들에게 추가로 부연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쓸쓸하고 슬픈 곳인 장소입니다.”

“.....”

“그러니 원스 팀. 모든 분들은 좋은 버스킹을 해주시길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자! 그럼 출발하도록 할까요?”

무언가 알 수 없는 무게가 담긴 그의 말에 [원스]팀은 제작진의 안내를 받아 투어버스에 몸을 싣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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