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86화 (186/357)

186화

“암센터요?”

“네. 호스피스라고 하시면 알기 쉬우실 겁니다.”

“아...”

정진석 PD에게 목적지를 들은 원스 일행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해외에 나와 수많은 관광지와 볼거리가 많은 여행지 중에서 하필 가는 곳이 죽음을 앞둔 사람의 있는 장소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이 당황하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행이라는 게 아무런 걱정 없이 관광지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SNS에서 사진 찍어 올리며 즐기는 시간만 갖기만 하는 게 여행일까요? 다른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

“그래서 가는 곳이 이 매기스 센터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PD님. 뜻은 알겠는데 정말로 괜찮은 거예요? 뜻은 좋아도 오해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어요. 잘 알잖아요.”

정현동은 그답지 않게 많은 걱정을 하는 표정을 지으며 정진석 PD를 바라보았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촬영하는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는데 한국도 아니고 영국에서 외국인인 자신들이 갑작스럽게 그곳을 방문한다는 게 그들에게 실례로 보이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었다.

끄덕.

“우려하시는 부분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이미 촬영 협조도 얻었고 여러분들은 버스킹만 신경 써서 잘 해주시면 됩니다.”

“말은 쉽게 하네...”

도경은 정진석 Pd의 말을 들으며 실소를 지었다. 대체 누가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말인가.

자신들이 공연을 할 곳에는 병마와 싸우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놓여있다. 그런 곳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부담스러운 일이기 그지없었다.

촬영협조를 얻었다 하더라도 센터 안에 있는 환자들이 자신들의 일행에게 얼마나 마음을 열어 줄지는 미지수였기에 [원스] 일행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이거... 예상했던 거랑 너무 다른 여행이잖아. 정PD 사실 우리 싫어하지?”

“하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조우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싫어할 리 있습니까? 저는 [원스]팀이 성공적인 공연을 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PD님이 우리 입장이 돼보라니까? 이거 진짜 잘못하면 우리 욕만 먹는다니까?”

“자, [원스]팀! 매기스 센터까지 3, 4시간 소요되니 시간을 아껴서 지금부터 공연에 대한 준비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와...”

정현동의 걱정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진행을 요구하는 정진석 PD를 보니 이미 그의 뜻은 확실하게 확고해 보였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유이열과 정현동은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형. 어제 준비한 노래들은 못 쓰죠?”

끄덕.

“그러게 쓰기에는 노래들이 너무 애매하다. 그것도 그렇고 어떤 노래를 선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곳 분위기가 어떤지 전혀 모르니까 말이야.”

“아, 진짜 큰일이네.”

“에이. 공연도 하기 전에 너무들 걱정하신다. 뭘 그리 고민해요?”

방송 경험이 많은 유이열과 정현동조차도 앞으로의 공연에 대한 부담과 걱정으로 가득한 상태였는데 그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도경의 태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버스 안에 울려 퍼지고 이에 정현동은 화색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자신들에게는 도경이란 믿음직한 존재가 있음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그래! 도경이 네가 있었지. 도경아 뭐 좋은 생각 없냐?”

‘이 녀석이라면 무슨 좋은 수가 있을 거야.’

“좋은 생각이요?”

“도경이 네가 그래도 자칭 버스킹의 신이라며? 경험이 많을 테니까 뭐 좀 의견 좀 내봐.”

“그래 현동이 말처럼 뭐 좋은 의견 있으면 얘기 좀 해줘 도경아. 코드 따는 것도 빠듯한데 곡을 뭘 선정할지 감이 안 잡힌다.”

체스터에 첫 길거리 버스킹 후.

도경의 진면목을 현장에서 느낀 유이열과 정현동 두 사람은 바비큐 파티에서 도경이 해외에서 3년간을 버스킹만 하며 돌아다녔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바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 도경의 경험과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했다.

“흐음...”

대선배인 유이열과 정현동 그리고 심지어 김강운도 묘한 눈빛을 띠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일행을 보며 어이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그곳에 대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도 어떤지 모르는데 저라고 뭐 방법이 있겠어요?”

“아...”

“하긴. 도경이라도 호스피스 같은 곳에서 버스킹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되게 막막하다.”

꿈틀.

‘이 사람들이...!’

자신의 대답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일행을 보며 도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전부터 거슬렸던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음... 다들 조금 착각하는 거 아니에요?”

“응?”

“우리가 하는 건 콘서트도 공연도 아니에요. 그저 버스킹(Busking)이잖아요. 자연스럽게 평소의 노래를 부르면 되는 거예요. 굳이 그들이 뭘 좋아할지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도경은 자신의 일행이 버스킹에 대해 잘못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애초에 버스킹(Busking) 자체가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다. 그렇기에 필요 이상으로 부담을 질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자유롭게 노래가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행들은 직업이 아닌 일을 직업처럼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거나 부담을 가지며 많은 연습을 하였고 관객들 앞에 완벽하고 질 좋은 공연을 보이려고 들었다.

그러한 점이 도경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완벽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하는 건 버스킹 이잖아요. 방송이란 걸 의식하고 시청자들을 의식하고 저희들의 직업을 의식 하는 게 제대로 된 버스킹 일리 없잖아요. 노래에 대한 반응이 안 좋으면 어때요? 다른 노래를 부르면 되는 거예요. 그들이 환영하지 않으면 어때요? 한 사람이라도 환영받게끔 하면 성공한 거예요.”

‘...!“

평소 가벼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나지막이 말하며 진중한 도경의 모습에 모두들 놀랐다.

‘깜짝이야. 쟤한테 저런 면이 있었네? 것보다 의외로 속이 단단한 말을 하는데?’

‘도경이가 버스킹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구나. 그나저나 도경이 말이 맞아. 나도 모르게 너무 부담을 가지고 다가섰어...!’

‘완벽할 필요가 없다고? 저게 저 사람의 가치관인가?’

각자가 도경의 말에 그에 대한 재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도경은 하던 말을 마저 잇는다.

“그거 알아요? 버스크(Busk) 어원의 유래는 스페인어의 부스카르(buscar)라는 거? 부스카르의 뜻은...”

도경은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행인 이상 자신과 함께하는 버스킹의 의미를 알아줬으면 했다.

‘찾고, 구하다!’

번쩍.

헤매면서도 무언가를 갈구하고 무언가를 구하는 행위.

그것은 도경의 삶이자 그를 움직이는 정신적인 근간과 일맥상통한 단어였다.

“...”

도경의 던진 짧고 강렬한 화두에 버스 안에 있던 일행과 제작진들 모두 아무 말 없이 깊은 생각에 잠기어 버스에 몸을 맡겼다.

젊은 청년이 던진 말에 모두가 침묵에 잠기는 것은 생각해 보면 매우 이상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러한 위화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중에 이 장면을 편집하는 PD만이 뒤늦게 깨달을 뿐이었다.

부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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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스 센터(Maggie’s Centre)

암 치료를 위한 센터이자 죽음을 받아들이는 호스피스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기관인 매기스 센터는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갑갑하고 거부감이 드는 일반 병원과는 다른 곳이었다.

병원 특유의 거리껴지는 분위기와 냄새가 배제된 휴식과 빛의 공간을 구현한 건축물로 지은 병원이 매기스 센터였기 때문이다.

매기 케스윅 젠크스

1993년 유방암을 선고받았던 여성. 매기 케스윅 젠스크는 환자와 가족들이 죽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삶의 즐거움을 잃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다 가족과 환자들이 병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회복에 집중할 수 있는 심리적인 안정과 집 같이 편안한 분위기의 암 케어 센터의 설립을 건의하며 많은 활동을 하였고 센터가 설립되기 전에 그녀는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녀의 유지는 그녀의 이름을 딴 매기스 센터란 형태로 영국 전역에 세워지며 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매기스 센터 [소아병동실]

“흥흥”

“찰스! 오늘은 기분 좋아 보이는구나?”

“헤헤헤. 신부님이 오늘 저녁에 교회 예배당에 초대해주셨거든요.”

“그랬어? 나는 뭐 들은 이야기가 없었는데...? 신부님이 뭐 재미있는 영화를 구해 오셨나?”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신부님이 기대해도 좋을 거라고 말만 하시고 비밀로 하셨거든요. 제 생각인데 미하엘 신부님이 뭔가 재밌는 걸 준비한 게 분명해요.”

“그래...?”

“네! 되게 즐거워 보이셨거든요.”

금발 머리의 간호사 피오나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하엘 신부를 떠올렸다.

‘애들이 들떴던 이유가 이거였나? 그나저나 신부님이 혹시 또 엉뚱한 짓을 하시는 건 아니겠지?’

매기스 센터에 있는 조그마한 소예배당을 관리하는 미하엘 신부를 떠올리며 피오나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겉으로는 새하얀 백발과 흰 수염으로 인자한 평범한 노신부 미하헬 이었지만. 그가 이곳 매기스 센터에서 저지른 사건과 사고들은 그야말로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얌전하더니 또 사고 치시려고 그러시나?’

“피오나 누나? 주사 다 놨어요?”

“으응? 아, 이게 마지막이야.”

“빨리 놔 주세요. 지금 친구들 하고 놀러 가기로 했거든요.”

“후후후. 오늘따라 우리 찰스 신났구나. 씩씩하게 주사 맞겠다고 하고 말이야. 오늘 주사를 어떻게 놓을까 걱정했는데 고맙구나.”

“헤헤헤. 어, 뭐야? 오늘 건 주사가 커요? 잠깐, 잠깐만요!”

“후후후. 늦었단다.”

“아악!”

피오나의 웃음과 함께 찰스의 안타까운 단말마의 비명이 문밖으로 꽤 크게 새어 나왔지만 그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소아병동실에 아이들의 고성은 이곳에서 흔히 있는 일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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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스 센터 입구]

“하하하! 잘 오셨소! 이거 영상으로 봤던 것보다 더 인물이 훨친하구만. 내 이름은 미하엘이라고 하네. 반갑구만.”

팡팡팡!

“으윽!”

‘윽. 등 따가워. 무슨 노인네가 이리 힘이 좋아? 뭐 운동하는 게 있나?’

일행들의 걱정과 달리 격하게 자신을 반겨주는 노신부의 환대에 원스팀은 조금 당황했지만 노신부의 우람한 팔뚝의 포옹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도경의 상황을 보며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저, 저기 미하엘 신부님? 이거 좀 놓고 이야기하시면 안 될까요.”

“하하. 이거 실례했구만 어제 그쪽이 한 버스킹 영상과 노래에 푹 빠져서 말이야. 정말 노래들을 기똥차게 잘 부르던데 많은 감격 받았다네. 특히 그 마지막에 부른 노래는 처음 들어 보는 노래였음에도 정말 좋았어.”

“하하하... 좋아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역시 동양인들은 겸손하구만.”

힐끔.

백발노인임에도 청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180cm 압도적인 건장한 체격에 자신의 팔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무쇠 같은 팔뚝이 도경의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을 하고 나왔는지 신부가 입고 있는 옷소매가 걷혀 있는 상태였는데 그곳에 드러나는 팔에는 빼곡히 무언가의 문자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라틴어? 그나저나 요즘 신부는 문신 해도 되나?’

“큼큼! 신부님. 반가워 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슬슬 저희가 공연할 장소로 안내해 주시겠어요? 장비를 설치하는데 꽤 시간이 소요되거든요.”

살피면 살필수록 무언가 범상치 않은 느낌이 나는 노신부였지만 도경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그에게 공연할 장소의 안내를 부탁하였다.

“하하하. 이런, 내가 손님을 너무 밖에다 서 있게 만들었군. 용서해주게. 자, 이쪽으로 나를 따라오게.”

팡팡!

‘윽. 그러니까 내 등은 좀 가만히 두라고...!’

도경은 자신의 따가운 등을 쓰다듬고 있을 때. 어느새 성큼성큼 먼저 걸음을 옮기는 미하엘 신부에 도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걸음을 옮기며 외쳤다.

“같이 가요-! 신부님.”

“하하하하! 걸음이 좀 느리구만. 시간은 금이지 얼른 따라오게나.”

호탕한 웃음을 흘리는 미하엘 신부를 뒤를 따라 라이브 원스팀은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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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스 센터 교회]

“이건 또 오래된 교회네요? 옛 시대의 교회와 세련된 건물양식인 센터와의 조화라...! 독특하면서 아름답네요.”

“하하하. 그렇지? 다른 곳의 매기스 센터에도 없는 우리 유일의 자랑거리 중 하나지.”

도경의 일행은 미하헬 신부의 안내를 받으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병원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쾌적하고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는 매기스 센터를 둘러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가 미하헬 신부가 머무르고 있는 교회 건물을 보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담하지만 세월의 흐름에도 멋을 잃지 않은 교회는 절로 감탄을 이끌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하하. 안을 구경하면 더 볼거리가 많을 거야. 어서들 들어오게.”

끼이익-!

도경의 원스팀과 제작진들의 감탄하는 반응이 마음이 드는지 미하헬 신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교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려 할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을 조우하고 말았다.

“오셨어요? 신부님!”

타다닥!

“응? 아직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너희들이 여길 왜?”

“헤헤헤. 신부님이 비밀이 뭘까 찾고 있었죠. 그나저나 뒤에 계시는 분들은 누구...? 어! 동양사람? 기타? 혹시 오늘 비밀이라는 게...?”

‘이런...!’

“요 녀석들!”

부들부들.

“신부님?”

예상치 못하게 이른 시각에 자신의 교회에 찾아온 어린 손님들을 보며 미하엘 신부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내가 비밀이라고 했지 않았더냐!? 이렇게 된 거 비밀엄수를 위해 지금부터 너희들은 교회 밖으로 못 벗어난다.”

“악! 애들아 도망가!”

“어딜!”

타다닥!

“꺄하하하!”

눈치 빠른 영악한 소 악마들을 구마하기 위해 미하엘 신부는 뜀박질하며 소년 소녀들을 우람한 팔로 잡아 들이기 시작한다.

“저 어린 친구들이 이번 버스킹의 관객들인가 보군.”

갑자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미하헬 신부와 어린아이들을 사이좋은 모습을 보며 도경의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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