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미하엘 신부가 교회예배당에 직접 마련해준 공연할 장소에 버스킹할 장비들을 세팅하는 유이열과 교회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느라 제작진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4시간. 매기스 센터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저녁 식사시간이 끝나면 공연을 열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건 뭐에요?”
“노래 뭐 부를 거예요?”
“우리 TV에 나오는 거야?”
“형아. 저 기타 한번 쳐보면 안 될까요? 나 쳐보고 싶은데...!”
“안 돼. 저리 가. 저쪽 가서 놀아.”
교회에서 예기치 못하게 만난 어린 손님들은 깜짝 공연의 비밀을 엄수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현재 이 소악마들은 도경에게 찰싹 달라붙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싫어요. 저 아저씨는 영어 못해서 재미없단 말이에요.”
“그리고 돼지 같아서 못 생겼다...”
“맞다 맞아! 애들 말대로다! 못생기고 재미도 없는 아저씨랑 놀고 싶지 않다!”
“어이. 꼬맹이들? 저 아저씨가 영어 못 알아듣는다고 막말하는데 그럼 안 되지. 마음씨 좀 곱게 써야지? 너희들이 이유 없이 아프듯이 저 아저씨가 못생긴 건 저 아저씨 탓이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저래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사람이야. 대단하지 않아? 자신의 모난 성격과 외모를 받아주는 진실된 사랑을 한 여성과 결혼 한 거니까 말이야. 어때?”
“어. 듣고 보니까 진짜 그러네요.”
“오오! 대단한 사람이다!”
“True love...! 아내분 멋있다.”
“맞아. 나라면 저런 사람하고 결혼 못 했을 텐데”
“그래 꼬맹이들아 그러니까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마음씨 예쁘게 서야 해. 알겠지?”
“네-!”
“그래그래. 착하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만약 도경이 자신을 향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현동이 알아들었다면 필시 난리법석을 피웠을 테지만 도경은 아이들의 도덕심에 이바지한 자신의 선행에 흡족해할 뿐이었다.
“이젠 저희하고 놀아 줄 거예요?”
“맞아요. 마음씨 곱게 써서 저희하고 놀아주세요.”
“윽! 그건 곤란한걸? 애들아 너희들의 고운 마음씨를 이 피곤한 나에게도 써주면 안 될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어때?”
“아...! 그런 게 어딨어요! 싫어요 우리랑 놀아주세요! 심심하단 말이에요.”
“옳소. 놀아 달라!”
“아니, 왜 나한테 그래? 나 말고 저기 곱상하게 생긴 형하고 놀아. 쟤도 영어 할 줄 알아. 저기 가서 놀아도 되잖아!?”
스펀지처럼 자신의 말을 인용하는 두 꼬맹이들의 농성에 도경은 혀를 차며 구석에서 유이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강운을 가리키며 아이들을 그쪽으로 보내려 했지만, 아이들에게서 도경이 원하는 반응이 나오질 않았다.
“저 형아는 무뚝뚝해서 싫어요. 그렇지 조쉬?”
“맞다. 저 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재미없는 형이다!”
“저기 오빠는 일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잘생겼어... 아! 우리 쳐다봤다. 부끄러워...”
“꺅! 케이티 지금 저 오빠가 우리한테 손 흔든 거야?”
“모, 몰라...! 그, 그레이스 숙녀라면 체면을 지켜...”
“깔깔깔. 케이티 너 지금 저 오빠한테 부끄럼 타는 거야? 얼굴 빨개졌다?”
“앗!?”
“하하하. 케이티 얼굴 빨개졌대요. 얼래리꼴래리~.”
“하아...”
힐깃.
또다시 시끌벅적해지는 자신의 주변에 도경은 주변을 살피며 구원해줄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자신 이외에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자 도경은 절망하고 말았다.
“헤헤헤. 놀아 줄 거죠?”
“놀아달라!”
“안 놀아주면 나 울지도...”
“오빠 포기하죠? 포기하면 편해요.”
반짝반짝.
“......”
외통수.
아이들의 초롱초롱 빛내는 두 눈들을 바라본 도경은 자신에게 더 이상 퇴로가 없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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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하! 피터 팬! 이 후크선장이 너희들을 영원한 섬 네버랜드에서 쫓아주마!”
“흥! 웃기지 마라 너야말로 이번에도 쫓아내 주겠어! 가자 애들아!”
“오우!”
빨강, 파랑, 노랑, 핑크 색의 전대물 마냥 색깔별로 털모자를 아이들은 빨강 모자를 쓰고 있는 찰스의 말에 기합성을 내뱉으며 도경을 향해 달려간다.
“심술궂은 후크!”
“으윽!”
퍼억!
“남을 상처만 입히는 못 된 후크!”
퍽!
“바보 같은 후크 꼴좋다 꺄하하!”
“이, 이 녀석들 용서 못 한다...! 이번엔 내 차례다! 이야압!”
도경은 아이들의 펀치와 발차기에 괴로워하는 동시에 분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자신의 반격을 알리는 기합을 터트렸지만 이때 찰스가 맨 앞에 나와 도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보 후크! 뒤에 뭐가 왔는 지나 보시지?”
“응?”
“틱톡틱톡! 나는 똑딱 악어(Tic Tock Croc)! 맛있어 보이는 후크 드디어 찾았다!”
“으윽! 똑딱 악어? 어느새 접근 한거지!?”
“하하하! 끝이다 후크선장!”
“크아아앙!”
도경은 찰스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파랑 모자를 쓴 뚱보 조쉬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고 도경은 조쉬를 보며 기겁성을 내었다.
네버랜드에서 후크의 진정한 천적은 자신의 왼손과 회중시계를 삼킨 똑딱 악어.
당현히 도경은 조쉬를 보며 꼼짝할 수 없었고 두려움에 떠는 표정을 지었고 조쉬는 자신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입을 딱딱 거리며 도경을 향해 느긋이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마지막이다 후크...!”
피터팬 동화책 마지막 부분.
후크의 최후의 부분에 아이들이 눈빛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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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녀석들 정말 좋아하는구나.’
도경이 현재 아이들과 이런 연극을 하는 데에는 어설픈 숙녀 흉내를 내는 케이티가 들고 있던 동화책 [피터팬]이 발단이 되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연극했던 피터 팬 연극.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음에도 그때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는지 아직까지도 대사를 생생하게 기억해내며 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경은 웃음 지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귀찮음을 피하고자 아이들에게 시켰던 연극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다가 후크의 역할을 맡게 된 도경은 꽤나 열연을 펼치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들의 역할에 빠져 스스로의 열연을 펼치며 상황을 즐기는 아이들의 파동이 도경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크아앙! 맛있는 후크 이 몸이 먹어주마!”
“히이익..!”
“히히히 끝이다!”
“...이럴 줄 알았지?”
덥석!
“뭣!?”
씨익.
“으하하하!
자신을 무는 시늉을 하러 다가온 조쉬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아 제지한 도경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애드리브에 당황한 아이들을 보며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이 몸의 고향은 한국. 후크의 두려움은 이미 노오력과 의지로 극복했다. 이젠 더 이상 너희들에게 당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네버랜드의 주인공은 이 몸 후크다!”
“뭐에요! 그런 게 어딨어요!? 똑바로 대본대로 해요.”
도경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찰스가 그에게 항의했지만, 도경은 혀를 빼꼼 내밀며 소년의 말을 묵살하였다.
“대본도 씹어 먹는 이 몸은 후크! 사상 최강 최흉의 해적 선장 그게 바로 이 몸이시다!”
“헐...”
“유치해...”
“우우. 어른스럽지 못해요!”
“하하하! 어른이니까 그래도 된단다. 이 꼬맹이 녀석들 잘도 날 때렸겠다? 각오 하거라!”
휘익!
“도, 도망가!”
자신을 야유를 퍼붓는 아이들을 향해 도경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급습한다. 아이들은 어떻게 도망치려 하지만 그래 봤자 어린아이들의 보폭으로 얼마 도망가지 못하고 도경에게 들쳐져 끌려와 긴 교회 좌석에 던져졌다.
쿠당!
푹신한 메트리스가 깔려있는 의자라 생각보다 충격은 없었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아이들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나왔다.
“으악!”
“윽!”
“꺅!”
“꺄하하! 재밌다.”
“으하하하! 어떠냐 이 녀석들 내가 이겼지? 이제부터 내가 주인공이다!”
“......”
엉덩방아를 찧는 아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후크 그 자체가 되어 망나니 웃음을 짓고 있는 도경을 보고 있던 정상적인 어른인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것도 능력이면 능력이다. 애들이 기대하는 부분이었을 텐데 저기서 깽판을 놓을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러게. 진지하게 애들 연극에 어울려 주길래 도경이가 애들을 좋아하는구나 그랬는데 저러려고 그랬던 거였어. 애들보다 못하다 정말...! ”
“유치하네요...”
따다당!
“응!?”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연기와 그런 아이들의 연기에 리액션 해가며 맛깔나게 연기를 펼쳤던 도경의 [피터 팬] 마지막이 저런 막장으로 끝날 줄이야 모두들 도경을 향해 짜게 식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때 도경은 자신의 기타를 들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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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Hook!)]
깜짝!
“뭐, 뭐야?”
따다당!
[후크~! 후크. 후크!!! 후크~! 나는야 최강 최흉의 후크선장!]
휙!
타닥!
[무릎을 꿇고 후크선장을 경배할지어다~!
네버랜드의 마왕. 내 이름은...]
기타를 거칠게 튕기며 도경은 화들짝 놀란 아이들의 앞에 있는 의자 위로 뛰어올라 서서 하늘 높이 손을치켜 들어 올리며 거칠지만 웅장한 노랫소리를 내뱉었다.
평소와 다른 창법이었다.
마이크 없이도 교회의 넓은 공간을 상하좌우 할 것 없이 가득 채워 쩌렁쩌렁 울리 우는 풍부한 성량이 듬뿍 담긴 창법은 교회 안에 일하고 있던 사람들을 손을 멈추게 만들었다.
[후크~.]
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칼칼하게 낮고 길게 울려 퍼지는 도경의 위압적인 목소리에 김강운은 눈이 흔들렸다.
“뮤지컬?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가 어떻게 되먹은 몸이지...!?”
‘엄청난 성량...! 저런 성량은 초일류에서도 보기 힘든데... 아니, 분명 저게 전력이 아니라면...!’
김강운은 도경의 성량에 경악하고 말았다. 가볍게 부르는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압도적인 도경의 성량이 짧은 노래 소절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다양한 음색들을 소유하기 위해 수많은 음악을 접하고 섭렵한 김강운은 뮤지컬과 성악에도 일가견이 있었기에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저거 때문이었나? 아니, 아니지... 그 당시의 노래는 성량의 힘을 이용한 노래가 아니었어...’
번뜩.
그 당시 도경의 마지작 버스킹의 노래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은 김강운은 도경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목소리 톤, 호흡과 몸짓, 목소리 떨림의 길이, 소리가 공명하는 몸 부위 등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관찰의 영역으로 다가가 도경의 분석해 들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김강운에게 소리는 빼앗는 것. 그는 지금 도경의 음색을 목소리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따랑!
[오오오! 모두가 눈을 떼지 못하는 두려운 그 이름.
내 갈고리(Hook).
치명적인 독처럼 나에게 모두가 중독되지.]
허세와 자신만을 믿는 믿음으로 가득 찬 오만불손한 후크 그 자체가 되어 웃음을 지으며 도경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 주변에 있는 의자들의 가장 높은 모서리들만 밟으며 노래를 불렀다.
타닥
딱!
[모두를 무릎을 꿇어라.
내 오른손에 갈고리(Hook)를 보아라.
꼬마 아이들에게 수모를 당해도 손목을 잃어도
네버랜드를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남자.
나의 이름은 후크(Hook)!]
[뮤지컬]
피터 팬에 나오는 후크만이 할 특유의 제스쳐 연기와 엑센트를 집어 넣어가며 후크의 음색을 불어 넣는 도경의 모습은 뮤지컬 연기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것과 일상생활의 움직임을 연기하며 노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임에도 도경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마치 수천, 수만 번을 한 것처럼 말이지...’
---
따다당!
‘오랜만에 이렇게 불러보는 건 즐거운걸?’
평소와의 다른 창법으로 마이크와 음향장비 없이 소리 하나만으로 공간의 울림하나만으로 노래하는 도경은 웃음 지었다.
[두려움도 패배를 모르는 꼬맹이들아 보아라.
나는 너희처럼 날지도 못하고 시간에 쫓겨 늙어갔지만,
패배를 딛고 두려움을 극복했다.
도경의 노랫소리가 공기를 공명시키고 공명한 공기는 듣는 청중을 감싼다.
마이크와 음향장비가 아닌 순수한 목소리와 공기가 전해주는
[내 이름은 이곳에 남아 영원할 거다.
그것이 새로운 네버랜드의 주인공 후크.
모두들 진정한 승자인 나를 따라라.
이 갈고리로 너희들을 이끌어 진정한 승리를 맛보게 해주마.]
찌릿찌릿.
“.....”
김강운의 말대로 도경은 이런 식의 노래를 수천수만 번을 부른 경험이 있었다. 오히려 지금 도경이 부르는 노래가 도경의 원래 창법에 가까웠다.
[불러라 내 이름! 내 이름이 무엇이더냐?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갈고리를 보아라.
찰스!, 조쉬!, 케이티!, 그레이스! 내 이름은?]
휘익~! 타닥.
“.....”
꿀꺽.
도경은 의자에 내려와 깜짝 놀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왼손을 내뻗으며 눈을 마주하며 미소 지으며 자신의 이름을 묻는다.
“내 이름은?”
도경의 내뻗은 손에서 보일 리 없는 갈고리를 목격한 아이들은 멍하니 입을 벌린다.
“후크...”
“아닌데! 도경인데!”
“아!”
“하하하하! 바보들 낚였지?”
“......”
즐겁게 해준 보답으로 흥이나 선보인 깜짝 자신의 즉흥곡 [Hook]에 토끼처럼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도경이 유쾌함에 큰 웃음을 터트렸다.
“브라보!!!”
“응?”
타다닥!
퍼억!
“억!”
유쾌한 웃음을 짓던 도경은 자신을 덮친 충격에 우스꽝스러운 단말마를 내뱉고 말지만, 상대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여념이 없었다.
“하하하! 최고였네 도경! 최고였어. 역시 그쪽을 초대한 게 잘못된 게 아니었어!”
“저, 저기 신부님. 이것 좀 놓고...!”
“최고네 최고야!”
꾸욱!
“쿨럭!”
“아니 그전에 죽겠다고 이 양반아...!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사람의 횡격막을...”
도경은 자신의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노래를 불렀기에 그런 것이 아닌 자신의 횡격막을 조여 오는 미하엘의 우람한 두 팔뚝이 원인임이 틀림없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