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90화 (190/357)

190화

10년 전.

“형아. 또 교리 시간에 빠졌구나.”

“뭐, 그렇지.”

“형아 그러면 안 돼. 형이 아무리 사랑받는다 하더라도 나중에 큰일 날수도 있어...!”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강운아.”

“강운? 헤헤헤.”

“......”

인형같이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이쁘장한 소년이 정원에 누워있는 한 소년에게 잔소리하다가 자신의 이름을 듣고 뭐가 좋은지 갑자기 웃음 짓는다.

그것을 본 소년은 김강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다물고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 받은 게 그렇게 좋아?”

“그럼 좋지! 나도 형과 똑같이 이젠 내 이름이 생겼는걸? 이름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열심히 노래 배워서 형처럼 성가대에 들어가 포교에 힘쓰며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거야.”

“강운아...”

“응? 형아 왜?”

“그게 네가 원하는 삶이야?”

“내가 원하는 삶...?”

자신의 형이 하는 말에 어린 김강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가 원하는 삶이라니 왜 그것을 생각하고 묻는지 형을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 이상한 소리 한다. 우리는 모두 [에덴]을 위해 태어난 신의 자식이잖아. 에덴을 위한 삶이 우리의 삶. 무지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하고 이상향으로 이끌어 가는 게 우리의 사명이잖아. 왜 그런 걸 말해?”

“아니야...!”

“형아?”

“아니라고 강운아!”

와락!

“남이 정해준 목표가 진정한 삶일 리 없잖아. 그건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자신의 동생을 와락 껴안은 소년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 잘못된 가치관이란 것을 말이다.

하지만 김강운은 자기 형의 말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다.

“남이 아닌걸? 형아 아버지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강운아 그자는 우리를 자식으로 생각 안 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있어 트로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젠장, 빌어먹을...!”

주르륵.

“형아 울어? 울지마...!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했어.”

꾸욱.

“불쌍한 내 동생...”

자기 형이 울자 어떻게든 그의 울음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동생을 보며 형인 그는 자신의 동생을 끌어안고 있던 팔에 힘주어 서글프게 흐느낄 뿐이었다.

“괜찮아 형.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내가 아픔아 날아가라 해줄게. 아픔아, 아픔아 날아가라.”

“......”

토닥토닥.

‘하여튼 울보 형아 라니까.’

김강운은 서글프게 울고 있는 형의 어깨를 조그마한 손으로 토닥이며 그를 위로하며 한편으로는 형이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올 거란 생각에 김강운은 이 일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형은 평소에도 자주 눈물을 보여왔지만 결국 나중에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형이자 동경의 대상으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강운의 생각은 불행히도 틀린 생각이었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다.

(목소리가 안 나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나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어.)

(이렇게 살 수 없는데... 없는데... 그런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렇게 사는 건 지옥이야. 그렇다면...)

노래할 목소리를 잃은 기점으로 김강운의 형인 그는 심리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는 사태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강운아 미안...)

결국,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을 떠올리며 김강운을 두고 극단적인 선택에 몸을 맡긴다.

---

우르르.

“이건...?”

“죽은 너의 형의 노래가 담겨있는 연습 자료다. 강운이 너도 슬슬 성가대의 정식교인이 되어 우리 교단의 포교 활동을 준비토록 해야지 않겠느냐.”

“그런데 이걸 왜?”

“중간에 망가지긴 했지만, 네 형은 우리 성가대에 최고의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게다가 내가 보기엔 네 녀석은 재능도 있다. 네 형과 달리 목도 튼튼하니 더 좋은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거다.”

“...더 좋은 노래요...?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웃기는 질문을 하는구나. 너희 형제에게 노래 말고는 무슨 존재가치가 있지? 강운이 너도 네 형처럼 농사짓다가 적응 못 하고 끝을 맞이하고 싶은 거냐?”

“존재가치...”

“그래. 너희 형제는 노래 말고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 않으냐.”

“...!”

형을 떠나보낸 지 일주일도 안 되었건만 매정한 말을 남긴 채 떠나는 교인의 뒤를 바라본 김강운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며 자신의 발아래에 놓여있는 비디오 자료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주르륵.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덥석.

“노래 따위가 뭐라고 말이야...!”

비디오를 집어 들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리는 소년.

그 소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형의 목소리를 통째로 삼키어 버리며 그렇게 자신의 비틀린 재능과 조우하게 된다.

---

[코드 네 번째, 다섯 번째

음을 내리고 음을 올리며 결국은

좌절하고 마는 사내의 작곡한 노래.

할렐루야.]

미세한 숨소리까지 섬세하게 느껴지는 부드럽지만, 어딘가 쉰듯한 목소리가 교회 안을 가득 메운다.

‘잡생각이 나는군. 이래서 이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는데...’

강렬한 기억이었지만 수많은 노래와 목소리를 머릿속에 집어넣다 보니 이제는 먼일처럼 희미하게만 느껴지는 과거의 일.

그럼에도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선명하게 떠오름에 김강운은 쓴 미소를 짓고 말았다.

노래하는 와중에 쓴 미소라니? 노래를 부르는 데 있어 자신의 표정을 완벽하게 감추는 그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노래를 부르면 이상하게 자신의 얼굴을 제어할 수가 없는 김강운이었다.

‘원인이야 짐작이 가지만... 꺼림직 하군.’

[김강현].

자신의 쓴 미소의 이유.

오래전 자기 곁을 떠난 형의 이름을 덤덤하게 떠올린 김강운은 그가 어떤 이였는지 떠올렸다.

‘형은 나약했을 뿐이야.’

성인이 되고 형이 거쳐왔던 일을 똑같이 겪은 김강운은 자신의 형 김강현이 무엇을 겪어왔는지 이제는 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단이 정상적인 곳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스스로를 신으로 생각하며 제정신이 아닌 작자라는 것도 말이다.

‘그곳에서 음악 따위에 의지하다니 말이야.’

사이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과 욕망에 미친 사람들 속에서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했던 자신의 형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강운은 자신의 친형을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비웃었다.

‘멍청이...’

그곳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고 싶어 하니까 망가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태어나 벗어날 수 없었다면 적응해야 함이 옳았다.

그들과 함께 미치거나 아니면 능력을 이용해 그들을 이용하는 위치에 서야 했다. 그래야 온전히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옳고 그름이 중요한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그런 곳이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사이비란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현실 속에 김강운의 형 김강현은 이 노래를 많이 의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비디오 자료에 항상 끊임없이 빠지지 않고 흘러나오는 노래가 바로 이 할렐루야란 노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이 부른 [할렐루야]. 그것은 김강운 자신이 듣고 봐왔던 노래 중에 가장 슬펐다.

피 토할 것처럼 울부짖듯이, 때로는 애달프게 체념을 하듯이, 그러다가도 마지막에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듯 노래를 불렀다.

[당신은 나를 의자에 묶었지.

나의 소망을 부수고 나의 희망을 잘랐지.

나의 입술에선 할렐루야란 소리를 내뱉게 했지.]

하지만 그는 구원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노래와 이 목소리는 김강운에게 있어 가장 슬픈 노래와 음색으로 기억에 남았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

“.....”

서정적이고 밝고 희망찬 노래에서 마지막 노래는 애달프기 그지없는 암울함을 담은 할렐루야를 부르는 김강운의 노래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당신이 내게 알려주던 때도 있었지요.

무슨 일이 있을지 말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당신은 그것을 보여주지 않아요.]

노래 가사는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신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말을 걸어보기도, 울어보기도 하지만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는 가사를 쓸쓸히 내뱉는 김강운의 노랫소리에 할 말을 잃는 것이다.

[한밤에 들었던 건 울음소리(할렐루야)는 아니었어.

그 건 따스한 빛이 아니었어.

그저 싸늘하게 차갑게 식은 할렐루야지.]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익...!”

배신감.

자신들의 앞에서 저런 암울한 노래를 부르는 김강운이 미우면서도 교회에 있던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그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난 최선을 다했어요. 충분하진 않았나 보지만

난 느낄 수 없었기에 느끼려고 했죠.

난 진실을 이야기했어요. 당신을 속이려고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런데도 모든 것이 틀렸다는 당신을 두고...

나의 입은 할렐루야란 단어만을 남기죠.]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 할렐루야란 단어.

김강운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할렐루야란 말에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저 할렐루야란 단어의 안에 깃들어 있는 감정이 편린이 마치 좌절했던 자신들 그것처럼 느껴지는 느낌에 그를 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후...”

[이만 노래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김강운의 형 김강현의 [할렐루야].

노래를 부르던 장본인은 가짜였지만 가짜가 구현한 김강현이 불렀던 노래는 진짜였기에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변을 가져오고 만다.

울먹울먹.

“흑...!”

“으아앙~.”

“흐어어엉.”

오래 전 한 사람의 절규가 담긴 멜로디는 모두의 가슴을 헤집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모두들 도경의 공연 전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기로 한다.

---

[교회 뒤편.]

뒤적뒤적.

탁탁!

치이익.

“후우~.”

교회 뒤편 뽀얀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하늘로 치솟으며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집중하며 열창을 펼친 김강운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교회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시끄럽기는...”

뭉게뭉게

김강운은 자신 내뿜은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의 주변에 호들갑 떨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조소 지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누굴 동정해?”

노래 따위를 듣고 자신을 이해한다는 듯 동질감 어린 시선을 보내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도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동정한다는 것이 말이다.

“그 떨리는 손이나 감추고 그렇게 말하지?”

“누구...!?”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에 김강운은 서둘러 담배를 피우던 손을 몸 뒤로 숨기며 고개를 돌렸다.

“담배도 태우고 의외네? 깔끔한 체하기에 그런 거 안 할 줄 알았는지 말이야.”

“그쪽이었습니까? 제가 담배를 피우든 말든 그쪽이 뭔 상관입니까.”

“그냥. 같이 노래를 하는 처지랄까? 오래 노래하고 싶다면 담배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네. 그나저나 보는 사람들 없어도 그렇지 너무 노골적으로 성격 드러내는 거 아니야?”

“애초에 쓸데없는 참견하는 그쪽한테 좋은 감정 없어서 말입니다.”

“하하하. 미안. 쓸데없는 참견이야말로 내 전문이라서 말이야.”

“쯧, 그래. 저한테 무슨 볼일 있습니까?”

앞의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 심심해서 이곳까지 따라온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김강운은 돌리지 않고 용건을 물었다.

‘또 잔소리할 생각인가?’

“이야. 훌륭했어.”

“네?”

도경이 설마 자신의 노래를 칭찬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는 것에 김강운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도경의 이어지는 말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아, 너 말고 그 노래 부른 주인 말이야.” “그게 무슨 의미죠...”

“공감 능력이 모자란 네 녀석이 감정까지 따라 할 만큼 좋은 노래를 불러준 사람 말이야.”

“흥! 무슨 말 하는지 알 수 없군요. 감정? 좋은 노래? 착각하신 거 아닙니까? 저는 그쪽이 싫어하는 대로 평소대로 불렀는데 말이죠. 원래 노래가 들리는 게 사람 기분에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젠 슬슬 그만 좀 하시지 않겠습니까?”

“응? 뭘 그만하라는 거지?”

“남에게 자신의 구역질 나는 자의식을 강요하는 거 말입니다.”

“자의식?”

“네. 그 노래가 특별한 거라는 듯한 태도 말입니다. 단순한 소리 따위를 조절하는 노래가 뭐가 대단하다고 감정이니 뭐다 거창한 소릴 하다니... 정말 진심이신 겁니까? 솔직히 꼴사납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김강운은 도경을 비판하는 동시에 비웃었다.

별것도 없는 노래 따위에 열정과 프라이드를 가지고 특별하다고 난리 치는 도경이 멍청하다는 듯한 태도라 싸잡아 비하하였다.

‘어때? 열 받지 않아? 그런데 어쩌겠어? 어차피 네가 하는 일은 그것뿐인걸!’

한 사람이 진심으로 몰입하고 열의를 갖는 분야를 괄시하고 비하하는 태도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열 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것도 한평생을 노래에 몸 받쳤던 도경으로서는 화를 낼만 한 발언이었는데 놀랍게도 도경은 화난 기색 없이 오히려 김강운의 말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 노래는 네 말대로 그렇게 단순해.”

“네...!”

“그래 이 말을 듣고 싶은 거였지? 어때 들으니까 속이 시원해?”

“...비아냥거리시는 겁니까?”

“그래 비아냥 거렸다. 멍청한 놈아.”

“뭐라고요?”

김강운의 눈이 싸늘하게 도경을 담았지만, 도경은 밀리지 않고 웃으며 그의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불렀던 노래. 그 노래는 너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거냐?”

“그건...!”

도경의 물음에 김강운은 그의 말을 부정하려 입을 열었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씨익.

“봐봐. 너도 알고 있잖아.”

도경이 환한 미소로 내뱉은 말에 김강운은 자신의 기분이 한없이 내리막길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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