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별다른 홍보 없이 케이블 채널에서 파일럿으로 방영한 라이브 원스.
제작 기간 5일 편집 기간 6일.
11일 만에 만들어진 총 4화 분량의 방송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방송국 안에서 정진석 PD의 라이브 원스는 그의 독단적이고 개인적인 시도로 여겨졌다.
(방송이 장난이야?)
(아니 그래도 정진석 PD 잖아...)
제대로 된 심사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별다른 홍보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브랜드를 이용해 만든 독단적인 그의 예능을 황금시간대에 내준 JTVC 방송국 행태에 방송국에 있던 PD들에게서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시끄럽다며?”
“하하. 뭐 조금 그렇죠.”
“고작 4화짜리 파일럿 방송들 가지고 너무들 민감하게 구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PD님이시잖아요. PD님 방송이 하나 뜨면 하나가 잘려나가는데 그럴 만도 하죠. 게다가 이번 기획에는 PD님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인 감이 없지 않아 있잖아요.”
“음...”
방송국 안에서 자신에 대해서 어떤 말들이 오고 갈지 짐작이 갔기만 정진석 PD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주변에서 자신을 향해 독단이라 말하는 말에 이번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그들이 말한 것처럼 [라이브 원스]의 방송 기획 자체가 그의 사심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인 이유에서 였다.
“빚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중얼.
정진석 PD는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정진석 PD가 갓 입사한 신입일 때. 그는 시사 방송 [추적고발]이란 프로그램의 조연출을 맡고 있었고 시사 PD의 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적고발]에서 사이비종교를 다루었고 그편에서 정진석PD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꼬맹아 약속할게.)
1평 남짓한 열악한 공간 속에서 학대라고 할 정도로 노래를 홀로 부르고 있던 소년인 김강운을 보며 정진석 PD는 젊은 혈기와 사명감에 불타올랐고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캐러멜을 김강운에게 건네며 약속한다.
(내가 이곳에서 널 꺼내줄게.)
정진석 PD는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어린 소년과 약속하였지만, 현실은 그의 정의심을 따라갈 정도로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었다. 사이비종교를 다뤘던 그 당시의 방송기획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엎어졌고 김강운이 있었던 건물은 매물로 나온 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쪽같이 증발했기 때문이다.
“......”
그 사건 이후로 시사 PD에 회의감을 느낀 정진석은 예능 분야로 자리를 옮겼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예상치도 못한 장소에서 정진석 PD는 과거의 그 소년이었던 김강운과 재회하게 되었다.
“PD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아아... 별거 아니야. 조금 마음이 무거워서 말이야.”
“에이~. PD님 설마 지금 걱정하시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프로그램 성공만 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제가 장담하는데 이번 프로그램은 대박입니다. 모두가 만족하며 웃을 거예요.”
“하하하. 그래그래. 네 말대로 그랬으면 좋겠다.”
정진석 PD는 자기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쓴웃음 짓는 한편 그의 말대로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웃었으면... 모두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어 줬으면...!’
그것이 시사 PD 지망하는 것을 관두고 예능 PD를 지원한 근본적인 이유였다.
정진석 PD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고독과 보이던 김강운을 떠올리며 평소보다 더 진심으로 그리되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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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원스 1화-中]
(짜증나요. 사람 흉내 내는 듯한 로봇을 보는 느낌이랄까. 혐오스러워요.)
(자의식 덩어리에요. 멋대로 휘두르고 침범하는... 소음같이 시끄럽고 피곤한 노래.)
길거리 공연인 버스킹을 소재로 한다는 [라이브 원스]는 모두의 예상을 깨트렸다.
버스킹 여행하면 떠오르는 [낭만],[힐링], 이란 키워드에서 [라이브 원스]는 모두 어긋나 버렸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잔잔한 재미와 감동 코드를 찾는 정진석 PD의 평소 예능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라이브 원스는 처음부터 독하게 방송을 시작하였다.
도경과 김강운이라는 독특한 뮤지션인 둘을 소개하며 그 둘 사이에 있던 이야기들과 인터뷰에서 서로에 음악에 대해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 둘의 나쁜 사이를 과감하게 오픈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노래를 위해선 매일 쉬지 않고 정진한다. 지독한 연습벌레 강운!)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그렇기에 연습을 하지 않고 실전만 한다(?) 자칭 천재 도경!)
물과 기름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을 [라이브 원스]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의 성격과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라이브 원스] 1화의 태반이 도경과 김강운의 숨 막힐 것 같은 어색함과 미묘한 신경전이 주를 이뤘고 두 사람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집중해서 보여줬다.
(작곡에 재능이 없네.)
(계속 그렇게 뜬 소리 하실 거면 그만하시죠.)
(도대체 왜 그렇게 노래하냐? 그러면 즐겁냐?)
(그럼 그쪽처럼 그렇게 오버해서 부르면 즐거운 노래인 건가요?)
(...!)
그 둘이 이어가던 묘한 긴장감은 결국에는 듀엣과 합주를 연습하려는 순간에 터져버리고 한동안 서로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도경과 김강운은 모습은 그야말로 견원지간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꿀꺽.
“와... 두 사람 다 성격이 진짜 장난 아니네.”
대선배인 유이열과 정현동의 중재 앞에서도 결국 듀엣을 파하고 각자가 버스킹을 준비하기로 한 두 사람의 모습에 그것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묘한 호기심을 느끼었다.
“대체 뭐 때문에 저리 싸우는 거야?”
뮤지션으로서 자신들이 알 수 없는 감각을 가지고 노래를 가지고 진지하게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이 신기한 한편 저 둘의 버스킹의 끝이 어떻게 갈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정현동과 유이열은 서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어 갔다.
(봤죠? 요즘 애들이 양보할 줄을 몰라. 내가 아주 혼쭐을 내줄 거야!)
(뮤지션들이 원래 양보를 못 하는 고집 같은 게 있어요. 시청자들이 너무 오해 안 했으면 좋겠네요.)
정현동의 실없는 말이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었고 작곡가이자 음악인 유이열은 어른스러운 관점으로 중립된 입장에서 그 둘을 지켜보면서 두 뮤지션의 다른 성향과 상황을 시청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며 자칫하면 거부감이 있을 미연에 방지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캐리하면 또다시 상황을 악화시키는 사람이 존재하는 법.
[돌발상황-! 야밤에 술집으로 홀로 나서는 도경-!]
“.....”
좌충우돌 쉴 틈 없이 무언가 일어나는 방송.
100% 리얼 버스킹 여행 [라이브 원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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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하드캐리했더니 똥싸는 클라스 보소.]
┗[방송 제대로 리얼이네. ㄷㄷㄷ]
┗[박도경 진짜 미친 듯. 그 상황에서 술집을 갈지 몰랐음]
[요즘 소극장하고 S앱이 잔잔하다 했더니... 사스가!]
┗[오늘 소극장에 다녀온 사람인데 도경이 형하고 예능 봤음요. 개 꿀잼.]
┗[아, 진짜? 1시간 날로 먹은 거 아님? 인성 보소 안 되겠네. 박도경.]
┗[애초에 3만 원 5만 원으로 4시간 뽕 뽑으려는 게 잘못된 거 아님?]
┗[형님들 글 쓴 거 보니까 도경이 형 소극장 안 가보신 듯. 시간과 돈이 문제가 아님. 그냥 가면 개 꿀 잼임. 가기 힘들면 S-Live나 보세요.]
┗[그 정도임?]
┗[ㅇㅇ 잡히면 못 빠져나옴.]
[박도경 너무 쓰레기 아닌가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여러분?]
┗[ㅇㅇ. 솔까 음악성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강운이 싫어해서 괴롭히는 게 느껴짐.]
┗[애초에 캐스팅이 잘못됐다. 두 사람 다 사이 안 좋은데 대체 왜 같이 출연시킨 거야? 소속사 뭐하냐? 일 안 하냐?]
┗[진심! 그냥 박도경 인성 빻았음. 작곡가로 잘 나간다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갑질하고 제 뜻대로 안 풀리니까 술 처먹으러 가는 클라스.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임.]
┗[우리 누가 박도경을 클럽에서 봤는데 발정 난 개라고 함.]
[리얼은 개뿔...! 강운이 너무 안됐다... ㅠㅠ]
┗[맞아요. 미친개한테 물려서 듀엣도 파토나고 박도경 술집 갈 때 홀로 방안에서 연습하는 모습 보고 맴찢어지는 듯.]
┗[그래도 다독여 주는 유이열이 있어서 다행.]
┗[박도경 개 밉상-! 존나 재수 없음!!!]
┗[111]
┗[222]
[예고 누가 만들었냐? 제대로 약 빤 듯. 그건 그렇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잠깐 버스킹 장면 나오던데 사람 많이 보이던데?]
┗[ㅋㅋㅋㅋ 나도 예고 봤는데 박도경이 토하는 모습밖에 기억 안 남 ㅋㅋㅋㅋ]
┗[술 제대로 오지게 먹은 듯. 예고편 장소가 바뀔 때마다 토하던데?]
┗[잔디밭에 시체처럼 코 박는 거 보고 개 웃었음.]
[라이브 원스] 첫 방영에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때.
JTVC 방송국에 예능을 맡고있는 PD들은 정진석 PD의 새로운 파일럿 예능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캐스팅 진짜 신의 한 수다. 이건 딱 봐도 흥한다.”
“진짜... 박도경하고 김강운을 캐스팅해서 붙여 놓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어?”
“두 사람이 고정출연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3화 남았는데 아직 모르지. 게다가 내가 보기엔 수위가 아슬아슬해서 좀 불안하던데?”
“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직 노래가 남았잖아. 그리고 저 둘이 노래 죽여주게 하는 거 몰라? 일부러 1화에서 노래 노출 안 시킨 거 보면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건데 게임 다 끝난 거다. 현실 부정은 그만해.”
“후... 우리 코너는 개떡같은 게스트 때문에 지금 시청률 안 나오는데 돌아 버리겠네...”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사실을 들은 PD는 어두운 표정으로 줄담배를 태우고 있었고 그를 바라본 동료는 연민 어린 시선을 그에게 보내면서도 [라이브 원스]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솔직히. 캐스팅이 절묘하긴 한데 결국 중심은 박도경 아니냐?”
“그렇지. 김강운한테 저런 반응을 누가 이끌어내겠어?”
“저렇게 이미지 신경 안 쓰는 애들 드문데... 진짜 한 번이라도 우리 코너에 좀 나와줬으면 좋겠다.”
“아서라. 음방 깐 후로 요즘 방송 섭외는 다 깐다고 하더라. 꿈도 꾸지 않는게 좋을걸? 보기에 섭외하기 쉬워 보여도 막상 엉덩이 엄청 무겁다 하더라. 저것도 정진석 PD니깐 섭외 가능한 거였을 걸?”
“하... 생각해 보면 정진석 PD가 선견지명이 좋았던 거지. 쥐뿔도 없는 박도경을 [아현] MC 뽑을 때 그렇게 비웃었는데 저렇게 클지 누가 알았냐?”
“그러게 말이야. 지금 솔직히 예능계에서 넘사벽이지. 한번 시간 되면 박도경이 하는 인터넷방송 봐봐라. 진짜 날아다닌다.”
아직 시청률이 나오지 않았지만 척하면 척인 예능 PD들은 정진석 PD의 새 예능이 뜰 것을 직감하는 동시에 상사병에 걸린 소녀들처럼 달뜬 신음성을 내뱉으며 도경을 원하고 있었다.
[보증수표]
음악방송 사태 이후. [아현] 이외에 자신의 소극장과 인터넷방송에만 전념하던 도경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모습을 보이자 그 기점으로 도경의 가치가 또다시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것이었다.
‘박도경만 섭외하면...!’
앞으로 연말이 2달도 안 남은 시점.
보이지 않다가 서서히 모습을 나타낸 보증수표에 모두가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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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JY 사옥 회의실]
툭!
“헐... 이게 다 뭐야?”
“뭐긴요. 도경 님이 출연하셔야 할 연말 행사들입니다.”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많지 않나?”
도경은 백아현의 말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저기에 있는 것을 읽어 보기만 해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정도로 두터운 양의 종이들이 다과와 함께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고르고 고른 것들이라고 합니다. 직원분들과 회의 하기 전에 미리 살펴보고 거를 거는 빠르게 표시하고 건의하는 걸 추천하죠.”
“잠,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을 리가...!”
스륵 스륵.
도경은 당황한 표정을 역력한 상태로 서류들을 하나하나 읽어 넘기다가 결국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결국 손을 떨고 말았다.
그만큼 믿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반영된 것이리라.
부르르.
“이거 실화야? 진짜? 이걸 다 나가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활동하셨군요.”
질끈.
백아현의 확인 사살에 도경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나 너무 다작했잖아...!’
[연말]
연예인에게 있어 1년 중에 가장 바쁠 시기인 연말.
특히나 [예능],[연기],[작곡],[가요] 연예계에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 자기 마음대로 이곳저곳 활개 쳤던 도경은 더욱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
연말 행사란 이름의 지옥이 자신에게 미소 짓는 거 같아 도경은 울상 짓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