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196화 (196/357)

196화

‘빌어먹을!’

베트남에서 무대를 연출할 [NAMA] PD는 이를 갈았다.

보통 문제가 생긴다면 경험상 PD로서 어떻게든 문제를 헤쳐나갈 방안을 떠올리는데 노력할 텐데 지금 터진 일은 딱히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사건 사고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지만 이번 것은 명백히 그의 손안을 벗어난 것이었다.

“대형 사고다...!”

[써틴13], [레볼루션] 국내 A급 남 그룹 아이돌로 국내에서도 외국에서도 왕성히 활동하며 한창 이번 해에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두 아이돌의 오프닝 무대와 합동 공연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밖으로 기어나가서 사고를 치냐 말이냐!? 베트남에 콘서트에 참여해줘서 고맙다고 자유롭게 놔둬 줬던 게 이딴 결과로 돌아왔을 줄이야...”

연말 행사와 여러 가지로 바쁜 시즌 때문에 [NAMA] 베트남, 일본, 홍콩 중에 베트남에 많은 가수들이 잘 오려 하지 않았는데 이번 [NAMA]에서는 고질적으로 지적받았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쓰며 출연 가수들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었는데 지금 그것이 독이 되고 말았다.

원래라면 리허설이 끝났다 하더라도 공연장 밖을 나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에 몇몇 무개념한 아이돌 무단이탈해서 끝끝내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그쪽 매니저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그 녀석들이 오토바이를 탈 생각을 해?”

“원체 두 쪽 다 매니저 말을 안 듣기로 유명한 비글 돌로 유명하답니다.”

“하, 비글은 개뿔 그냥 개새끼들이지...!”

빠득.

활발한 거와 무책임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

프로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무책임한 그들의 태도에 [NAMA] PD는 이를 갈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열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지만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현재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일단 시간이 얼마나 비지? 걔들 오프닝 시간까지 못 돌아온다고 보면 되는 거지?”

“네 오토바이 사고 낸 애들 중 4명은 경찰서에 조사받고 있고 2명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답니다.”

“노답 새끼들...! 그러면 무대 시간이 얼마나 붕 뜨나?”

“두 팀 다 개인하고 합동까지 합치면 25분 내외입니다만...”

“개씨발......”

듣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공백 시간에 PD는 자신도 모르게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머릿속으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남의 입으로 직접 듣자 뒤늦게 외면했던 쓴 감정들이 쓰나미처럼 올라왔다.

저벅저벅.

“저기... PD님...!”

“왜? 또 뭐야!? 뭔데? 또 뭔일 터졌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박도경 씨가 PD님 뵙고 싶다고...”

“응? 박도경이?”

“네. PD님에게 전할 말이 있답니다. 지금 사태에 도움이 될 이야기라고...”

“도움이 될 이야기?”

사고 친 애들의 공백의 시간에 딱히 해결책이 안 나던 차.

조연출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PD는 스태프가 도경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의아해했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란 말에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도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하하. PD님 안녕하세요.”

휙휙!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던 자신과 달리 시원한 웃음을 짓고 있는 도경을 보던 PD는 나중에 이때 일을 회상한다.

도경의 등 뒤에 후광을 보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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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 공연이요? 그것도 25분 동안?”

“어. 대박이지?”

“아니...”

순진무구한 웃음을 지으며 성준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25분.

그리 길어 보이는 시간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무대에서 전력을 다하는 가수들에게 있어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노래를 2절만 부른다고 했을 때 5곡 내외 1절만 10곡 내외를 부를 수 있는 긴 시간이었다.

“저 넓은 무대를 준비된 게 없는데 둘이서 어떻게 25분을 메꿔요? 노래만 부르는 건 되게 심심해 보일걸요? 게다가 무슨 노래 부를지도 정하지도 않았잖아요.”

“뭐, 무대까지 앞으로 4시간 남짓 남았으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참나, 너무 막무가내 아니에요? 애초에 이런 일 벌일 거면 저한테 동의부터 구하는 게 먼저 아니에요?”

“하하하. 뭐?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에이 우리 사이끼리에 무슨. 쉿~! 말하지 않아도 형은 네 마음 다 안다.”

“뭐라구요? 지금 제 말 제대로 듣고 있어요?”

“어허.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대도?”

“허...”

“하하하하.”

예상치도 못한 이벤트를 가져와 자신을 휘말리게 했음에도 저 뻔뻔한 태도를 유지하며 시원한 웃음만 터트리는 도경을 보며 성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노래를 부를지도 어떤 무대를 할지도 정하지도 않았으면서 저리 여유로운 태도라니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터무니없다니까.’

“왜? 하기 싫어?”

피식.

“누가 싫데요? 나 지성준 이에요?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Go High 지성준 몰라요?”

“어쭈? 코흘리개 꼬마가 많이 컸다?”

“그러게요. 어느새 형보다 많이 컸네요.”

“이게! 키 말한 게 아니거든?”

“하하하.”

도경은 자신의 앞에서 으쓱거리며 넉살 떠는 성준을 보며 유쾌함에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군말 없이 자신을 따라주는 성준이에게 든든한 느낌을 받았다.

‘얘가 많이 듬직해졌어.’

예전에 자신을 지키는 데 급급하여 세상에 날을 세우며 독기를 품었던 녀석이 어느새 자신에게 도움을 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에 묘한 기분을 느끼는 도경이었다.

“하여튼 형이 저 끌어들였으니까 알아서 책임지세요.”

“별걱정을 다 한다. 나 몰라? 이 몸의 말만 따르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니까?”

“네네. 어련하실까요.”

“거슬리지만 시간 없으니 이쯤하고 이젠 나머지 녀석을 구하러 가보실까?”

“나머지?”

도경이 내뱉은 단어에 성준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도경이 형의 기량을 맞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고?’

나머지라는 말은 자신 말고도 도경과 무대를 같이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성준은 자신 말고도 이곳에서 도경과 함께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었다.

이런 생각을 본인이 하는 것은 낯부끄럽지만 25분간 립싱크가 아닌 라이브로 도경과 노래를 같이 할 기량을 지닌 사람이 자신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경이 형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울 텐데 누구지?’

“저희 둘만 하는 게 아니었어요?”

“아, 내가 말 안 했나? 너와 나 그리고 그놈까지 총 3명에서 무대를 구성해 보려고 꽤 재밌을 거야.”

“그놈이 누군데요?”

씰룩.

그놈을 말하는 도경의 태도에서 묘한 신뢰감을 읽은 성준은 자신도 모르게 일쑨 코끝을 찡긋거리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도경에게 물었다.

“김강운이라고.”

“아...!”

‘[라이브 원스]에 그 녀석...!’

도경의 말에 성준은 곧바로 김강운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브 원스]에서 사사건건 자신의 형인 도경과 부딪히는 모습을 보며 조금 신경이 쓰였던 인물.

‘그 녀석이란 말이지.’

화륵.

도경을 두고 김강운과 함께 무대를 갖는다는 것에 성준은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묘한 열기가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거, 재밌겠네요...!”

“후후 그렇지?”

성준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경은 재밌는 무대를 꾸밀 생각에 그저 웃음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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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 타스 대기실]

“하아...”

“......”

이곳은 [트리니타스] 대기실.

[트리니타스] 멤버들은 자신들의 본 성격이 드러날까 봐 대기실에 매니저 이외에는 자신들 사람을 들이지 않았는데 그것이 현재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소근.

“야, 쟤 요즘 왜 저러는데? 진짜 불편하게 하네.”

“그러게 일시적인 줄 알았는데 요즘 진짜 무슨 일이 있었나?”

“좀 어떻게 해봐. 숨 막힌다고...!”

“딱히 나라고 방법이 있겠어?”

“칫!”

최승환과 한준우 두 사람은 현재 기분이 저조한 김강운을 눈치 보는 중이었다.

요즘 들어서

‘요즘 들어서 저 자식 왜 저러지?’

탁탁탁.

최승환은 김강운의 상태를 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짓는 한편 동시에 다리를 거칠게 떨었다. 김강운을 보면서 뭔가 알 수 없는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응? 뭐가?”

“저 녀석 말이야. 너 쟤가 저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있어?”

“그러고 보니...?”

최승환의 말에 한준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이 쭉 지켜보던 김강운을 떠올려 보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최승환의 말처럼 지금처럼 상태가 불안정한 김강운은 기억 속에

“짜증과 화를 내도 일 이외에는 매사 무관심하고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도 티를 내지 않아서 몰랐었는데 네 말대로 생각해보니까 이거 심각한걸?”

“그치? 그렇지? 저거 진짜 이상한 거지?”

“그래. 그렇긴 한데 네가 웬일로 강운이를 걱정하냐?”

“아니 진짜로 불안하다고...!”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단 말이야.’

여색을 밝히고 양아치 같은 최승환이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쓸모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남들보다 기민한 ‘눈치’였다.

실제로 이 눈치 덕분에 연습생 때도 파벌을 만들어 싹수가 있는 녀석들을 짓밟았고, 주변 사람들 중 실세가 누군지 빨리 파악하여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데뷔조로 살아남았고 지금은 트리니타스에서도 자신의 필요성 있는 부분을 갈고닦으며 경쟁력을 키워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자신의 기민한 촉이 김강운을 보면서 무언가 위험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는 것이었다.

“애초에 저 녀석을 저렇게 동요시키게 만든 녀석이 누구냐고...!”

김강운이 트리니타스에게 어떤 존재인가?

완전무결, 공감력 제로, 소시오패스 등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감정이 메마른 인간 그 자체가 김강운이라는 놈이었다.

멤버 중 제일 나이가 어리지만, 리더와 서열 1위를 굳건히 지키는 존재. 그런데 그런 존재가 지금 심한 동요를 보이며 흔들리고 있는 것에 최승환은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똑똑똑!

깜짝.

“누구지? 우리 리허설 끝나지 않았나?”

“그러게? 누구세요!?”

숨 막히는 정적과 김강운의 한숨이 가득한 대실의 정적을 깨는 소리에 모두가 문을 지켜보았고 최승환은 문 앞으로 나가 찾아온 손님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GoHigh]의 지성준입니다.”

“뭣? 지성준 씨?”

“네. 잠시 시간이 될까요?”

“네, 네...!”

예상치 못한 거물의 방문에 최승환은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썼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 업계에 있어 성준의 존재는 무게감과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지성준씨.”

벌컥

“하하하! 이 녀석을 앞세우니 빨리 열어주는구나. 수고들 하십니다. 트리니타스 선배님들.”

“박도경!!?”

“너, 너, 너!!! 너 이 자식 여길 어디라고...!”

“이 자식? 조금 무례하신 거 아닙니까? 저희 형이 연예계 후배인 것은 맞지만, 나이는 그쪽보다 많은 거로 아는데요.”

흠칫.

“윽, 그게...!”

‘뭐, 뭐야? 뭔 놈의 눈빛이?’

최승환이 도경을 대하는 태도를 목격한 성준은 사람이 바뀐 거처럼 살벌하게 바뀌어 최승환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도경에게 사이가 나쁘다 미리 언질을 듣긴 했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자신이 존경하는 형을 적대시하는 최승환의 모습을 보자 성준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아, 짜증 나. 왜 저 녀석만 연관되면 일이 꼬이는 거야?!’

그런 성준의 상태를 뒤늦게 눈치챈 최승환은 속으로 울상 지었지만, 성준이 [TG] 라는 배경과 현재 위치가 높은 만큼 조용히 이 사태를 넘어가기로 생각하고

“하하하. 그, 그게 갑자기 놀라다 보니까...”

“우리가 저쪽하고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말이에요. 이런 대우를 받기 싫었으면 이곳에 안 오는 게 맞지 않을까요?”

“뭐...!?”

“가, 강운아...”

갑작스러운 개입에 최승환은 어이없는 눈으로 김강운을 바라보았다.

‘저 자식은 그냥 나한테 맡기지. 상황 복잡하게 갑자기 왜 나서?’

트리니타스에서 인터뷰, 인맥이나 대인관계들의 대처는 맡아서 처리하는 포지션이 최승환의 역할이었는데 그것을 어기고 김강운이 직접 상황에 개입했다.

그것도 자신의 성격을 가리지 않고 거물에게 이를 드러내면서 말이다. 이는 자신이 평소 알고 있던 김강운의 모습이 아니었다.

‘불안함의 정체가 이거였나?’

최승환이 김강운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시선을 받고 있던 김강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성준에게로 걸어가 앞에 섰다.

스윽.

“잘나신 스타님께서 군기 잡자고 직접 온것은 아닐 테고 볼 일이 뭡니까?”

“...!”

찌리릿.

만나자마자 불똥을 튀기는 눈빛을 주고받는 김강운과 지성준의 모습은 묘하게 비슷해 보였는데 두 사람은 현재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짜증나.’

씨익.

도경은 자신이 인정한 두 인재가 살벌하게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지으면서도 저 둘과 자신이 올라가는 무대를 떠올렸다.

뜨거움과 차가움.

그 사이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저 둘을 보자 바로 감이 오는 도경이었다.

“재밌겠어.”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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