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KBN 연기대상]
공중파 3사 연말 연기대상 프로그램 중 공정한 진행 방식으로 시청률과 평이 좋고 그렇기에 3사 연기대상 중에 가장 권위가 높은 KBN 시상식이었다.
한 해 동안 KBN의 작품을 출연한 배우들과 관계자들만이 입장할 수 있는 이곳에 도경은 임꺽정을 연기했던 연기자이자 배우로서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수근수근
“박도경이다.”
“저게 박도경...!”
“생각보다 훤칠한데? 카메라 잘 먹겠어.”
지정된 자리에 앉아 시상식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던 연기자들과 배우들 그리고 많은 작가와 감독들은 시상식에서 눈에 띄는 붉은 머리를 하고 걸음을 옮기는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은 배우와 감독들의 시선을 받고 있음을 알 텐데도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는 도경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감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보통 이 자리가 처음인 연기자는 감독들과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어딘지 모르게 부담을 갖거나 주눅이 들기 마련인데 도경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피식
‘권위 있는 곳이라 하더니 생각보다 재밌는 곳이네.’
도경은 가요계와 예능 시상식에서 참석했던 도경은 이곳 [KBN 연기대상] 시상식은 여타 들렸던 시상식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묵직한 무게감 속 시상식 홀 안에 흐르는 공기에는 미묘한 긴장감 같은 게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이곳 배우들인가?’
독특한 공기의 근원이 이곳 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는 배우들에게 있음을 안 도경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만면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 기들이 세네.”
수많은 경쟁을 거치고 주역을 차지한 스타, 오랜 세월 동안 연기 활동으로 내공을 지닌 연기자, 그들을 만나고 다루는 감독들과 작가들의 존재는 확실히 일반인과 다른 기질을 내뿜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감, 자신을 향해 보내오는 시선을 느낀 도경의 입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진하게 지어졌다.
스으윽.
“!!?”
걸음을 옮기는 도중 도경의 자세가 바뀌기 시작한다.
턱을 들어 올리고 등을 곱게 펴며 대충 걸음을 옮기던 발걸음은 어느새 정갈하게 변해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는데 그중 변화가 가장 큰 부분은 좌중을 좌시하며 반짝이는 도경의 두 눈이었다.
반짝.
“...!”
술렁.
‘분위기가 바뀌었다...!’
눈에 광채를 품기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기 시작한 도경을 보는 몇몇은 눈빛을 반짝였다.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도경의 변화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야~. 젊은 친구가 배짱 좋아?”
“독특한 친구네요.”
“클클클. 그래... 묘한 친구구먼.”
피식.
도경을 눈여겨보던 이들은 지금 도경이 일부러 자신의 기세를 바꾼 것을 알았다.
수많은 배우와 감독들이 자신을 보고 있음에도 일부러 보란 듯이 자신의 분위기를 바꾸며 존재감을 과시하며 걸음을 옮기는 젊은이의 행보에 그들의 머릿속엔 ‘배우’ 박도경으로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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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녀석도 참 기운이 좋구나.”
임꺽정이란 작품에서 무노야의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던 이재순이 너털웃음 지으며 도경을 바라보고 있자 정다영 작가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임완식 감독은 고개를 돌리며 이재순이 웃는 연유를 물었다.
“응? 무슨 일입니까?”
“저기 도경이 말일세.”
“아아... 뭔가 소란스럽다고 했더니 도경이가 왔나 보군요.”
도경을 가리키는 이재순의 손짓에 임완식 감독은 도경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 그 중심에서 무게를 잔뜩 잡고 걸음을 옮기는 그의 행동을 보며 자세한 상황을 보지 못했지만, 정황상 무슨 상황이 펼쳐졌는지 예상할 수 있었기에 웃음 지었다.
평상시의 도경이 아닐 때는 분명 주변의 무슨 일이 일어날 때라는 것을 임완식 감독은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하하. 역시 녀석은 어딜 가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허허허. 가수 생활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들었는데 다행히 잘 지내고 있나 보구먼.”
“그러네요. 살이 조금 빠진 듯싶지만, 저 정도면 양호한 편이네요. 소극장에서 매일 공연을 연다고 했을 때 무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배우로 전향하면 훨씬 편하게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허허. 녀석도 자신의 직업에 프라이드가 있는 거겠지.”
“그것도 좋지만, 저 녀석은 그게 너무 심한 듯하더군요. 이쪽 업계 사람들이 저 녀석을 붙잡으려고 각종 시나리오와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던데 생각할 시간도 갖지 않고 모두 다 걷어차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래? 그건 또 안타까운 일이군. 도경이 녀석의 다른 연기도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정말 아까워 죽겠어요.”
그리 말하며 임완식 감독은 도경을 바라보며 아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보았다는 임꺽정의 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쳤던 배우가 조그마한 소극장에서 매일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감독으로서는 유능한 배우가 재능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본 도경이라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임완식 감독이 도경에게 가진 생각이었다.
“완식 감독님. 도경 씨 소극장 안 가보셨죠?”
“응? 아아, 바빠서 아직은...!”
“그럴 줄 알았어요.”
끄덕.
“왜?”
“가봤으면 그런 말을 못 하거든요.”
“...!”
자신에게 말에 입을 다무는 임완식 감독을 바라보며 정다영 작가는 쓴 미소를 지었다.
피식.
‘시나리오는 내밀지도 못했지...’
새로운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나서 도경을 주인공으로 쓰려 했던 정다영 작가.
모든 시나리오를 걷어차고 있다는 도경의 소문에 그를 직접 섭외를 하기 위해 티켓팅하며 도경의 소극장까지 발걸음을 옮겼던 그녀는 막상 도경의 공연을 목격하고 나서는 도경에게 시나리오를 들이밀지 못했다.
“도경이는 천생 가수예요. 나중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금은 배우로 활동할 생각이 없을걸요?”
“허... 그 정도라고?”
“네. 제가 장담하는데 도경이 붙잡으려면 웬만한 시나리오 가지고는 꿈도 꾸지 못할 거예요.”
“허허허. 그 말이 정말이라면 볼만한 상황이 펼쳐지겠구먼. 상황을 보니까 이번에 도경이랑 접촉하려고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 듯싶던데 말이야.”
“아, 차기작 주연 캐스팅을 바꿔야 하나...”
중얼.
“쿡쿡. 역시나 너무 실망한다 싶더니 너무 속 보였어요 감독님.”
“큼큼! 뭐, 이 판이 다 그런 거지.”
재주가 뛰어나도 문제가 된다고 하다니 도경이 딱 그 짝이었다. 그것도 주변의 속을 애태우는 나쁜 연예인이 말이다. 연예계에 몸값이 뜨는 순간부터 물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다수의 대작에 정신없이 손을 대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인데 도경의 엉덩이는 무겁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참 독특한 행보를 걷고 있었구나.’
임완식 감독과 정다영 작가의 대화를 통해 도경의 상황을 뒤늦게 이해한 이재순은 턱을 쓸어올리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잔뜩 무게를 잡으며 걸음을 옮기면서도 자신들이 있는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도경이 보였는데 정말 예상대로 가주는 게 하나 없는 엉뚱한 녀석이라는 생각에 결국 실소를 내뱉고 말았다.
“클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고?”
돈을 좇는 것도, 명예를 좇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즉흥적으로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것 치고는 가진바 능력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다.
도경이 지닌 능력과 그것을 펼치는 집중력과 태도들은 재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노력과 무엇인가를 희생해서 만들어진 능력.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없었다.
성공, 쾌락, 돈, 명예, 행복 뭐든지 좋았다.
힘들게 노력한 기반에는 어떠한 욕망과 목표가 존재하는 법이었고 지닌 재주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비례하여 더욱 몸집을 키운다.
그렇기에 이재순은 도경에게 묻고 싶었다.
‘그 능력으로 뭘 이뤄내고 싶은 거냐?’
도경의 진의가 너무나 궁금한 이재순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을 발견하고 반가운 시선을 보내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도경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이재순이었다.
“우와. 큰일 날 뻔했네요. 하마터면 망신살 뻗칠 뻔했어요.”
“녀석. 자리 하나 못 찾누?”
털썩.
“그러게요. 기 싸움하는 데에 신경을 쓰다 보니...”
“허허허. 거참... 녀석도”
“그나저나 오랜만에 봬요. 선생님 잘 지냈어요?”
씨익.
“네 녀석 덕분에 하루하루가 다르게 젊어지는 기분이란다.”
“하하하. 제가 좀 인간 비타민이죠.”
“아니, 네가 무슨 사고를 칠지 궁금해서 말이야.”
“선생님!”
“클클클!”
시원시원하고 기분 좋은 도경의 웃음에 자신의 몸 안에 활력을 느낀 이재순은 진한 미소를 피어올라며 장난기 서린 표정으로 도경에게 농을 던졌다.
그 모습을 주변에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덤이었고 말이다.
[지금부터 2017년을 마무리하는 연기대상 시상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퍼엉!
하나둘 주역이 모여갈 때.
지루하고 길었던 대기시간은 끝이 나고 본격적인 연기대상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며 화려한 무대의 서막이 올랐다.
---
“...!”
본격적인 시상식이 시작되고 KBN 연기대상은 때아닌 곳에서 난리가 나서 레전드 시상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공중파 3사 연기 대상식 이례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축하 공연이 이곳 KBN 콘서트홀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쿵!
[드림걸즈 스페셜 메들리]
[오직 당신 하나뿐이야.
Only one Only you!] -[only you(C.ver)]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사랑에 녹아요.] -[사랑에 녹아요(S.ver)]
[두근두근 내 심장이 아닌 것 같아.
이대로라면 부서져] -[두근두근 (C.ver)]
[좀 더 힘을 내줘.
내가 널 응원해 줄 테니.
그도 그럴 게 나는 네가 좋은걸?] - [vitalize(P.ver)]
[이지원]
[상쾌한 바람과 함께 걸음을 옮겨요.
당신의 한걸음에 세상이 역전해~.
바람과 하나가 되어 어디든 갈 수 있어.
한달음에 지구 한 바퀴] - [One Step]
[김우진(Jin)]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한숨, 한숨. 크게 숨을 쉬어봐요.
당신의 안에 남은 게 없다고 생각될 때까지.
그다음에 당신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죠.
지지 말아요] - [지지 말아요]
[지성준(GO High)]
[그대의 바람이 되어.
그대의 소망이 되어
어디든지 날아갈 거야.
하늘 높이 세상 끝까지!
그것이 너와 나의 약속.] -[Wind]
“....!”
[Go High] 지성준, [드림걸즈], [I] 이지원, [Jin] 김우진 등 인기리 절찬인 구성원의 축하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화끈!
‘쓸데없는 짓들을 하긴...!’
긁적긁적.
그것을 보고 있던 도경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축하하는 그들의 의도에 얼굴이 화끈해지는 감각을 느꼈지만 그래도 싫지 않은 듯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일부러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이곳에 불러주는 은하수 멤버들의 깜짝 선물에 멤버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축하는 마음을 느낀 까닭이다.
그들의 진심 덕분일까?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호응과 인기인 KBN 시상식에 도경이 속한 임꺽정 팀은 각종 상을 타며 축하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수상, 조연상을 시작으로 작가상까지 임꺽정 팀에서 상을 휩쓸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경이 서 있는 것은 당연한 얘기였다.
[신인상은...!?]
[이번 해에 혜성처럼 등장한 화려한 신인! 박도경!!!]
[베스트 커플상은...!?]
[애절한 사랑과 순수한 사랑을 보여줬던 박도경 & 김주리 씨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방송 3사 드라마 PD가 뽑은 연기자상은...!?]
[3사 PD의 일치단결로 뽑힌 괴물 신인 박도경입니다. 정말 괴물 신인이란 위명에 걸맞게 상을 싹쓸이 하고있는 박도경씨.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신인상, 연기자상, 베스트 커플상 받을 수 있는 상을 싹슬이 하는 도경은 이제는 단상 위로 올라가 할 말조차 동나 짧게만 멘트를 하고 내려올 정도였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가수 출신의 괴물 신인 연기자에 모두가 혀를 내두르며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상식은 끝을 향해 나아간다.
[길고 길었던 여정이 끝이 갑니다.
이제는 2017년의 한해가 끝이 나고 KBN 연기대상은 대상부문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대상. 두 글자 많은 의미가 들어있는 단어죠.
모든 배우분 들과 작품을 감상하신 시청자들에게 많은 열정과 영감을 주고 인정을 받을 연기자가 누구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
한 해를 덤덤히 차분하게 정리하는 진행자의 말에 발표를 기다리는 배우들과 감독들은 숨을 죽이기 시작하고 시상식 홀은 말 못 할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한 해를 마무리할 대상 수상자가 누가 될지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뜸 들이지 않고 대망의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KBN 연기대상 영예의 대상...!]
대망의 대상 발표.
진행자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정면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지며 대상자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임꺽정 무노야의 이재순 선생님. 그리고 임꺽정 역할의 박도경 씨가 되겠습니다.]
“......!!!!!?”
[이번 2017년 대상은 두 명의 공동수상이 되었습니다. 두 분 축하드립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혼신의 연기를 펼쳤던 원로배우 이재순과 보는 사람 모두의 가슴에 뜨거운 불씨를 남긴 괴물 신인배우 박도경.
두 사람이 함께 사이좋게 일어나 놀라운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와아아아-!
짝짝짝짝짝짝!
최고령과 최연소 연기 대상자의 전대미문 탄생에 모두가 환호하며 축하의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