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00화 (200/357)

200화

와아아아-!

“KBN이 진짜 미쳤나? 공동수상이라고?”

수군수군

“KBN이 시청률에 미친 건가? 갓 데뷔한 신인에게 대상을 준다고? 그것도 이재순 선생님 옆에?”

“갈 데까지 같군. 그나마 공정한 평가 덕에 권위 있던 곳인데...”

“그래도 능력이 되지 않아?”

“능력가지고 받을 수 있는 게 대상이 아니잖아. 박도경이 대상을 받기엔 너무 품위가 없지. 자격이 부족해.”

콘서트홀.

KBN 연기대상의 놀랄 수밖에 없는 발표를 들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현장에 종사하는 배우들과 감독들은 현재 이 상황에 의견이 분분했다.

도경의 능력이 뛰어남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대상을 받을 만큼의 품위와 자격을 갖췄는지를 따지는 사람들에겐 KBN 연기대상의 결정은 그야말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연기바닥 수십 년을 해도 받기 힘든 게 연기대상인데 갓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배우 아니, 가수 출신의 배우가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는 현실에 기존의 배우들이 도경에게 받는 박탈감은 정말로 어마 무시했다.

‘씨발...! 소속사 빨 인가?’

‘얼마나 잘 나가나 보자.’

‘저딴 딴따라 새끼가 대상이라니 이 판이 미쳐 돌아가는군.’

‘상이 장난인가... 기분 개 더럽네.’

스멀스멀

“......”

감동적인 음악 소리와 박수와 함성에 가려져 잘 느낄 수 없었지만, 분위기와 시선에 예민한 감각을 지닌 도경은 배우들과 감독들의 자신에게 보내는 시선이 그렇게 호의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했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상에 도경조차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별 관심 없는 도경도 대상이란 것을 어떤 사람들이 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팎 모두의 존경과 인정을 받고 모두의 귀감이 되는 연기를 보여준 존재만이 받을 수 있는 상이 대상이란 상이었다. 그러한 존재가 천운이 따라줘야 거머쥘 수 있는 대상을 자신에게 주는 KBN의 행동에 도경은 그저 곤란할 뿐이었다.

힐끔.

“공동수상이라니 선생님 정말 괜찮으세요?”

“허허허. 나는 괜찮다. 아니, 오히려 신선해서 좋구나?”

“괜찮으시다니까 다행이긴 한데... 저는 큰일 났네요. 이러다가 얼굴 뚫리겠네요. ”

“하하하! 대상이라고 좋구나 하고 받을 것 같더니 도경이 네가 그런 걸 신경 쓰는 거 보니 대상이 무겁긴 한가 보구나.”

“선생님 농담할 상황이 아니라니까요? 저라도 맥락은 알고 있다고요. 대상이라니 진짜 미친 거죠. 지금 저 보는 사람들의 잡아먹을 것 같은 눈초리가 안 보이세요?”

“허허허. 뭐, 어쩌누? 이미 벌어진 일인걸. 어차피 받을 상 떳떳하게 받거라.”

“에휴...”

‘선생님의 그런 연기를 봤는데 어떻게 떳떳하게 같이 상을 받습니까?’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다고 생각한 도경은 이재순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노쇠한 몸으로 정용환과 칼을 나누며 사투를 벌인 혼신의 연기가 아직도 눈에 선한 도경은 그와 상을 나눠 받는다는 게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연기에 받치고 마음이 떨릴 정도로 혼신의 연기를 펼친 사람과 상을 나눠 가지다니 도경이라도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허허허”

도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재순은 여느 때와 같이 인자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

짝짝짝짝.

[두 분 대상 축하드립니다~! 이재순 선생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모두의 박수 속에 MC와 진행자들은 도경과 이재순에게 각자 똑같은 트로피를 손에 쥐여 주었다.

“허허. 고맙습니다.”

“......”

[그럼 수상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묵직한 트로피의 무게를 느끼기도 전에 MC의 수상소감 진행에 도경과 이재순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가 먼저 수상소감을 할지 순서를 서로 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도경은 잠깐 어떨지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먼저 자신이 수상소감을 하자고 결단을 내렸다.

‘그래도 어린 내가 수상소감을 먼저 하는 게 보기 좋을 거야. 짧게 끝내고 이재순 선생님에게 수상소감 시간을 여유롭게 주는 게 낫겠지.’

“선생님 제가 그럼 먼저...”

“아니.”

“!?”

“내가 먼저 수상소감 하는 게 좋겠구나.”

“아니, 선생님을 두고 제가 어떻게 마지막 수상 소감을 합니까...!”

그의 뜻밖의 발언에 도경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기색으로 이재순의 뜻을 어떻게든 바꿔 보려 했지만, 고개를 젓는 그의 뜻에는 변함이 없어 보였다.

“도경아.”

“네.”

“모두를 생각해서 마지막은 네가 좋단다.”

“그게...?”

“늙은 나와 달리 네가 저들에게 줄 것은 무궁무진하니 말이다.”

“선생님...”

“나는 마지막에 네가 모두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으면 좋겠구나”

“!?”

[허허허. 수상소감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이재순이라 합니다.]

수군수군

서로 이야기를 길게 나누고 있던 이재순과 도경의 모습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모두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때 예상치 못하게 먼저 수상소감을 나선 이재순의 모습에 모든 배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멘트도 먼저 하신다고? 대체...!”

“KBN 미쳤냐?”

“박도경 저 새끼도 그래 도대체가 눈치가 없는 새끼인가?”

방송계의 역사라 불리며 모두에게 인격자로, 멘토로서 존경받는 이재순이 새파란 애송이보다 수상소감을 먼저 한다는 것에 모든 배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조금씩 노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신인에게 대상을 안기는 연기대상 시상식에 불만과 박탈감을 가지고 있던 차인데 도경의 눈밖에 벗어나는 행동이 모두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우선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

자신의 앞에서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아내는 배우들을 보며 이재순은 웃음 지었다.

‘아직들 혈기왕성하구나.’

매년 수상식에 온 것도 이제는 두 자리 숫자가 된 이재순. 질릴 만도 하지만 그는 이 장소를 사랑하였다. 수많은 연기자와 스타가 탄생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지만, 이곳에 온 사람들은 언제나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가고 모든 게 하나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절대 색 바라지 않는 가치가 이곳에 있었다.

연기자가 지녀야 할 열정과 최고가 되겠다는 향상심.

차분한 얼굴 아래엔 남들보다 저열하고, 치열할 정도로 순수한 욕망이 저들의 안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씨익.

‘나 또한 다를 바가 없다.’

[정말로 행복한 하루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감사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욕심 많은 늙은이의 연기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욕을 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 자신에 대한 연기에 칭찬할 때마다 항상 생각합니다. 저를 위해 받쳐주고 희생해준 분들의 노고만큼 내가 연기를 하였는가 말입니다.]

“...”

도경에게 향했던 시선. 그것은 어느새 이재순의 칼칼한 목소리와 인자한 표정에 그리고 부드러운 무게감에 이끌려 모두들 잠시 자신들의 잡념을 접어두고 이재순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고목을 보면 경건한 마음이 들 듯이 방송계의 살아있는 역사인 그를 보면서 모두는 그의 말을 경청하는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오만한 생각이었습니다.]

“!?”

[제가 뭐가 그리 잘난 놈이라고 그분들에게 연기로 보답한다 만다는 말입니까. 최선을 다해 연기를 펼쳤다면, 치열하게 연기했다면 사실 그런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안주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수군수군.

이재순의 의외의 말에 시상식 홀에 있는 사람들이 술렁였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연기에 임했던 존재가 자신은 안주하고 있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허허.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성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제가 이런 말을 하니 모두들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저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보여주었던 모습과 행동들은 오랜 세월에 굳어진 일종의 습관으로 나온 행동일 뿐 사실은 정신적으로 배우로서의 저는 향상심을 잃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입장에서 정말로 부끄러운 일일 따름입니다.]

“...!”

정말로 진심으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이재순의 시상 소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의 눈빛,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이 말하는 것은 진심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아서 정말로 다행이라 진심이라 생각합니다. 이 나이에 다시 한번 연기에 정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기에 이 늙은이가 후배에게 부담이 될지 알면서도 수상소감에 먼저 나와서 감사함을 표해봅니다.]

꾸벅!

짝짝짝짝!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는 원로배우 이재순의 모습에 모두가 손뼉을 치며 그를 축하하는 동시에 존경을 표했다. 끊임없는 열의를 표현하는 그의 인격자 적인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원래라면 마지막에 저를 지탱해준 아내의 이름을 올리려 했습니다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에 아쉽게도 그러지 못할 거 같습니다. 여보 미안합니다. 그리고 박도경 후배님! 미국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정용환 후배님!]

깜짝!

“!!!?”

예상치 못한 이름의 언급에 당사자도 주변도 놀랬다.

그중 자신을 님이라고 존칭까지 붙이는 이재순의 말에 도경은 망치를 얻어맞은 표정을 지으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그런 도경을 이재순은 잔잔한 미소를 피어 올리며 그를 인자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재순은 도경의 두 눈을 마주하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임꺽정에서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 이 늙은이가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두 사람의 뜨거운 연기혼. 그리고 한 치의 양보 없는 치열함과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향상심. 그 모든 것들이 시들었던 이 늙은이의 마음에 불을 지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제부터 선생님을 관두려고 합니다. 이젠 그 둘과 같이 타협 할지 모르는 치열한 배우로서, 연기자로서 새로운 연기를 펼치려 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이재순의 눈빛이 강렬한 빛을 터트리며 좌중을 주시하며 마이크를 꾹 붙잡으며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연기가 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이 욕심 많은 늙은이가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도전할 기회를 주십시오! 저 이재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기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

조용.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이재순을 보았고 자리에 앉아있던 배우들은 진심으로 탄복하며 흔들리는 눈으로 이재순을 뜨겁게 응시하였다.

저 단상에 서 있는 왜소한 노인은 방송계의 역사나 모두가 존경하는 선생님처럼 먼 존재가 아니었으며 그는 자신들과 같은 뜨거운 피가 흐르는 연기자이며 경쟁자임을 시상식에 있는 배우들 모두가 뒤늦게 깨달았다.

[허허허. 이만 수상소감을 마치려 합니다.]

벌떡!

와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짝짝!

긴 침묵 이재순이 자신의 수상소감의 끝 맞춤과 동시에 배우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눈시울을 붉히며 뜨거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이재순의 탄생에 그들은 진심으로 축복하며 자신 안에 휘 감돌고 있는 감동에 몸을 맡기었다.

“선생님...”

노익장(老益壯).

태산같이 굳건한 모습으로 기백을 내뿜고 있는 이재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도경은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처럼 새파란 어린놈에게 진심으로 부딪히려는 그의 모습에 일순간 압도된 것이다.

‘너무 멋있는 거 아닙니까...!?’

반짝!

이재순의 열기에 감화된 도경.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두 눈에서 불똥을 피어 올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에게 저런 멋진 경쟁자가 생겼는데 가만히 있을 도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도경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스타!!!]

“!!?”

[이깟 상이 아니라 누구나 저를 우러러보고 목표로 삼을 수 있도록 최고의 자리에 제가 올라설 겁니다. 그래서 저! 박도경이 모두의 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연예계 역사상 전대미문의 수상소감.

터무니없는 도경의 수상소감은 대한민국 연예계에 있는 연예인들의 가슴에 짙은 화인을 남기며 불을 지펴 올리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1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는 때.

도경이란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르고 그렇게 도경의 새로운 한 해는 뜨거운 출발을 예고하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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