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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03화 (203/357)

203화

[연습실]

(모두의 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띠리링.

“.....”

피식.

“정말 짜증 난다니까...”

새해를 맞이하는 날.

도경의 수상소감을 떠올린 김강운은 자신의 앞에 있는 피아노 건반을 쓸면서 실소를 지었다.

씁쓸함이 배어 나오는 서글픈 미소였다.

“별이 된 다라...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야.”

털썩.

띵 띵 띵...!

스윽.

한 손으로 생각에 잠긴 채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을 무성의하게 눌러대고 있던 김강운은 자리에 앉아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곧추 잡는다.

띠리링. 땅. 땅~!

수준급의 피아노 실력.

라이브 원스에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김강운의 수준급의 피아노의 실력이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따라라랑 땅!

김강운의 두 손은 88개의 피아노 건반을 누비며 다양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따당!

때로는 강하고 격렬하게.

띠링.

때로는 부드럽고 섬세하게.

기분 탓일까?

김강운이 치고 있는 피아노 소리에서 그의 복잡한 심경이 묻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것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김강운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후읍...!”

[나의 모든 하얀 거짓말.

언젠가 벌을 받을 거짓말.

네게 너무나 미안해.]

위이잉.

연습실 안에 놓여있던 공기가 김강운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공명하였다.

섬세함 떨림.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후회라는 감정은 희미했지만, 그것은 김강운이 느끼고 표현하고 있는 감정이 분명했다.

[모든 게 거짓말이었어.

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애써 속여왔던 거짓말]

그의 형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본인 자신의 김강운표 오리지널의 순수한 감정.

성숙하지 않고 아기처럼 가녀린 미숙한 감정 표현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경이 쓰이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김강운의 감정이었다.

꿈틀.

꽈아아악!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꿈틀거림을 느낀 김강운은 자신의 가슴을 조이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는 미동 속에 무언가를 쥐어짜기 위해서 소중한 한 방울을 위한 본능적인 충동이었다.

평생을 제어했던 자신의 몸의 제어권을 놓으면서까지 그는 자신의 그 충동에 집중하며 꿈틀거리는 미동 속에 강렬한 반짝임을 보았고 서둘러 자신의 입을 열었다.

[새하얀 눈 속에 피어오르는 백색의 거짓말.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 뿐밖에 하지 못하는 거짓말.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용서하지 말아줘.]

우우웅~!

“...!”

평소에 있을 수 없는 박자와 음정이 미세한 차이로 어긋났지만 김강운은 그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주르륵.

힘겹게 끌어올렸던 소중한 반짝임. 자신 안에서 나왔다 믿을 수 없는 따스한 온기를 품은 그 반짝임에 김강운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띠리리리.

“음, 누구지?”

슥.

[차현식 PD]

“그래. 그랬던 거였지...!”

늦은 새벽 시각.

자신에게 전화 오는 발신자를 들여다본 김강운의 얼굴은 어느새 평소대로 무표정으로 돌아와 버렸다. 힘겹게 되찾은 자신의 따스한 감정의 온기가 빠르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김강운은 서글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감정을 느낀다는 건 나에게 사치였지.”

주르륵.

온기를 잃은 자신의 감정을 느끼며 좀 전과는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이 김강운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미도 정육식당]

“손님이 늦는군.”

“히이익...!”

철컹철컹.

덜덜덜.

“아아. 그리 겁먹을 필요도 없대도?”

소와 돼지를 걸어두는 갈고리에 벌거벗은 상태로 걸려 바둥거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차현식 PD의 모습에 김강인은 고개를 돌리며 그를 다독여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차현식 PD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장본인이 다름 아닌 김강인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심했던 걸까요?”

“그런가? 그래도 좀 담이 있어 보이던 인간이라서 말이야. 쓸데없는 생각을 못 하게 하려면 저 정도는 필요하지.”

“하긴. 워낙 음흉한 자이니 조심할 필요가 있긴 하지요.”

“으으...”

부르르.

육회를 썰어 먹으며 자신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녀를 보는 차현식 PD는 몸을 떨었다.

힐끔.

‘분명 저 여자는 박도경의 매니저일 터...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불법적인 일을 많이 한 만큼 차현식 PD는 각종 인간군상을 만났다고 자부하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사람만큼 미친 연놈은 본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차현식 PD였다.

자신을 붙잡은 다음 아무것도 묻지 않고 2시간 동안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데에만 충실했던 김강인과 백아현의 행동을 떠올리면 절로 몸에 경기가 일어날 정도였다.

‘살 수 있을까?’

“죽이진 않을 거니 걱정하지 마라.”

깜짝

“어, 어떻게...?”

“너 같은 놈들은 하루 이틀 보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스윽.

“히익.

육회를 집어 먹던 젓가락 내려놓은 김강인은 술잔을 들어 올려 술을 비운 후 그에게로 다가섰다.

“지금 우리에 대한 정체와 너의 안위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하겠지. 내 말이 틀렸나?”

“으으...”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 당신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거든.”

“소, 소중한 존재라고?”

“그래. [에덴]의 세뇌에도 당하지 않고 고위 관리자와 끈이 닿은 존재는 당신이 유일하거든.”

“대체. 당신 같은 작자가 에덴에 관심을 두는지 모르겠지만 회원가입을 하고 싶다면 내가 힘을...”

“누가 그딴 더러운 곳에 들어가고 싶다는 거냐?”

쨍그랑.

콰직!

“끄아아-.”

김강인의 말에 차현식 PD는 저 둘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가 평생을 해왔던 거래를 꺼내 들었지만, 그것은 실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술잔을 쥐어 깨트려 차현식 PD의 배에 박아넣은 김강인은 서슬 퍼런 눈으로 차현식 PD의 눈을 노려 보았다.

“너는 아무런 생각도 않고 그저 우리말을 따르기만 하면 돼. 너의 역할은 김강만에게 다가가는 초석일 뿐이야.”

“크으윽! 어, 어떻게 교주님의 이름을?”

“크크크. 아들이 자기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 게 그리 이상한가?”

“설마 넌...!!?”

‘그러고 보니...!’

끊임없는 광기와 증오심을 내뿜는 사내의 정체를 뒤늦게 깨달은 차현식 PD는 안색은 핼쑥해 지고 있을 때 새로운 손님이 이 자리에 당도하였다.

“아버지? 그 말. 진짜인가요?”

“그래. 너와 마찬가지로 그 더러운 작자의 유희에 태어난 자식이지.”

“...!”

스윽.

자신의 뒤에 들려오는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에 김강인은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초대한 손님을 맞이한다.

“가수라고 하더니 역시 목소리가 좋군. 반갑다고 해야 할까? 내 이름은 김강인이라 한다.”

“김강인...”

“그래. 너와 같은 아버지를 둔 배다른 형제지.”

저벅저벅.

“형제...”

쿵쾅쿵쾅!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김강인을 바라보는 김강운의 두 눈은 쉴새 없이 떨리는 중이었다. 배다른 형제의 충격적인 등장부터 시작해서 무언가 이곳에서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에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너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게 있다.”

“제안?”

“나와 함께 에덴을 부수자.”

“교단을!?”

“그래. 그 추악한 곳을 이 세상에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없애버리자는 거다.”

“그게 가능해...?”

“가능하다.”

스윽.

“!?”

“나와 함께 손을 잡는다면 말이야.”

“...!”

피투성이인 오른손을 자신에게 내밀며 협력을 제안하는 배다른 형제인 김강인의 모습에 김강운은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자신의 죽었던 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강운아 언젠가 이곳에서 나가게 해줄게!)

‘형...’

오래전에 죽었던 형이 했던 약속. 그리고 새해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에덴을 부수자는 제안을 건네는 배다른 형제의 존재. 과연 이것이 모두 우연일까? 김강운은 알 수 없는 강렬한 이끌림을 느끼며 김강인이 내뻗은 손을 향해 홀린든 천천히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덥석.

“저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아아.”

“......”

두 배다른 형제의 만남이 그들이 각자 원하는 결말을 가져올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둘의 만남은 가벼운 인연이 아닌 것은 확실하였다.

사락사락

1월 1일.

김강인, 김강운 두 사람이 재회한 새해의 날.

새하얗고 아름다운 눈송이가 그 둘의 만남을 반기듯 하늘에서 수놓듯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

“하늘에서 쓰레기가 펑펑 내리는구나.”

피식.

“차가운 설장군 둘이 만나는 날이라 그런가?”

차가운 눈송이를 손바닥으로 잡아보며 무뚝뚝하고 차가운 김강인과 김강운을 떠올린 도경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이 좁다고 해야 할지. 참 기묘하단 말이야.”

설마 김강인과 김강운이 배다른 형제였을 줄이야. 그들의 뒷 배경을 대략 적으로 들은 도경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에덴이라는 정체불명의 종교 교단.

김강인의 말을 들어보니 정·재계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강대한 종교라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강인이 어떤 상대를 노리고 있는 것은 알았어도 설마 그런 위험한 단체를 노리고 있을 줄 몰랐던 도경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게다가 그 김강운과 차현식 PD 아니, 더 나아가 ED 엔터테인먼트가 그런 종교랑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소름 돋기도 한 도경이었다.

‘어찌 보면 김강인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차현식 PD와 김강운의 일을 손쉽게 해결했지만, 사실 하나부터 열 가지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김강운에 대해서 백아현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면, 김강인과 거래를 하지 않았다면 에덴에 대한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이번 일은 도경의 생각보다 심각해 질뻔한 일이 될 수도 있었을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정·재계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 사이비 종교와 엮이는 것은 도경으로서도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 왕년이었으면 다 박살 냈겠지만... 이제는 홑몸도 아니니 말이야. 사리긴 해야지. 그나저나 세상이 어느 때인데 사이비 종교라니... 비싼 학비를 들여서 교육 받게하고 대학교까지 보내놓은 나라의 결과가 지능적인 사이비가 판치는 나라라니?’

학업율과 진학률이 높은 국민이 가장 많은 나라에서 비이성적인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다 못해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며 위세를 펼치는 한국의 현 상황에 그야말로 웃음이 나오는 도경이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진짜 웃기지 않는 농담이긴 한데... 그 세 사람은 괜찮을까?”

도경으로서가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종교단체를 상대로 싸우려 하는 김강인과 김강운. 그리고 백아현의 존재가 도경으로서는 조금 마음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경은 그들의 문제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일의 규모와 위험도가 도경이 평소 겪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평소대로 양아치를 혼내주거나, 골려주거나 배낭여행에서 가면을 쓰고 갱단을 박살 내며 설칠 수 있던 쪼렙들과 달리 영화에서 나올법한 정·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의 조직 그것도 정체도 규모도 불분명한 상대로 도경이 손대기엔 리스크가 너무 큰 것이었다.

쩝.

“뭐, 각자가 가는 길이 있으니까...!”

도경은 각자의 본분을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이제 자신은 피 튀기며 싸웠던 과거의 영웅도 아니었으며 모두의 별이 되기 위해 길을 걸으려는 연예인이란 존재. 어설프게 그런 싸움에 몸을 담기엔 그의 인생은 지켜야 할 것을 도경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알기에 도경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김강인과 백아현 두 사람의 인연을 끊어 내는 형태로 말이다. 그것은 앞으로 그들이 벌인 전쟁에서 휘말리지 않기 위한 도경의 조치였다.

“하아...!”

‘정이 들었던 건가? 꽤 씁쓸한데?’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뽀얀 입김을 바라보는 도경은 씁쓸한 마음을 느끼며 쓴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비즈니스 관계.

그것도 리스크가 있어 끊어 낸 인연일 뿐인데 마음 한구석에 차오르는 공허함과 씁쓸함에 도경은 자신의 집 앞까지 걸어가는 자신의 발걸음이 유독 무겁다는 생각을 하였다.

뚜벅뚜벅.

그렇지만 도경은 멈추지 않고 걸음을 꿋꿋이 옮기며 걸어갔다.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길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경은 그 길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과 조우하였다.

“도경아~!”

“어? 정훈이 형 이곳은 왜?”

“아, 그게...”

함박눈이 내리는 가운데 도경의 아파트 현관에서 어슬렁거리며 코를 훌쩍이는 맹한 남자의 정체는 [G.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도경의 무비를 찍어주었던 은하수 멤버 최정훈이었다.

자신을 반기며 손을 맹렬히 흔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본 도경은 자신의 가슴에 남아있던 씁쓸함이 가시는 것을 느끼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정훈이형?”

“그러니까...!”

“네. 말씀하세요”

‘내게 볼일이 있나 보구나.’

최정훈은 평소와 달리 매우 떨고 있었는데 단순히 추위 때문에 떠는 것 같지 않았고 다른 이유로 떨고 있는 듯싶었는데 도경은 그 이유가 자신에게 있을 거라 추측했다.

그도 그렇게 자신을 볼 때마다 최정훈이 내뿜는 감정이 격동적으로 반응하며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거...!”

덥석

“이건...?”

붉은색의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무지 커버로 둘러싸인 책자.

어딘가 익숙한 형태에 도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것을 바라보자 최정훈은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그거 내가 쓴 시나리오야!”

“시나리오요? 설마 형...!?”

“응! 네 생각이 맞을 거야. 도경아...! 내 시나리오 한번 읽어봐 주지 않을래?”

“...!”

씁쓸한 결단을 내리며 도경 자신이 본인이 선택한 길.

차가운 함박눈이 내리는 가운데 뜨거운 열망을 품은 한 사내의 외침에 도경의 새해 첫 스타트가 시작 된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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