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똑똑똑똑똑!
“도경, 도경!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같이 눈사람 만들지 않을래?)”
“......”
경쾌한 노크 소리, 부드럽게 속삭이면서도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리아의 노랫소리.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을 똑같이 따라 하는 리아 그라테는 그야말로 깜찍하고 귀여웠다.
똑똑똑똑똑!
“Do You Want to Build...”
“하지마라...!”
으득.
“Okay Bye~”
“넌 미쳤어... 리아 너는 미쳤다고! 지금이 몇시...”
훽!
[같이 눈사람 만들래~?
아니면 홀 클럽에서 춤추고 놀래?
난 같이 놀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
도경의 말을 들었음에도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가 노래를 멋대로 부르는 리아.
성인판 버전으로 깨알같이 개사한 노래와 고 퀄리티로 부르는 깜찍하고 귀여운 노래. 하지만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시각은 새벽 3시.
죽은 듯이 고요하게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 그야말로 신경 쇠약에 걸리게 만드는 소음공해나 다름없었다.
[나 항상 기다려.
나랑 놀아줘~
너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어.]
“도경 어때? 나와 놀아주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생기지 않아?”
“까고 앉아있네. 미친 짓 그만하고 얌전히 자라.”
문밖에서 괴로워하는 자신을 보면서도 끝까지 노래를 부르는 리아에게 도경은 이를 갈며 거칠게 자신의 머리에 이불을 덮으며 그녀에게 신랄한 평을 날려준다.
“......”
시무룩.
“Okay Bye~”
과격한 도경의 말에 리아는 그의 방문을 살며시 닫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그것은 도경의 말에 상처받은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이 만들고 있는 컨셉에 푹 빠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짝.
그녀의 손에 절묘한 각도로 쥐어진 스마트폰. 그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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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미친 짓. 그것은 수십, 수백만 단위로 조회수를 올리며 SNS에서 퍼지고 있었다.
[리아 비글 짓에 또 다시 고통당하는 도경. ㅋㅋㅋㅋ]
┗[ㅋㅋㅋㅋ 아 개 뻥터짐. 진짜 리아도 만만치 않게 또라이 인 듯]
┗[도경이 이빨 가는 모습...! 너무 소중한 자료다. 이 청량감 느끼는 것은 나뿐임?]
┗[아무리 봐도 리아가 도경 좋아하는 듯. 진짜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네.]
미국 뉴욕으로 넘어간 후 공식적으로 작품 [Again] 영화를 제작한다고 발표한 도경 일행. 발표는 냈지만, 홍보는 하지 않았기에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리 큰 화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대신 다른 것으로 도경 일행은 화제가 되고 있었다.
끼이익.
꿀꺽.
“OMG~. 다들 보고 있어?”
소근.
“도경이 지금 운동하는 중. 몸 봐봐 화끈하다고 했지? 거짓말 아니라니까? 완전 조각 같은 근육은 저런 걸 말하는 거지. 괜히 내가 자랑하는 게 아니야. 인정? 어 인정. 아, 이게 무슨 말이이냐고? 이건 한국에 유행하는 급식체라는 것으로...”
자신의 방안에서 트레이닝 반바지만 입고 상의를 탈의한 채 땀을 흘리면서 운동에 몰입 중인 도경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며 리아는 홀로 무언가를 쉴새 없이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녀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 그것이 그녀가 홀로 중얼거리는 원흉이리라.
현재 리아는 좁은 문틈 사이로 도경을 도촬 중이었는데 문제는 수만 명이 그녀의 폰의 렌즈를 통해 도경의 몸을 훔쳐보는 중이라는 것이다. 수십만이 바라보는 도촬. 그것을 과연 도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두들 숨을 죽이며 도경의 괴랄한 운동과 꿈틀거리는 근육을 훔쳐보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흠칫.
“리아! 또 너지? 그만 훔쳐보랬잖아. 너, 이거 범죄... 응!? 스마트폰? 너, 설마...!?”
수십 수 만 명의 시선을 감지한 것일까? 도경은 동물적인 직감에 가까운 불길함에 물구나무를 서며 팔 굽히기를 하는 와중 몸을 허공으로 튕겨 침대 위로 착지 뒤 돌아서 도깨비 눈으로 문틈을 노려보다 이내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비명 질렀다.
“리아! 너 지금 촬영하고 있지? 당장 카메라 안 꺼! 이, 정신병자야!”
타다닥!
“꺄하하!”
이때 퍼져갔던 영상의 제목은 [Hot Body Asian]이었다.
도경은 그는 의도치 않았지만, 착실하게 낯선 외국의 땅에서 자신의 이름을 빠르게 알려가고 있었다.
[리아&도(Do)]
리아의 SNS에서 도경과 리아의 등장 편만 모아놓은 시리즈 동영상이 생길 정도로 도경은 현재 미국에서 리아의 팬들 사이에서 많은 웃음을 주며 화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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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쿵쾅
힐끔.
“또 시작이군. 지치지도 않나 보네 정말 기운도 좋다니까 저 둘.”
피식.
시끌벅적한 소란에 최정훈은 영상작업을 하고 있던 작업을 멈추고는 뒤 돌아 문을 열고 나와 그 둘의 추격전을 바라 본다.
“정훈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야 리아.”
“좋은 아침은 개뿔! 잡았다!”
“꺄악! 도경 너무 적극적이야! 보는 눈도 많은 데...!”
“개풀 뜯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스마트폰 내놔!”
휘익!
리아를 헌신짝처럼 소파에 집어 던진 도경은 리아의 폰을 서둘러 살폈지만 이미 동영상이 올라간 것을 깨닫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역시 동영상 올렸어.”
“깔깔깔. 왜 도경 유명해지고 좋잖아? 반응들이 되게 좋다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오늘도 질문 공세에 시달리겠구나...’
요즘 들어 자신에게 장난치면서 SNS에서 올리는 리아의 영상 덕분에 자신의 SNS나 짬짬히 시간내어 촬영하는 S-앱은 조용할 틈이 없었다. 뭐 이리 궁금한 게 많은지 리아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분명 친구라고 설명했음에도 끊임없이 그녀와 자신의 사이를 캐묻는 사람들에 물음에 도경은 질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 배고프다. 도경 나 먼저 식탁으로 가 있을게. 간단히 씻고 와.”
“저 녀석! 예전에는 분명 얌전한 성격이었는데 변해도 너무 변했어...!”
볼 일 다 봤다는 듯이 여유로운 손 인사를 남기며 부엌으로 사라지는 리아를 보며 투덜거리고 있는 도경을 보며 최정훈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토닥거렸다.
예전에 리아가 어땠는지 몰라도 그녀가 저렇게 변한대에는 분명 도경이 뒤에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하하. 도경아. 이젠 슬슬 받아들여. 뭐, 리아 말대로 반응도 되게 괜찮더만 리아&도(Do). 요즘 미국 10대 애들 사이에서 난리래.”
“무슨 톰과 제리에요?”
“하하하! 그러네 딱 그런 느낌이었네.”
“에휴. 그냥 따로 숙소 잡아서 맘 편히 있을 걸 그랬어.”
“에이. 그건 아니다. 리아가 아니었으면 이런 호사스러운 저택에서 언제 머물러 보겠어.”
“윽 그건 그렇긴 한데...”
도경의 말에 최정훈은 단호하게 그것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게 현재 도경과 최정훈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한평생 머무를 수 있을까 말까 한 호화로운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팝스타가 아니라는 듯 증명하는 리아의 대저택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덕분에 도경과 최정훈은 상류층의 삶이 어떤 것인지 만끽하고 있었다.
“아닌 건 아닌 거지. 솔직히 리아 덕분에 영화 촬영도 순조롭고 솔직히 리아 님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와... 이형 어제 마사지 받더니 태도가 아주 극진하네?”
“야, 말 마라. 자그마치 한 회에 수 백만원 짜리 마사지야. 너도 받으면 극락이 뭔지 알게 될걸?”
“나 없을 때 혼자만 받고 너무하네~. 게다가 리아 녀석. 뭔가 심통났는지 나에게는 마사지 안 받게 해준다던데?”
“하하. 그러게 누가 혼자 술집 가라던? 티는 안 냈지만 리아가 서운해하더라.”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리아랑 술집 가면 제대로 즐길 수나 있을 거 같아? 파파라치에다가 팬이라면서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못 논다니까?”
“하긴...”
최정훈은 도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정훈은 리아 덕분에 스타의 삶이 얼마나 호화롭고 화려한지 알 수 있었지만 그만큼 얼마나 불편한지 그녀의 곁에서 똑똑히 목격하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버틸 수 없는 생활이 연예인의 삶이라는 것을 은하수 멤버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담고 멋대로 기사를 내는 파파라치와 열성 팬에게 둘러싸이는 리아의 삶은 그야말로 레벨이 달랐다.
화려하지만 편안함과 안정은 없는 삶. 그것이 최정훈과 도경이 본 스타의 삶이었다.
“참 아이러니해. 평범한 사람들은 스타를 동경하고 스타들이 원하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삶이니 말이야.”
“뭐, 세상사가 그런 거죠. 뭐, 그렇다고 해도 불편한 것뿐이지 불행한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응?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뭐...”
긁적긁적.
“나 정도 되면 그냥 알아요.”
피식.
“뭐야 그게? 진짜 허세 부리는 건 네가 갑 중의 갑이다.”
“하하하. 그나저나...!”
도경의 말에 최정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도경은 친절하게 그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봤다는 것을 말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경은 최정훈의 눈 밑에 자리 잡은 다크서클을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기 시작했다.
“형 눈 밑에 자리 잡은 다크서클 보니까 어제도 잠 안 자고 또 밤샘 작업했죠? 그러니까 스타니, 평범한 사람의 삶이니 그렇게 센치한 감성을 발휘하는 거라고요.”
“으응. 아냐, 잠 잤어 2시간 정도...”
“어휴. 진짜 형도 답 없다. 영화 촬영 중에 감독이 쓰러지면 진짜 답 없다고요. 미국은 보험도...”
도경의 역습에 최정훈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뒷걸음질 치며 그와 거리를 벌리며 리아를 떠올리며 배를 움켜지고는 실실거리며 도경을 바라보며 웃음을 내보였다.
“하하. 알았다니까 그러네... 아이고 밤샘해서 그런가 배가 너무 고픈걸?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타다닥.
“저 형도 처음과 달리 능글 맞아졌어...”
예전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치던 최정훈을 보며 도경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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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구나! 도경이 노래 부르는 날.”
아삭!
식탁을 앞에두고 의자에 앉아 발을 동동거리며 샌드위치와 신선한 샐러드를 먹던 리아는 자신의 스케줄을 확인하다 이내 기쁜 표정을 지으며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게 베일에 싸였던 도경의 영화 주제곡이 오늘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조나단 제가 준비해달라는 것은 다 되었나요?”
“네. 리아 당신 말대로 녹음실을 예약해 뒀답니다.”
“고마워요. 조나단. 정말 당신은 최고에요.”
“......”
“응 왜요? 조나단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아니. 이해가 안 가서 말입니다.”
“네?”
조나단의 의아스러운 질문에 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조나단은 그녀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리아 씨가 요구한 대로 최고 시설이 갖춰져 있는 음반작업실의 대관에 일류 엔지니어들까지. 자그마치 30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
조나단은 정말로 리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30만 달러라는 돈. 팝스타 리아 그라테에게는 그리 큰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나단은 리아가 돈을 허투루 쓰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친척과 가족에게조차도 금전거래를 가지지 않으려 했고 만약 큰돈을 빌려주게 되더라도 항상 차용증을 끊을 정도로 리아에겐 돈을 쓰는데 항상 그녀만의 기준과 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도경에게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헌신적으로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려 든다.
‘그녀는 일부러 도경에게 모든 것을 내주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감 표시인 줄 알았지만, 그녀의 옆에서 자세히 지켜본바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조나단은 깨달았다.
중요한 시기에 말도 안 되는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에 공간을 내주는 것도, 끊임없는 구설수에도 그를 SNS에 홍보해주는 것도 모자라 초호화 앨범을 만들 기세로 작업실과 환경을 잡는 것은 단순히 호감 이상의 것이 존재했다.
“이유가 뭐냐고요?”
“네. 처음에는 단순히 지켜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리아씨의 에이전트로서 리아씨의 행동의 연유를... 그리고 의도를 알아야 할 듯싶더군요.”
“그렇군요.”
끄덕.
“좋아요. 얘기해드리죠.”
조나단의 말에 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손에 쥔 샌드위치를 내려놓곤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리아의 이어지는 이야기에 조나단의 두 눈은 휘둥그레 커지기 시작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