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띠리링.
[멍청아. 그 남자가 그렇게도 좋았니?
너를 버리고 떠난 남자를 뭘 믿고 찾아갔니.]
부드럽고 따스한 선율 속에 울리는 상냥한 목소리.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의자 위에 앉아 울음을 보이고 있던 리아가 훌쩍임을 멈추고 도경을 바라보았다.
[멍청아. 그만 좀 깨달아.
네가 사랑했던 남자는 알고 보니 흔하디흔한 남자였다는 걸 말이야.
그게 네 남자였어. 그런데 왜 슬퍼하니?
한 번 생각해봐]
도경의 노랫소리에 맞춰 리아가 천천히 그의 노래에 맞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럴 게 도경이 부르고 있는 노래는 리아의 첫 번째 히트곡 [Walk Away]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고 사랑했지. 하지만 슬퍼할 가치는 없지 않았니?
기름진 머리. 사실 너무 싫지 않았어?.
냄새! 코를 막고 싶은 냄새를 풍기지 않았어?
너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은 던지지 않았어?
그리고 5분! 아, 무슨 5분이냐고?
당연히 침대 위에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어땠니?]
[Walk Away].
원색적인 비판이 장난스럽게 담겨 있는 이 노래를 리아는 톡톡 튀는 젊은 여성의 매력을 담아 발랄하게 불렀다면 도경은 한 사람을 위로해주기 위해 노래를 불러내었다.
짓궂은 장난기가 담겨 있었지만 가볍게 느껴지지 않은 목소리로 토닥토닥 아이의 등을 두드리듯 위로해주는 상냥함이 담겨 있는 노래.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가사임에도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고 편히 스며드는 자장가처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도경의 목소리.
그것이 도경의 진짜 오리지널 버전의 [Walk Away]였다.
[어디 보자.
그 녀석을 떠올리니까 하고 싶은 말이 생기는데?]
슥.
씨익.
도경의 그 노랫소리에 어느새 그리웠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리아. 그녀는 도경을 바라보며 입을 천천히 열었다.
3년이 지났음에도 잊지 못하는 노랫소리. 진짜 [Walk Away]를 부르기 위해서 말이다.
[가. 저리 가~.
생각해보니 슬퍼할 이유가 없었어.
그도 그럴 게 슬퍼할 이유가 없는 걸.]
녹음실.
기타 선율 하나로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달콤하면서 따스한 추억이 서린 노랫소리를 내뱉는다.
어처구니없던 웃긴 상황극은 어느새 영화 같은 한 장면으로 잔잔하면서 따스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녹음실 가득 울려 퍼졌다.
[붙잡지 않아. 생각하지 않아.
저리 가. 가버려. 저리 가. 가버려.
저리 가버려~.]
“......”
지이잉.
도경과 리아의 듀엣. [Walk Away].
두 사람의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놓치지 않고 있는 섬세하게 카메라로 담고 있는 최정훈이 말없이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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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gain에 많은 기대 부탁드리겠습니다.]
도경과 리아의 듀엣이 끝이 나고 작은 자막으로 그 둘이 촬영하는 영화를 홍보하는 짤막한 자막이 여운을 남기며 동영상은 끝이 난다.
“...!”
[미친! 리아 Walk Away를 도경이 만들었다고? 이거 실화냐?]
┗[진짜 미쳤다. 왜 리아랑 친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박도경 능력 개 좋다. 무슨 비선 실세냐? 은하수 멤버도 그렇고 이제는 리아 까지 이거 씹 사기 인맥 아니냐? 도대체 정체가 뭐냐?]
┗[그러니까 말이야. 아니, 생각해보면 왜 한국에서 활동하는 거 자체가 이해가 안 되네.]
┗[그게 뭐가 중요하냐? 도경아! 세계로 가즈아!]
도경과 리아의 듀엣곡을 부르는 동영상은 제일 먼저 리아의 SNS와 최정훈이 운영하는 유브 채널에 게시되었고 그 동영상은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리아&도(DO) - Walk Away (Again OST)
평소 리아가 도경에게 장난쳤던 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역대급의 반응.
그것도 단순히 팝스타 리아의 유명세에 편승한 것이 아닌 순순한 노래 하나만으로 이끌어낸 반응이었기 때문에 더욱 값어치가 있었다.
[처음에 리아가 상황극 했을 때 저게 뭐지 이랬는데 개 뜬금 반전. 완전 감동이다.]
┗[ㅇㅇ 뮤지컬 보는 줄.]
┗[노래 진짜 개 좋더라. 리아 버전 것도 좋은데 컨트리 풍의 Walk Away도 너무 좋음.]
┗[맞아요. 저 지금 두 사람이 부른 Walk Away 노래 무한 반복 중. 두 사람 목소리 들을 때마다 귀 호강. 넘 달달해요.]
┗[이쯤 되면 썸이 아니라 둘이 사귀는 거 기정 확실 아니냐?]
┗[개부럽 ㅠㅠ]
┗[지금 그게 문제임? 듀엣이지만 음원 나온 지 하루 만에 빌보드 100 차트에 올랐는데 이거 대형사건 아님?]
┗[야! 도경이잖아.]
┗[ㅇㅇ. 도경이잖슴. 초보같이 왜 그러셈?]
┗[아니... 그래도 이건 좀 놀라야 하는... 아닌가? 그리 놀랄 게 아닌 건가...? 그런거야?]
┗[ㅋㅋㅋㅋㅋ. 윗분 의기소침한거 귀여움.]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성원에 영화 [Again] OST로 재탄생한 Walk Away는 음원으로 나와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것도 괴랄한 결과를 만들면서 말이다.
나온 지 하루 만에 빌보드 핫 차트 50위에 들으며 역주행하며 올라가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고 한국에는 이미 음원 사이트에서 1위의 자리를 엿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만큼 도경과 리아 두 사람의 노래의 파급력은 엄청났는데 그 여파는 그 둘이 현재 촬영하고 있는 영화 작품 [Again]에게도 그대로 미치고 있었다.
[Again이라 했나 영화 언제 나옴? 노래 들으니까 완전히 기대된다.]
┗[기대 ㄴㄴ 함. 나도 궁금해서 조사해봤는데 완전 듣보잡 무명 감독에 저예산 독립영화라고 함.]
┗[안돼 노래 개 좋은데 ㅠㅠ 왜 저예산 영화를 함? JY일 안 하냐!!?]
┗[그러게 저예산으로 제작되기엔 리아하고 도경이 너무 아깝지 않음?]
┗[너무 아쉽다. 좀 더 욕심 내봐도 좋을 텐데 도경은 항상 어려운 길만 가는 듯.]
┗[그래도 다 성공했잖슴. ㅋㅋㅋㅋ 혹시 암? 이번 영화도 대박 날지?]
┗[에이~ 아무리 도경이라도 감독이 무명감독이어서야 솔직히 이번에는 어렵지 않지 않겠냐?]
영화 [Again]의 관심들이 본격적으로 점화되면서 한국 네티즌들은 갑론을박을 벌이며 성공을 점치기 시작했는데 그러한 상황은 [Again] 작품에 출연하는 조연배우들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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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 영화 촬영 중]
“어이어이! 이거 진짜 조짐이 심상치 않을걸? 정말로 대박 나는 거 아니야?”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영화 매거진에서 기사까지 실리는 게 조금 심상치 않은걸?”
도경과 리아의 영상이 나오고 본격적인 영화 촬영이 시작된 지 일주일. Again의 조연들과 영화를 찍는 스태프들은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서로 웃음을 보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들떠 있네.”
“쯧! 노래가 반응이 좋은 거지 영화가 반응이 좋은 건 아닌데 말이야. 쓸데없이 너무 들떴어.”
“하하하. 그래도 좋은 일이잖아. 그리고... 제일 들뜬 건 너 아니야?”
“우, 웃기지 마. 내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촬영하는 영화 따위에 들뜰 리 없잖아...!”
“헤에? 그래? 그런 것 치고는 요즘 펼치던 연기가 아주 찰지던데?”
얼굴을 붉히며 질색하는 앨런의 반응에 테일러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런 테일러를 보는 앨런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테일러... 너 성격 점점 능글맞아진다?”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
“칫...!”
테일러의 말에 앨런은 혀를 차고 말았다. 자신은 모르겠다고 얘기하지만, 그는 분명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대본 리딩 때의 자신감 없고 숙맥처럼 굴었던 테일러의 모습은 사라지고 붙임성 좋고 활달한 사람이 자신의 앞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다들 점점 이상해지고 있잖아...!’
[Again]이란 이 영화에 접하는 사람들 모두들 조금씩 이상해지고 있었다. 분명 흔하디흔한 저예산 영화로 그것도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게 주먹구구식으로 촬영하는 영화에 모두가 열정적으로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들 왔을 줄이야...”
웅성웅성.
이번 영화에 콘서트 신을 촬영할 장소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것을 바라보며 앨런은 질린 표정을 지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이번 촬영 장면을 위해서 오늘 촬영 날이 아님에도 찾아온 조연들과 무보수로 궂은 엑스트라를 자처해서 온 사람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
관객 역할을 해야 하는 엑스트라를 구할 돈이 없어 촬영현장에 무보수로 맥주와 핫도그만 제공하고 촬영 협조를 구한 말도 안 되는 조건에도 200명의 엑스트라가 모인 사실에 앨런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이었다.
일견 200명의 엑스트라는 적은 숫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촬영현장에서 그 숫자는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카메라 화면에 따라 이곳저곳 움직이고 배치해서 연출하면 200명은 1000명이 되는 마법을 부리는 까닭이다.
물론 그만큼 많이 움직여야 하고 시간이 소모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힘든 표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웅!
“이야! 이번에도 많이들 왔네? 다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던 거였어?”
와하하!
“기다렸다 도경!”
삐이익.
무보수에 궂은일인 엑스트라를 자처한 이유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환호하며 그를 반겼다. 영화 촬영현장이 아니라 정말로 콘서트 현장이 된듯한 열기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경은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테일러는 들뜬 기색을 숨기지 않고 엑스트라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가는 곳으로 걸음을 서둘러 옮긴다.
“슬슬 촬영 시작하나 보다. 앨런 먼저 자리 잡고 있을게!”
타다닥.
“진짜 다들 미쳤다니까...!”
도경의 노래를 가까이서 듣겠다고 카메라는 생각 않고 주조연이 엑스트라를 자처하는 상황이나, 무대 위에서 이번 영화 촬영에 대해 설명을 하는 도경을 향해 순한 양을 자처하는 공짜 인력인 엑스트라들은 앨런의 눈에 모두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슬금슬금.
“큼!”
모두를 향해 혀를 차지만 앨런 그의 발은 어느새 그가 혀를 찼던 사람들과 같이 도경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슬그머니 옮기기 시작한다.
“나는 영화 출연진으로서 작품이 걱정돼서 온 거야. 그런 거니까... ”
계속 촬영현장에서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던 앨런. 사실 그 또한 오늘은 촬영하는 날이 아니었다.
“크흠!”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머쓱함에 앨런은 걸음을 옮기면서 자꾸만 헛기침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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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
하하하.
“진짜 저 자식은 변함이 없네요.”
“그러게... 아니, 더 괴랄 해지는 것 같지 않아?”
“제가 말했잖아요. 쟤랑 있으면 사람들이 휘말린다고요. 저게 어딜 봐서 무보수로 일하는 사람이라 믿겠어요?”
“진짜 박도경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무대 뒤에서 도경과 엑스트라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두 사람은 도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경이 사람을 휘두르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설마 저런 식으로 사람들을 홀려 엑스트라로 동원할지 꿈에도 상상 못한 둘이었다.
“하하하! 많이들 놀랐죠? 저도 사실 많이 놀랐다니까요. 처음 영화 도입부에 쓰일 촬영현장에 엑스트라로 왔던 사람들이 도경의 노래를 듣고 저렇게 팬이 돼서 불어와 왔을지 될지 누가 알았겠어요?”
“아. 감독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감독님.”
꾸벅.
기이한 광경을 보고 있던 두 사람을 향해 이번 [Again]의 감독을 맡은 최정훈이 다가와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두 사람은 최정훈을 향해 고개를 꾸벅이며 그를 맞이했는데 최정훈의 얼굴에 곤란한 표정이 지어졌다.
“아, 아니. 저한테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다니까요. 솔직히 제가 존대하면 했지 그럴 위치가 아니시잖아요. 제발 편하게들 말씀해 주세요.”
“아닙니다. 미국에 오는 순간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신인의 마음으로 왔으니 그럴 수 없죠.”
“그렇군요...”
“네! 그러니 그런 거는 신경 쓰지 마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아,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어. 그것도 엄청 뜨거운 사람으로...!’
강렬한 의지가 서려 있는 사내의 모습에 최정훈은 난처한 기분을 느끼는 한편. 예전과 달리 많이 변화한 그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그의 이름을 천천히 입에 담기 시작했다.
“정용환 씨...!”
정용환.
그 석자의 이름을 내뱉는 최정훈의 목소리가 미세히 떨리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