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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20화 (220/357)

220화

탁!

“나쁜 놈. 누가 결혼하자고 했나? 한번 사귀어 볼 수는 있는 거잖아.”

도경을 볼 수 없어 무작정 집 밖으로 나온 리아는 현재 자신이 자주 애용하던 라이브 바에 와서 가게 안 풍경과 무대가 잘 보이는 2층 VIP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며 홀로 울적한 기분을 달래고 있었다.

둥! 띠리링!

퉁퉁!

“칫... 왜 이리 안 와?”

리드미컬한 그루브가 느껴지는 재즈 음악이 흐르는 가게 안.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각자 같이 온 지인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리아는 심술 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심기가 불편해지는 데 원인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기에 리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도경을 향해 원망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나쁜 놈...!”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었던 것과 달리. 홀로만 불행한 것 같은 동떨어짐에 그녀는 남은 술을 한 번에 마시고는 돌아다니고 있던 직원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려 마셨던 술을 한잔 더 시켰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알딸딸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리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상태가 좋았다. 맨정신으로 도경을 보기엔 너무나 창피하고 괴로웠기 때문에...

‘내가 왜 그랬을까?’

화끈.

사전에 미리 토크쇼에서 어떻게 이야기할지도 서로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그런데도 도경이 자신을 친구라고 한 말에 발끈해서 우발적으로 고백을 해버린 리아는 자신의 행동에 당황하면서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아냐!”

발끈.

“고백할 수도 있는 거지. 이게 다 도경이 나쁜 거야!”

후회하다가 발끈하는 리아.

그렇다. 그녀는 현재 이성과 감정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변덕스러운 기분을 마음껏 발산하는 중이었다. 이성적으론 도경에게 잘못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밀어낸 도경의 행동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에 그를 감정적으로 원망하는 중이었다.

“아니. 내가 어때서? 돈 많고 이쁘지. 능력도 좋아. 인기도 많지. 남자라면 일단은 못 먹어도 Go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쿵!

이성과 감정을 오락가락하며 균형을 유지했던 저울이 결국은 감성으로 기울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450만 명이 보는 앞에서 남자에게 까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도 모두에게 동경 받고 있는 위치에 서 있는 팝스타가 말이다.

“아아...! 정말 최악이야!!!”

그 당시의 상황을 다시 떠올린 리아는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망신살에 자신의 화끈한 얼굴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

귓가에 들여오는 차분한 재즈 음악을 배경음 삼아 많은 생각들과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면서 리아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렸기에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미 마음에 담고 있는 여성이 있는 거야.”

자신의 구애를 우발적인 장난처럼 여기며 상황을 모면했던 도경의 행동도, 화면에 찍힌 자신의 표정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상황도 참담하기 그지없었지만, 그것보다는 도경의 마음속에 누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운 것이었다.

“그거 아니면 그럴 수가 없어.”

중얼.

억측일 수도 있는 생각이었지만, 자신의 구애를 거절할 이유를 생각하던 리아는 이유는 딱 그거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맞아 그게 분명해...!”

도경이 톱스타 구애의 부담을 느끼거나 주변 시선에 위축받을 사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남자를 좋아하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이도 아니다. 인생을 책임지자는 결혼을 하자는 것도 아니라 그저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는 연애를 하자는 것이었다.

게다가 과거의 자신을 여성으로 느꼈으니 키스도 한 것일 터. 리아 입장에선 서로가 그 정도의 호감도 있으면 절대로 자신이 까일 상황이 없다는 게 맞았다.

하지만 자신은 까여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 본바 자기 같은 여성이 까이는 경우는 딱 하나였다.

부글부글.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나를 차?’

리아가 밉고 미운 도경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 그것은 도경이 마음에 품고 있는 여성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이게 누구야 리아 아니야~?”

“응?”

“리아 오늘 방송 봤어. 재밌는 일을 벌였더라?”

“스티븐...”

‘쟤는 또 여기 왜 있어?’

자신을 보며 이죽거리는 백인 남성에 리아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명품 브래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른 사내. 어두운바 안에서 선글라스를 걸치며 요상하게 미간을 구기며, 팔자 눈썹과 독특한 걸음걸이로 제스쳐를 취하며 다가오는 사내를 보면서 리아는 오늘 정말로 최악은 최악인 날이구나 생각했다.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던 남성을 하필 지금 만나버렸기 때문이다.

“뭐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는 거야? 너무한데 상처받는다고?”

털썩.

“아, 여기. 위스키 한잔.”

역시나 스티븐이라 불리는 남성은 리아를 그냥 지나쳐갈 생각은 없는지. 리아의 앞에 비어있는 자리에 그녀의 동의도 없이 멋대로 앉아 자신의 선글라스를 벗더니 술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리아가 기다리는 사람이 도경이 아닌 스티븐인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술을 주문하는 그 모습에 리아의 기분은 더욱더 저조해지기 시작했다.

“스티븐 나는 너에게 할 말 없으니까 내 앞에 비켜주지 않을래?”

“리아. 너무한걸? 우리 사이에 너무 야박한 거 아니야?”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내가 너를 좋아하잖아.”

“그런 건 일방적인 관계라고 하지 않아?”

“흐음~! 그런가?”

상대방의 기분과 상태를 전혀 헤아리지 않는 마이웨이 스타일. 리아가 스티븐을 질색하고 싫어하는 이유였다. 게다가 이런 남자가 자꾸만 틈만 나면 엉겨 붙는다면 여성으로서는 더욱더 좋아할 리 만무하였다. 그것도 화룡점정으로 호색한에 각종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악동이라면 말해서 입만 아프다.

절대로 만나고 엮이고도 싶지 않은 남자. 그 남자가 리아의 눈앞에 스티븐이라는 남자였다.

“그럼 오늘 우리 관계를 진전시켜 보는 건 어때?”

“...!”

‘끈질긴 거머리 자식...!’

특히나 1년 전에 스티븐 덕분에 스캔들로 큰 홍역을 치러야 했던 리아는 그를 볼 때마다 이가 절로 갈렸다. 더구나 이 거머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엉겨 붙어왔기에 그녀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자란 생각으로 스티븐과 접촉을 최대한 피하거나 만나면 그 자리를 바로 벗어나는 방식으로 그를 대처 해왔지만, 현재 기분이 저조할 대로 저조해져서 짜증이 절로 솟구친 리아는 스티븐을 향해 도끼눈을 치켜떴다.

“스티븐!”

“오~ 그래. 리아 생각이 좀 바뀌었어?”

“제발 좀 꺼져. 내가 너 싫어하는 거 알잖아? 거머리도 아니고 도대체 왜 이리 달라붙어?”

“...!”

설마 가녀린 리아가 노골적인 말을 해올지 예상 못 한 스티븐은 벙찐 표정을 짓다가 이내 신색을 원래대로 회복하고는

“뭐야 오늘 상당히 기분 나쁜가 보네?”

“오늘뿐만이 아니야. 널 볼 때마다 항상 기분 안 좋았거든? 네 팬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한지 몰라?”

“뭐야. 그런 걸 신경 쓰고 있나? 우리 같은 스타라면 그런 건 감안해야 하는 거 아니야? 팬들이 쓰는 댓글 따위에 신경 쓰면 어떻게 살아?”

“아~. 그래서 팬들 얼굴에다 침 뱉었나 보네?”

피식.

“맞은 사람은 없다고? 그리고 다 파파라치들이 꾸며낸 헛소리인 거 알잖아.”

‘쓰레기. 사람들은 도대체 저런 새끼가 어디 좋다는 거야?’

팬에게 침을 뱉은 게 아니라 하더라도 밑에서 팬이 그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쪽을 침을 뱉은 스티븐의 인성에 혀를 내두른 리아는 그와 더는 말을 섞기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됐어. 너랑 말을 말지. 여튼 빨리 꺼져. 그 자리는 너 앉으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야.”

“아! 선약이 있나 보네. 혹시 그 TV에 나온 그 동양인을 기다리는 거야? 오~! 리아. 정신 좀 차리라고 너는 팝스타라고? 아무나 사귀면 큰일 날 위치라니까? 그 동양인도 네 돈을 노리고...!”

꿈틀.

“꺼지라 했어. 스티븐! 더 이상 날 화나게 하지 마. 경호원들 부르기 전에 당장 꺼져!”

화를 내는 리아의 최후통첩에도 스티븐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은 채 혀를 차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아무리 리아가 무섭게 화를 낸다 한들 이미 온갖 막장인 사건, 사고를 친 그에게 리아의 화내는 모습은 그저 고양이가 꼬리를 부풀어 세우는 재롱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쯧! 충고해주는 거라고 리아. 그딴 동양인에게 속아 넘어가는 네가 불쌍해서 말이야. 아니면...!”

휙.

덥석!

“스티븐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거 안 놔?”

바둥바둥.

갑자기 자신의 팔목을 낚아채는 스티븐의 행동에 리아가 당황하면서 그의 손에 자신의 팔을 빼보려 하지만 억센 남자의 힘에서 벗어나기엔 그녀는 너무 가녀렸다.

그런 리아의 반항을 보던 스티븐은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리아를 끌어당기며 그녀의 귓가에 음흉하게 속삭였다.

“그 동양인 놈 게 그렇게 좋았나 봐? 그렇다면 리아 내게도 기회를 주는 게 어때? 그 조그마한 동양인 물건보다 내게 훨씬 더 마음에 들 거라 보장해!”

씨익.

“시끄러워. 이거 놓기나 해!”

힐끔.

‘누가, 누가 좀..!’

귀가 썩을 거 같은 음흉한 스티븐의 말에 리아는 소름을 돋는 것을 느끼며 주변을 향해 도움을 구할까 싶었지만 이내 주변 사람들을 보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웅성웅성.

[가십거리]

TV 브라운관만 없을 뿐이지 자신과 스티븐을 연예계 가십거리로 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빛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들을 알아보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는 사람들까지 생겨나는 것을 보며 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지만 꾹 참아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런 녀석에게 약한 모습을 드러내기 싫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발휘한 인내심이었다.

‘정말 오늘은 최악...!?’

“아...!”

리아는 도대체 오늘 하루 일진이 왜 이런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는 와중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이내 신음성을 내뱉으며 스티븐에게 반항하던 힘을 풀었다.

그녀의 변화를 알아챈 스티븐은 이죽거리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상사를 뭐든지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리아의 행동을 자기 뜻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응? 뭐야 체념한 거야? 그럼 이거 그린라이트라고 받아 들이고...”

이때다 싶어 웃음 지으며 그녀의 입술을 향해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는 스티븐. 하지만 그는 아쉽게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없었다.

분노한 감정을 담은 한 사내가 그에게 다가온 까닭이다.

저벅저벅.

“지랄하고 자빠졌네. 미친놈아.”

빠악!

“크악!”

쿠당탕!

구수한 한국 욕. 그리고 속이 뻥 뚫릴 것 같은 강타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짐과 동시에 스티븐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받고 말았다.

“이 새끼가 뒈지려고 어디서 물건 자랑이야?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 평균 넘거든? 씨발!”

“크으으...”

멋있는 등장 타이밍이었지만 어딘가 정신 나간 대사를 읊으며 등장한 도경. 하지만 이곳에서 한국말을 알아들을 사람은 없었기에 다행히도 그의 등장은 여전히 멋짐을 유지했다.

“도경!”

덥석!

도경의 멋짐의 폭발에 그 누구보다 반가워하는 리아,

그녀는 도경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었고 마치 그 장면은 영화 속 백마에 탄 왕자님이 공주를 구해주는 듯한 모습이어서 모두가 그 광경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달달한 감각에 시선을 둘에게 오래 주지 못하였다.

“Fuck!!!!”

우르륵!

다행히도 그 달달함을 중화시켜줄 존재의 재등장에 모두의 시선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던 스티븐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크윽, 골이야..! 이 미친 동양인 새끼! 너 죽고 싶어?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누군데?”

“뭐?”

갸웃

자신의 뒤 통수를 잡고 지랄발광하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도경은 리아를 품속에 떼서 자신의 뒤로 옮긴 뒤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다시 한번 물었다.

“네가 누군데?”

“나, 나는...! 나는!!!”

도경의 살벌한 기세에 스티븐은 잠시 움찔거리지만, 자신이 도경에게 위축됐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누군지 그가 어떤 사람을 건드렸는지 보여주려고 목청을 돋웠지만, 도경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시끄럽네. 쪼그마한 게 어디서 어른 앞에 큰 소리야!”

“뭐, 뭐라고? 쪼그마해?”

“그래 새끼야!”

빠악!

“악!”

다시 한번 속이 시원하게 뒤통수를 강타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두 눈은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그렇다 쳐도 두 번째에도 망설임 없이 스티븐의 뒤통수를 치는 도경의 행동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스티븐이라는 남자는 세계가 알아주는 성격 더러운 또라이로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자신의 상황을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스티븐의 눈은 돌아가고 말았다.

“너, 너, 너...! 너어!!! 감히 내 머리를...! 죽여버리겠어!!!”

“(Fuck)퍽이나다 새끼야!”

“으아아!”

도경의 감자 주먹을 신호로 스티븐이 눈 돌아간 황소처럼 도경을 향해 박차며 주먹을 휘두르고 도경은 그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몸을 비스듬히 돌려 그의 주먹을 피해낸 후.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왼쪽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악을 쓰고 있는 스티븐과 눈을 마주치며 바라보며 입을 열며 마지막 말을 건네었다.

“이 악물어라.”

“...!?”

휙!

퍼어억!!!

우당탕탕!

도경의 레프트가 스티븐의 얼굴을 작렬하고 스티븐은의 몸은 붕 떠 포댓자루처럼 바닥에 너부러졌다.

꿈틀꿈틀.

“......”

속이 시원한 원 펀치 KO.

낮에는 리아가, 밤에는 도경이 대형사고를 치는 하루. 그 하루 동안 친 대형사고 덕분에 박도경이란 이름이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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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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