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도경 너무 무모해!”
“괜찮아.”
“아...”
‘괜찮을 리가 없잖아!’
리아는 어떻게든 도경을 말려보려 했지만 이미 단호한 표정을 띠고 있는 도경을 보며 말릴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남자의 고집이라고 해야 하나? 이 이상 참견하다가는 오히려 도경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기에 리아는 그저 발을 동동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경은 뜨거운 눈빛으로 스티븐을 바라보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묻고 있었다.
“어때? 내 제안이?”
“복싱이라...”
[복싱(Boxing)]
생각지도 못한 도경의 복싱 제안. 그 제안을 들은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도경이 그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꺼내 들은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렇지만 스티븐만큼은 도경의 제안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런 제안을 하다니. 깜짝 놀랐어! 제법이야! 이거 아주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는걸?”
“그럴 거라 생각했어.”
‘너 같은 놈들은 이런 게 잘 먹히지.’
도경의 제안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지 스티븐은 손뼉을 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왔고 그 반응을 지켜본 도경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이며 스티븐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지어 보이며 턱을 살짝 들어 올려 도발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에게는 푼돈 받는 것보다 이쪽이 더 재미날 테니 말이야. 안 그래?”
도경은 이런 유형의 인물들을 많이 만나왔었다.
부족한 게 없으며 풍족하기에 항상 권태로움과 지루함에 시달리는 족속들. 그리고 그들이 정상적이고 지루한 일 처리보다 비정상적이고 재미난 일에 흥미를 보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도경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도경의 예상대로 스티븐은 비정상적인 제안을 듣고는 깊은 흥미를 내보이며 야비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
“맞아. 그깟 푼돈을 받는 것보다 네가 쥐어 터지는 모습이 더 재미나지.”
“그래? 그럼 된 거네?”
“그래. 이런 재미난 기회를 놓치면 바보지 안 그래? 에블린! 당장 계약서 작성하도록 해. 조건은 저 녀석이 말한 대로 토씨 하나 빠트리지 말고 그대로 말이야.”
이글거리는 눈빛을 도경에게 고정시킨 스티븐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자신을 옆에 있던 에블린에게 도경의 제안을 받아들일 뜻을 드러냈고 스티븐의 말에 에블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태블릿 PC를 꺼내 두 사람의 새로운 합의 내용을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문제없게 빈틈없이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타다다닥.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은 도경과 스티븐의 의견에 따라 여러 조항을 추가하며 터무니없는 제안은 구색을 갇혀가며 그럴듯한 합의 내용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조나단은 도경의 곁에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조용히 그에게 속삭였다.
“정말로 이렇게 하실 생각입니까?”
“말했잖아요. 몸으로 때운다고.”
“그래도 그렇지. 이건...!”
“걱정 말아요. 오히려 나는 이게 베스트니까...!”
“대체...”
도경의 말에 조나단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도경과 스티븐이 합의하며 판을 짜고 있는 복싱 내기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조건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티븐이 데려오는 상대로부터 총 10라운드 30분을 버티는 조건이 걸린 복싱 내기. 그것은 말이 스포츠인 복싱이지 지하에서 벌어지는 불법 격투장의 성격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꿀꺽.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짓이야...!’
도경이 자신의 주먹에 자신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상대는 스티븐 롱이다.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 세상에 그가 돈으로 어떤 상대를 데려올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대상들밖에 떠오르지 않은 조나단은 마지막으로 도경을 말려보기로 했다.
도경에게 항상 휘둘리는 나날이어서 별로 그가 탐탁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경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 또한 찝찝하기 그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경 괜한 자존심 부리지 말아요. 지금 당신은 아주 위험한 게임을 하는 거예요. 아직 사인하지 않았으니 되돌리기엔 늦지...”
“나도 그쯤은 알아요 하지만 조나단 나는 되돌릴 생각이 없어요.”
“이익...!”
‘정말 고집불통이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효율을 중시하는 조나단으로선 도경의 머릿속을 이해하려야 할 수 없었다. 진작에 정상적이지 않은 성격이라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까지 막무가내 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남자의 자존심이라고 말을 하곤 하지만 같은 남자인 조나단이 봤을 땐 도경의 행동은 그저 멍청한 행동이었다.
“젠장! 도경 고집은 버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봐요. 이런 위험천만한 내기를 해서 당신이 얻는 게 도대체 뭡니까? 당신에게는 조금 못마땅하게 들릴지 몰라도 350만 달러란 돈은 스티븐에게나 리아에겐 정말로 푼돈이나 마찬가지인 거란 말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무리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간단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가시밭길을 선택하려고 드는 도경을 향해 조나단은 갑갑함을 담아 물었다.
“참 내. 돈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만지작만지작.
“조나단.”
“?”
“내가 보여줄게요. 왜 내가 이런 짓을 하는 지...!”
갑갑함이 담겨있는 조나단의 조언 어린 말에도 자신의 귓불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도경의 그 모습에 조나단은 도경에게 실망감을 느낄 지경까지 왔지만, 도경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호언장담에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
악동 대 무대뽀.
도경과 스티븐의 말도 안 되는 매치가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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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쿵짝 쿵짝! 쿵!, 쿵!. 쿵!
스윽.
띵동~!
경쾌하지만 조금은 난잡하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가득 울리는 거대한 대저택.
그 저택의 대문 앞에 검은 세단의 자동차가 멈춰 서며 창문을 열고 대문에 있는 벨을 누르며 자신들이 오는 것을 알려왔다.
[누구십니까? 오늘 스티븐 님. 파티에 초대받으신 분이 십니까? 초대받으신 분이라면 이름과 초대장에 적힌 넘버를 불러 주십시오.]
갸웃.
“파티...? 죄송하지만 저희는 초대장 같은 걸 받은 적이 없습니다만... 제 이름은 조나단 니엘이라고 하고 제 옆에 있는 분의 이름은 박도경이라고 합니다. 혹시 스티븐 님과 에블린 님 쪽에 저희 일행에 대해서 언질을 들으신 게 없으신지요?”
[박도경, 조나단 니엘... 아!! 그분들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모두들 조나단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으니 들어오시죠.]
“모두들?”
철컥!
위이이잉!
굳게 닫혔던 대문이 열리고 넓은 대저택의 풍경이 드러났지만 조나단은 문 안을 바로 들어서지 않았다. 조금 전 문을 지키고 있던 보안요원의 내뱉은 단어 속에 무언가 미심쩍은 점을 발견한 까닭이다.
“뭐해요? 안 들어가고?”
“도경 씨.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요?”
“파티라던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다는 모두라던가 말입니다.”
조나단과 도경이 당도한 곳은 스티븐의 호화로운 대저택.
오늘 도경이 그의 저택에 찾아온 것은 3일 전에 스티븐과 맺었던 복싱 내기를 치르기 위해 온 것이었는데 저택 가득 울리는 노래도 그렇고 보안요원의 말도 그렇고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됐어요. 그냥 가죠. 뭐 제 딴에 뭘 준비한 모양인데 신경 꺼요.”
“뭐가 기다릴지 모르는데 도경 씨는 불안하지도 않습니까?”
“우리가 뭐, 마피아나 갱단한테 가요? 그냥 잘난 맛에 사는 돈 많은 철부지한테 가는 거잖아요. 그냥 30분 지나면 다 끝나는 거 뭘 그리... 아! 설마 조나단 지금 겁먹은 거예요?”
“거, 겁먹기는요. 아무래도 제가 도경 씨를 향해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한 듯하군요. 그쪽이야말로 겁먹고 후회나 하지 마시죠.”
“후후후. 그럴 리가요. 그나저나 정말로 겁먹은 거 아니죠?”
“아닙니다!”
‘젠장! 내가 여기에 왜 와있는 거야?’
콩닥콩닥!
도경의 물음에 조나단은 애써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저으며 강한 부정을 표시했지만, 사실은 도경의 말대로 자신이 조금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악동이라 불리는 스티븐이 가장 많이 사고를 친 것이 바로 폭행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주변인들을 시켜서 자기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 영악함을 보이는 스티븐의 악랄함은 정평이 나 있는바. 그의 저택에 몸을 들이는 조나단으로선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피식.
“에이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 여기 든든한 경호원을 제가 몸소 데려왔잖아요.”
“한 명으로 퍽이나 도움 되겠습니다.”
가뜩이나 무엇을 저지를지 모르는 스티븐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에 신경이 곤두세우고 있던 조나단은 도경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짜증 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뒷좌석에 아무런 말도 없이 눈을 감고 앉아있는 동양인 경호원에게 눈길을 주었다.
“게다가 저 체격으로 경호원을 한다고요? 그쪽 경호원들은 다들 저자처럼 왜소합니까? 그렇다면 정말 수준이 의심되는군요.”
꿈틀.
“하하하. 조나단...!”
명백히 무시하는 어투로 쏘아붙이는 냉소적인 말. 그것을 들은 도경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조나단의 입을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의 뒤쪽에서 느껴지는 압력의 주인이 기분이 저조한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오래 살고 싶다면 그쯤 해두는 게 좋을걸요?”
“네?”
“제가 데려온 이 사람.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서 말이에요. 그 이상 말하다간 저는 조나단을 책임질 수 없을 거 같네요.”
오싹!
“무, 무슨 그런 농담을...!”
‘히익!’
도경의 농인지 진심인지 모르는 말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오싹하는 감각을 맛본 조나단은 도경의 뒤에 자리 잡고 있던 동양인 경호원에게 눈길을 주었는데 조금 전에 분명 눈을 감고 있던 경호원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나단은 너무 놀라고 말았다.
슥.
꾸벅.
“......”
그 동양인의 기이한 압력에 조나단은 그의 시선을 피해 말없이 운전에 집중하며 전방만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무슨 경호원 포스가 저래?’
뒤늦게 도경이 데려온 경호원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감각을 맛본 조나단은 갑자기 자신의 심장이 좀 전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아까 전 경호원과 눈을 마주친 이후부터 묘하게 진정이 되질 않는 것이다.
콩닥콩닥!
‘불안해...! 왜 이렇게 저 두 사람이 불안하지?’
아까는 스티븐의 저택에서 들어가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면 이번에는 자신들 쪽에서 불안감을 감지하는 조나단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도경의 대리변호인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화물을 운송하는 운전기사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화물의 정체는 무언가 꽝하고 터질 것 같던 폭탄일 것 같은 예감에 조나단의 심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쿵쾅거린다.
꾸욱!
부우웅.
왠지 오늘 하루는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에 조나단은 페달을 밟은 발에 힘을 실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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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질러!]
“와아아아!”
쿵쾅쿵쾅!
사람들은 자극을 원한다.
그 자극의 정도가 얼마나 다른가의 차이일 뿐. 누구나 새로운 자극을 원하고 평소 할 수 없던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나 모든 것을 쉽게 이루고 엔간한 것들을 다 겪어본 사람들일수록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는데 이곳에서 DJ가 틀어놓는 음악 소리에 맞춰 소리 지르는 셀럽이란 존재들이 그러한 이들이었다.
“다들 신이 났네...”
“하하! 신이 나지 않겠어? 로이드, 네 복싱경기를 눈앞에서 바로 볼 수 있으니 말이야.”
“카터. 경기라 하지 마요. 쪽팔리니까...!”
“하하하! 그래 이벤트지. 이벤트! 그것도 날로 500만 달러를 먹을 수 있는 짭짤한 이벤트 말이야! 역시 친구는 잘 사귀고 봐야 한다니까. 안 그러냐 로이드?”
카터라고 불리는 털북숭이 사내는 목젖이 다 보이게끔 웃어 재끼며 로이드라 불렀던 자신의 선수를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언제봐도 완벽한 녀석이야!’
[로이드 와일더(26)]
23전 23승 23KO 현 슈퍼 웰터급 세계랭킹 2위의 무패의 유망주인 로이드 와일더.
챔피언에게 도전만을 앞두고 있는 새로운 신성은 복서로서의 괴물 같은 재능뿐만이 아니라 셀럽들과 친분을 나누며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남다른 비즈니스 수완을 보여왔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잭팟이 터지었다.
“500만 달러야. 500만 달러! 흐흐흐...!”
무려 500만 달러의 시합. 그것도 공짜나 다름없는 이벤트 매치를 홀로 따내는 자신의 선수의 카터는 열렬히 찬사를 보내었다.
‘물론 이 녀석을 상대해야 하는 쪽은 안타깝기 그지없겠지만 말이야...’
그와 동시에 카터는 자신의 선수를 상대해야 하는 일반인을 향해 애도를 빌었다.
10라운드 동안 세계랭커에게 두드려 맞아야 하는 일반인이라니. 과연 오늘 사지 멀쩡히 이 저택 밖을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크크크! 정말 불쌍하구나.”
애도를 빌면서도 500만 달러가 가져다주는 환희에 카터는 웃음 지으며 자신들에게 황금을 안겨다 줄 제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