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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26화 (226/357)

226화

퍼억!

“끄어어억~.”

툭!

자신의 배를 움켜쥐며 뒷걸음질 치는 스티븐을 바라본 도경은 그의 가슴팍을 툭 하고 밀치며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몰아넣었다.

“으으으?”

‘서, 설마?’

배를 통해 전해지는 고통에 뒤늦게 자신이 코너에 몰린 것을 깨달은 스티븐은 사색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퍼억!

“끅!”

“어딜 도망가?”

“으아아...!”

스윽.

“이제부터 시작인데 말이야...!”

서늘.

취기와 공포가 한데 섞여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넋이 나간 스티븐을 향해 도경이 새빨간 글러브를 들어 보이며 웃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피 칠갑한 식칼을 들어 올린 도살자(Butcher)와 비슷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도살자에게 도축 당할 무기력한 가축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스티븐의 눈가엔 오로지 짙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르르르.

구석에 몰린 쥐새끼처럼 비루하게 떨고 있는 스티븐을 보면서 도경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있어.”

씨익.

악동 스티븐.

사실 도경으로서는 손을 봐줄까 말까 고민을 했던 주제였다. 링 위에까지 올라가면서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지만 현재 자신의 앞에서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스티븐의 얼굴을 본 순간 쓸데없는 고민이란 생각을 하였다.

퍼어억!

“커억!”

파팡! 퍽퍽퍽!

글러브 가죽을 넘어서 전해져 오는 손에 착착 감기는 감촉은 그 무엇보다 황홀했기 때문이다.

“이 맛에 이 짓을 못 관둔다니까.”

씨익.

세상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라 굳게 믿는 녀석들. 그것을 넘어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들에게 민폐를 저지르는 인종들. 그들을 향해 본때를 보여줄 때면 정말로 표현하기 힘든 환희를 맛볼 수 있었다. 쓸데없이 판을 벌이고 세계랭커 복서의 주먹을 자처해 맞아가며 맞을 만큼 말이다.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닌 뒤끝과 집착이 아닐 수 없었지만, 도경은 상관하지 않았다.

빠아악!

“크아아악!”

지금 주먹에서 느껴지는 감촉과 그것을 통해 터져 나오는 비명성이 모든 것을 보상해 주는 까닭이었다. 스티븐의 고통에 가득 찬 비명성을 들은 도경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퍽퍽퍽퍽퍽!

아무리 맛봐도 질리지 않는 통쾌함에 도경은 스티븐을 향해 내뻗는 주먹을 더욱더 가속 시키기 시작했다.

지금 느끼는 통쾌함과 환희는 오래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감정 충실하게 느끼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당하는 상대로서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웃으면서 자신을 두드려 패는 도경이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 살려줘~!!!’

덜덜덜.

코너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도경에게 맞으며 간신히 숨만 쉬는 스티븐.

그는 누군가 이 상황을 말려주길 간절히 빌었다.

---

퍼퍼퍼퍽!

광란과 환희로 가득 찼던 파티는 어느새 무거운 정적 속에 피 튀기는 처형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미, 미친...! 저러다가 일 나는 거 아니야?”

“어, 어떡하지?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 그러게... 그런데 누가 말려?”

“그건...”

뜨거웠던 열기는 단박에 식다 못해 이미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멍하니 관망하고 있던 몇몇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링 안에서 맞고 있는 스티븐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티를 주최한 주인이 이벤트 매치에 두들겨 맞고 있다니 그야말로 전도 미문의 일이었다.

“젠장! 뭣들 해? 빨리 올라가서 말려!”

“저... 그게...!”

머뭇.

“응!? 뭐야? 너희들 왜 그래?”

지금 사태에 가장 경악하는 이는 스티븐의 보안을 책임지는 경호원들이었는데 보안팀의 총 책임을 맡고있는 말콤이라 불리는 민머리 거구의 흑인 팀장은 소동에 대한 연락을 받고 서둘러 일이 벌어지는 장소에 도착하여 스티븐이 두들겨 맞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머뭇거리며 제대로 움직이지 않자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쪽으로 가는 거라면 안된다.”

“뭐? 너가 뭔데 되고 안 된다고 말하는 거야?”

“저쪽 일일 경호원.”

도경을 가리키며 스티븐을 지키는 경호원들의 앞을 막은 동양인 등장. 그는 도경의 호출 때문에 바쁜 와중에 뉴욕으로 온 김강인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비켜! 죽고 싶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스윽.

“비키라고! 별 같잖은 새끼가...!”

김강인의 등장에 말콤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며 한번 손봐줄까 하다가 링 위에서 얻어터지고 있는 스티븐의 다급한 상황에 짜증 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지나치려 했다. 우선순위가 건방진 동양인을 손봐주는 것보다 일단은 스티븐을 저 상황에서 구하는 게 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투욱

“똑같은 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안된다고 했다.”

“이 새끼가!? 너 정말 뒈지고 싶어?”

또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경호원의 앞을 가로막은 김강인. 그의 행동에 말콤의 분노는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펄럭!

“계약 5조 3항. 기권을 표하지 않을 시. 링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외부인은 절대로 개입하지 않으며 위 계약을 어길 시. 계약을 어긴 쪽이 책임을 지며 합의금과 추가 별도의 위약금을 물어낸다. 10라운드 끝나기까지 2분가량 남았는데 계약을 어길 생각인가? 아깝다고 생각이 든다만?”

“뭐라고?”

힐끔.

‘그래서였나?’

무미건조한 어조로 하얀 종이를 내밀며 거기에 적힌 내용을 읊는 사내의 말에 말콤은 지금 부하들이 왜 가만히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을 왜 기다렸는지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부하를 바라보았다.

“이 병신 새끼들...! 이거 때문에 바로 안 움직이고 나를 부른 거였어?”

“대, 대장. 그래도 아시잖아요. 스티븐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잘못하다 독박이라도 쓰면...”

“그걸 말이라고 해?”

덕섭.

“너희들은 경호원으로서 자존심도 없어?”

부욱! 찌지지직!

동양인 사내에게 들려있는 종이를 빼앗은 말콤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계약서를 단박에 찢어버리며 모두에게 호통치며 그들에게 스티븐을 구할 것을 명령했다.

“책임은 내가 지도록 할 테니까 어서 올라가!”

“네, 넵!”

“멍청한 새끼들...! 어울리지 않게 머리나 굴리고 앉아있고 응?”

저벅저벅.

‘저놈 지금 뭐 하는 거지?’

예전에 두려울 게 없었던 자신의 동료들이 잔머리가 굵어졌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말콤은 아까 자신의 앞을 막던 동양인 경호원이 자신들의 부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무표정한 얼굴 위로 눈빛을 반짝이는 동양인 경호원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말콤의 예감은 불행히도 틀리지 않았다.

툭!

휘이이익!

파바밧!

푸욱!

“크아악!”

우당탕탕!

김강인 소매에서 은빛의 무언가 튀어나오더니 자기 부하의 종아리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의 몸에 박힌 은색의 물체는 놀랍게도 파티에서 사용되는 은식기 나이프. 그 나이프에 덩치 큰 경호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꺄아악!”

“내가 말했잖아. 안된다고 말이야.”

링 위로 향해 달려가는 5명의 경호원이 일순 바닥을 구르며 피를 흘리기 시작했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경호원을 발견한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김강인은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며 밑에 쓰러져 있는 경호원의 발에 박혀있는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뽁!

“계약은 지키라고 있는 거다.”

“크으으!”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골치 아파지는군.’

냉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강인의 밑에서 고통에 부르르 떠는 자신들의 부하를 보며 말콤의 얼굴은 어느새 흉신악살처럼 구기고 말았다.

난데없는 소동과 유혈사태에 파티장을 벗어나는 셀럽들과 링 위에서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고 있는 자신의 호위대상을 바라보며 이번 사태가 악화 일로를 걸어 자신의 선에서 수습이 어려워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1분 45초 남았군.”

“너희들 이젠 이곳을 멀쩡히 벗어나갈 생각은 아예 말아라. 못해도 반 죽여 놓는다.”

으득.

태연하게 시간을 체크하고 있는 김강인을 보면서 말콤은 헛웃음 치며 품속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입력하여 문자를 어디론가 보내기 시작했다.

이 저택에 있는 경호원들을 모두를 소집하는 신호. 그것을 바라본 김강인은 뽑아 들인 나이프의 피를 닦아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군.”

---

“.....”

휘이이익!

엔간한 사람들은 파티장을 벗어난 가운데 셀럽의 몇몇은 호기심에 먼 구석에서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의 선택은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도경과 김강인 두 사람이 다수의 경호원을 상대로 날아다니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아악!”

서거걱! 푹!

퍽퍽퍽!

우당탕탕!

붉은색 글러브로 경호원을 쓰러트리는 도경과 스테이크 썰라고 둔 은식기 나이프로 경호원을 베어내는 김강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액션 영화 저리가라였다.

스턴건을 들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호원들의 모습에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경악한 얼굴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이런 미친...!”

“카터 이젠 내 말을 믿어요? 내가 보통 놈들이 아니라고 했죠?”

“그도 그렇지만 정도라는 게 있지 도대체 저 미친 자식들 정체가 뭐야?”

“모르죠. 나야말로 알고 싶네요...”

‘이 내가 놀아났어.’

도경과 경기를 벌였던 로이드는 카터의 말에 쓴 웃음을 지으며 도경과의 경기의 순간을 떠올렸다. 도경에게 바디 샷을 먹인 이후. 분명 자신에게 승기가 왔다고 생각했던 로이드였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클린치로 끌어안으며 자신의 귀에 속삭였던 도경을 차가운 목소리를 떠올리며 로이드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9라운드 끝내고 알아서 나가. 안 그럼 후회한다.)

오싹.

‘모든 게 연기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다 죽어간 줄 알았던 상대가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의 귓가에다 목소리를 속삭이는 그 순간. 로이드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는 게 이런 것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코너로 돌아가 자리에 앉으며 로이드만 알아차릴 수 있게 웃음 지으며 자신의 다리를 툭 치며 멀쩡함을 과시하는 신호를 보내오는 도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악마나 다름없었다.

와장창.

자신을 내다보며 서늘한 웃음을 짓는 도경의 그 모습에 로이드의 정신은 급격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저 불가사의한 상대로 경기에 승리한다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1분간의 휴식시간. 그 짧은 시간 로이드는 500만 달러의 경기를 포기하기로 결심을 내렸고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지금 이 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

파지지직!

“끄으으으”

부르르!

쿠당.

2m가량의 거구가 스턴 건에 맞아 경련하며 바닥에 쓰러지고 그를 밟고 다시 사각 링에 올라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 도경의 모습은 야수 그 자체였다.

큰 사고를 쳤으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은 도경은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멀리 떨어져 자신을 떨리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한 흑인 여성을 눈에 담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에블린 씨.”

“아...!”

“합의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서늘.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거친 맹수의 눈빛. 그 눈빛에 에블린은 말을 잊지 못했고 그저 도경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끄으으으...!”

힐끔.

털썩!

“끅!”

“이야. 정말로 보람찬 하루였어...!”

자신의 밑에서 신음성을 흘리고 있는 스티븐 위에 털썩 앉아 기지개를 피는 도경. 정말로 상쾌한 표정을 짓는 도경의 그 모습에 모두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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