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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27화 (227/357)

227화

[스티븐 롱. 월드투어 전 일정 돌연 취소!]

[전속공연계약 미이행분 위약금 액수만...!]

[스티븐 롱 우울증? 집 밖으로 나서지 않는 악동...]

[또다시 사고를 쳤나? 각종 루머 난무해.]

[너무나 조용한 스티븐 롱. 그의 이색적인 행보.]

얼마 남기지 않고 월드투어를 모두를 전격 취소를 발표한 스티븐 롱. 공연기획자들에게 위약금도 순순히 내미는 그의 태도에 연예계 기자들은 각종 억측을 내밀고 있었지만, 집안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않는 스티븐 롱의 기이한 행동에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우물우물.

“훗. 모든 것은 계획대로...!”

‘그 얼굴로는 반년은 요양해야 할걸?’

아침 식사시간. 식탁에서 우유에 적신 시리얼을 오물거리면서 스티븐의 기사에 대해 남몰래 고소 짓고 있던 도경은 마지막에 본 스티븐의 얼굴을 떠올리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후후후.”

“뭐가 그리 좋아 웃냐? 웬수야. 촬영 쉬니까 그리 좋디?”

“에이 뭘? 어차피 하루잖아.”

“에휴...!”

“아...! 형 화 풀라니까?”

평소와 허허 웃기만 했던 최정훈은 도경의 앞에 앉아 저조한 기분을 팍팍 티 내고 있었는데 웬일로 도경이 그의 눈치를 보며 쓴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최정훈이 느끼고 있을 서운함과 깜짝 놀랐을 심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도경은 평소대로 그에게 장난을 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가서 말이야. 진짜 어떻게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스티븐 저택에 들어갈 생각을 하냐? 거기가 어디라고? 큰일 날뻔하면 어쩔 뻔했어?”

“에이. 우리 감독님 걱정 안 끼치려고 한 거지.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조나단 씨랑 같이 갔다니까?”

“말이나 못 하면...”

‘배우라는 녀석이 얼굴에 상처나 달고 오고 말이야...’

실실거리면서 웃고 있는 도경을 보면서 최정훈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도 아직도 미묘하게 부어있는 얼굴과 찢어진 입술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사실 최정훈은 도경에게 감정이 상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동생인 도경이 스티븐 저택에서 수난을 당했다는 생각에 속상한 것이었다.

최정훈이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는 도경이 당한 수난들은 사실과 전혀 다른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최정훈으로서는 집 밖에 나간 동생이 누군가에게 맞고 들어온 것 같아서 기분이 한없이 저조할 뿐이었다.

“진짜 그날 무슨 일 있었는지 말 안 해 줄 거야?”

“어. 말했잖아 그날의 일은 비밀로 하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말이야.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모두 다 좋게 끝났다는 거야.”

“그 꼴을 보면 누가 좋게 끝났다고 믿겠냐? 정말로 좋게 끝난 거 맞아?”

“그럼~. 내가 누구야? 딱 몇 번 패기 한번 부려주니까 다들 무릎 꿇고 비는데 이 가슴 넓은 내가 모두 용서해 줬지...!”

“어휴... 어련하시겠어요?”

“하하하하.”

‘그래도 표정을 보니까 정말로 좋게 마무리 지었나 보네. 그래도...!’

도경의 허풍에 최정훈은 두손 두발 들 수밖에 없었다. 그날 도경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도경의 언행을 봐서 절대 알려줄 생각이 없는 듯싶었다.

사실 도경도 그렇고 리아와 조나단 까지 모두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추었기 때문에 최정훈으로서는 서운한 한편 힘이 없다는 것은 이래서 서럽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스티븐 너는 내가 용서 못 한다...! 나중에 시간 나면 엽기 동영상 제대로 뽑아서 조리 돌림 해주마...!’

스티븐을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를 떠올리는 이를 가는 최정훈.

소심해 보이는 복수에 내심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먼 미래에 자신이 신곡을 낼 때마다 족족 뮤비에다가 고퀄러티의 엽기 영상을 만드는 [ㅗStephenㅗ]란 아이디의 유저는 스티븐에게 크나큰 스트레스를 안겨다 주는 단짝이 된다.

“그나저나 조나단씨는 그런 말을 왜 하셨을까...?”

중얼.

(자세한 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만...)

엊그제 도경과 함께 리아의 저택에 온 조나단.

도경의 상태를 보고 기겁한 최정훈은 당연히 조나단에게 도경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지만, 조나단은 묵묵부답을 유지할 뿐 제대로 된 대답을 회피하며 딱 한 마디만을 던졌다.

(저 사람을 걱정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은 없다고 말씀드리죠. 그도 그럴 게 그는 정말 제정신인 사람이 아니니까요.)

농담 하나 없이 진심으로 내뱉는 그 말에 최정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한 편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그렇고 제정신이 아니라니. 조나단 씨도 보면 말이 좀 심하다니까. 점점 뉴욕커들이 맘에 안 들어...!”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최정훈이 딱 그 짝이 이었는데 오늘따라 유독 여럿을 억울하게 만드는 최정훈이었다.

“형 그나저나 오늘 촬영 일정이 어떻게 돼요? ”

“아... 그게!”

타지에 올라온 두 남자.

시끌벅적한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 둘은 자신들이 이곳에 왜 올라왔는지 잊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작품에 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누는 도경과 최정훈 두 사람은 어느새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

“다행히 모두들 조용하네요.”

툭툭.

도경이 아침에 스티븐의 기사를 확인했듯이 리아 또한 자신의 방안에서 그의 기사들과 혹시나 도경이 관련된 기사가 있나 살피었고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스티븐의 체면과 외부에 이일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계약서에 서명한 덕이 크겠지요. 더군다나 에블린 씨가 추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연락해 추가로 약조를 받았다고 합니다.”

“정말요? 그 자리에 있던 숫자도 그렇고 셀럽들 성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용케도 약조를 다 받았네요.”

“뭐, 파티를 즐길 셀럽들도 떳떳하지는 못했을 테니까요. 아마도 이 일이 새어나가면 명단을 뿌린다고 얘기했을 겁니다.”

“하긴. 이 일이 알려지면 욕먹을 건 질 나쁜 파티를 주최한 스티븐과 그것을 즐겼던 셀럽들이니까요.”

조나단의 말에 리아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사정을 이해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에 벌어진 파티는 쉽게 용납될 성격이 아니었다.

이번 일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여론에 큰 비판과 뭇매를 맞이할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설마 로이드 와일더를 부를 줄이야. 정말로 졸렬하기 짝이 없는 일이예요.”

복싱에 관심이 없는 리아도 복싱계에서 셀럽으로 무섭게 부흥하는 로이드 와일더의 존재는 잘 알고 있었다. 조나단에게 도경의 상대로 로이드 와일더가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경악했는가. 그 자리에서 스티븐을 향해 온갖 거친 욕설을 내뱉었던 리아였다.

“나는 믿을 수 없군. 도경이 로이드를 상대로 10라운드를 버텼다고?”

“삼촌! 뭐예요? 도경을 무시하는 거예요?”

“아, 아니 그냥 너무 믿기 힘들어서 말이다. 세계 랭커의 주먹을 일반인이 10라운드를 버티다니. 그걸 누가 믿겠니? 그와 경기했던 선수들도 초반에 맥없이 KO 당하는데 그 야리야리한 도경이 버티다니 솔직히 나는 믿을 수 없구나”

리아의 도끼 눈에 니엘은 움찔거리며 그녀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였다.

사실 조나단과 더불어 복싱을 좋아하는 니엘은 로이드 와일더의 팬이었는데 도경이 그를 상대로 10라운드를 버텼다는 말은 그에게 있어 절로 코웃음이 나올 만큼 어처구니없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익! 삼촌이 봤어요? 도경이 몸이 얼마나 탄탄한지 모르죠?”

“허,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리아 네가 여자라 몰라서 그러는데 관상용 몸하고 격투기 선수 몸이 엄연히...”

“조나단 뭐라고 말좀 해봐요. 직접 경기를 봤잖아요.”

“그래. 조나단 말 좀 해봐. 아마도 로이드 쪽에서 핸디캡 같은 걸 지녔거나 봐준 거지?”

“.....”

향후의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갑자기 초등학생이 벌일 말다툼을 하는 두 남녀를 보면서 조나단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비밀서약을 해서 말입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크흠...”

조나단의 말에 두 사람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두 사람이 조나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도경이 스티븐을 상대로 내기에 승리하고 모든 일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도경이 어떤 일을 벌였고 어떤 스토리를 썼는지는 그 둘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나단 조금만 알려주면 안 돼요? 너무 궁금하단 말이에요.”

“안됩니다. 로이드가 출전한 것만 알려준 것도 많이 알려 드린 겁니다.”

“칫. 쩨쩨하게.”

“거 참. 도대체 어땠기에 비밀서약까지...! 정말 궁금해 죽겠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따라갈 걸 그랬어.”

“하하...”

‘봐도 믿기지 않았을 겁니다...!’

애처럼 칭얼거리는 리아와 니엘의 투덜거림을 듣는 조나단은 절로 나오는 쓴 미소에 속으로 혀를 내두르는 동시에 도경이 벌였던 일을 떠올리며 홀로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도경은 로이드에게 1라운드 5초에 다운을 빼앗고 그 후에도 그와 대등함을 넘어서 압도하는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스티븐을 낚아서 3분간 죽일 듯이 두드려 패고 그것도 모자라 저택에 있는 경호원들을 다 쓰러트렸다.’

피식.

‘이걸 누가 믿겠어...!’

자신이 정리해놓고도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스토리였다.

지금도 그 상황을 떠올리며 자신이 꿈을 꾼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일에 조나단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어찌 보면... 비밀서약을 한 게 다행일지도.”

비밀서약이 아니었다면 이야기하다 미친놈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에 조나단은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떠올린 생각에 다시 한번 느끼는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

“레디 액션!”

딱!

어제 말고는 하루도 쉬지 않았던 최정훈의 독립영화 [Again] 촬영이 재계 되었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슬라이트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주변의 소음은 순식간에 멎어 들었고 이번 신의 연기할 [Again] 배우들은 감정선을 잡기 시작했다.

[.....]

도경과 함께 작업하며 열의를 불태우는 조연들과 도경의 뛰어난 능력에 [Again]의 팀의 분위기나 기세나 집중력들은 이미 물오를 데로 오르고 있었지만, 이번 신을 대하는 배우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집중력을 발휘하며 촬영에 임하였다.

현재 영화촬영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넘어가는 기점. 이곳에서 [Again]의 첫 갈등이 시작되며 캐릭터들의 감정이 심화하며 희망차고 달달하기만 했던 영화 분위기에 씁쓸한 포인트를 넣는 중요한 신이었기 때문이다.

[카일. 농담이지? 지금 지미가 한 말은 사실이 아닌 거지?]

[...]

여주인공 [카일리]의 친구 [폴]. 항상 괴짜 짓을 일삼으며 우스꽝스러운 감초 역을 맡아왔던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주인공 [카일]을 추궁하고 있었다.

주인공 [카일]이 자신들을 속이고 대립하고 있던 [지미]의 거래를 받아들인 것이 모두에게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진짜냐...]

벌떡.

촤아아악!

영화 배역에서 항상 강한 모습과 터프한 모습을 보여줬던 [카일].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폴]을 연기하던 앨런의 눈빛에는 짙은 혐오감이 서리기 시작하고 도경이 연기하는 [카일]을 향해 맥주를 쏟아붓는 갑작스러운 앨런의 행동에 무거운 정적은 어느새 싸늘하다 못해 숨이 막히기까지 했다.

뚝뚝.

[양아치 같은 새끼...!]

[포, 폴 기다려. 일단 이야기를...!]

우르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도경을 노려본 후 자리에서 벗어나는 [폴]. 그리고 그런 [폴]을 붙잡으러 따라나서는 사내와 [카일]에게 실망과 분노를 표하며 폴을 뒤따라 나서는 밴드 동료들.

전형적인 밴드의 위기 속에 아무런 표정이 변화가 없는 두 남녀가 침묵을 유지한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

[.....]

[.....]

[Again]의 주인공 [카일리]와 [카일].

두 남녀는 말없이 한 동안을 응시하며 서로를 향한 감정을 고조시키기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최정훈은 카메라를 천천히 가까이 가져다 대며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캐치해 나갔다.

꿀꺽.

미묘한 감정을 끌어내며 뜸을 들이는 중요한 순간. 화면 밖으로 벗어난 배우들은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며 말없이 숨을 죽였다.

[실망],[분노],[자조].[미안함] 여러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속으로 삭이는 두 남녀의 미묘한 분위는 정말로 실제 상황 같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어?]

[왜...?]

번뜩.

[왜... 그랬냐고?]

첫 스타트를 끊는 대사가 리아의 입에 힘겹게 튀어나왔고 그것을 이어받는 도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눌러왔던 감정을 눈빛으로 서서히 내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바라본 배우진과 제작진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도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순간 도경이 내보이는 눈빛과 짙은 자조가 서려 있는 그 미소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자신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컷!”

“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도경의 연기는 끝나 있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배우들은 그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은 상황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연기에 이끌려가다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Again]의 영화촬영은 끝을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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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 갑니다!”

와아아아~!

“.....”

수백, 수천 명이 환호하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는 무대 위. 그 무대 위로 도경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뚜벅뚜벅.

제작일 총 34일.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던 독립영화 [Again]의 마무리는 상상도 못 한 화려한 피날레 속에 끝을 맞이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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