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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28화 (228/357)

228화

둥두두둥. 둥두두둥.

띠리링.

어둠 속 푸른 조명 아래 잔잔한 음악 소리가 콘서트홀에 울리기 시작했고 도경이 스탠드 마이크에 손을 올렸다.

유일하게 밝은 무대 위 한가운데 서 있는 도경을 보며 지금 이 상황을 카메라로 담고 있는 최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도경은 무대 위에 서 있는 게 제일 멋있어.”

“그러게요. 남의 무대에서 저렇게”

“하하하. 쟤는 그런 거 신경 안 쓸걸?”

“후후 그렇겠죠? 정말로 도경은 대단해요. 또 한 번 반했어요.”

“하하하...”

‘도경이 큰일 났네. 리아 아직 포기 안 한 듯 싶은데...!’

리아의 말에 최정훈은 난감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려 모두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도경을

“정말로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중얼.

34일. 한 달 남짓 짧다면 짧은 날이다.

그 34일이 훌쩍 지나가고 마지막 촬영을 앞둔 최정훈은 자신이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정말로 그 짧은 시간 자신이 영화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믿기지 않은 일들이야...!’

첫 영화가 해외에서 찍는 영화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리아 그라테란 스타가 갑자기 자신 영화의 주연을 꿰차고 저예산 독립 영화인데 모두의 주목을 받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도경이 만든 영화 속의 음악이 하나하나 풀릴 때마다 영화가 언제 다 만들어지고 개봉하느냐는 댓글이 셀 수 없이 달렸고 그 반응을 본 이름 모를 투자가들은 최정훈에게 투자한다는 의사를 비쳐오기까지 했다.

[Again] 자체가 어차피 자신들의 자본으로 만들 생각이었기에 그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한 최정훈이었지만 자신의 작품이 가치를 띄고 인정받고 있다는 것에 그는 큰 기쁨을 누렸는데 이런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나는 중심에는 모두 도경이 있다는 것을 최정훈은 잘 알고 있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녀석.”

피식.

은하수 카페서부터 그의 행보를 봐오고 그와 친한 관계지만 정말로 도경은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실감이 가지 않는 생물체랄까? 그 생물체에 기이한 행동에 한눈을 팔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다 보면 어느새 도경이란 생물체는 무언가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그것이 항상 신기했었는데 이번에 도경과 [Again]을 촬영하면서 같이 일해보면서 최정훈은 도경의 그런 불가사의함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충실하게 살 수 있을까?”

[충실함]

겉으로는 재능으로 모든 것을 때우는 도경으로 보였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정훈은 알았다. 34일간 같이 일하며 옆에서 도경을 본 최정훈은 도경이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도경은 무엇을 할지 정하면 그것에 충실하게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은 단순히 미리 무엇을 할지 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1분 1초 실시간으로 무언가 떠올리면 그것을 즉각 행동에 옮기는 종류의 것의 충실함이었다.

쉬고 싶을 땐 쉬고, 일할 땐 일 하고, 사고 치고 싶을 땐 사고를 친다. 그것이 뭐가 대단하냐 할 수 있었지만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정말로 대단한 거였다.

행동에 옮기는 그 과정에 고민이나 망설임 같은 일체의 낭비가 없어야만 그것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On/OFF 스위치가 달린 것도 아닌데 말이야.”

매사에 기복 없이 온전하게 집중하는 충실함.

그 충실함에 도경을 바라본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끌려들어 가고 어느새 그를 믿고 따른다.

그것이 최정훈이 발견한 도경의 대단함이었다.

바글바글

“진짜 노래 들려달라고 할 때는 숨기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네”

“노래 진짜 잘한다.”

“쉬쉬! 시끄러워. 감독님 촬영 중이시잖아.”

“맞아 이거 촬영이었지...!”

“내가 장담하는데 우리 영화 대박 날 거야!”

“조쉬! 조용!”

“.....미안”

하하하!

처음에 동양이라고 무시하며 적의를 보여왔던 [Again]의 배우들. 하지만 어느새 그들은 촬영이 다 끝났음에도 도경이란 인물을 보기 위해 시간을 낼 정도로 그의 팬이 되어 있었고 친구가 되어 있었다.

자주 보지 않아도, 서로에 잘 알고 있지 않아도 충실하게 시간을 공유한 결과 그들은 어느새 동료라는 한 울타리에 모여있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니까.”

절레절레.

씨익.

좁은 곳에서 뒤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자신과 모니터링을 하는 동료들의 인기척을 느끼며 최종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띠며 무전기를 들어 올려 다양한 지시를 내리며 촬영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

Again - [Again OST]

[Sorry~.

내가 실수를 했어.]

“와아...!”

도경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영화의 한 장면을 얻기 위해 열었던 공연. 스티븐과 내기로 벌었던 돈과 남은 제작비를 이용해 콘서트장을 대여했고 리아의 팬덤을 이용해 관객을 얻었다.

사실 콘서트 아닌 콘서트였지만 도경은 최정훈이 깨달은 것처럼 모든 것에 충실하였다. 촬영 전에 리아의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이 그렇게 듣고 싶어서 하던 리아와의 듀엣을 시작으로 그녀와 함께 실제로 1시간 가까이 공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도경은 그렇게 했다. 그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었고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촬영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잠 오지 않는 밤 달빛에 빌었어.

나의 멍청한 행동을 없애 달라 빌었어.

내 말을 듣더니 모습을 감춰 버리더라. Shit!]

피식.

영화 Again의 마지막 OST.

[Again].

낯선 노래에도 사람들은 도경의 노래에 확실한 반응을 보여왔다. 리아와 노래를 불렀던 도경의 목소리와 노랫소리에 이미 그들의 귀는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1시간을 공들인 시간.

그것은 절대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리아만을 보기 위해 온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경에게 익숙해지는 것을 나아가 그에게 푹 빠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자, 다시 미안하다고 얘기할게.

Sorry. 내가 실수했어.

멍청한 짓을 저질렀지 안 그래?

사과할게. Sorry Sorry Sorry Sorry.]

편안하게 들리는 컨트리와 록 사운드 절묘한 만남. 그와 함께 익살스러운 도경의 노랫소리가 사람들의 귓가를 간질거리게 만들었다.

[미안해! 그리고 용서해.

아니, 용서도 필요 없어.

그저 나에게 기회를 내줘!]

툭 내뱉으며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도경의 목소리가 사람들을 휘감았고 그들의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천천히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Again!

네가 좋아하는 단어잖아.

듣고 있어?

나와서 대답 좀 해줘.

늦은 거 아니지?

Shit. 제발! 늦지 않았길 바래.

뭐라 말 좀 해줘.

이게 끝인 거야?

다시 시작해!

이런 끝은 너도 바라지 않잖아.]

자신의 잘못했음에도 뻔뻔하게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노래 멜로디 위에 덤덤히 툭툭 내뱉는 도경의 노랫소리. 그야말로 나쁜 남자들의 다분한 모습을 보이는 노래였지만 희한하게 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봐도 빌어먹게도 사과를 잘 못 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따다다당!

쿵쿵!

투두두두!

잠시의 텀을 주지 않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밴드 악기들의 사운드 소리가 들려왔고 도경은 그 소리에 몸을 맡기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툭, 툭!

“후으읍!”

마이크를 가볍게 툭! 두드리는 도경의 손가락. 그것은 마법을 쓰기 전 지팡이를 흔들며 잠시 뜸을 들이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 잠깐의 틈에 도경의 자신 안에 모든 것을 짜내는 마법.

[다시 시작하자!]

퍼어엉!

와아아아-!

도경의 강렬한 한방과 동시에 무대 앞에 준비했던 폭죽이 터졌다. 도경의 목소리가 먼저였는지 폭죽이 먼저였는지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순간 사람들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Again! 다시 시작하자.

잊어버리는 거야.]

두근!

[사람이 실수할 수 있잖아.

Again! 다시 시작하자!]

두근!!

[욕설을 내뱉듯 외쳐도 돼.

Again! 내게 마법의 단어를 읊어줘.

다시 시작하자!]

“...!”

나쁜 남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뻔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필사적일 뿐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실수, 솔직하지 못했던 자기의 어처구니 행동에 어이없이 놓치기 싫은 것이다.

뭐라도 좋으니 한 번 더 기회를 얻고 싶은 남자의 진심.

[다시 시작하고 시작해!

수 없이 Again을 외칠 거야.

너와 함께 하는 순간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야.

OH~]

“...!”

[Again]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하며 센 척하길 좋아하는 서툰 남자.

그 남자가 눈을 질끈 감고 Again을 외쳤다. 자존심도 버리고 서툴기 그지없게 끊임없이 다시 시작하자 노랫소리로 외쳤다.

도경이 Again을 외칠 때마다 그에게 끌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을 투영하며 공감한다. 그리고 어느새 도경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와아아!”

“꺄아아아아!”

콘서트장을 메우는 크나큰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래의 클라이맥스 부분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분명 정상적인 반응은 아님은 확실했다.

다름 아닌 리아의 수천 명이 넘는 팬들이다.

그런 이들이 처음 들어보는 낯선 동양인의 노래에 하나가 되어 진심으로 함성을 내지르는 현상은 멀쩡한 것이 아니었다.

“허허허. 이거 장관이야...! 정말 대단해.”

우물우물.

모두의 열광 속.

무대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2층 관중석에서 여유롭게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는 노인이 아래에 있는 인원을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기 시작했다.

“누가 저걸 영화촬영 중의 광경이라 생각할까? 클클!”

꿀꺽꿀꺽!

“이거... 앨런 때문이 아니라도 절로 흥미가 가는군.”

할짝.

호쾌하게 햄버거 세트를 흡입하고 있는 풍성한 체구를 지닌 노인. 그는 손에 묻은 소스를 핥으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무대 위에 있는 도경을 바라보았다.

“재밌는 칼럼 거리가 되겠어...”

[Again]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대한 피날레 공연을 보며 미소를 짓는 노인.

그 노인의 이름은 진 에버트였다.

저명하기로 유명한 평론가이며 [Again]에서 감초 캐릭터 [폴]의 역할을 맡은 앨런의 할아버지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해 버렸다.

---

[미쳤다!!! ㅠ ㅠ 나도 갈걸! 아... 아..... 아.....!!!!]

[와우! 이거 도대체 뭐야?]

[뭔데뭔데!? 노래 너무 좋잖아!]

영화촬영을 가장한 콘서트. 또는 콘서트를 가장한 영화촬영이 성황리에 끝을 맞이하고 영화 [Again]은 또 다시 온라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리아 콘서트 했어? 소식 들은 게 없었는데?]

┗[콘서트가 아님. 저거 영화촬영 현장이래요.]

┗[뭐라고?]

┗[세상에. 진짜였네? 저게 영화 촬영현장이라고? 분위기가 진짜 콘서트장 같다.]

┗[여기 풀 영상 있어요. 보면 영화촬영이라고 말함.]

[영화 촬영장이라면서 노래를 3시간 채웠다고 함.]

┗[아... 왜 일찍 자서...! SNS 공지 ]

┗[ㅋㅋㅋㅋ. 저는 운 좋게 가까워서 갔는데 콘서트장 나올 때 목이 다 쉬었음. 영화촬영이긴 한데 콘서트랑 다를 바 없었음.]

┗[개꿀! 입장료 무료인데 역대 콘서트보다 죽여줬다. 나도 갔는데 진짜 리아랑 도경이라고 했나? 진짜 노래 개 잘 부름! 내 인생 콘서트!]

┗[이거 진짜임! 영화 개봉하면 꼭 보러 갈 거임. 무슨 장면인지 너무 궁금함.]

난리가 나도 제대로 났다.

영화 [Again]. 마지막 촬영장의 공연풍경은 콘서트에 온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담겨 순식간에 온라인상에 퍼졌고 뜨거운 반응을 가져왔다.

도경과 리아가 벌였던 그 날의 촬영을 가장한 공연은 작품의 감독 최정훈과 도경 그리고 리아의 합작으로 저작권 문제없이 자유롭게 풀릴 수 있는 영상인 데다가 노래까지 끝내줬기 때문이다.

[나 이제부터 저 동양인 팬할련다. 노래 완전 내 스타일임.]

┗[그러게 완전 다시 봤음. 그냥 썸남인 줄 알았는데...! 노래 개 잘불러서 놀랬음.]

┗[맞음! 듀엣에 가려져서 몰랐는데 그냥 노래 죽여주게 잘 부르는 애였음]

┗[이 사람 한국에 유명한 가수에요!]

[스티븐보다 100배 잘 부른다. 그나저나 배알 좀 꼴리겠네 스티븐. ㅋㅋㅋ]

┗[악! ㅋㅋㅋ 그러게요. 도경을 보는 리아 눈빛이 꿀 떨어지던데 배 아프겠네요. 개 쌤통!]

┗[요즘 저 동양인에게 처맞은 이후로 집에 박혀서 안 나온다고 하던데 정의구현 인정? ㅋㅋㅋ]

┗[ㅇㅇ 말 꺼낸 김에 턱 주가리 맞는 영상 보러 가야겠다.]

┗[악! zzzz 저도 좌표 좀 주셈! 요즘 다 짤림 영상 ㅠㅠ 스티븐이 차단하나 봄.]

┗[(좌표) 여기!]

┗[ㄱㅅㄱㅅ]

리아의 썸남으로 알려진 도경의 진면목이 만천하에 드러난 가운데 어느 유명 영화 관련 사이트에서 재미난 글이 하나 올라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례적! 신선하다 못해 과감하다! 영화 Again] -진 에버트

하나의 칼럼.

촬영은 끝났지만 영화 [Again]의 진정한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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