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29화 (229/357)

229화

[카페에서 만나고 유지했던 인연.

1년 만에 연기대상을 탄 이상한 가수와 평범한 무명의 감독. 그리고 팝 요정의 출연.

그야말로 이상한 조합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이 영화 범상치 않다. 90만 달러의 저예산인데도 불구하고 촬영하는 스케일과 발상은 다른 의미로 블록버스터 했기 때문이다.

현재 넷상에서 많은 화제와 반응을 끌어낸 [Again] 콘서트.

수천 명의 엑스트라 관중을 진짜로 만족하게 한 그 공연은 아직도 필자의 머릿속엔 선명하게 그려진다.

34일의 여행 끝에 완성된 영화

이상한 조합이 가져올 신선함을 필자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다린다.] - 진 에버트

“와아!”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최정훈은 기쁜 표정을 짓다 못해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감탄성을 내뱉었다. 유명한 영화 사이트와 자신이 일하고 있는 매거진에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리뷰와 기대를 드러내는 진 에버트의 평론에 몸 둘 바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 진 에버트가 기대한다고 했어...!’

생각해 보아라. 퓰리처상을 받은 저명한 영화평론가가 무명감독의 풋내나는 첫 작품에 대해 많은 기대를 나타내는 평론을 써주었다.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최정훈에게 있어 정말로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설마 그 할아버지가 진 에버트일 줄이야. 상상도 못 했어...’

[Again]의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앨런의 할아버지라며 찾아온 풍채 좋은 할아버지.

그가 설마 진 에버트일줄은 최정훈은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영화를 좋아하고 지식이 많은 할아버지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자신들이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모두 기사가 되어 나갈 줄 누가 예상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과 [Again]의 제작팀의 사진들과 진 에버트와 어깨동무한 사진은 봐도 봐도 실감이 가지 않았다.

“헤헤헤.”

“그게 그렇게 좋아요?”

“당연히 좋지!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설마 앨런의 할아버지가 진 애벗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어?”

“그럼 나한테 고마워해야겠네요.”

“응? 왜 너한테 고마워해야 해?”

“그야...”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최정훈을 향해 도경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음 지어 보였다.

“진 에버트의 손자 재수 없는 앨런을 뽑은 게 바로 이 몸이잖아요.”

“하하하! 뭐라고? 앨런이 들으면 엄청 서운해하겠다.”

“걔가 지금이야 좀 기름기 빠져서 괜찮지 처음엔 솔직히 재수 없었잖아요. 고등학생이라고 어리니까 봐줬지. 안 그랬으면 얄짤 없었을 걸요?”

“하하.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는걸.”

“그렇죠?”

‘마지막까지 서프라이즈 한 일투성이네.’

피식.

도경의 말에 최정훈은 박장대소를 터트렸고 도경은 유쾌하게 웃는 최정훈을 보면서 미소지으며 짧고 길었던 34일간의 여정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짧은 시간 너무나 많은 것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리아의 썸남으로 등극하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예상치 못한 공개 고백을 받았고 덕분에 스티븐이라는 양아치와 엮어서 세계 랭커와 주먹까지 나누는 헤프닝을 겪었다.

“차라리 이걸 영화로 만들면 대박 나지 않을까?”

중얼.

일을 저지른 본인조차도 다이나믹하다고 생각한 도경은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실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응? 무슨 말 했어?”

“아니에요. 그나저나 드디어 한국으로 가네요.”

“그러게. 왜 이리 오랜만에 가는 거 같지? 고작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말이야.”

“맞아요. 참, 한국에 도착하면 밤이겠죠? 아니 낮이려나?”

“글쎄...”

물끄러미.

‘진짜 고마운 녀석...!’

피식.

“도경아.”

“네?”

미국과 한국의 시차를 스마트폰으로 계산하던 도경을 보던 최정훈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진한 미소를 피어 올리며 도경을 도경을 불렀다.

도경을 보면서 밀려오는 벅찬 감정과 고마움에 그에게 꼭 전달해야 하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맙다.”

“네?”

“고마워. 내가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고 영화를 만든다는 내 꿈을 이뤄 주어서. 진심으로 고맙다.”

“이 형 또 오바한다... 고작 한 달이잖아요.”

“고작이 아니야. 내겐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한 달이었어. 언제든지 내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 내가 힘 닫는 데까지 꼭 도우도록 할게.”

자신의 무리한 부탁에 캐스팅 제의를 받아들여 주었고 성공 여부도 알 수 없는 영화에 투자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작품제작에 참여했다. 그뿐이랴? 평생을 살면서 해볼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최정훈에게 있어 도경은 친한 동생을 넘어서 평생을 고마워야 할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이 형도 참... ’

“뭘요...”

약간은 오글거리지만 올곧게 부딪혀오는 고맙다는 말에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도경은 자신의 콧잔등을 긁으며 시선을 돌렸다.

“재밌었잖아요! 그거면 됐죠.”

“도경아...!”

“그리고 너무 감동 받지 마세요. 저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 말이에요.”

“응?”

“그런게 있어요...”

자신의 말에 감동하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사하는 최정훈의 모습에 도경은 창밖의 풍경에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고해성사하듯 자신만이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50억 벌었다고는 죽어도 이야기 못 꺼내겠네.’

중얼.

이득이 없음에도 영화촬영을 해주었다고 여기는 최정훈의 생각과 달리 이번 여행은 도경에게 있어 그야말로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준 여행이었다.

자그마치 50억. 미화로 500만 달러를 스티븐에게서 뜯어내었기 때문이다.

경기에 난입한 경호원들을 가리키며 합의서에 적혀져 있는 조항에 적힌 계약을 어겼다며 악착같이 돈을 뜯어내던 도경의 모습을 최정훈이 보았다면 그가 지금 느끼는 감동은 분명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정훈이 형 때문에 50억 번 거 아니야?’

“한달에 50억이라니 엄청 비싼 몸값이네.”

풋.

들썩들썩.

“푸하하하!”

“도경아?”

한 달에 50억.

엄청난 출연료라 생각하면서 도경은 자신의 유쾌한 생각에 결국 웃음을 터트렸고 그 웃음에 맞춰 비행기는 도경을 싣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후우우웅!

---

[인청공항]

“박도경 씨! 여기 좀 봐주세요!”

“도경 씨! 이쪽도!”

“박도경씨...!!!!”

파바바바박!

찰칵찰칵!

“이게... 뭐래요?”

“그러게...”

한 달. 고작 한 달인데 평소에 받았던 관심과 반응이 사뭇 다른 연예부 기자들의 열광에 도경은 혀를 내둘렀다.

그저 영화 하나 그것도 독립영화 하나 촬영했을 뿐인데 기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참나. 미국물 버프가 좋긴 좋네요. 한 달인데 반응들이 뜨겁네.”

“아마도 리아와 네 기사가 핫 하긴 했잖아. 게다가 이번에 리아와 함께한 콘서트 영상도 화제가 많이 됐고 에버트 씨의 평론 기사도 있고 그러니까... 윽! 눈부시다.”

“근데 솔직히 한 거 없지 않아요? 영화 하나 촬영하나 한 건데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 하나일걸? ”

“흐음...”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에 결국 최정훈이 인상을 찌푸렸고 도경은 미국 가서 조금 화제가 되었다고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기자들의 모습에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별거 없던데 너무 야단법석이다.’

성공과 부의 상징인 미국.

사람들로부터 그 미국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경이 느껴졌다. 물론 대단한 나라기도 했다. 돈이 썩어 넘치는 곳이기도 했고 화려한 셀럽으로 가득 찬 나라기도 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동경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도경에게는 하등 중요하지 와닿지 않았다.

삐까번쩍할 뿐이지 그게 전부 다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리아와 다닐 때 시달렸던 파파라치의 존재들을 떠올리면 도경은 한국이 더욱 편하고 좋았다.

꾸르륵.

“아, 배고프다.”

“그러게 나도 그 말 들으니까 배고프네...!”

“뭐, 먹을래요? 지금 느낀 건데 고춧가루 팍팍 넣은 얼큰한 음식 엄청 땡기지 않아요?”

“맞아! 시원한 순 두부찌개 먹고 싶다.”

“저는 부대찌개요.”

“그럼 둘 다 하는 곳으로 가서 다 먹자!”

“좋아요!”

미국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는 고춧가루 팍팍 친 찌개들을 먹을 생각에 두 남자의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의식하지 않았을 땐 괜찮았는데 의식하자마자 먹고 싶었던 것들이 주체 없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제대로 회포를 풀 생각에

띠리리릭!

1 “아, 사장님이네...?”

“진용 사장님?”

“네. 뭔 일이지? 뭔가 받기 싫은 예감이...”

“야. 그러면 안 되지. 너 때문에 마음고생을 제일 많이 하신 분이잖아.”

“마음고생은 그냥 삐친 거라니까요. 게다가 요즘 전화가 부모님보다 더 온다니까요? 오죽하면 리아가 숨겨둔 애인이냐면서 의심했겠어요?”

“하하하!”

시원한 찌개를 떠올리며 빠른 발걸음으로 기자들을 지나치는 바쁜 와중.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 웬만하면 귀찮아서 안 받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도경은 그럴 수 없었다.

미국에서 스티븐을 후려치는 대형사고를 치고 도경과 리아의 [Again] 콘서트에 자신을 초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말로 삐진 기색을 내비치는 박진용 사장의 아슬한 상태를 알기에 도경은 순순히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어휴...”

툭!

“여보세요. 사장님 웬일이세요? 오늘 술 안 먹을 테니까 걱정...”

[허허. 사장님이라니 사적인 곳에서 형으로 부르기로 했잖니. 도경아.]

“...공적인 자리라서 그런 건데요?”

[하하하 그렇구나. 그래 피곤하지는 않고?]

“으...”

우둘우둘

항상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금고아를 쪼이듯 자신에게 피곤과 짜증이 담긴 잔소리만 하던 박진용이 상냥한 목소리로 자신의 안위를 묻자 도경의 팔에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절대로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자신의 스타그램을 보고 그 시간 동안 안 자고 술 먹느냐며 전화가 오더니 이내 어떻게 일주일 내내 절반을 술집에 가느냐고 가수로서 몸 관리를 하지 않는 거 아니냐며 1시간 동안 일장연설을 했던 이가 이렇게 따스하게 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뭐예요?”

[허허허. 자기 소속사 아티스트 걱정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니.]

“아, 진짜 뭔데요. 무슨 일 있는 거죠?”

[큼. 일단 얼굴 보면서 이야기 하자 꾸나. 자동차와 매니저는 미리 보냈으니 알아서 타고 오면 될 거다.]

“아... 그런데 지금 정훈이 형하고 밥 먹기로 했는데 지금은 조금 곤란한데요…?”

[데려오렴. 어차피 얼큰한 찌개 먹으러 갈 생각일 텐데 한정식 잘하는 집으로 예약했다. 어차피 감독님도 봐야 할 일이 있는데 같이 오면 좋겠구나.]

“소름 어떻게 우리가 찌개 먹으러 가는 거 알았어요? 혹시 지금 주변에 있어요?”

[미국 활동만 몇 년인데 모를 것 같니. 뻔하지 후후.]

“뻐기듯 이야기하지만 미국에서 거하게 망하지 않았어요?”

[...허허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잖니. 지금 생각해 봤더니 그때 먹었던 김치찌개와 소주가 그렇게 쓰고 단지 처음 알았었지. 지금 생각해 보니 좋은 추억이야. 참, 메뉴는 미리 시켜놓을까? 도경이 네가 좋아하던 메뉴들이...]

“꿀꺽...”

‘이거, 위험한데...?’

매니저와 차까지 보내고 한정식집에서 미리 대기 타고 있는 박진용의 주도면밀한 행동에 도경은 무언가 심상치 않아서 미국이란 단어를 꺼내 그의 역린을 스스럼없이 후벼 파보며 떠봤지만, 박진용이 그저 태연하게 웃음으로 부처 같은 모습을 보여온다.

이것은 위험했다.

‘분명 꿍꿍이가 있어. 도망을...’

“도경아 여기다.”

덥석

“아...”

“오랜만이다. 도경아. 한 달 만인데 신수가 훤하구나 하하하!”

팡팡!

“윽! 안녕 하세요 한 매니저님. 굳이 한 매니저님이 오시지 않아도 되는데...”

“에이 매니저 일이 스타를 보필하는 게 일인데 우리 슈퍼스타 도경 님 마중은 당연한거지.”

꽈악.

“하하하... 그런...!”

본능적으로 도망을 치려던 도경의 어깨를 붙잡은 우악스러운 손길의 주인은 박진용이 보낸 전담 매니저인 한상길 매니저.

박진용과 20년을 함께한 그의 관록을 본다면 도경으로선 그를 일개 매니저로 볼 수 없었다.

“.....”

‘제대로 작정했구나.’

“갈까? 오랜만에 밥이나 한 끼 같이 하자꾸나.”

“네...”

사전에 도망갈 퇴로? 그것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도경.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2시간 뒤

“자...! 찍어.”

“형... 이거 안 하면 안 돼요?”

“어허! 형이라니 공석에선 사장님이라 해야지 도경아?”

“......”

흰 종이를 들이밀고 도장을 찍게 만드는 것을 강요하는 박진용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덕 사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도경은 외통에 몰려 있었다.

힐끔.

‘에휴...! 내가 죄인이지 죄인이야.’

[아들 엄마는 네가 사람을 때렸다고 했을 때 많이 놀랐단다.

물론 아들에게도 이유가 있었겠지. 다만 그래도 방법이 그거 하나뿐이었을 까? 하는 아쉬움도 있어. 그러던 기회에 사장님이 이번에 네게 도움이 되는 일을 가져왔더구나.

교학상장(敎學相長).

남들을 가르치면서 자신도 배운다는 뜻이란다.

선택은 아들 몫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엄마는 아들이 성숙해질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해.

맛있는 거 먹고 좀있다 보자.] - 사랑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박진용이 가져온 서류 옆에 손글씨로 정성스레 적혀있는 조그마한 어머니의 손편지.

그것 때문에 도경은 옴짝달싹하지 못하였다.

한 달 안에 50억을 벌면 뭐하나. 그의 어머니인 서 여사에겐 자신은 그저 걱정을 끼치는 혈기왕성한 철부지 아들일 뿐인 것을 말이다.

그저 자신의 앞뒤 안 가리는 행동을 자책하며 서글픈 표정을 짓는 것이 도경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 혹시 도장 찍는 곳을 모르니? 내가 가르쳐 줄까?”

울컥.

“됐거든요? 와 진짜... 독하다 독해. 제대로 준비하셨네요. 대체 이런 기획은 언제 준비했대요?”

“후후.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성공하는 거란다.”

“얄미워 죽겠네 진짜.”

“하하하. 그래도 일 잘하는 사장을 둔 회사가 얼마나 운이 좋은 건데? 그리고 그만 좀 투덜거려라. 막상 해보면 네가 재미 붙어서 알아서 할걸? 솔직히 행사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게 좋지 않냐?”

“칫...!”

탁탁!

꾹!

“됐죠?”

분한 표정을 짓는 도경은 자신의 앞에 있는 서류에 자신의 서명란 옆에 인주를 묻힌 엄지손가락을 꾹 눌러 선명한 지장을 찍었다.

“굿! 텐 프로젝트에 합류한 걸 환영한다.”

“촌스러워.”

“아직 임시 명칭이야! 나중에 그럴듯한 이름 지을 거다. 욘석아!”

[10(Ten) 프로젝트]

서바이벌 아이돌 프로그램. 텐 프로젝트.

4년 만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출 도경의 표정은 그저 뿌루퉁할 뿐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