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도경 멘토님 타도!”
“쓰러트리자!”
“오우!!!”
“우리는 할 수 있다!”
[TOP.10 Project] 합숙소에서 아침만 되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단합을 생각해서 연습을 봐주고 있던 [JY] 트레이너들의 부추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어느새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박도경(?) 밟아버려!”
“아자 아자! 승부에는 위아래도, 상장도, 선배도 없다!”
“밟아버려!”
“박살!”
구호를 외칠 때마다 유독 감정을 힘껏 집어넣는 [JY] 출신 전수미와 신유진을 바라보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는 한편. 그녀들과 팀을 맞춘 팀원들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기획사 직속 선배와 사장을 향해 파이팅을 다지며 자극적인 발언을 마다하지 않는 전수민과 신유진의
“언니들 괜찮아요? 너무 박도경 멘토님한테 막말하는 거 아니에요? 카메라 돌고 있어요.”
“소정아. 괜찮아. 아니, 도경 오빠한테는 이 정도는 해도 돼. 안 그래 유진아?”
“수민언니 말이 맞아요. 소정언니. 남이 기껏해서 짠 안무를 몰래 도둑질한 대악당인데 이 정도 쓴소리는 들어야죠.”
“도, 도둑질이라니 그런...!”
안절부절.
올해 갓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귀여움과 앳됨이 많이 남아있는 소심한 멤버 김소정이 걱정을 표하자 그녀 옆에서 진한 눈웃음이 인상적인 소녀가 웃음을 터트리며 소정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토닥거려 주었다.
“후후후. 소정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저 둘은 도경 멘토님하고 친해서 저렇게 말하는 거지 악의는 없을 거야.”
“소연 언니네도 친하면 저래요? 저희는 아무리 친해도 저러면 엄청 혼나는데... [JY]엔터는 그래도 자유로운 분위기인가 보네요.”
“아하하 우리 소속사도 별반 다르지 않지. 그래도 아무리 회사 분위기가 자유로워도 그냥 저 둘이 이상한 거 아닐까? 저러면 연습 생활 엄청. LSM은 어때요? 수현 언니?”
“맞다. LSM도 궁금하네요. 생각보다 연습생 기강에 대해선”
“으응? LSM... 나도 잘 모르겠어. 나온 지 2년이나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항상 혼자서만 연습해서 잘 몰라. 내성적이라 친구가... 없었거든.”
“아...”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에 대해 씁쓸했던 자신의 연습 생활을 말하는 박수현을 본 배소연과 김소정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획사를 나와서 현재 무소속인 박수현에게 전에 몸담은 LSM기획사의 분위기를 물어보다니 조금은 무신경한 물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으으으...! 미안해요. 언니!”
“죄송해요!”
“아니야 애들아 나 괜찮아.”
“하하...”
“.....”
이에 대해서 금방 사과하는 두 멤버. 그녀들의 사과에 박수현은 손을 들어 올리며 좌우로 저으며 괜찮다고 하지만 더욱 괜찮지 않은 어려운 분위기가 흘렀다. 서로들 애써 웃음 지으며 좀 있으면 앞둘 연습을 위해 스트레칭에 집중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서로들 눈치를 보고 있었다.
‘숨, 숨 막혀...’
‘하하. 이 언니는 어려워. 분위기 같은 게 묘하다니까...!’
‘난 진짜 괜찮은데 미안하네...’
같이 팀을 꾸린지 이젠 일주일이 되어가는 데도 팀 멤버에 섞이지 못한 박수현. 그녀를 보며 신유진과 전수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상황이 하루 이틀 지속 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니 저기 봐요! 또 다들 얼음 되었어요.”
“에휴...!”
“진짜 언제 술이라도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 언니는 너무 흐트러짐 같은 게 없어서 어렵다니까요.”
“수현 언니는 예뻐도 너무 예뻐서 문제야. 뭔가 다가서기 힘든 오라가 있다니까.”
“인정합니다. 저 언니 보고 나서 분위기도 이쁠 수 있다는 게 뭔지 알았다니까요.”
끄덕
“그나저나 술이라니? 유진이 너 미성년자잖아!”
“헤헤헤.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어휴. 이 화상아.”
박수현 그녀 본인은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 거리감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싶지만, 전수미와 신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둘이 생각한 박수현의 본질적인 문제는 너무나 독보적으로 예쁜 얼굴의 분위기 때문이라 여겼다.
새하얀 토끼 같은 여리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지닌 차분한 분위기와 황금비율을 간직한 이목구비는 품격있는 미술작품에 한없이 빠져드는 것처럼 넋 넣고 자꾸만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다가서기 힘든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리라.
친해지기 위해선 스스럼없이 다가가야 하는데 박수현에게는 그것이 어려웠다. 그녀에게 다가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고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데...”
전수미는 박수현을 보면서 무언가 수를 생각했고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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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찔!
“...!”
‘내가 뭘 잘못했나? 뚫어지게 쳐다 보네...’
전수미의 시선을 느낀 박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숙이어지는 고개를 깨달으며 남몰래 한숨 쉬었다. 무대 관계 다음으로 힘든 게 인간관계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는 주위에 항상 주눅이 들었던 그녀는 항상 힘들었고 항상 고독했다.
‘왜 나는 성격이 이럴까...? 왜 나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걸까?’
항상 생각하고 묻는 말이었다.
박수현은 자신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대 공포증을 지닌 만큼 겁이 많았고 남들 눈에 띄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는 성격도 아닌데도 그녀 자신이 꿈꾸고 걸어가고 있는 길은 정반대의 어울리지 않는 길이었으니 말이다.
아이돌을 지망하게 된 이유도 카메라 앞에도 무대 위에서도 혼자 설 용기가 없으므로 고른 것이었다. 그 정도로 모순적이고 얄팍한 존재가 자신이었다.
“정말로 모르겠어.”
중얼.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아 중도에 한 번 포기까지 했던 길. 그런데도 다시 미련을 갖고 돌아와 무대에 서려 한다.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본인 스스로에 대해 이해 안 가는 것투성이라 생각하는 박수현이었다.
“다만...”
현재 포니테일의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던 박수현은 자신의 흐트러진 잔머리들을 정리하며 자신의 머리를 묶고 있는 머리끈을 만지작거린다.
은색의 깃털 장식이 달려 있는 머리끈. 매가리 없어 보인다고 받았던 머리끈은 어느새 그녀의 부적이 되어 있었다.
(부적이다. 이 멘토님만 믿고 따라와라.)
머리끈을 매만지며 떠오르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박수현의 얼굴에는 수줍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장난기스러운 어조였지만 왠지 모르게 든든했던 그 목소리에
“이번에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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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높은 시청률에 기뻐하며 의지를 불태우며 연습에 몰입하고 있을 때. 한쪽은 예상치 못한 난항을 겪고 있었다.
“트레이너 오빠들한테 들었어요. 이쁜 참가자한테 막막 기타 반주도 직접 녹음도 해주고, 머리끈도 주고 그랬다면서요. 연애할 생각 없다면서~ 왜 막 흘리고(?) 다녀요.”
“아니... 춤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왜 그 이야기가 나오지? 하나야”
“몰라요!”
타다닥.
“아이고 두야...”
어눌한 한국어로 쉴 틈 없이 도경에게 서운한 것을 토해낸 하나는 심통이 난 표정을 숨길 수 없는지 입술을 삐죽거리며 연습실 밖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연습실 밖으로 나섰고 몇몇의 멤버는 도경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나쁜 남자입니다요.”
“와. 하나 언니가 저렇게 빠르게 말하는 거 처음 봤어.”
“쿡쿡! 흘리고 다닌다는 말은 어디서 배웠대...?”
“우리 하나 불쌍해서 어떡해...”
“하나짱...!”
“뭐해요? 오빠 안 쫓아가고 ”
‘...뭐야? 내가 잘못 한 거야?’
“네!”
세상에서 제일 복잡한 게 여심이라더니 드림걸즈 멤버들이 자신을 향해 야유하는 것에 도경은 어이가 없어 되물었지만 얄짤 없이 칼답으로 대답해 오는 드림걸즈 멤버들의 대답에 도경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누가 봐도 프로답지 못한 하나의 잘못임이 분명하건만 이 장소에 자신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싶었다.
툭.
“그러게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래.”
“뭐, 개소리야? 무슨 내가 언제 흘리고 다녔고 그래?”
“흥. 웃기시네. 리아 그라테도 그렇고 오빠 주변에 은근 여자 많다고 소문이 자자하거든? 러블리 멤버 김주리도 오빠 만났다는 정보가 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응?”
“오빠가 뭔데 우리 하나를 까!?”
“크흠! 까다니 뭔 말을 그렇게... 그나저나 어떻게 알았어?”
“알지 그럼 모를까? 하나가 하루 종일 방안에 박혀서 우는데? 그 착한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뭐, 별로...”
당황이라는 것을 잘 하지 않는 도경이 오래간만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뒷말을 흐리며 소희의 추궁을 회피했다. 그 당시의 상황이 떠오른 탓이었다.
사실 한국에 귀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에게 고백을 받았던 도경. 당연히 연애와 사랑을 할 생각이 없었던 도경은 그녀의 고백에 자신은 사람을 사귈 생각이 없다고 말하며 그 고백을 물렀지만 하나는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괜찮아요... 그럼 그런 마음이 생길 때까지 하나 노력하고 기다릴게요. 저 바보라 노력하는 거는 자신 있어요.)
“.....”
‘진심 이었지...’
어수룩한데 미련할 정도로 올곧은 심지. 어린 나이부터 시골에서 매일 1시간 넘게 댄스학원에 다녔던 전적이 있을 덕분일까? 팀 구성원 중에 가장 성실함으로 뽑히는 인물답게 하나는 사랑에도 성실했다.
‘마음 떼려고 아무나 사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리아와 다르게 예상외의 강적이야.’
강약 중간 약 없이 강강강! 으로만 아무 때나 덤벼드는 리아도 강적이었지만, 고백 한 이후부터 도경을 만나면 사탕이라던가 과자를 준다거나 핸드크림 같은 소소한 것을 챙겨주며 주변에 머무르며 은은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하나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투정에 가까운 질투까지 스스럼없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 더욱 상황은 어려워지고 있었다.
‘순수해서 더 힘들다.’
리아는 그래도 막대하기라도 쉬웠지 아이가 갓 짝사랑에 눈을 뜬 하나의 순수함에 도경은 그저 난감할 뿐이었다.
“흥! 순진한 애 홀려 놓고 잘하는 짓이다. 여행 갖다 와서 나쁜 것만 배워서 말이야 어떡할 거야? 책임 안 져?”
찡얼찡얼.
“시끄러... 뭘, 어떡하긴 어떡해? 그리고 이게 어디서 하늘 같은 오빠에게 눈을 부라려?”
푹!
가뜩이나 예기치 못한 여난에 골치 아픈데 으르렁거리며 친오빠인 자신을 압박하는 건방진 여동생의 두 눈을 바라본 도경은 살포시 손가락 두 개를 도끼 눈에 쿡 찔러 넣었다.
“악! 이 미친놈아!”
“어휴. 말본새하고는 하나 생각하듯 오빠 좀 생각하시지 박소희씨?”
“뭐래? 세상에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 박도경 걱정이라 하거든?”
“쯧쯧쯧.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라니까. 이런 왈가닥이 내 여동생이라니 한탄스럽기 그지없구나.”
“어디가!?”
혀를 차며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걸음을 옮기는 도경. 소희는 자신의 아픈 눈을 비비적거리면서 도경에게 어디 가냐 물었다.
“애 달래로 가야지. 그래야 연습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우~ 나쁜 남자다!”
“내가 말했지 도경 오빠같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니까.”
“인성 실화입니까?”
“시끄러워 이것들아!”
꽃다운 소녀들의 야유를 뒤로 한 채.
도경은 하나가 나간 발걸음 옮긴 곳으로 뒤따라 나섰다.
---
“헤헤헤~.”
20분 뒤.
야유를 퍼부었던 드림걸즈 멤버들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하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쿵쿵!
짝!
“그렇지 잘한다. 하나야!”
“정말요?”
“응 다 좋은데 좀만 더 템포에 변화에 신경 써서 강약을 주면 더 좋을 거 같아.”
“네! 해볼게요!”
바로 전에 볼멘 얼굴로 나섰던 하나의 얼굴은 현재 기분 좋은 함박웃음으로 가득하다.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
“좋단다...”
“에휴-. 우리 하나 어떡해.”
“쉬운 여자... 하나짱은 너무 쉬운(?) 여자였어. 으으으...!”
“보는 내가 창피하다.”
“애들아 너희들은 저러면 안 된다.”
“네...”
끄덕.
반짝.
도경의 지시 아래에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하나의 손목에는 보지 못했던 팔찌가 걸려 있었는데 그것을 본 드림걸즈 멤버들은 하나의 변화가 어디서 온줄 깨닫고는 애잔한 시선으로 하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며 속을 애태워야 했다.
야마다 하나 [山田 花]
산밭의 꽃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하나는 수수하고 평범한 짝사랑.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순수함을 간직한 그녀의 짝사랑에 드림걸즈 멤버들은 그저 무언으로 응원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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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 연습실]
“에구구. 온몸이 쑤시네. 형! 여기 파스 좀 붙여줘.”
“진용아... 연습도 좋은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좀 쉬엄쉬엄해라.”
개인 연습실 가득 채우는 파스 향기와 땀 냄새. 박진용의 전속 매니저를 맡고 있는 한상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박진용을 보았다. 다름 아닌 불혹의 나이임에도 젊은 애들 못지않은 연습량을 소화하고 있는 그가 걱정돼서였다.
하지만 박진용은 그의 걱정에도 멈출 생각은 없는 듯싶었다.
“무리는~ 형도 봤잖아. 나 무대 위에서 날아다닌 거 못 봤어?”
“진용아 그래도 네 나이가 있잖냐. 그러다가...”
“괜찮다니까?”
“...!”
‘날아다니면 고장 날 나이란 말이다... 전력을 다하면 할수록 너만 상처받게 될 거란 말이다.’
반짝이는 눈동자. 붉게 상기 된 얼굴. 파스와 땀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 얼굴에는 힘들다거나 부정적인 감정은 일체 머물러 있지 않았다.
열정과 의욕이 가득 찬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되찾은 열정으로 빛나는 눈동자로 눈을 마주쳐 오는 박진용의 모습에 한상길은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진용아...!”
벌떡.
“형! 파스 붙여줘서 고마워. 이런 거 부탁할 사람이 형밖에 없네. 볼일 보러 가도 돼.”
“너...”
명백한 축객령.
땀이 식기도 전에 일어나 연습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박진용을 뒤로하며 개인 연습실을 한상길은 혀를 차고 말았다. 분명 자신의 걱정을 알고 있을 텐데도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홀려도 단단히 홀려 버렸어...!”
중얼.
그 날의 무대.
식어가던 열정에 뒤도 생각 없이 불을 지폈던 그 무대를 떠올리며 한상길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