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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41화 (241/357)

241화

“형의 걱정은 알지만 어쩔 수 없어... 그 녀석은 봐주지 않는걸?”

개인 연습실을 떠나는 한상길 매니저의 씁쓸했던 뒷모습을 떠올리며 박진용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정신을 바로 하고 자신이 이렇게까지 연습해 몰두해야 하는 이유를 떠올렸다.

솔직히 그라도 왜 힘들지 않겠는가?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장한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건 자신이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도경과 함께 합을 맞추는 연습을 하면 할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부분이었다.

(형 더 빡세게 돌아요. 몸 너무 사리는 거 아니에요?)

(느려요! 너무 굼뜨다고요! 좀 더 빠르게!!!)

(휴식 끝! 다시 가죠!)

자신이 회사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도경은 거리낌이 없었다. 연습실 안, 무대 위에서만큼은 나이고 계급이고 뭐고 없는 게 바로 도경이었기 때문이다.

간혹가다 어린 도경이 대선배인 자신을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이는 때는 박진용도 사람이기에 기분이 상하기도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JY]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진용이 아닌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 대해주는 도경의 태도에 대한 신선함과 고마움이 더욱 컸다. 세월이 흐르고 한 기획사 대표가 되고 나서 진지하게 자신을 지적하거나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힘들어. 힘들긴 한데...”

주르륵.

‘그래도 즐겁다.’

자신의 몸에 흐르는 땀을 닦는 박진용은 웃음 지었다. 분명 힘들었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알게 모르게 자신을 부담스러워서 하는 사람들과 분위기에 놓여 있지 않아도 됐고 자신의 무대에 대한 것을 혼자 고민하고 의심하지 않아도 됐다.

오랜만에 함께 땀을 흘리며 더 나은 무대를 위해 함께 달려가는 동료가 생긴 것이다.

“고독하지 않아.”

선임 선배가 되고, 지위가 높아지면서부터 뮤지션으로서 고독했던 박진용.

땀과, 파스 냄새로 가득한 연습실. 다른 것 없이 오로지 무대 하나만을 바라보며 하루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순간은 그 무엇보다 현재 그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 무대를 다시 맛볼 수만 있으면 후회는 없다.”

끄덕.

오랜만에 순수했던 시절을 되찾은 것 같은 고양감에 박진용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도경과 가졌던 무대다운 무대를 떠올렸다. 무대를 마친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근래 들어 박진용의 머릿속은 최근에 가졌던 무대로 가득 차 있는 중이었다.

딴다다다딴~!

츠츠츠.

쿵쿵쿵 짝!

[여자들과 놀고 돈은 번 만큼 쓰고 (멋있게 살자)

늦게 일어나 놀고 늦게 자고 내일도 똑같고(딴따라 인생)

앞일은 없지 그런 걸 내게 묻지 마 (나와 놀자)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인생 뭐있어?)]

“!!!?”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리드미컬 한 사운드. 두 남자가 무대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검은 셔츠 위 붉은색의 슈트와 파란색의 슈트를 입은 도경과 박진용. 두 사람은 같은 무대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무대 위에 날뛰고 있었다.

경쾌한 블루스 리듬에 위에 흥겨운 춤을 추는 도경과 박진용 조합은 20살 가까운 나이가 차이가 나면서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Tantara 인생! 술이 떨어질 때까지 신나게 춤추고 놀고

술 떨어지면 무대 위에 올라가 블루스에 취하지.

Tantara! Tantara! 돌고 돌아 미쳐 흔들어 대고 멈추면 박수 소리!

술 한 잔 주면 다시 분위기 띄우는 뭐 있는 놈.

Tantara! Tantara! 돌고 돌아 미쳐 흔들어 대고 멈추면 함성 소리!]

드림걸즈란 10명의 대세 걸그룹을 백댄서로 등지고 이리저리 무대를 휘젓는 망나니 같은 두 남자. 아름다운 미소녀들 사이에서 그 둘은 정말로 술 취한 듯이 날뛰었다.

원색적인 옷을 입은 것만큼 두 사람의 춤도 원색적이었다. 리듬에 팔과 다리를 웨이브로 유연하게 흔들며 무대를 누비고 쿵 소리 날 때 강하게 찍어 몸을 튕기며 높게 뛰어오른다.

왼쪽, 오른쪽 서로 교차하며 무대를 꽉 채우는 두 남자. 그 두 남자의 흥에 사람들은 고개를 까닥이기 시작한다.

[음악이 들리면 몸을 움직이며 사랑을 기다려(딴따라 인생~)

첫눈에 반할 사랑. 그런 사랑을 꿈꾼다(마지막 사랑)

불꽃 같은 Tantara!]

흥을 경쟁하듯이 노래 한 구절마다 교차하며 노래를 부르는 도경과 박진용의 리듬 & 블루스.

쉴 틈 없이 서로가 독려하고 흥을 돋는 노랫소리. 가속하고 가속하는 끝에는 흥이 폭발하여 몸으로 표출한다.

[여자와 술 그게 내가 사는 모든 이유야!]

[음악과 춤 그게 내가 사는 모든 이유야!]

와아아아!

노랫말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아볼 만큼 놀아본 경험이 있던 둘이기에 나올 수 있었던 미친 무대. 현실에선 절대 맛볼 수 없는 무적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진짜 무대였다.

그 맛을 오랜만에 맛본 이상 이제는 세월이란 안전한 가면 뒤에 숨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 현역이다. 그리고 애들에게 미안하지만...’

처음에는 참가자와 멘토가 경쟁한다는 도경의 기획에 어이가 없었었다. 연장자로서 멘토로서 까마득한 어린 후학의 연습생들과 무대를 겨룬다는 것이 상상이 안 갔기 때문이다. 겨루기보다는 격려 차원에서 무대에 임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180도 생각이 달라진 박진용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내가 차지해야겠어!”

항상 후학들을 조언하고 이끌어주는 연장자의 역할만 맡았던 박진용. 하지만 그는 힘들게 연습을 마치고 도경과 함께 무대를 마치면서 결국 깨달았다. 뮤지션으로서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란 것을 말이다. 먹고 싶은 것은 먹고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려는 것은 당연한 건데 그것을 애써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참아왔으니 그렇게 힘든 것이었다.

“이젠 안 참아.”

응원과 격려? 그런 건 이젠 박진용의 머릿속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후회 없는 최고의 무대만을 원할 뿐이었다. 나잇값 못하는 욕심 많은 꼰대라고 해도 좋았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어린애들을 짓밟으려는 추악한 어른의 이기심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으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

그것이 삶 아니겠는가?

쿵!

그렇기에 전력을 다해 노력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마지막에 최대한의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그게 현재 박진용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었다.

---

“뭐야? 1주일 동안 준비한 게 겨우 이거야? 이거 간단히 이기겠는걸?”

“으으으...!”

박진용이 다시 한번 뜨거운 열의를 다짐하고 되찾아가고 있을 때. 다른 이들은 자꾸만 식으며 꺼져가려는 자신들의 열의의 불씨를 지키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일주일 동안 준비한 무대를 보고 사악한 웃음을 짓고 있는 도경 때문이었다.

“누가 C팀 아닐까 봐. 센스하고는 비켜봐.”

“너무해. 상처받았습니다.”

“사악하다!”

“후후. 애송이들의 외침 따위 나에게 닿지 않는다.”

“와...”

C팀이라는 말에 신음성을 내뱉으며 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연습생들은 도경을 향해 야유하지만 소악마는 꿈적하지 않았다. 이미 원성을 사는데에 이골이 난 도경은 그저 웃음 지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어린양들을 바라보였다.

“노래나 틀지 애송이들?”

“아... 멘토님 꼭 해야겠어요?”

“어허! 피드백을 받는 건 습관화해야지.”

“알긴 아는데... 그냥 말로 ”

“쓰읍! 혼난다? 잔말하지 말고 얼른 틀어.”

“네...”

도경의 말에 떨떠름해 하는 연습생 참가자들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편식하는 어린아이가 시금치를 먹기 싫어하는 표정과 똑 닮은 얼굴을 하고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경은 그저

“으으...!”

“또 시작인 거야?”

“이번에는 또 뭘 하려고...”

“킥킥킥!”

“쿡!”

원성 어린 말들을 내뱉으며 찡얼거리는 연습생 참가자들을 보며 제작진들이 웃음을 터트렸고 이에 발끈 아이들이 들고 일어섰다.

“제작진님들 웃지 마세요! 이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맞어요. 1주일간 연습한 게 몇 분 안에 털리는 건데 이거 진짜 멘붕이라고요! 진짜 당해봐야 아는데...! 하...”

“아니! 그것보다 무대에서 경쟁하는 멘토님이 피드백이 웬말 입니까?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자신들의 눈앞에서 일주일간 준비해 온 음악과 안무를 빼앗는 도경의 존재는 가히 공포 그 자체. 도경을 보고 있으면 자신들이 힘들게 연습하는 게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는 그의 능력은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앓는 소리를 내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도경에겐 그저 반찬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들 투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멘토잖아. 꼬우면 네가 멘토 해.”

“윽...!”

“킥킥킥!”

도경이라는 멘토에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탈탈 털리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앞으로 있을 멘탈 분쇄기의 만용에 썩어들어갈 아이들의 표정이 기다려질 정도로 이 요소는 이제는 [TOP.10 Project]에서 떼레야 뗄 수 없는 시청자들의 꿀잼 요소였다.

“자 시작한다. 참, 그리고 노래 편곡 좀 해라. 구려...!”

“흥! 얼마나 잘하는지 봅시다요. 멘토님.”

“오호? 아직 저런 배짱을 지닌 놈이 있었나?”

“야! 너 미쳤냐? 멘토님에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왜? 멘토님이라도 솔직히 이번에는 쉽지 않을걸? 멘토님도 사람인데 안무 절수도 있...!”

“야 저 무식한 자식 입 막아!”

“읍읍!”

바둥바둥.

이번 무대 곡의 편곡을 맡았던 팀원이 도경의 말에 울컥해서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은 것에 경악한 팀원들은 서둘러 그 멤버의 입을 틀어막았다. 울컥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저 악마같은 존재를 도발하다니 그것은 말벌집을 건드리는 행동이나 다름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불행이도 그들의 대처는 늦은 감이 있었다. 도발적인 언사는 이미 도경의 귀에 모두 다 들어간 뒤였기 때문이다.

“늦었어 짜식들아. 이 악물어라.”

씨익.

“...!”

도경의 진한 미소를 바라본 남성 C팀의 얼굴에는 절망 어린 표정이 스쳐 지나가고 도경은 그들의 기대를 응하기 시작하며 그들이 자신 있게 준비한 무대를 산산조각 짓밟기 시작했다.

“애들아 잘 가렴.”

“네...”

터벅터벅.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도경을 뒤로하고 힘없는 걸음을 옮기는 다섯 명의 사내아이들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애잔하기 그지없었다.

항상 파이팅 넘치게 ‘도경 타도!’를 외쳤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더욱 짠함은 배로 가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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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팀이 멘탈이 조각조각 나서 구석에 처박혀 조각난 멘탈들을 주워 담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발견한 다른 팀들은 중간 평가를 맡은 도경의 악명을 접하고는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덜덜덜 떨고 있었다.

“진짜 생각지도 못한 거로 달달 털린다는데 이런 컨셉으로 될까?”

“된다니까. 믿어.”

“그래도 A팀 애들도 털려서 나갔는데 C팀인 우리가...”

“걱정하지 말라니까. C팀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기죽으면 어떡해?”

“으응.”

“......”

물끄러미.

‘연습할 때는 괜찮았는데 막상 평가받는 날 되니까 기가 많이 죽었네.’

[신고식]을 성황리에 마친 [TOP.10 Project] 참가자들은 순위에 따라 5명씩 A(상),B(중),C(하) 3팀으로 나눠 다음 무대 [1차 단체 배틀: Dance]를 준비를 해야 했는데 C팀을 리더를 맡고 있는 한 여성은 자신들의 팀원들이 기가 죽은 것을 알아차리고는 지금은 이들의 기운을 북돋아야 하는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애들아 나는 정말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

“우리들은 잘 할 거고, 역전의 드라마를 쓸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지금 구성된 팀은 자신들의 의지대로 고른 것이 아니라 1위부터 5위는 A팀, 6위부터 10위는 B팀, 11위부터 15위까지는 C팀으로 결성된 성적순으로 지어진 팀. 그렇기에 하위 성적인 구성원으로 만들어진 C팀의 자신감 결여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C팀의 리더를 맡은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C팀은 다른 팀에 비해 말 못 할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자각했으면 했다.

“나는 정말로 확신해. 나를 믿어줘 애들아.”

“미진아...”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리더의 존재에 흔들리던 팀원들이 하나둘 꺾였던 의지를 되찾기 시작했는데 미진이라고 불리는 여성은 그야말로 리더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중이었다.

자신의 팀원들 하나하나 일일이 차분하게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이 사람을 이끄는데 타고난 듯싶었다.

‘자신 없으면 C팀으로 오지 않았어...!’

무언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띠며 연습실의 닫힌 문을 바라보는 미진은 도경의 존재를 떠올리며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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