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45화 (245/357)

245화

띵띵띵~.

따다다딴 딴딴딴딴~.

“오?”

“무슨 노래지?”

어둠 속. 푸른색의 은은한 조명 아래.

무대 위에 종으로 뒤돌아 서 있는 여성 C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모두는 그녀들 뒤에서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노랫소리를 듣고는 예상외의 음악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발랄하고 귀여운 컨셉 이라고 해서 톡톡 튀는 음악이 나올 줄 알았는데 서정적이고 웅장하기까지 한 오케스트라 풍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번뜩!

“이건, 이 멜로디는...!”

“설마!”

“진짜냐? 이걸 한다고?”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멜로디 전주가 흐르기 시작하고 예상과 다른 전개에 놀람도 잠시. 모두는 노랫소리 전주를 감상하며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녀들의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객석에 앉아있던 연습생들 몇몇은 눈가의 이채를 띠며 경악 찬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분명해! 이 노래는...!”

지금 자신들이 듣고있는 게 틀리지 않았다면 아는 분명 그 노래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 라인. 많이 편곡되고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단조롭지만 묘하게 끌리는 중독성이 있는 이 강렬한 멜로디라인은 절대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5%란 대박 시청률 프로그램의 무대 위에서 절대 들어볼 거라 상상도 못했던 노래. 그 노래를 알아챈 몇몇은 설마설마하면서도 흥분이 섞인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며 흘러나오는 반주 노랫소리를 듣고 있었다.

‘Platinum Disco!’

[Platinum Disco]

이 노래에 객석에 앉아있던 연습생들의 숨겨져 왔던 본성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인정 하고 싶지 않은 본성. 어떻게 해보려 해도 컨트롤이 되지 않는 본성. 남들에게 철저히 감추며 꾹꾹 눌러 숨겨놓았던 ‘오타쿠’라는 본성이 말이다.

그렇다.

Platinum Disco란 노래 그것은 많은 덕후들을 생성해 낸 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송이었다.

스윽.

“...!”

촤르륵!

씨익!

“오오오!”

C팀 멤버 중앙에 서 있던 장미진이 뒤돌아 무대 한가운데 앞으로 나와 붉은색의 부채를 높게 들어 올려 펼치며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붉은 부채와 함께 큰 호선을 그리며 서정적인 선율에 몸을 맡기는 그녀의 모습은 고혹적이기 그지없었는데 순간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활자를 그리는 눈웃음에 모두가 감탄하고 말았다. 매서운 눈매가 활자를 그리며 웃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흡입력이 자신들을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대박!”

“눈웃음 뭔데? 요물이 따로 없네.”

활자를 그리는 눈웃음 사이에 보이는 반짝이는 눈빛엔 도도함을 넘어서 당돌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너희들 모두 내게 눈을 떼지 못하게 하겠어.’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고한 확신. 자신감을 넘어서 진심으로 그리 믿는 그녀의 시선은 모두를 홀리는 마력을 품은 보석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느린 선율 속에서 여유로움을 머금으며 홀로 부채를 허공에 천천히 휘저으며 춤을 추는 장미진의 모습은 고고한 학과 다름없었다.

빙그르 팟.

촤악!

끊이지 않고 연계되며 힘을 거스르지 않는 몸짓.

느림 속 중간중간 강약을 주어 부드러이 몸을 튕기는 그녀의 춤은 아름다웠다. 단순한 동작의 연계일 뿐이었지만 171cm 신장의 긴 팔과 긴 다리를 이용한 장미진의 아름다운 춤 선은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예쁘다...!”

어떨 부분에선 전통춤 같고 어느 부분에선 현대 무용 같은 춤.

기교나 테크닉이 뛰어난 춤이라 볼 수 없지만, 간단한 동작으로 자신이 지닌 모든 장점을 부각하는 안무여서 효율적인 동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씨익.

얼굴을 가린 부채 위로 배시시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녀의 눈웃음에 장미진이라는 참가자가 지닌 무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꿀꺽.

“쟤 물건이다...! 진짜 스카우트해야 하나?”

“사람을 이끄는 분위기가 있네요.”

차가운 눈매가 스르르 녹는 그 눈웃음은 시선을 끄는 힘이 있었다.

해맑게 자주 웃는 정감 가는 스타일도 좋았지만, 냉소적으로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가 짓는 저런 홀리는 웃음의 종류도 좋았다. 특히나 밝고 소녀다움이 판치는 여성 아이돌이 판에 장미진이 보이는 독보적인 스타일은 꽤 레어한 것이었다.

따라란~.

스윽

“!?”

노래의 전주가 끝이 나고 조용해진 가운데 모두의 시선을 성공적으로 끌어모은 것을 느낀 장미진은 타이밍을 재면서 손에 쥔 붉은색의 부채를 접어 하늘 높이 천천히 들어 올렸고 동시에 갑작스레 고조되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더니 무언가가 터질 것을 예고한다.

두두두두둥.

“자~! 가자!”

애피타이저가 끝난 지금 이제는 본격적인 무대의 시작을 알려야 할 차례. 그녀는 여유롭지만 힘차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쏘아 올린 신호탄에 맞춰 등 돌렸던 멤버들이 좌우 동시에 차례대로 회전하며 무대 앞 정면을 맞이하며 힘차게 구호를 외친다.

탁탁탁탁!

“어기여차!”

촤르륵!

무언가가 터질 거라 예고했던 북소리가 끝나고 힘차게 울려 퍼지는 구호 소리. 사람들은 한껏 기대를 모으며 무대를 응시했다. 하지만 이내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따따따 딴~. 따따따따 딴!

쿵쾅쿵쾅!

“에?”

서정적인 선율 속. 고고한 부채춤을 추며 사람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끌어모았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박살 내버리는 경박한 노랫소리.

웅장함을 유지하는 퀄러티임에도 약 맞은 것처럼 그 웅장함을 박살 내며 쿵쾅쿵쾅 경쾌한 노랫소리가 모두에게 반전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둘러보면 변치 않는 백금 세상에

한발 들여놓으면 멈출 수 없는 두근거리는

가슴속 세상에

함께 춤을 춰봐요~!]

반전에 반전. 경쾌하고 신나고 경쾌한 음악 소리.

그 음악 소리에 맞춰 5명의 소녀가 힘차게 손과 어깨를 흔들며 부채를 접었다 피며 자신들이 짜놓은 안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네 등에 업혀 찾아냈던 별님들이

오늘도 미러볼처럼 밤하늘에서

반짝 반짝!]

깜찍 발랄한 안무. 큰 동작이 없지만 작은 동작 사이사이 오밀조밀한 디테일을 부여하며 경쾌하게 스텝을 밟는 춤은 귀엽기 그지없었는데 무엇보다 흥겨웠다.

오케스트라 풍의 뽕기를 품은 멜로디 위에 들려오는 듣기 좋은 목소리. 그 사이사이 붉은색의 부채로 흥을 유도하는 추임새와 여성 C팀의 발랄한 칼 군무는 독특한 맛을 내며 관객들을 자신들의 색으로 빠르게 물들이고 있었다.

[빛나고 있는걸~! ]

“오오오오!”

“와아!”

“꺄아악!”

세상에 앙증맞게 귀엽고 흥겨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괜히 수많은 덕후들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마성의 Disco.

그 터져버린 Disco에 모두가 뜨거운 호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

[시간이 흘러 변해가는 것들

변하지 않는 것들에

슬퍼하던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이 영원.

네게 약속할게요.]

귀엽고 흥겨운 디스코 노래. 함께 춤추자며 호응을 유도하며 서정적인 가사 부르는 깔끔한 소녀의 미성은 보고 듣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와아아!

“아 빵터졌다. 설마 저렇게 나올 줄 예상도 못 했네.”

“안무 뭔데 저리 깜찍하냐?”

“중독성 지린다 이 노래 뭐냐?”

“...!”

힐끔.

‘제대로 먹혔구나.’

객석에 앉은 사람들을 보며 장미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신이 리더로서 준비한 노림수가 제대로 먹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조금 삐걱거렸지만...!’

무대에 오를 노래를 선정하는 도중. C팀의 멤버 중 하나가 화장실에서 흥얼거렸던 노래를 우연히 들은 미진은 이 노래는 절대로 먹힌다며 확신했었다. 처음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송으로 무대에 서자는 것에 팀원들이 꺼림칙 해 하였지만, 도경의 중간 점검에 후한 평가를 얻고는 자신감을 얻어 더욱더 무대의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춤과 포퍼먼스에 몰두했던 B팀과 달리 C팀은 다방면으로 준비를 했었다. 반전 컨셉, 무대 소품, 노래편곡, 작사 모두 철저하게 차별성을 둔 전략과 노림수를 섞었었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다른 연습생들과 달리 뒤늦게 연습생 생활을 한 지 3년. 그 짧은 기간 동안 미진은 철저하게 효율을 따지며 생활을 해왔다. 그녀 자신에게는 언니처럼 춤에 대한 재능도, 탑스타가 되어있는 친구처럼 노래에도 재능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기본기 위주로 자신의 기량을 다졌고 자기가 지니고 있는 요소 중 쓸모 있는 것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어떻게 써먹을지 시뮬레이션했다.

‘재능이 없으면 만들면 돼.’

3년간의 준비 기간 장미진은 똑똑하고 지독했다.

춤과 노래는 물론 연기까지 배워 가며 감정을 숨기고 제스쳐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가며 자신을 새롭게 탄생시켰고 연예인으로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해 왔다. 그렇게 지금의 장미진이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백금처럼 빛나 기쁜데도

그런데도 눈물 나는 건

왜일까?

어째서?

모르겠어.]

짝짝!

“......”

부채로 박수를 치면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미진. 하지만 그녀의 속은 말 못 할 감정으로 쉴새 없이 울렁이고 있었다.

뭉클.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나서고 확신하며 강한 척했지만, 사실은 처음 가져 보는 무대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그 부담이 먹구름 걷히듯 한순간에 사라지고 크나큰 희열과 자신감을 불어놓고 있었다.

‘나는... 나는...!’

꾸욱.

‘틀리지 않았어!’

미진은 주변을 살피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쉴새 없이 확인했다.

16살 의절한 친가를 떠나서 강씨 성에서 장씨 성으로 개명하고 무서운 외조부의 밑에 들어가 외가에서의 낯설고 혹독한 생활을 견뎌왔던 시절, 그리고 새롭게 생긴 목표를 위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며 학교를 자퇴하고 고독한 연습생 생활까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

4년이란 시간 그녀가 했던 마음고생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었지만 미진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그렇게 힘들게 버텨왔던 이유가 자신의 눈앞 가까이에 있는 까닭이다.

[내일 같은 건 오지 않아도 되니까

즐거운 나날이 계속되길 바라다면

팔랑팔랑! 꿈속에서 아침까지 춤추자.]

힐끔.

‘보고 있니 성준아?’

각자의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 조우한 소년 소녀.

한 사람은 높은 곳에 별님이 되어있었고 한 소녀는 뒤늦게 그 별을 쫓아가는 상황. 그런데 지금 그 별님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

잠깐의 눈 마주침.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미진은 그만이 알아볼 수 있게 왼쪽 눈을 깜박이며 윙크하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좋아하는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예전과 달리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듯 보여주고 싶은 것이 여심이기 때문이다.

배시시.

“아...”

그 어느 때보다 진한 눈웃음.

하지만 아까와 달리 자신만만한 눈웃음이 아니라 수줍음이 많이 담겨있는 웃음이었는데 그녀의 웃음에 성준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많이 변해서 알아보지 못했지만, 저 수줍음이 담긴 웃음은 그에게 익숙한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

“뭐야? 진짜야!!? 진짜 쟤가 걘가? 잠깐, 성이 강씨 아니었어? 왜 장미진이지?”

“에? 무슨 소리에요? 오빠?”

무대 뒤편에서 드림걸즈 멤버들과 함께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와중 도경은 오랜만에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뒤늦게 장미진이란 참가자의 정체를 깨닫고 크게 놀란 듯하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힐끔.

‘그저... 대단하다고밖에 말을 못 하겠네.’

피식.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두 선남선녀를 바라보며 도경은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을 감쪽같이 속인 한 소녀의 당돌함과 달달한 연정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까닭이다.

“봄이 온 듯싶구나.”

“네?”

C팀의 무대를 보고 재밌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까지 재밌어질 줄 몰랐다.

인연이란 기묘한 힘과 사랑이란 열병으로 사람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던 무대였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자...!”

깜직 발랄하고 달달한 무대가 끝을 고함과 동시에 크게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는 객석을 바라보는 도경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발바닥은 올라오는 통증은 여전했지만, 달달한 무대를 본 덕분일까? 근질근질한 기분이 들어 오히려 고마운 아픔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야 내 차례구나...!”

어찌 되었건 통증이 기분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은 좋은 신호. 도경은 순순히 그 신호를 이어받아 싱그럽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힘껏 기지개를 펼쳐보았다.

조금 있으면 자신을 기다릴 무대. 저 달달함을 가시게 해줄 무대를 보여줄 생각에 한껏 들뜬 도경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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