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찌릿찌릿.
흥건.
‘으음 기껏 치료해도 터져버렸으니.’
스텝을 밟을 때마다 곡소리 나오게 아픈 도경. 아픔을 대신해 신나는 기합성을 터트리고 있지만, 육체는 정직한지 그의 이마와 등 뒤로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치유의 파동으로 임시조치로 피를 금방 멎게 했지만 강하게 스텝을 밟으며 바닥을 박차는 순간 그것은 모두 무의미해진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쿵쾅쿵쾅!
따라라라 딴딴딴.
[불빛이 화려한 밤이야.
걸음을 별 부스러기로 바꾸고
한밤중의 회전목마들을 쫓아가고 싶어.]
타다닥.
빙그르르!
찌르르!
“윽...!?”
‘아무래도 유리 조각이 안에 남아 있나 보네... 아프잖아!’
빠득.
고통과 달리 너무나도 신이 나고 흥겨운 노랫소리와 달리 몸을 회전하면서 발에서 전해지는 말 못 할 고통은 짜릿하기 이를 데 없어 도경은 턴을 하는 와중 속앓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어이가 없지 정말로...!”
사건은 3시간 전의 리허설 떼로 돌아간다.
무대 아래 장치되어있는 리프트를 타고 허공으로 솟구치는 도경의 무대 등장 신. TV로만 봐왔지 직접 리프트 장치를 이용해 도약하는 것은 처음이었던 도경은 이때만 해도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레하였었다.
파아앙!
쿵!
우지직! 퍼엉!!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프트 장치의 힘과 도경의 괴랄한 점프능력 덕분에 너무나 높게 솟구쳐 올랐고 그것은 그 자리에 있는 제작진과 점프한 당사자가 예상 못 한 사고를 일으켜 버렸다. 도경이 착지한 무대가 부서져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부서진 무대는 고치면 된다. 리허설과 본공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도경이 부순 무대 바닥의 재질에 있었다. 무대 바닥을 이루고 있던 재질은 다름 아닌 강화유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도경의 첫 번째 무대 컨셉은 [맨발의 청춘]. 그 수많은 컨셉중에 그날 잡은 컨셉이 하필이면 무대 위에서 맨발로 힘차게 춤을 추는 컨셉이었던 것이다.
와장창!
푸슉!
맨발로 강화유리로 깬다?
강화유리가 깨졌다는 것에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도경의 맨발바닥이 유리 조각으로 넝마 짝이 되어 너덜너덜해졌다는 것이었다. 강화유리 바닥은 위험성 떄문에 모두 철거했지만 이미 도경의 발은 되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참 얄궂은 일이었다. 도경의 무대를 위해 김지승 PD가 특별히 신경 쓴 공들인 무대가 여러 악재가 한데 겹치고 겹쳐서 역으로 도경에게 독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오늘 밤은 춤추고 싶니?
로맨틱한 나를 독차지하고 싶니?
널 행복게 할 신데렐라 보이.]
타다닥!
촥!
탁! 탁! 휘익!
재수가 옴 붙어도 제대로 붙은 날이었다. 하필이면 도경이 짠 안무 자체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명 고고(GoGo)댄스. 세련된 동작보다는 막춤에 가까운 큰 동작과 쉴새 없이 스텝을 밟으며 끊임없이 잔 동작을 추가하며 달려나가는 춤이 도경이 짠 안무였기 때문이다.
무대, 컨셉, 안무까지 삼위일체를 이루며 당사자인 도경에게 불운을 안겨다 주는 불운한 현재. 도경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밖에 없었다.
“합!”
휘릭!
타타닥!
힘찬 기합성과 환한 웃음.
불운을 쫓는 액땜을 하듯 기운찬 기합성 내뱉는 동시에 고통을 마주하며 웃는다. 그것이 무대 위에서 할 수 있는 도경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눈부신 월광, 화려한 밤
뜨거운 박동을 울리고 심장을 꽉 잡은 이 밤.
오늘 밤은 추고 싶니?]
쿵! 쿵! 쿵!
푸슉!
주르륵.
“흐...!”
씨익!
땀을 흩날리며 쉴새 없이 드림걸즈 멤버들과 진영을 이리저리 바꾸며 화려한 발재간으로 무대를 누비는 도경은 그야말로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글이글!
“아...!”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는 연습생들 모두 일순간 알 수 없는 기백에 신음성을 흘렸다.
드림걸즈라는 미소녀들도 눈을 즐겁게 하였지만, 안경을 낀 것처럼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도경이 춤추며 움직이는 모습에 눈이 쫓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도경을 놓치고 만다.
화르륵!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도경과 드림걸즈의 무대에 눈이 현혹되고 만 것이다.
도경은 불꽃처럼 무대를 누볐고 미소녀들은 그 불꽃의 열기에 어울려 함께 춤을 추었다.
[가슴 빨갛게 불꽃을 퍼뜨리고
더! 더! 더!
뜨거운 박동을 울려.]
[Dancing Hero]
고통과 악운 속에서도 열화와도 같은 꽃을 피우는 존재. 그것은 역경을 이겨내는 히어로와도 같았으니 무대를 붉게 물들이는 도경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따다다다 딴딴!
---
“으아...! 정신없이 춤추는데 동작 하나 흐트러짐이 없네”
“대단하다...! 저런 춤도 가능할지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 드림걸즈 춤도 잘 췄구나.”
“으아...! 춤 극악이다. 보기만 해도 살 빠지겠다...!”
끄덕.
유산소 운동도 쉴 틈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안무. 보기만 해도 숨이 가빠오는 정신없는 춤동작에 도경과 드림걸즈 멤버들의 안무를 보면서 연습생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따따다다 따따 단!
탁탁! 휙!
듣기만 해도 쉴 틈 없는 BPM 노래.
용케도 저런 빠른 노래에 맞춰 수많은 동작을 취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노래 포인트 부분부분 마다 각자 빠르게 칼군무로 각을 맞추는 합은 더욱더 대단한 것이었다.
큰 동작보다 작은 동작인 잔동작으로 꽉 짜여진 안무를 칼군무 한다는 것은 웬만한 노력과 실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척척척!
“와...!”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도경&드림걸즈 콜라보 댄스 무대에 모두들 넋을 넣고 있을 때 몇몇은 무대를 유심히 보다가 이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대 위. 도경이 움직일 때마다 붉은색의 족적이 담긴 발자국이 무대 위에 찍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저거 핏자국이니?”
“저, 저 미련한 형이...!”
“도경아...”
7080 화려한 나이트클럽 분위기를 낸 무대인 만큼 어두움과 반짝임 그리고 춤을 추고 있는 도경과 드림걸즈에게 시선을 빼앗겨 모두들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도경의 부상을 알고 있던 박진용과 제작진. 그리고 높은 곳인 심사석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도경과 무대에 찍힌 핏자국을 발견했다.
“P, PD님! 도, 도경 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발바닥에 패치랑 테이핑까지 했는데 저 정도로 피 나는 거면 상태가 심각한 거 아닙니까?”
“아아...!”
주변 스태프의 말에 김지승 PD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태프의 말처럼 도경의 발 상태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말렸어야 했나 봐... 아니! 그나저나 그 발로 왜 리프트 장치로 점프한 거야?”
리허설 때 부상을 입었던 도경의 발바닥을 떠올리며 김지승 PD는 뒤늦은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괜찮다며 태연하게 바닥에 발을 디디며 걸음을 옮기던 도경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무엇보다 그 발 상태로 첫 등장 신에 분명 빼기로 했던 리프트를 이용한 점프를 강행한 도경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그게... PD 님하고 이야기가 미리 됐다고 괜찮다고 해서...”
“하아. 그게 말이 되냐? 그랬으면 미리 내가 사전에 스탠바이 준비를 시켰겠지.”
“그럴 생각할 틈이 어딨습니까 이미 드림걸즈가 무대에서 춤추며 도경 씨 등장을 기다리고 있고 도경 씨는 다짜고짜 쏘아 올리라는 데 까라면 까야죠. 그리고 저렇게 상태 안 좋을지 알았습니까? PD님도 보셨잖아요. 아픈 기색 없이 멀쩡히 돌아다닌 도경 씨를요.”
“...”
스태프의 말에 김지승 PD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 말이 맞는 것을 알기에 그저 애꿎은 한숨을 길게 내 쉴 수밖에 없었다.
“하아... 이래서 연기 잘하는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는 거라니까...!”
도경의 감쪽같은 연기에 모두가 제대로 속은 것이다.
사실 멀쩡하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음에도 멀쩡히 걸어 돌아다니고 아픈 기색이 전혀 없었던 도경의 연기에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괜찮나 보다 생각했던 것이었다.
“도경 씨...”
물끄러미
‘무대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도경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김지승 PD는 자신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또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또라이였어...!”
감쪽같은 연기로 속이는 영악함과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무모함을 지닌 또라이.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다닌다고 하는데 도경은 피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으면서도 웃음 지으며 춤을 추고 있는 도경이 보였다.
분명 엄청난 통증을 느낄 텐데도 오히려 더욱더 힘차게 움직이는 도경의 행동은 제대로 된 신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광기와 열정 그 자체. 무대를 붉게 물들이는 도경을 보며 김지승 PD는 제정신이 아니라 생각했다.
무모한 도경에게서도 그리고 그런 무모한 도경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하며 지금의 도경의 모습을 어떻게 시청자에게 보여줄지 생각하며 흥분하고 있는 자신을 향해서 말이다.
[더! (뛰어)
더! (널 필요로 해)
더! (뜨겁고 뜨거운 박동이!)]
시끄러운 노랫소리 속을 뚫고 울려 퍼지는 도경의 녹음 된 목소리가 스튜디오 가득 울려 퍼지며 모두의 가슴을 덥히며 춤을 추고 있는 동작은 더욱더 가속한다. 빠꾸 없는 인생. 그의 고고(GoGo)댄스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으아아...!”
“헐! 사장님 도경 오빠 괜찮을까요? 피 너무 많이 나는데...”
“발 어떻게... ”
“너무 무모합니다.”
“저 녀석...!”
걱정 가득한 시선과 목소리가 들려오는 무대 뒤편. 도경의 다음 무대를 기다리고 있는 박진용과 드림걸즈 멤버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도 좋지만, 몸도 생각해야지!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는 거야?”
뒤를 생각 안 하는 도경의 가속하는 페이스에 박진용의 얼굴은 화내듯 일그러져 있었다. 저쯤 되면 고통 속에 발에 제대로 된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골병든단 말이다. 미련한 놈아...! 그런데...”
보기만 해도 숨 차오르고 격렬한 안무.
발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낄 것을 알기에 너무 무모하다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던 박진용은 겉으로는 도경을 향해 끊임없이 투덜거렸지만, 내심 속으로는 도경에게 매혹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거냐?”
중얼.
피와 땀을 흩날리는 고통 속.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도경을 보는 박진용의 복잡한 시선으로 도경을 쳐다보았다. 자신도 예전에는 분명 저렇게 웃었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피식.
“모르겠지만...!”
분명 예전보다 나아진 상황이고 이루어낸 게 많았고 누구나 부러운 위치에 서 있었건만 도경의 무대를 보면 그런 것들은 사실 자신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박진용이었다.
“무대에 오르면 명확하게 알 수 있겠지.”
무대에 오른 이후 자신이 도경처럼 웃을 수 있을지 아니면 웃지 못할지. 그것에 따라 자신이 남은 인생이 나아가는 방향이 정해질 거라 박진용은 강한 직감을 느끼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